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

국회에 입성한 첫 디자이너 손혜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당찬 국회의원이 제시하는 화끈한 디자인 공약은 과연 무엇일까?

손혜원

손혜원은 강하다. 뜨겁고 솔직하다. 그리고 스마트하다. 그 모든 캐릭터가 모여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첫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움켜쥐었다. 사실 국내 디자인·미술 전공 출신 첫 번째 국회의원은 당선 무효로 궐원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의석을 승계한 김정 의원이었다. 손혜원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뉴스로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문재인 의원의 아내와 고교 동창인 인연으로 정치를 알게 됐고 그의 인품에 반해 당무를 수락했던 터다. 홍보위원장 직함으로 비례대표를 통해 국회에 들어가는 편한 길도 있었지만 공천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을 지켜보고는 직접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녀의 성정을 아는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한 선택이었지만 사실 그건 모험에 가까웠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42.3%의 득표율로 당선에 성공한 이유는 공천에서 탈락한 정청래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마포에서 적극적으로 손혜원 후보를 지지했고, 그녀의 지지자도 분연히 나섰기 때문이다. 당찬 국회의원이 제시하는 화끈한 디자인 공약은 과연 무엇일까?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나날을 보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아주 바쁜 일정을 보내느라 컨디션이 별로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식중독 기운이 있어서 초선 의원 연찬회에도 불참했어요. 3선급 초선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지요.(웃음) 사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신념이 옳다고 느껴지면 내 이익을 포기한 적도 많았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더라고요. 정당인이 되어 국회에 입성하는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에요.

정치 초보자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어떻게 유권자와 소통했습니까?

팟캐스트란 방송이 있는데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좋은 프로그램이더군요. 자랑은 아니지만 내 페이스북이 정치인 랭킹 4위인데 하루 4만 명이 방문하고 기자들도 200명가량 ‘페친’이에요. 요즘같은 세상에 뭐 비결이 있나? 무조건 솔직하게 얘기하고 대의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죠. 전략적으로 볼 때 50~60대는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20대 투표율이 올라가면 승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고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투표는 꼭 해달라’,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라고 얘기하고 다녔지요.


손혜원 의원은 유명한 브랜드 전문가다. 크로스포인트 대표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이뤄냈다. 지금도 골목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참이슬’ 뚜껑을 열고 있을 테고, 다들 ‘처음처럼’을 처음 마시는 것처럼 즐기니 출시 5년 만에 18억 병이나 팔렸을 것이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시 ‘처음처럼’은 초심의 감성이 깃든, 위로의 술로써 소주의 기능을 증폭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로서의 탁월한 식견이 현실 정치에서도 빛을 발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더’라는 의미가 그녀의 솜씨였으니까.


더불어의 ‘더’ 콘셉트가 아주 근사합니다. 어떻게 나온 이름인가요?

지난 9월부터 기존의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유인즉슨 ‘새정치’와 ‘연합’을 추종하는 세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뭉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공모를 열고 6개 안을 받았는데 그중 네 번째가 더불어민주당이었지요. 서체와 디자인 등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큰돈 안 들이고 진행했지요. 사실 이름 때문에 모든 게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요인이 시너지를 내어 맞아떨어져야만 이뤄지는 것이지요. 물론 열정이 많은 부분을 도와주지만요.

SNS 소통을 지켜보니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건 기질인가요?

원래 내가 그래요. 오로지 한길만 바라보니까! 그리고 후회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나전칠 기의 멋스러움에 반해 전통 공예를 살리고자 전 재산을 쏟아부었던 것도 같은 얘깁니다. 결정을 하고 뭔가를 시작하면 죽기 살기로 승부를 내거 든요, 내가! 약간 싸움꾼 기질이 있기도 하고.(웃음) 다들 얼마 못 버틸 거라 했는데 이제는 운명적으로 국회의원이 됐고 막상 정치의 핵심에 들어와보니 시스템이 엉망이더군요. 나랏돈을 갖고 하는 일이니 대책을 바로 세우고 싶어요. 똑똑한 사람이 많으면 뭐 하나? 실력보다는 이합집산하며 세를 늘리고 유리한 것만 찾아다니는 행태는 이제 그만둬야하지 않겠어요?


