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 윤영호 대표
플랫폼 기업으로 리디자인한 폰트 회사
윤영호 대표는 2018년 부임 후 산돌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것은 한 회사를 넘어 국내 폰트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결정적 한 수가 됐다.
누군가 말했다. 경영은 종합예술이라고. 지난 5월 별세한 창업주 석금호 의장의 뒤를 이어 2018년부터 산돌을 이끌어온 윤영호 대표를 보면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폰트 시장에서 2인자에 머물러 있던 산돌을 국내 1위 기업으로 끌어올렸고, 회사의 체질 개선은 물론 대중의 폰트 사용 습관 자체를 바꿔놓았다. 급변하는 시대보다 더 빠르게 추진한 혁신 전략이 주효했다. 이제 산돌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578돌 한글날을 맞아 국내 폰트 시장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나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전문 경영인의 디자인계 입성기
원래 디자인계 밖에서 활동한 것으로 압니다.
저는 원래 KTF에서 마케팅과 성장 전략 관련 업무를 했습니다. 해외에서 MBA 과정을 마친 후 2012년경 KT가 인수한 엔써즈의 부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로 들어섰죠. 엔써즈는 이미지 및 영상 인식 기술을 보유한 회사였는데 약 7개 국적을 가진 구성원들이 한 지붕 아래서 일하다 보니 글로벌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국내 기업과는 정서가 여러모로 달랐거든요. 그때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익혔습니다.
첨단 기술을 다루던 회사에서 바른손카드를 생산하는 바른컴퍼니로 자리를 옮긴 것도 흥미롭네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엔써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KT에서 주로 담당한 것은 콘텐츠 관련 업무였습니다. KT의 유선망이나 이동통신망이 고속도로라고 한다면 도로 위로 무엇을 지나가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죠. 당시 지니뮤직이나 싸이더스FNH 인수 과정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에 창업한 바른컴퍼니는 유통망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통신사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짜던 경험이 있다 보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구상 중이던 바른컴퍼니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셈이죠. 그래도 제겐 좀 생소한 분야이긴 했어요. 업의 특성상 디자이너의 비중이 큰 조직이었으니까요. 어찌 보면 디자인 분야와 그때 처음 연을 맺은 것이죠.
산돌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고 석금호 의장이 설립한 NGO 단체 ‘타이니씨드’에서 봉사 활동을 한 것이 연이 되었죠. 타이니씨드는 미얀마, 인도 등지에서 해외 봉사를 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장님이 고민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1984년 창업 이래 수십 년을 경영에 매진해온 의장님은 개인의 삶이나 회사의 미래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산돌은 이미 클라우드로 폰트를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 ‘산돌구름’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려면 좀 더 젊은 경영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제게 부탁한 것은 산돌의 매각이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굵직한 M&A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탁한 거였죠. 인수 가격은 얼마 정도를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인수 가격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는 거예요. 의장님의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승·발전시킬 것, 그리고 산돌 임직원들을 소중히 여길 것. 솔직히 처음에는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웃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건이 경영자로서 제 철학과 맞닿아 있더군요. 그래서 일주일쯤 고민한 뒤 제가 회사를 맡아 운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디자인 회사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산돌에 합류해 처음 주력한 사업은 무엇이었나요?
클라우드 다운로드 방식으로 운영하던 산돌구름을 플랫폼으로 바꾸는 일이었어요. 이전의 산돌구름은 워드프레스 기반의 블로그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기존 시스템의 치명적 단점은 통계를 산출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사업을 전개하려면 백 오피스로 몇 명이 방문했고, 회원 가입을 했으며, 얼마나 머물렀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죠. 다른 회사를 입점시키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저는 자바 시스템을 기반으로 산돌구름의 시스템 자체를 다시 짰습니다. 당시 산돌에 개발자가 3명이었는데 지금은 20명 정도로 늘었습니다.
기존에 근무하던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그런 변화가 달갑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요.
