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에스엘디 정미 대표
그가 말했다, 도시에 빛이 있으라
조명 디자이너 정미의 '빛나는 24년'을 조망한다.
흔히 서울을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말한다. 이 별칭을 긍정적으로 해석할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지만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이온에스엘디 정미 대표는 해가 저문 서울의 얼굴을 조형하는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조명 디자인을 업으로 빛을 다루기 시작한 지 24년.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도심의 야경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도시에 대한 기억도 변했다. 조명 디자인이라는 산업 자체는 여전히 새벽 미명에 머물러 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묵묵히 불을 밝힌다. 정미 대표의 매직 아워는 헬리오스의 마차가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뒤에 비로소 시작된다.
조명 디자인의 길에 들어서다
원래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다루는 소재가 물성에서 비물성으로 전환된 셈이네요.
처음부터 빛을 다루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산업 디자인 전공 시절 자연의 생체와 기능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바이오 디자인 이론 연구로 석사과정을 밟게 되었고요. 연장선상에서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거칠 때는 어포던스affordance•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일반화되었지만, 당시에는 꽤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게 공간의 변화였습니다. 논문을 쓰고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공기를 주입해 공간이 달라지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때 선택한 도구가 빛이었어요.
•행동 유도성 디자인.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행동을 기반으로 다음 행동을 유도하는 개념이다.
어포던스 디자인만큼이나 조명 디자인 분야도 생소했던 시기였을 텐데요. 조명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조명 기구를 설계하는 일로 국한하곤 하잖아요.
맞습니다. 일반 대중의 인식에선 ‘조명 디자인’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사실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어요. 흔히 저처럼 조명 기구를 활용해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조명 설계(lighting design)’라고 해요. 반면 조명 기구를 제작하는 것은 ‘조명 기구 디자인(lighting fixture design)’이라고 하죠. 무대 조명 디자인은 앞선 둘과 구별되는 별도의 전문 영역으로 분류하고요. 하지만 조명 설계와 조명 기구 디자인을 명확히 가르기는 어렵습니다. 불가분의 관계라고 볼 수 있죠.
인식이 부족했던 만큼 오해도 받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초기에는 설계비를 요구했다가 욕을 먹은 적도 있어요.(웃음) 엄연히 독립된 분야인데 과거에는 그저 조명 기구를 골라주는 일로 인식했어요. 공간을 본 적이 없는데 그저 ‘예쁜 조명을 골라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습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시공에 딸린 부차적 산물처럼 여기는 거죠. 하지만 조명 디자인은 생각보다 검토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낮과 다른 밤의 모습을 고려해야 하고,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나 공간 안에서의 이용 패턴 등에 따라 조도나 색온도가 달라져야 하죠. 사업 초기에는 이런 특징과 중요성을 알리는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를 업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빛은 필요하니까. 제품 디자인은 트렌드의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고 흥망성쇠가 명확하지만, 빛은 지속력이 더 오래간다고 봤어요. 마치 건축처럼 말이죠. 물론 당시 국내에 조명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조명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미국이나 유럽은 그보다 빨랐죠. 하지만 따져보면 조명 디자인의 역사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아요.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게 150년이 채 되지 않잖아요. 조명 기구 디자인의 역사 역시 1930~194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명을 활용해 무언가를 연출한다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1899년 파리만국박람회부터였다고 하죠. 당시 자국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일환으로 박람회장에 전구를 달아 야간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조명 디자인이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일단 잉여 전기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이하에선 시장이 정착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죠. 후발 주자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간극이 크지 않고, 우리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서울의 조명 이야기
2000년에 시작한 서울시 야간 경관 마스터플랜이 이 일을 시작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시가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도시 차원에서 야경을 설계한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었어요. 서울 야경의 특징 중 하나가 관이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도시 야경이라는 것 자체가 개개의 민간 건물을 작업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확실히 지자체가 앞장서 움직이다 보니 파급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도 빠르게 바뀌었고요. 제가 귀국한 게 2000년이었는데 2005~2006년쯤 됐을 때 대중이 경관 조명이란 말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이전까지만 해도 전문가 그룹에서만 쓰던 용어였는데 말이죠.
