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이슈로 돌아본 2024 비엔날레 결산

글로벌 동시대 담론과 국내 지역 비엔날레의 화두

동시대 이슈와 예술적 담론을 나누는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이들이 내건 주제를 중심으로 2024년 국내외 비엔날레를 살펴본다.

주제 이슈로 돌아본 2024 비엔날레 결산

다양성을 찾으며 위기를 타개하는 글로벌 비엔날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까? 우리는 현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동시대 이슈와 예술적 담론을 나누는 비엔날레(biennale), 트리엔날레(triennale)와 같은 국제 행사를 통해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20일 개막해 오는 11월 24일까지 열리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를 보자.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내걸며 그동안 변방으로 소외되었던 이들의 서사를 새롭게 주목하고 발굴하는 중이다. 상파울루미술관(MASAP)의 관장으로서 남미 출신으로는 최초의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직을 맡은 아드리아누 페드로자(Adriano Pedrosa)는 남반구와 선주민 예술을 다량 소개했고 유색인, 이주민, 소수자에 시선을 돌렸다. 성소수자 역사를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해 온 이강승(b.1978),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원시 자연의 원형을 탐구하는 조각을 해온 김윤신(b.1935) 작가가 본 전시에 비중 있게 초대되었다. 구정아(b.1967)는 한국관 작가로 참여해 여러 국적 외국인이 가진 장소의 기억을 향기로 번안한 작업을 선보였다. 베니스비엔날레는 과거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배제된 이방인의 역사 다시 쓰기를 전시를 통해 이끌었고, 현재 계속되는 전쟁과 학살에 대한 입장은 자국의 국가관에 불참 및 항의하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으로 표명되었다.

클레어 퐁텐,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전경. 사진 오정은

3월 9일 개막했던 제24회 시드니비엔날레는 ‘만 개의 태양(Ten Thousand Suns)’을 주제로 인간의 다양성에 긍정하는 한편, 다가오는 생태 위기를 희망과 역동으로 재고했다. 9월 21일 개막한 제17회 리옹현대미술비엔날레는 ‘강의 목소리(Les voix des fleuves, Crossing the water)’를 주제로 표방하며 강을 중심으로 한 관계와 역사를 살피고 있다. 인공지능, 딥페이크, 거대 시스템과 권력의 문제를 상기하며 ‘실제보다 더 나은 것(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을 주제어로 제시한 휘트니비엔날레도 있었다. 그밖에 일본 요코하마트리엔날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비엔날레(2024.10.1-11.15), 태국 방콕비엔날레(2024.10.24-2025.2.25) 등도 비엔날레라는 국제 무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를 후원해 온 글로벌 기업 스와치

스위스의 유명 시계 브랜드 스와치(Swatch)는 예술을 후원, 디자인 협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베니스비엔날레의 공식 파트너로서 연속 참여하고도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주제를 디자인에 반영한 특별 시계를 출시하며 브랜드를 홍보하기도 했는데, 금번 60회 베니스비엔날레를 기념하는 시계는 전시회 자원봉사자들이 착용하며, 비엔날레 기념품 숍을 비롯해 베니스 각지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아르세날레) 한쪽에 위치한 Swatch Faces 2024는 스와치가 운영하는 스와치 아트 피스 호텔의 입주 예술가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마양 겔프만(이스라엘), 젠난 우(중국), 후안 파블로 치페(멕시코), 뤄비(중국), 레오 치아치오, 다니엘 지아논(아르헨티나)의 작업이 현재 전시되고 있다. 상하이 번드 지역의 낡은 호텔을 개조해 2010년 문을 연 스와치 아트 피스 호텔은 전 세계 다양한 경력의 예술가를 대상으로 입주 지원 신청을 받아 레지던시 경험을 제공해왔다. 2019년에는 한국의 도로시 윤이 입주 작가로 작업한 뒤, 베니스비엔날레에 소개되기도 했다. 스와치가 후원해 온 작가의 정보는 스와치 홈페이지 내 ‘버추얼 뮤지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자적 정체성과 전문성을 찾아야 하는 지역 비엔날레

올해 국내에서 열린 비엔날레는 어떤 주제로 담론에 동참했을까? 9월 7일 개막해 오는 12월 1일까지 계속될 광주비엔날레를 보자. 2023년 5월,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니콜라 부리오는 ‘판소리-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을 행사 주제로 공표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판소리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의 소리’, ‘주변부 주체의 목소리’다. 공간과 소리, 환경이 연결된 판소리는 자연에 관한 오랜 토착신화와 생태학적 관념을 소환한다. 권혜원, 리암 길릭, 비앙카 봉디, 알렉스 세르베니, 전혜주, 존 E. 도웰 주니어, 카트야 노비츠코바, 캔디스 윌리엄스 등 30개국 72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물리적 영토보다는 상호관계의 균형을 표방하려는 전시에 함께했다. 『관계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니콜라 부리오의 철학과 관심사가 접목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부딪힘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힌두교 전통에서 ‘옴’이라 부르는 것)라는 세 가지 소리 패턴을 기반으로 인류세의 변이를 다루는 것을 겨냥하였다. 이 세 가지 소리는 현대 공간의 세 가지 특징인 포화, 종과 왕국의 얽힘, 그리고 점차 증대되는 무한히 작은 것과 무한히 큰 것의 중요성, 즉 세계의 분자적 차원을 나타낸다. 요컨대 이번 전시를 일종의 기후 변화 오페라로 구상하고자 했다.”

