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따라 의미를 확장하는 한지의 시간, 고소미
23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한지라는 물성에 대해 깊은 연구 후, 한지 설치 미술과 공예 미술의 경계에서 고유한 미감을 선보이고 있는 고소미 작가. 그는 한지를 단순한 전통 소재로만 보지 않는다. 현대적인 맥락에서 재료를 재해석하고 확장시키는 작업을 통해 한지의 무한한 가능성과 예술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중이다. 특히 고소미 작가는 사람, 지역, 자연 모든 곳에서 '흔적'을 더듬어가는 것으로부터 모든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고소미 작가의 작업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한지를 물레에 돌리고 꼬는 기법을 사용해 자신만의 고유한 실 ‘소미사(小魅絲, SOMISA)’를 활용해 작품 세계를 전개한다는 것. 한지의 질감과 물성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과의 조화를 통해 늘 전통적이기만 했던 한지의 영역에 신선함과 재료의 존귀성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결정되고, 간편한 것이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고소미 작가 특유의 한지 기법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Interview
고소미 한지 설치작가
한지, 그 영겁의 시간
ㅡ 한지를 향한 작가님의 여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고등학교, 대학교 때 동양화를 전공했어요. 바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종이 위에 바람을 그렸는데 바람의 느낌을 살리기 어렵더라고요. 종이가 바람처럼 떠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후 한지의 물성을 깊이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죠. 한지를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한지를 많이 사용하고, 한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된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했고요.
그렇게 타마미 미술 대학으로 진학을 했는데 거기서는 한지의 물성 연구보다는 한지 표면 디자인에 집중을 했었어요. 1년쯤 지났을까 저희 학교 전시에 무사시노 미술 대학교의 다나카 히데오(Tanaka Hideho) 교수님이 방문하셨는데 그때 제 작품을 보시고는 제가 한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보셨나 봐요.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한지 연구라면 우리 학교로 와라’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운명처럼 무사시노 미술 대학으로 옮기게 됐어요.
ㅡ 무사시노 미술 대학으로 옮긴 후, 한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간 거군요.
우선 한지를 쉽게 찢어지지 않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한지가 어떠한 성질을 가졌는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현미경으로 한지를 들여다보면서 섬유질 연구부터 한 거예요. 섬유질의 방향에 맞춰 종이를 잘라 꼬으면 같은 방향의 실 섬유가 꼬이니까 더욱 단단해지거든요. 또 옛날 한지가 이랬다면 앞으로의 한지는 용도에 맞춰 어떻게 변화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연구의 주 목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한지와 아크릴을 섞는 방법도 있지만 아크릴은 자연 소재가 아니잖아요. 그럼 자연 소재만을 사용해서 지속 가능한 한지를 어떻게 만들지 계속 연구를 하는 거죠. 한지와 식물을 꼬아서 실을 만들 수도 있고, 혹은 한지 자체만으로 강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자연의 풀을 가져와 풀을 덧칠해 반 코팅하는 방법 등등…. 한지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한지가 얼마나 변색되고, 벌레를 먹고, 취약한지 연구하고, 또 일부러 습도를 가해 곰팡이가 번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이 아이가 얼마만큼 변형되는지를 확인하기도 하고요. 이런 다양한 환경과 변수에 대한 보완이 되어야만 한지로 만든 작품을 하나의 온전한 작품으로 판매할 수가 있으니까요.
ㅡ 작가에겐 작품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렇죠. 일반적으로 유화 작품은 정말 많이 구매하시잖아요. 어느 정도 영구적으로 보존될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데, 한지로 만든 작품은 왠지 변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선뜻 구매하지를 못하세요. 작가 입장에선 똑같이 노력한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죠.
ㅡ 한지 연구를 위해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일본에 머무르셨는데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면요?