현재 산돌에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15~20명 정도로 제가 입사할 때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개발자나 마케팅 직군의 비중이 훨씬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죠. 원활한 플랫폼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디자이너가 아닌 개발자라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저는 대표가 된 첫해에 아예 ‘이제 산돌은 디자인 회사가 아닌, 플랫폼 회사이자 IT 기업’이라고 밝혔어요. 심리적 저항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저는 연봉이나 근무 조건 또한 디자인 전문 회사가 아닌 IT 기업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B2B 기반의 디자인 회사는 태생적으로 노동 집약적인 근무 형태를 띨 수밖에 없어요. 반면 플랫폼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효율적입니다. 실제로 회사의 체질 개선 이후 주말 근무와 야근이 없어졌어요.
확실히 산돌구름은 국내 폰트 시장의 판도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회사가 탄탄해지고 업계 1위로 올라선 것도 물론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시장의 파이를 늘린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유통 경로가 요원했던 영세한 폰트 회사들이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거죠. 실제로 현재 산돌구름에는 40개 가까운 국내 폰트 회사가 입점해 있습니다. 해외 폰트 회사까지 합치면 70개 정도 되고요. 안정된 현금 흐름이 확보되면서 생태계가 개선되었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저작권 소송이라는 안 좋은 업계 관행이 있었습니다. 폰트를 불법 사용한 개인에게 폰트 회사가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인데, 많은 경우 복잡하게 얽힌 저작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했습니다. 폰트는 본래 출판, 웹, 간판 등 사용처에 따라 저작권이 각기 달리 적용됩니다. 출판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도 간판에 해당 폰트를 사용하면 저작권에 저촉되는 것이죠. 유럽의 체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사실 일반인이 이걸 다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모 폰트 회사가 교육부와 소송 공방을 벌인 게 뉴스에 나오기도 했어요. 당시 산돌은 이 이슈를 역이용해 초등학교에 폰트를 무상 공급하는 동시에 저작권 구분을 철폐했어요. 서버 인증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꿔 불법 유통을 원천 차단했고요. 사용자 편의를 개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앞서 산돌이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고 말했죠. 이를 위해 다른 폰트 회사들도 입점해야 했는데 시장 자체가 작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설득이 쉽지 않았어요. 이전까지 B2B가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었고 경쟁입찰이 일상이다 보니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일일이 폰트업계 선배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는 시장이 커질 수 없다고 설득했죠. 심지어 당시 경쟁 관계에 있던 윤디자인그룹도 찾아갔습니다.
산돌의 계속되는 영토 확장 전략
지난 6월에는 약 156억 원에 윤디자인그룹을 인수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실 인수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시장점유율이 늘고 있는 산돌에 반해 윤디자인그룹의 점유율은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회사 매출만 놓고 본다면 인수하는 게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죠. 하지만 좀 더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헬베티카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라틴 알파벳 언어권에서 최고의 폰트로 여깁니다. 한글 폰트에서 헬베티카에 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진다면 윤고딕, 윤명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해외 모 폰트 회사도 윤디자인그룹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었는데 국내 폰트계의 훌륭한 자산을 해외에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인수 과정을 보지 못하고 눈 감으셨지만, 이것은 석금호 의장의 염원이기도 했어요.
인수전에서 승리한 셈이네요. 모리사와나 모노타입의 국내 진출만 봐도 요즘 폰트 회사의 경쟁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산돌은 해외 진출 계획은 없나요?
물론 있습니다. 다만 쉽지는 않죠. 한글을 갖고 나가는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한류 열풍이라고 해도 한글 폰트의 실사용자는 100만~200만 명에 불과해요. 5000만 명인 국내 시장도 작은데 한글로만 승부하면 투자 대비 효과가 너무 떨어진다는 뜻이죠. 그래서 해외 진출을 할 때는 해당 지역의 언어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산돌은 이를 오랜 기간 준비했고, 지난 5월 베타 버전으로 라틴어 웹사이트를 오픈하고 영어권 진출을 가시화했어요. 산돌구름에 입점한 30개 해외 폰트 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이 폰트들을 해외 마켓에 팔 수 있는 판권도 확보했고요. 또 동유럽 조지아의 폰트 회사 하나를 인수해서 기릴 폰트도 확보했습니다. 지금은 내년을 목표로 일본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폰트 시장에서 산돌은 미국의 모노타입, 일본의 모리사와, 중국의 한이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30년 된 모노타입이나 100년 된 모리사와에 비하면 40년 된 산돌은 역사가 짧지만, 성장 속도는 가장 빠릅니다. 이들을 빠르게 따라잡는 게 목표입니다.