열정 하면 손혜원이다. 나전칠기를 다루던 장인들의 명맥이 끊어지는 척박한 환경에서 그녀는 한국 전통 공예의 비범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발로 뛰어다녔다. 장인들을 직접 만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소반과 함지박을 모아 옻칠하고 다듬었다. 작업을 그만뒀던 나전칠기 장인을 설득해 20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내놓게 한 건 정말 뿌듯했던 기억이다. 현대적인 디자인 가구에 나전을 더하는 도전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알루미늄 탁자에 자개를 붙여 실용성이 뛰어난 나전가구는 새로움에 열광하는 세대의 취향에도 맞았다. 그렇게 잊혀가던 우리 고유의 전통을 복개하고 널리 퍼뜨리는 일을 하던 그녀는 디자이너이자 전통문화 수호자로 지난 10여 년을 보냈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에서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황삼용 작가는 그녀가 발굴해낸 끊음질의 달인이다. 나전 작품 제작에 미쳐 작가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그를 설득해 세계 무대로 이끈 건 나전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부른 시너지 효과다. 자개 조약돌을 만들기 위해 강원도 홍천 강가에서 작은 돌멩이를 30개 주운 뒤 찍은 돌 사진을 확대해 끊음질 나전을 시뮬레이션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이름 높은 컬렉터가 현장에서 2점을 구입했고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기관에서도 선뜻 구매에 나섰다. 그러한 성공으로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은 전통 공예 작가 20여 명을 지원하며 공방을 새롭게 여는 데 나서고 있다.


디자인 기획과 마케팅, 홍보와 판매 자문을 능숙하게 해내 우리나라의 명품 나전칠기를 누구나 좋아하는 오브제로 만들었습니다. 그 역할 그대로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요? 

전통을 계승하는 공예가 중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지역 공동체로 사람을 모으는 역할도 해내고 싶군요. 이제 국회의원이 됐으니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마포 발전을 위해 발로 뛸 거고 홍보위원장으로서는 역시 (정권 교체를 위한) 대선을 준비해야겠지요. 디자이너로서 도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건지 무척 궁금합니다.
처음 거리 유세에 나설 때 슬로건이 ‘정청래와 함께 손혜원’이었고 꼭 일주일 뒤에 ‘마포의 가치를 2배로’라고 바꿨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 약속을 지켜야지요. 그래서 선거 캠프로 쓰던 공간을 사무실로 바꿔 마포발전소를 만들었어요. 지역 내 디자인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인데 마포 내 기업의 사회 공헌 담당과 조율해 노인과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빵집 같은 시설도 만들 예정입니다. 마포 택시를 위해 유니폼 로고와 자동차 외장 그래픽을 손볼 생각이고요.

사람을 모으는 역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디자이너로서 매년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찾는데 그때마다 너무 부럽습니다. 우리도 에너지가 들끓는 도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요? 다행히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최고의 공연장이니 케이팝 페스티벌을 열어 외국인 20만 명을 모아보고 싶습니다. 홍대 앞에서 인디 밴드 공연도 진행하고 국내외 관광객들이 오면 플리 마켓은 물론 연남동의 중국요리를 즐기고 오래된 이발소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어요. 디자인 요소로 본다면 마포의 영어 철자 ‘Mapo’는 보물입니다. 로마처럼 상징적인 그래픽으로 만들기도 쉬우니 목탄화로 근사한 로고를 꾸미면 어떨까요?

청사진이 대단합니다. 마포에 살지 않는 제가 질투가 나는군요.

마포로 오세요. 분명 크게 발전할 거니까요!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56호(2016.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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