한지라는 소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또 어떤 모습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던 것 같아요. 동시에 철학 수업을 계속해서 같이 들었고요. 일본 유학 생활 대부분은 저를 무사시노 미술대학으로 데려간 다나카 히데오 교수님의 도움과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를 키워주셨죠. 다나카 상은 전 세계 섬유미술 계의 3대 선두주자로 손에 꼽히는 분인데, 정말 운이 좋게도 교수님과 인연이 되어 많은 걸 얻어왔죠. 교수님이 한 번은 너는 최종적으로 어디서 살 것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말씀드렸죠. 내가 일본까지 와서 한지를 배우는 이유는 한국에 가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지 여기서 살고자 온 것이 아니라고요. 그럼 끊임없이 한국에 문을 두드려서 내가 이러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한국을 오가며 전시를 진행했었고요. 한국에 돌아온 지는 올해로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네요.
ㅡ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는 일본에서 회사 생활도 잠시 하셨었다고요.
일본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비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때 다나카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한국으로 돌아갈 거지만 일본의 기업 문화도 한 번쯤 배우고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하셔서 역사가 100년이 넘은 ‘토판(前 토판 인쇄, Toppan printing)’이라는 회사에서 잠시 근무를 했었어요. 일본 화지로 화폐를 인쇄하는 곳으로 한국은행의 인쇄 기술도 이곳에서 구매해 화폐를 만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교수님은 한지 또는 종이를 활용해 제품화 시키는 전반적인 과정을 이 회사에서 배우고 돌아가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어보니 이 회사에서는 제가 최초의 외국인이자 최초의 여자 직원이었다고 하더라고요.
ㅡ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나카 교수님이 작가님을 정말 애제자로 아끼셨던 것 같아요.
그럼요. 무사시노 대학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한 이유가 ‘종이만 연구해서는 절대 네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 학교로 오는 대신에 섬유 전반을 함께 연구해라’ 하시더라고요. 1학년 수업부터 3학년 수업까지 모든 수업을 청강하라고 하셨어요. 고등학생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내리 듣고 나면, 이후에 연구실에 가서 교수님이 읽을 신문과 커피를 준비해 놓고 오늘 어떤 공부를 했는지 매일매일 보고를 하는 거예요. 일본은 아직도 도제식 교육*이 남아있어서 내 새끼다 생각하는 몇몇의 제자들은 확실하게 키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어요. 제가 그중 한 명이었던 것 같고요.
*도제식 교육 : 스승이 제자를 기초부터 엄하게 훈육하는 일대일 교육 방식. 제자는 오랜 기간을 스승과 함께하면서 스승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ㅡ 일본 유학 시절 작가님만의 고유한 실을 만드셨다고요.
1학년 수업 때 울 펠트 수업 시간이 있었어요. 물레로 양모 털을 조금씩 빼서 그걸로 실을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듣다가 문득 ‘물레에 종이를 넣어 돌리면 종이가 꼬이면서 실이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한국에서는 한국화를 전공했던 터라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혼자 먹으로 그림 그리다가 실패한 작품들이 엄청 많았거든요. 더군다나 유학생 신분에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으니 이 실패작들을 자른 다음 물레를 돌려봤죠. 처음에는 그냥 돌렸더니 다 끊기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그다음엔 종이에 풀을 먹여 천천히 돌리니까 얘가 점점 꼬이면서 실이 되는 거예요. 그때가 처음으로 한지로 실을 만든 순간이었고, 교수님은 ‘바로 그거야. 그거야말로 정말 너의 실이잖아. 너의 실패한 드로잉이 다시 태어나 실이 되니 겉은 아름답지만 속에는 너의 부족함이 그대로 들어있지. 너의 정체성이 그대로 들어가 담긴 실이니 그 이름은 소미사(小魅絲, SOMISA)다’라고 하셨어요.
ㅡ 소미사라니. 너무나도 존엄하고 귀중한 이름으로 들려요.
그런데 지금은 고유의 기법이라고 해야 될지 말아야 할지…. 저처럼 작업하는 작가님이 한 분 있는데요.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오셔서 제가 작업하는 걸 보고 가셨어요. 저한테 기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드렸는데 그때부터 동일한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그분 말고는 없어요.
ㅡ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어떤 감정이었나요.