요즘 산돌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산돌은 지난 수년간 연 30~40%의 성장률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성장에 정체기가 오기 시작했어요. 이걸 극복하는 게 숙제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봐요. 제가 처음 산돌에 합류했을 때 폰트업계는 이제 포화 상태라는 생각이 만연했어요. 플랫폼 사업으로 파이를 키워보자고 했을 때도 ‘폰트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이라며 코웃음 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장이 2배 이상 커졌습니다. 지금의 정체기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일종의 성장통이라 보고 답을 찾으려고 해요.
떠오른 묘안이 있나요?
예전에는 폰트를 구매한다는 인식 자체가 희박했죠. 디자이너를 제외하면 말이에요. 하지만 세대가 바뀌며 생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구매해본 경험이 학습 효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모티콘처럼 폰트도 사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정착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것은 일명 엔터테인먼트 폰트입니다. 놀이 문화의 일부로 폰트를 구매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인데, 생산을 목적으로 디자이너가 사용하던 기존 폰트와는 사용자도, 사용성도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해를 넘기기 전에 이것을 획기적인 모습으로 론칭할 계획입니다.
산돌 그리고 한글
소비층을 일반 대중으로 확장하는 것은 좋은 전략 같습니다. 하지만 폰트를 사용하는 디자이너야말로 폰트 회사에게 가장 든든한 아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래서 산돌이 집중하는 것 중 하나가 교육 사업입니다. 예전에는 에스티유니타스라는 온라인 교육 회사와 협업해 폰트 강의를 개설하기도 했어요. 한동안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다가 올해 재개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폰트 콘퍼런스 ‘사이시옷’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됩니다. 디자이너와 일반인 모두에게 폰트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는 행사로 지난해에 이어 오는 10월 12일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9월 30일 새롭게 론칭하는 SD민부리 이야기도 해보죠. 디자인플러스에 최초로 적용할 예정이라 저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웃음)
산돌의 디자인 중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는 폰트가 산돌고딕네오입니다. 그다음 본문용 서체로 제작한 산돌정체가 있죠. 둘 다 산돌의 대표적인 빅 패밀리 폰트입니다. SD민부리가 그 뒤를 잇습니다. 앞선 두 폰트가 인쇄용 폰트라면 SD민부리는 철저히 온라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죠. 웹 환경에 맞게 SD민부리는 베리어블 폰트로 기획했습니다. 다국어와 섞어짜기할 때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도록 속 공간을 별도 조정할 수 있는 기능도 부여했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폰트이죠.
오는 10월 9일은 창업주를 보내고 처음 맞이하는 한글날입니다. 산돌 수장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의장님이 매각을 고민할 때 ‘한글을 보존·계승할 적임자를 찾고 싶다’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한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창업주의 과업이었고 산돌의 창업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것인데 창업주의 뜻을 잇고자 새로 산돌문화재단을 발족했습니다. 지난 8월에 최종 설립 인가를 받았죠. 이곳에선 한글 발전 사업, 한글 문화 아카이빙 사업 등을 진행합니다. 영리가 목적이어야 하는 기업은 태생적으로 실적에 운영이 좌우될 수밖에 없어요. 더욱이 산돌은 상장사이다 보니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일을 하기 어렵죠. 그래서 이와 별개로 한글을 지킬 수 있는 재단을 만든 것입니다. 올해부터 사이시옷 콘퍼런스는 산돌문화재단이 주관합니다. 내년에는 비라틴 폰트 디자인을 다루는 글로벌 폰트 디자인 어워드와 협력해 해외 여러 문자권의 디자이너를 국내에 소개하고 반대로 한글 폰트 디자이너를 외국에 알리는 일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