당시 서울시가 해당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당시 도시 차원에서 야간 경관을 조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최소한 1박을 해야 숙박업이 발달하고 숙박업이 발달해야 인근 상권이 성장하죠. 지금이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맛집을 검색해 찾아다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관광 수익 증대를 위해 야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파리에 여행 가서 야경을 보지 않고 돌아오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한마디로 관광객의 발을 묶어둘 장치가 필요했던 셈이네요.(웃음)
서울시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케이스스터디를 한 도시 중 하나가 요코하마였습니다. 당시 요코하마는 조명을 기반으로 한 도시 관광 상품화가 무척 잘되어 있었거든요. 문제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적임자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남편인 정강화 디자이너(현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와 제가 프로젝트를 위해 급히 귀국했어요. 1년 정도 지나고 나서는 제가 단독으로 회사를 맡게 되었고요.
당시 서울 야경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귀국 후 조망점 분석을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N서울타워였어요. 그런데 시내를 내려다보니 빨간 십자가만 보이더군요. 난반사가 심한 광고판으로 빛 공해가 심각했고, 벌브 스타일의 가로등은 사람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곳에 빛을 쬐지 못했어요. 쉽게 말해 빛이 없었던 게 아닌데 조명 기구 설계와 조명 설계가 잘못되다 보니 제대로 빛을 공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 정석을 따르자면 전체 콘셉트를 잡은 뒤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게 수순인데 현실적으로 감안했을 때 콘셉트와 가이드라인을 병렬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가이드라인이나 기본 계획 등은 많은 인력과 시간, 끊임없는 현장 조사와 자문 회의가 필요한 작업입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과정이죠. 우리는 그냥 사명감에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스터플랜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요?
리서치를 해보니 한강부터 살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강의 교량을 축으로 삼으면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플랜을 확장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다음으로 사대문 안의 야간 경관을 조성했죠. 이런 식으로 5년마다 플랜을 업그레이드하며 점차 범위를 넓혀간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제 머릿속에는 지금도 서울시 전체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디를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하고 어디를 특화해야 할지, N서울타워에 올라갔을 때나 롯데타워에 올라갔을 때, 혹은 휴먼 스케일에서 봐야 하는 동네에서는 어떤 경관이 나와야 하는지 이야기를 짜는 것이죠. 안전 문제도 중요했기 때문에 셉테드CPTED•• 등 파생된 개념도 반영해야 합니다. 그렇게 24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4대 지천 계획까지 마무리했습니다.
••범죄 예방을 위해 건축·도시 환경 디자인을 활용하는 기법.
현재진행형인 프로젝트라니 더욱 흥미롭네요.
서울시 실무진의 열정과 공로를 높이 사야 한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장이 바뀌었는데도 프로젝트가 사장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그들의 헌신 덕분일 것입니다. 관광과 안전 문제가 해결된 다음 도시 차원에서 목표는 시민들의 나이트라이프의 질적 향상입니다. 최종 단계는 내・외국인을 아우르고 함께 즐기는 야간 축제 문화의 활성화이고요. 서울시는 지금 이를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입니다.
밤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민간의 인식은 어떤가요? 24년 전과 비교했을 때 조명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좀 생겼나요
클라이언트 중 각별히 조명 설계에 신경 쓰는 분들은 저에게 직접 연락하기도 합니다. 조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확실히 보편화된 것 같아요. 다만 조명 디자이너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결국 조명 디자이너는 공간이나 건축, 도시의 전체 균형을 맞추는 사람들이거든요. 밤의 인상을 만들어주는 전문가이기도 하죠. 제가 보기에 조명 디자이너는 아트와 엔지니어의 정 가운데 있는 것 같아요. 기술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영역이죠. 그런데 우리는 공간에 색과 밝기를 넣어 균형을 맞추고 환경을 바꿉니다. 이건 분명 예술의 범주에 속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의 프로젝트를 ‘작업’보다 ‘작품’이라고 부르는 걸 선호합니다.
민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꼽아주세요.