당시에는 너무 억울했어요. 그분은 이미 유명하신 분이었고, 저는 한낱 유학생으로 한일 교류 차 만났던 것인데 제가 하는 것을 보고 ‘이거 작품 되겠다’해서 그대로 가져다 쓰신 건 참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 마음을 다독였어요. ‘저분이 저렇게 쓰시면 큰 작업을 하니까 한지 소비 많이 해주시겠네’라고 생각하기로요. 그리고 작가들의 기법이라는 게 한 번 알려지면 그거는 또 기술적인 면으로 서로 공유하는 게 필요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하고요. 스스로 생각해낸 고유의 기법인 건 분명하지만 지금은 나의 방식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는 성장통이었달까요.(웃음)
나의 실을 만들다
ㅡ 작가님이 한지를 재료로 전개하는 작업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작업의 메인이 되는 한지 실부터 작품 완성까지 전반적인 작업을 모두 직접 하고 있어요. 물론 경우에 따라 실을 공수 받아 사용할 때도 있지만요. 실을 만들기 위해선 지역의 장인에게 한지를 구매하고 종이를 커팅 해요. 커팅 한 종이를 물레 돌려 꼬아 실로 만드는 거죠. 그런 다음 이 실을 사용해 어떠한 형태를 만들거나 직조를 해서 회화 작품 또는 조각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소재적 특징이 있다 보니 후처리 과정을 거쳐 제품화시키는 단계까지 이어지기도 하고요. 저희 가족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실 정도는 그냥 사서 쓰면 안 되냐는 거예요.(웃음)
ㅡ 그럼에도 실을 직접 만드는 것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시중에 판매하는 실, 즉 기계사는 결국 효율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100% 한지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전통 장인이 만든 100% 한지만을 사용하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일반 취미로 하시는 분들이 종종 한지사를 구매해서 실을 만들곤 하시는데 실제로는 한지가 아니라 라피아*라는 소재거든요. 겉으로 보기엔 한지 공예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보일 순 있지만, 직접적으로 한지 농가를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는 거죠.
*라피아 : 라피아 야자 잎에서 얻는 섬유로 만들었으며, 잎의 조직이 연하고 강한 것이 특징.
ㅡ 한지를 꼬을 때 직물 실을 넣을 때가 있고, 넣지 않을 때가 있다고요. 어떤 차이인가요?
순수 한지로만 실을 꼬을 때 크게 두 가지 단점이 있는데 한 가지는 한지가 아무리 질기다 하더라도 나일론처럼 질기지는 않기 때문에 강도를 보완하기 위해 실을 합사할 때가 있고요. 또 두 번째로는 한지 실은 광택이 없기 때문에 종종 작품을 의뢰하는 분들 중에 은은한 광택이 돌아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약간의 광택을 더하기 위해 한복에 사용되는 은사를 합사해 실을 만들고 있죠.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한지만을 사용해 실을 만들고요.
ㅡ 작품을 구상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자연의 힘. 물의 힘. 땅의 힘. 내가 늘 마시는 물과 내가 늘 밟고 있는 땅. 작업하다가 더워서 땀 한 방울이 떨어지는데 바람이 딱 나를 식혀줄 때. 이러한 힘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ㅡ 작품의 주변에는 빛과 공간 등…. 다양한 주변 요소가 있죠. 특히 어떤 요소에 중점을 두려고 하는 편인가요?공간을 우선으로 두는데 그 이유는 빛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느냐가 저의 작품에는 굉장히 중요한 편이에요. 그래서 예전에는 자연광에서 작품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전구가 들어간 발광체가 되었으니 전구와의 관계도 중요하고요. 저의 가장 큰 욕심은 불이 꺼져도 멋진 작품으로 보이길 바라는 건데요. 빛이 없을 땐 조명이 아니라 조형물로서의 매력을 가지기 위해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질감인 것 같아요. 처음에 한지를 잘라서 실을 만들었을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어리숙한 소박한 실을 만들다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손으로 만들었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면 이게 시중에 판매하는 실인 줄 알 정도로 마감이 깔끔해졌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구태여 설명할 것이 아니라 매끈한 실로 만들되 이게 한지 종이로 만든 실이라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게끔 텍스처를 살린 거죠.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끔 제가 어필하기보다 스스로 발견해서 그 매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을 테고요.
