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설치해야 좋은 가구다, 와셀로 이병관 대표

제품을 팔아본 사람이 만드는 일도 잘한다. 고품질과 완성도를 위한 모든 공력에는 맥락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와셀로 이병관 대표에 관한 얘기다. 와셀로는 대기업과 수입 브랜드가 점령한 국내 주방 가구 시장에서 독자적인 디자인과 제작 방식으로 성장해온 디자인 스튜디오다. 손에 닿는 작은 부분부터 공간 전체까지 아우르는 만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업을 ‘설치성 가구’라고 명명하는 이병관 대표를 논현동 와셀로 갤러리에서 만났다.

잘 설치해야 좋은 가구다, 와셀로 이병관 대표
논현동 와셀로 갤러리에서, 이병관 대표. ©신동훈
빌트인 주방 가구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와셀로가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했다. 스튜디오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오랜 기간 국내 가구 회사에서 영업과 판매를 담당했다. 기업에서 직접 생산하는 가구를 비롯해 수입 가구까지 다뤘다. 주방 가구를 맡으면 주방만 들여다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떤 클라이언트가 “수입 주방 가구를 다루면 붙박이에 능통할 테니 다른 부분도 다 맡아달라”며 도면을 한가득 줬다. 뜻하지 않게 접하게 된 제작 가구의 세계는 그야말로 흥미로웠는데 대기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퇴사를 하고 지금의 와셀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와셀로의 작업 범주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스튜디오 내부 팀은 어떻게 구성되나?

스튜디오는 크게 디자인, 제작, 현장 관리, 세 팀으로 구성하고, 자체 공장을 운영한다. 쉽게 말해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직접 한다. 가구가 들어설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기본이고, 제작과 설치를 위해 벽체를 다시 뜯어고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바닥, 벽체, 천장을 다루면 인테리어라고 생각하는데 와셀로에게는 가구의 범주인 셈이다.

오치균 미술관(2024). ©홍기웅
와셀로 갤러리(2021). ©홍기웅

모든 제품이 맞춤형인 만큼 의뢰부터 디자인, 제작 과정 모두 남다를 듯하다.

가구만 단독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손이 자주 닿고, 직접 사용해야 하는 디자인이기에 고객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듣는다. 수납장을 여는 방식부터 정리하고 보관하는 방식, 나아가 상·하의를 접는 방식과 물건을 세워두는 방식까지···. 이런 디테일한 설명은 고객뿐 아니라 건축가와 디자이너도 굉장히 좋아한다. 불가능한 디자인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기도 하고. 이 과정이 끝나면 도면을 정리하고 공장에 발주를 넣어 제작에 들어간다.

와셀로가 고수하는 디자인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팀원들에게 인색하게 구는 부분은 바로 현장 관리다. 업계에서도 까탈스러운 곳이라고 소문이 났다.(웃음) 탁월한 디자인, 잘 만들어진 가구도 설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좋은 가구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임에도 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 또한 원하는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투입하는 기술은 물론 사용하는 자재 자체가 달라진다. 와셀로가 공들여서 만든 양질의 제품을 알아보는 건축가, 디자이너,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해왔고, 이런 완성도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롯데캐슬 프레미어(2023). ©홍기웅
다른 스튜디오 혹은 브랜드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단순한 가구를 넘어서 공간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 가구 생산 범위가 여느 스튜디오나 기업보다 훨씬 넓다는 것이다. 한국 주방 가구의 디자인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대형 건설사에서 전부 비슷한 레이아웃의 아파트를 지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해외 명품 가구 브랜드도 결국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기에 현장의 조건에 최적화되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기성 제품은 한정된 시간과 예산을 고려해 개발한, 합리적인 가구이기도 하다. 와셀로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소재의 정교함을 구현해줄 기술자와 제작자가 여전히 부족하고 소비자들의 인식도 미미하지만 좋은 작업을 계속해서 선보이면 대중의 눈높이도 높아지고 시장도 변화하지 않을까?

맞춤형 제작 가구는 흔히 ‘비싸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디테일을 구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늘어나는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있을까?

지금 와셀로의 작업 방식은 제작부터 공정까지 너무 까다롭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무수히 많은 부분에 공을 들이고 재료를 탐구하는데 한 번의 프로젝트로 끝나는 게 아쉽기도 하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쌓아온 디테일을 상품으로 개발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향후 스튜디오의 행보를 어떻게 이어나갈 예정인가?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가 가구를 공간화하며 작업 범주를 넓혀온 것과 달리 와셀로는 공간을 가구화하는 방향으로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고객이 어떤 영역까지 맡아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공간에서 사용하는 가구는 다 만든다”라고 답한다. 예를 들어 벽에 매립하는 설치성 가구를 맡았는데 그것과 어울리는 테이블이 필요하고, 테이블과 어울리는 또 다른 가구가 필요해진다면 전부 만드는 것이다. 주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전개해왔지만 예산만 허락한다면 어떤 공간에서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주거 공간을 넘어서 교육 시설, 커뮤니티 시설을 비롯해 다양한 상공간으로 영역을 넓혀나가고자 한다.

노원구청 노원책상(2022). ©송유섭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5호(2024.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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