애니메이션계의 명암을 엿볼 수 있는 책, ‘Drawing for Nothing’
'지기 캐시미어(Ziggy Cashmere)'로 활동하고 있는 제이콥 프루이트(Jacob Pruitt)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팬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프로젝트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단순히 시각적인 아카이브로 활용되기 보다, 책을 통해 실현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싶어 이 책을 제작했다.
최근 영화계를 둘러보면 애니메이션 작품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반응은 단순히 작품 수준의 향상만이 아니라, 관객들의 인식 변화가 맞물려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어린이·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면, 이제는 성인들도 함께 공감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변했다. 이런 변화에 영화 제작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깜짝 등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니언즈’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또한 세계적인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란색의 이 귀여운 외계인들은 등장과 동시에 언어와 세대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 충분했다. 개막식 효과 덕분인지 ‘슈퍼배드 4’는 역주행에 성공하며 전 세계 흥행 순위 3위에 올랐고,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최초 누적 수익 50억 달러 돌파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의인화하여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인사이드 아웃은 1편에 이어 올해 2편이 개봉되며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흥행으로 그전까지 1위였던 겨울 왕국 2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 1위에 등극했다. 이에 제작사인 픽사와 디즈니는 각각 축하 이미지를 공개하며 기쁨을 드러냈다. 특히 디즈니가 공개한 이미지에서는 겨울 왕국의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가 인사이드 아웃 2의 중심이 되었던 ‘불안(Anxiety)’에게 1등을 표현하는 횃불을 건네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우리를 울고 웃기며 우리의 마음을 홀리고 있다. 성공하는 영화들을 둘러보면 단순히 웃음만 선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선사하는 감동까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제작하는 이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도록 이야기와 설정이 탄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 제작사들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 콘셉트 아트워크 등을 공개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대중에게 알리려 애쓴다.
몇 년에 걸쳐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 세상에 선보이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도 생긴다. 어렵게 개봉을 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힘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 명작이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정받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은 한 인물이 이를 세상에 공개하자고 마음먹었고, 숨은 명작이 하나둘씩 공개되며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필명 ‘지기 캐시미어(Ziggy Cashmere)’로 활동하고 있는 제이콥 프루이트(Jacob Pruitt)는 애니메이션 역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고, 심지어 제작 과정에서 팬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프로젝트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어 그는 인터넷을 통해 아티스트의 포트폴리오, 애니메이션 필름, 인터뷰, 심지어 모호한 책 스캔본까지 다양한 리소스를 검색하며 사장된 애니메이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수년간의 광범위한 연구는 ‘드로잉 포 낫싱(Drawing for Nothing,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한 드로잉)’이라는 책으로 완성되었다.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는 누군가의 꿈입니다.
Jacob Pruitt
그 아이디어 중 일부가 아무리 어리석고, 영혼이 없고, 시장성이 없더라도,
그것은 누군가의 꿈이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방해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과거에 영화와 관련되어 만들어진 것의 일부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이야기, 제작, 그리고 운명을 설명합니다. 가능한 한 아티스트의 인정받는 것으로 공을 돌립니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프루이트가 캐나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넬바나(Nelvana)의 1983년 영화 ‘락 앤 룰(Rock & Rule)’을 기념하는 아트북 목업을 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참패를 겪었지만, 그는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담은 책을 만들면 분명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다른 일을 하느라 책 완성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프루이트는 제작 과정에서 취소되거나 모호한 과정으로 남은 영화를 재조명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다.
프루이트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위한 예술 작업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았기에 영감을 쉽게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세상에는 그처럼 실패했지만 아름다움이 가득한 프로젝트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수집했고,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모습으로 정리했다. 덕분에 성공의 꿈을 이루지 못한 영화들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책에서는 그가 좋아하는 드림웍스 사의 ‘미 앤 마이 섀도(Me and My Shadow)’를 비롯하여,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등의 제작사들이 실패한 영화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프루이트의 피땀 어린 수집과 정리 덕분에 캐릭터 제작, 배경 설정, 스토리보드 등 다양한 자료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테스트와 관련된 영상들도 볼 수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자료를 기반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를 보면 생각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작품들이 작업 과정에서 제작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을 만든 이가 어떤 마음으로 제작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명암을 느끼게 한다.
단순히 책이 시각적인 아카이브로 활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프루이트는 책을 통해 실현되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간 엄청난 양의 예술적 노동에 대해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고자 했다. 그와 더불어 애니메이션 산업 내의 무한한 창의성을 보여줌으로써 동료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창의력에는 수많은 실패와 노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주장하는 듯하다.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책은 홈페이지를 통해 보거나 무료 PDF 문서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덕분에 전 세계의 애니메이션 팬들의 호응이 뜨겁다.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책 작업은 계속 진행 중에 있다. 프루이트에 따르면 이 작업은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많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중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루이트와 팀은 앞으로도 세상의 모든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해 조명하며, 책을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