작가와 공예가의 경계에서 시선의 확장
ㅡ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작가 활동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사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한지 작업들을 꾸준히 이어갔고 한국을 오가며 개인전도 지속적으로 열었어요. 한지 커튼, 한지 캐스팅 등 다양한 설치 미술 작업을 선보였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한국에서 설치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 일이구나’를 느꼈던 것 같고요.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과의 교감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쩌면 나 혼자만의 만족으로만 끝날 수도 있겠다는 고민이 생긴 거죠. 그러던 와중에 제주도의 ‘잔월’이라는 스테이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왔어요. 공간에 놓을 작품을 의뢰하고 싶다고요. 그런데 한날은 건축주가 저에게 말하길 ‘작가님의 캐스팅 작품 안에 전구를 넣으면 조명이 되는데 이렇게 설치해 보는 건 어떠세요?’하며 묻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놀랐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작가로서 불쾌하기도 했고요. 나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변형해 보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할 수 있나 싶었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설치된 조명 작품을 보고서 하나 둘 조명 작품을 의뢰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ㅡ 그때 작가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아 내가 보는 시선이랑 대중이 보는 시선에는 몰랐던 간극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처음엔 나의 작품을 부정당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대중을 생각하지 않고 작업을 했었구나 반성을 하게 된 계기가 됐었어요. 그때부터 쓰임이 있는 조명 제품을 만들다 보니 설치작가와 공예 작가 그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 공예 작가로 불리는 것이 한 길만 연구하고 끊임없이 연구해 온 공예가들에게 죄송스러웠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 한지의 물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해 온 나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요. 이 또한 나의 작품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ㅡ 기존과 동일한 작품임에도 안에 전구를 넣느냐 마느냐가 대중들에겐 의미가 크게 달랐던 것 같네요.
그러니까요. 역시 사람들은 막연히 주어지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용도가 있거나, 완벽한 마무리를 지어주었을 때, 그리고 놓는 방법까지 가이드를 줬을 때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막연히 사람들이 다 저와 같을 거라 생각하고서 내가 만든 작품이 누구에게든 가서 그 사람의 방식대로 놓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게 관계성의 미술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야말로 작품의 완성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 부분은 제가 앞으로도 조금 더 많이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ㅡ 최근에는 어떤 작업들을 주로 하고 계시나요?
참 재미있는 게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온 뒤로 제작한 설치 작품들이 작업실과 집 곳곳에 잔뜩 쌓여 있었는데, 잔월에서 조명 작품을 선보인 뒤로 조명 주문이 엄청 들어왔고 갖고 있던 작품의 90%가 소진되었어요. 그러던 찰나에 조병수 건축가님의 새 프로젝트 ‘파란 곳간’에 들어갈 작품 의뢰가 들어와 진행했고 최근에 해당 프로젝트가 끝났어요. 평소 건축가님을 존경하기도 했었고, 건축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철학과 저의 철학 베이스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나의 작품이 그분의 건축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전라북도 부안 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파란 곳간’ 공간에는 커튼 작업을 의뢰 주셨는데 제가 그곳에 직접 방문해 보니 여기에는 커튼만 들어갈 게 아니라 설치물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스케치를 그려 건축물 안에 어떤 방식으로 들어가면 좋을지 역으로 제안을 드렸고, 건축가님은 보자마자 정말 쿨하게 좋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생각한 건 결국 돌고 돌아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기회를 주신 건축가님께도 감사하고요.
ㅡ 파란 곳간에 들어간 작품들은 어떤 의도로 완성했나요?
아버지의 창고를 개조해 만든 파란 곳간은 이전 세대의 흔적 위로 자식 세대가 이어가는 공간이었어요. 조병수 건축가님 역시 재생 건축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재생 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흔적을 보호한다, 보존한다는 것이고요. 저 역시 늘 흔적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해왔으니 나의 작품이 이 공간에 들어가면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다행히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로 잘 나왔던 프로젝트였어요.
ㅡ 파란 곳간 프로젝트 이후 조병수 건축가님과 또 한 번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 중이라고요.
가장 처음에는 건축가님의 개인 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을 의뢰 주셨던 건데, 그 과정에서 건축가님의 스케치에 제 스케치를 더해 제안을 드렸더니 정말 겸손하시게도 ‘나보다 훨씬 나은데요’ 말씀 주시더라고요. 물론 저를 위해 그냥 하시는 말씀이시겠지만 ‘우리 둘의 스케치가 너무 비슷해요. 우리가 철학적으로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네요’라고 하셨고 제 이름이 제작자로 남을 것이 아니라 아예 콜라보 전시를 진행하자고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내년 2월에 영국에서 전시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그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요.
