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영] 디자이너 이예원
디자인플러스는 올해 11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에 참가하는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릴레이 인터뷰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 디자이너'를 진행한다.
22년간 950여 명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스물 다섯 번째 주자로 2024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인 이명희가 묻고 이예원이 답했다.
이명희(이하 명):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예원(이하 예): 건축을 전공하면서 전통 복원과 한옥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궁이나 전통 건축물을 자주 접했어요. 공간에 담긴 유구한 구조가 제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가 현대에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떤 공간을 갖추고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하게 됐고, 이것이 작업의 바탕이 됐습니다. 저는 무척 고고하고 압도적인 장면이 그려지더군요. 실제로 사대부는 문무를 겸비한 지식인으로 강인함과 절개를 지닌 인물들이었죠. 일반인이 흔히 머릿속에 그리는 평온한 자태는 물론이고 풍류를 즐기던 호방함이나 지조와 절개를 지키던 굳건한 모습도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인함’과 ‘압도감’은 겸손과 차분함에 비해 덜 부각되었다고 보고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사대부의 강인한 면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명: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이를 어떻게 작업에 녹여내는지도 알고 싶어요.
예: ‘법고창신’. 이 말을 깊이 존중합니다. 제 작업 또한 과거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도 좋아하지만, 박물관에서 실제 ‘흔적’들에 더 눈길이 가더군요. 건축, 의복, 궁중 예식, 토속신앙 등 다양한 서적도 읽고 있습니다. 저는 뭔가 떠오르면 러프한 아이디어라도 일단 피지컬 모델로 만들어보는 편입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궁궐 건축 주두와 공포의 구축 방식을 연구한 후 원형의 모습을 만들어봤고, 그 모델을 가져다가 며칠 동안 온종일 이리저리 돌려봤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각의 물꼬가 트이고, 그다음에도 정말 많은 스터디모델을 통해 실제 구축까지 이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명: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나요?
예: 제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은 ‘백수백복’입니다. 조선시대의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데 백 개의 ‘복(福)’과 ‘수(壽)’ 자를 반복해서 새긴 문자도를 담고 있습니다. 백수백복도에서 문자를 반복적으로 쓰는 행위는 장수와 출세를 기원하는 마음을 넘어 수련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종교 수련이나 예술 작업 과정에서도 이런 반복성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요, 염원하던 목표를 향한 인내의 과정이죠. 백수백복 작업에서 저는 직접 모든 피스를 용접하며 수십 번의 용접과 갈아내기를 반복했고, 각 문자의 획을 일일이 그려 넣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이러한 반복과 인내의 과정이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고, 그래서 저에게 가장 많은 애정을 느끼게 하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명: 스테인리스 스틸과 가죽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 두 소재 모두 제 작업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요, 건축사 측면에서 볼 때, 철, 콘크리트, 유리 같은 새로운 재료들이 모더니즘 건축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새로운 재료들은 그 당시 불가능했던 구조들을 가능하게 하며, 장식적 요소를 최소화하면서 기능에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줬죠. 다시 말해 재료가 곧 게임 체인저였던 셈입니다. 스테인리스는 저에게 이런 상징이면서 동시에 전통의 판을 바꿀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검정 가죽은 먹먹할 정도의 밀도를 만들어주는 역할로 스테인리스와 조합되어 인상적인 밀도를 만들어 냅니다. 앞으로도 이 조합을 저만의 조형 언어로 축적해 나가고자 합니다.
명: 이번 SDF에서 관람자들과 어떤 생각을 공유하고 싶나요?
예: 이번 SDF에서는 관람자들에게 사대부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공간이 단순한 작품 전시를 넘어 하나의 건축적 경험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공간 안에는 아트 피스처럼 전시한 작품들과 함께, 완성까지의 구상 과정이 담긴 도면과 다이어그램이 아카이빙되어 있어 작업에 담긴 사유 과정을 책처럼 탐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결과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이번 작업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였고 어떤 건축적 색채를 드러냈는지를 설득하고자 합니다. 또한,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도 준비 중이니,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합니다.
인터뷰 이명희
단위 형태를 활용해 가구와 오브제를 제작하는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