_ 니콜라 부리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캔디스 윌리엄스 〈백인들이 우리를 모두 죽이기 위해 만들어 낸 신과 괴물들〉 시리즈, 2024. 작가 및 하이디 갤러리 제공.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해리슨 피어스 〈원자가〉, 2024. 모듈형 키네틱 조각 및 사운드 설치 (알루미늄, 스테인리스강, 실리콘, 나일론, 공압 자동화 시스템, 사운드 시스템), 가변 설치, 10분. 작가 제공.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한편,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시와 (재)광주비엔날레 예산을 합쳐 총 151억 원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본전시 외에도 22개 국가관(오스트리아, 캐나다, 중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폴란드 등) 9개 기관(CDA홀론, 한국국제교류재단-영국문화원 등) 및 도시(광주시)가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파빌리온 운영 또한 자랑한다. 그런데 베니스비엔날레의 지난 원형을 연상케 하는 국가관의 체계가 광주비엔날레와 적합한지, 또 점차 국가주의를 지양하는 현대문화의 흐름과 의식적 결이 맞는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일 같다. 광주비엔날레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만큼, ‘광주정신을 조망한다’며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배니스 섬에 광주비엔날레 아카이브 특별관을 마련하기도 했었는데, 실제 본전시가 진행된 광주에서는 정작 ‘광주정신’에 대한 뚜렷한 메시지나 지금에의 표명이 보이지 않았던 점도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밖으로는 K아트를 홍보하지만 정작 안에서는 자국 문화와 전문가 지원에 소홀한 채 국제화를 도모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는 광주뿐 아니라 다른 도시도 고심할 사안일 텐데, 질보다 양으로 확장하며 운영되는 도시별 비엔날레로 인해 예술현장의 우려가 짙기 때문이다.

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부서진 미술관 가벽, 고장난드론, MDF 합판, 시멘트,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전시 공간이 이제는 예술 시장과 불편할 정도로 겹치는 것이다. 전시는 형태적으로 볼 때 아트 페어와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취소’, ‘해체’, ‘미완성’ – 즉, 논 피니토를 도입했다.”

_ 베라 메이·필립 피로트, 2024부산비엔날레 공동 전시감독

36개국 62팀(78명)이 참여하며 약 두 달간 이뤄진 행사를 마친 2024 부산비엔날레도 들여다보자. 공동감독 베라 메이, 필립 피로트는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내걸어 전시를 이끌었다. 기성 주류 패러다임, 이데올로기, 규율로부터 벗어난 불완전하고 해체적인 것을 조망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대항해 시대 식민 지배를 행하던 유럽 강대국 논리가 아니라 당시의 폐해, 허점과 결부되면서 교란을 일으키고 유동하던 ‘해적 유토피아’에 비유된 주제가 흥미롭다. 이는 정유진의 〈망망대해로〉에 의해 미술관을 허물고 난파된 해적선과 같은 설치 조형물로 표현되는가 하면, 나탈리 무챠마드의 〈엔리케〉처럼 미술관을 점령하는 한편 역사를 비판적으로 증언하고 틈입해 다시 쓰는 작업으로 제시된 모습이다.

2024 경기도자비엔날레 경기도자미술관(이천) 주제전 전시 전경

이천, 여주, 광주에서 동시 열린 2024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의 본전시는 임미선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투게더-몽테뉴의 고양이’를 주제로 삼았다. ‘몽테뉴의 고양이’는 ‘내가 고양이와 놀고 있으면서, 사실은 그 고양이가 나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이다. 전시는 ‘잃어버린 협력의 기술’을 복원하고자 함을 밝히며, 사회문제를 환기하는 도자 매체 작업을 초대했다. 현시원 예술감독의 창원조각비엔날레는 ‘큰 사과가 소리없이’를 주제로, 사과껍질이 깎이는 조각적 상상력을 전시 구성에 반영했다. 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가 주최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숲속의 은신처 II’, 외부감독 없이 대전시립미술관 자체 인력이 기획해 온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너희가 곧 신임을 모르느냐’를 각각 주제로 한다. 그 외에도 강원트리엔날레, 진주세계민속비엔날레, 수성국제비엔날레, 부산학생비엔날레, 제주비엔날레 등 올해 열렸거나 진행 예정인 비엔날레가 여럿 있다. 국제 수준의 이름을 걸고 도시의 정치적 욕망만으로 격에 미치지 못하는 행사를 주최한다는 비판 또한 여전히 있다. 현대미술의 깊이가 담긴 행사이자 공공논의의 각축장인 비엔날레가 의미를 다하는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우리 관심이 더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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