한지 농가와의 상생을 꿈꾸며
ㅡ 국내에 한지를 생산하는 곳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까운 요즘이에요. 한지는 주로 어디서 수급하시나요?
저는 주로 전주랑 안동에서 받고 있는데요. 사실 기술의 차이는 크게 없어요. 다만 한지 장인님들이 모두 연세가 있어 연루하시잖아요. 장인 님의 건강 상태에 따라 주문량을 조정하기 위함이죠. 저희가 다음 해 1년 동안 쓸 종이를 연말에 미리 주문을 해놓거든요. 그런데 장인님이 ‘이번에 그만큼은 못 뜰 것 같아’라고 하시면 양을 나누어 두 곳으로 주문을 넣는 거죠.
그리고 한지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쌍발식과 외발식 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쌍발식은 일본식 계량 방법이고, 외발식은 한국 전통 방법이에요. 쌍발식은 한쪽 방향으로만 결이 나는데 외발식은 가로, 세로 방향으로 모두 교차하는 우물 정자 방식으로 뜨기 때문에 더 단단하죠. 그런데 공정상 쌍발식이 더 빨리 떠지니까 오늘날의 장인들도 쌍발식을 많이 사용하시고요. 하지만 외발식으로 뜬 한지가 무조건 더 강하기 때문에 한지를 주문할 때 반드시 외발식으로 뜬 한지로 보내달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종이를 커팅 할 때 빛에 비춰보고 섬유 결에 맞춰 칼질을 하거든요. 일반 분들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저는 이제 찢은 단면의 결만 봐도 알아요.
ㅡ 두 곳 모두 장인님들의 대를 잇는 분들이 없는 건가요?
전주 한지 장인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다행히도 아드님이 대를 잇겠다는 결심을 하시면서 지금 열심히 수련 중이세요. 안동 한지의 경우 다행히 여러 장인님들이 계셔서 그나마 수월한 편이고요. 그래서 저는 다음 세대가 대를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약간 어설픈 종이라도 내가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야 이분들도 힘이 나서 일을 하실 테니까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제 한지 받을 곳이 없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한지 공예를 활성화한다고 한들 한지 소비량이 많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창문에 한지를 붙이고, 한지에 그림을 그리고 하는 것 가지고는 활성화가 힘들 것 같고 오늘날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지만 한지 소비가 발생할 거잖아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거죠. 그래서 한지 수의도 생각한 거고, 최근에 새롭게 준비 중인 건 한지 인센스인데요. 작품에 쓰이고 남은 자투리 실들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실을 뭉치로 감아서 그 위에 오일을 뿌리면 발향체로서 쓰일 수 있을까 싶었는데 향이 정말 오랫동안 지속이 되는 거예요. 이 실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한지를 꽉 꼬아서 만드는 거다 보니까 그만큼 밀도가 높아서 머금는 시간이 길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통풍도 되기 때문에 오염될 걱정도 없고요. 한 달을 방치해둬봤는데 향이 지속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제품화 시키려고 준비 중이에요.
ㅡ 조명 작품으로 작가님의 작업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최근 1~2년간의 한지 주문량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이전에는 한 해 평균 3천 장 정도 사용했다면 재작년부터는 만 장 단위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한지 농가를 지키려면 이제 이 정도는 기본으로 써줘야 하지 않을까요?
ㅡ 지역적 소재를 자주 사용하곤 하나요?
작가로서 저의 개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그것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사명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각자의 철학에 맞춰 여러 형태가 있는데 ‘너는 너의 작품 활동을 통해 너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활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라고 교수님께서 물어본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일주일 정도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한지(재료)를 사용하잖아요. 물론 제가 돕는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지만 한지업을 행하는 지역 분들의 재료를 대중에게 출처를 밝히며 쓰는 것. 그리고 그들이 만든 작품 위에 나만의 작품 세계를 겹쳐 최종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는 걸 밝힘으로써 그 소재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하고, 생경함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지역과의 연계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한지뿐 아니라 실 역시 사람의 손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요. 이런 손맛은 기계에서 짜기 힘들어요. 실이 금방 끊어진다거나 텐션 자체가 다르죠. 한지실의 경우 대부분 제가 직접 만들지만 삼배실의 경우 지역에서 받아쓰기도 하거든요. 연순직물, 강화도 소창, 안동삼배, 전주 한지, 안동 한지, 문경 한지를 접목해서 작업을 하는 거죠.
한지 물성에 집중하다
재료: 전주 한지 / 기법: 수묵 담채화, 줌치기법, 재봉, 옻칠
ㅡ 작가님이 생각하는 한지라는 물성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매력 너무 많죠. 한지를 펼쳐 놓고 먹을 머금은 붓으로 선을 그으면 제가 의도한 대로 선이 나올 때도 있지만 확 번질 때도 있잖아요. 사실 먹이 번지는 순간 그 작품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건데 그 번짐 속 스며드는 느낌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되거든요. 어딘가 따뜻하고 서서히 스며든다는 것이요. 그래서 한번은 생각해 봤어요. ‘이 스밈이 어떻길래 내가 이렇게 위안을 얻는 걸까?’ 하고요. 저는 경계가 명확한 것, 예를 들어 YES 또는 NO, 혹은 1 아니면 2. 이렇게 판단하고 구분 짓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 애매모호한 모호성 있죠. 그게 저한테는 아주 편한 거예요. 한지를 탁 찢으면 일자로 깨끗하게 찢어지는 게 아니라 섬유질의 흔적이 남아 모호하게 찢어지잖아요. 그러한 지점이 저한테는 엄청 편한 거예요. 한지가 가진 자연스러움은 무엇도 따라올 수가 없어요. 번짐. 스밈. 자연스러움. 저는 애매모호한 사람인 것 같아요.(웃음)
각각의 개별 존재자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운동하며, 성장하고 사멸하는,
다시 말해 생성의 과정에 있는 다양체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ㅡ 작품의 재료로서 한지가 가진 매력은요? 또 다른 면이 있을까요?
일단 가볍고요. 전구를 넣어 조명으로 만들기 전에도 저는 이 사이로 자연의 빛이 통과해서 공간에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고 그 위로 또 그림자가 포개어지는 이런 레이어가 저한테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또 보시다시피 제가 체구가 작아요. 원래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는데 체구 작은 저에게 맞지 않다고 반대가 워낙 심했었거든요. 그런데 한지는 부드럽고 가벼워서 제가 조각을 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던 것 같아요. 처음 이 한지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는 다루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한지를 워낙 많이 다루었더니 이제는 제가 만들고자 하는 형태, 의도한 형태로 잘 나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고요.
ㅡ 그럼에도 한지를 다뤄온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느낀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크게는 없었던 것 같은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필요에 따라 한지를 직접 염색해야 한다는 거? 시중에 판매되는 염색 한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크레파스 12색처럼 기본색으로만 판매되고 있는데요. 저는 연한 색을 좋아하는 편이라, 제가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선 직접 염색을 해야 하는 거예요. 종이에 따라서는 붓 칠 염색이 필요할 때가 있고, 담금 염색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가령, 이 종이에는 담금 염색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실패를 하는 경우가 있었죠. 한지를 만드는 것까지가 장인들의 일이고, 그 이후의 작업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모양과 형태 그리고 색을 내기 위해선 모든 작업을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공간과 사람의 흔적을 따라
ㅡ 제가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곳이 제주 스테이 ‘느긋한 시절’에 들어간 조명 작품이었어요. 이곳의 작품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느긋한 시절을 운영하는 부부는 도심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는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느긋함의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느리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느린 줄 알았는데 저보다 느리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면 생각을 엄청 깊게 하세요. ‘내 판단이 맞을까’ 하며 테스트해보고 또 테스트해보고. 그런 과정을 거치느라 밖에서 봤을 때는 안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생각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며 마치 두 사람이 애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에고치 속에 들어있는 애벌레. 누에고치를 겉에서 보면 낙엽인 것 같기도 하고, 생명이 없어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결국엔 거기서 생명이 나오고요. 두 부부가 마치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조명의 이름도 코쿤(Cocoon)이라고 지어서 나비가 되기 직전의 누에고치 같은 모습으로 부부를 생각하면서 이 형태를 만들었어요.
ㅡ 철선을 꼬아서 한지를 덧입힌 작업 ‘다양체’의 형태는 설치 작업하실 때부터 자주 선보이셨죠. 작품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철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잖아요. 그걸 통해 시간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 시간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길 바랐어요. 이제 막 만들어진 작품과 1~2년이 지난 후, 그리고 10~20년이 지난 후에도 이건 동일한 하나의 작품이잖아요. 그러나 단편적으로 보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보는 순간에 따라 다른 인상을 줄 수가 있잖아요.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모든 것이 모이고 모여 현재의 형태가 완성된 거지 단편적인 순간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건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어요.
사람 관계에서 뭔가 억울한 누명을 썼거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상대방이 그런 사람으로 본다거나 혹은 내가 실패하면 저 사람이 날 이렇게 늘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등등…. 저 스스로도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들로부터 해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실패를 거듭해서 완성된 또는 아직 완성이 아닐 수 있다는 그 가능성. 전체의 시간을 통틀어 너를 판단하는 것이니 지금 잠깐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제가 긴 시간 무명으로 작가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작품의 제목을 ‘다양체’로 불렀고요. 에디터님도 한 명의 고유한 생명체고, 저도 그렇고, 지금 저기 창문 밖으로 힘들게 걸어가시는 할아버지도 다 고유한 생명체죠. 누가 특별히 뭘 잘하고 업적을 이루었고 유명하고 돈이 많고 이런 거랑 상관없이 다 그들만의 역사가 분명히 있을 거잖아요. 그 역사를 이러한 실의 꼬임으로 표현했고, 주름처럼 계속해서 쌓아가는 것은 덧입힌 한지로 표현했고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모두 존엄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ㅡ 경주의 스테이 ‘시래’에 들어간 조명 작품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시래 대표님의 아버님이 직접 농사짓고 쌀을 저장했던 정미소를 리뉴얼해서 스테이로 완성한 공간이었어요. 공사 들어가기 전에 공간에 방문해 보니 정미소 바닥에 아버님의 재배하면서 남은 쌀겨들이 흩어져 있었어요. 그 쌀겨를 저한테 보내달라고 요청드렸고요. 한지를 만드는 종이죽에 쌀겨를 섞어 아버님의 흔적을 이 조명 안에 담아주고 싶었거든요. 한지 연구는 워낙 오래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존되는 방법으로 후처리를 한 다음에 보내드렸죠. 이러한 방식 역시 이전에 이미 제가 수없이 해오던 작업들과 동일하지만, 공간의 고유성을 생각해 지역의 재료를 첨가한 것뿐이에요.
ㅡ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공간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의뢰하고 있잖아요. 각 공간에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구상하시는지 궁금해요.
일단 설계사에게 의뢰가 들어오면 브랜딩 된 내용을 받아요. 그리고 도면을 받은 다음 이 공간에는 어떠한 식으로 작품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설계도를 그려서 현장으로 가죠. 건축주와의 한차례 미팅을 통해 이 분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며 이 공간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파악하고 제가 맨 처음 구상했던 설계도에서 수정을 진행해요. 결국 제가 만든 제 작품이지만 작품이 공간에 놓이는 순간, 공간과의 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역성, 공간성 그런 것들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지역 재료들은 꼭 챙겨오는 편이에요.
ㅡ 기존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 있을까요?
정말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흙을 빚어서 도자기로 만든다거나 나무를 조각하는 작가님들의 작품은 조각을 하는 순간 이미 하나의 덩어리가 서 있잖아요. 그런데 원단이나 한지는 소재 특성상 유연하게 공간을 부드럽게 분리하는 용도로는 좋지만 그 아이 자체를 독립시키는 건 참 힘들어요. 저는 언젠가 아무런 철사도 없이 이 한지만 가지고 온전히 자립시키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화학적인 방법이 아닌 자연적인 방법으로요.
ㅡ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한지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저는 한지로 실을 꼬을 때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흔히들 말하는 명상을 하는 것 같아요. 잡생각이 자연스레 사라지고요. 저한테 한지는 비움을 주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