귀국 후 가장 먼저 맡은 민간 프로젝트였던 이경민 포레가 생각납니다. 거물 외벽에 날씨에 반응해 컬러가 변하는 센서형 LED를 설치했는데, 당시 국내에는 아직 해당 장치가 없어서 일본에서 공수해야 했어요. LED를 경관 조명에 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프로젝트입니다. 갤러리아백화점 파사드 조명도 빼놓을 수 없죠. 조명 컬러 전환이 자동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좌표마다 일일이 컬러값을 지정해서 입력해 넣어야 했어요. 롯데타워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롯데에는 ‘글로벌 롯데’라는 일종의 표어가 있었어요. 여기에 걸맞은 조명 설계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너무 요란하고 화려한 치장이 아닌, 은은한 화이트 톤 조명을 설계했습니다. 밤하늘과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했죠. 여기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한 게 새해 카운트다운이었어요. 이전까지는 서울에서 새해 전야를 맞이하는 장소가 주로 보신각과 종로구 일대였는데 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바라보며 다 함께 신년을 맞이하는 게 근사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저는 조명을 설계하는 것은 결국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롯데타워는 낮보다 밤에 더 마음에 듭니다.(웃음) 지난 8월 프레임 어워즈 싱글 스토어 부문을 수상한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도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공간을 리모델링한 더시스템랩 김찬중 소장으로부터 콘셉트를 들었는데 1층만 손을 대고 2층 위로는 건물을 부순 채로 두겠다는 거예요. 브랜드의 그로테스크함을 강조하겠다는 계획인데 조명 디자이너 입장에선 좀 막막하더군요.(웃음) 밤에는 자칫 음침한 공사판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어 고민하다가 ‘올드 & 뉴’라는 콘셉트를 떠올렸어요. 1층 매장은 활기찬 화이트 톤 조명을 넣고 그 위로는 따뜻한 감성이 전달되도록 옐로 톤을 부각했어요. 은은하게 기획한 옐로 톤 조명으로 건물이 지닌 옛 기억을 담는 한편, ‘뉴’를 상징하는 화이트 톤 조명은 조도를 극적으로 높여 대비를 주었습니다.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와의 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기본 설계 단계부터 관여하는 편입니다. 특히 호텔이나 상업 시설은 조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참여하죠. 반면 오피스 공간은 조금 늦게 합류하는 편이고요.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가 기본 설계를 하고 곧바로 조명 기획에 들어갑니다. 조명 기구를 어디에 배치하고 마감재는 무엇을 쓸지 함께 정하죠. 배선이나 전기 설비 구조를 복합적으로 감안해야 하는데, 실시설계에 뒤늦게 투입되면 자칫 도면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요. 어쨌든 이래저래 조명 디자이너는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웃음)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공간의 조명 설계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보는 포인트가 있나요?
도면을 볼 때 우선 와우 포인트가 될 만한 지점부터 찾아요. 그런데 설령 그 지점을 파악했다고 해도 제 주장만 앞세우진 않습니다. 늘 건축가의 이야기부터 경청하죠. ‘조명이 너무 튀지 않고 달빛에 비친 듯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좋겠다’라든지 ‘낮과 밤의 정취가 완전히 달랐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다음 단계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 클라이언트도 건축가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확인하는 절차이죠. 가끔 자기주장이 강한 디자이너를 만날 때가 있는데 저는 디자이너라면 경청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건축가나 클라이언트가 제안하는 수준까지만 구현하는 것도 문제예요. 그들이 원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끌어내야 하죠. 왜 이 빛이 이곳에 필요한지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빛나는 조명 디자인 신을 위해
조명 디자인의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싶어요.
유럽이나 미국은 확실히 숫자가 많고, 가까운 나라 일본도 크고 작은 회사 수백 개가 있습니다. 중국은 어림잡아 수천 개의 회사가 있고요. 반면 우리나라는 대략 40~50개 회사가 있어요. 조명 디자인 분야가 좀 특수한 게, 글로벌 네트워크가 상당히 잘 구축되어 있어요. 국제조명디자이너협회(IALD)라는 연맹도 있고, 번갈아가며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조명 박람회와 밀라노 디자인 페어 유로 루체를 통해 꾸준히 교류하죠.
하지만 여전히 시장 자체가 넓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관련 학과 자체가 부족합니다.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 정도이고 국내에는 아예 관련 학과가 없습니다. 주로 건축가나, 아니면 환경 디자인 쪽에서 서브로 배우죠. 그러다 보니 조명의 중요성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인식이 개선되고 커리큘럼이 확충되어야 시장도 확장될 거라고 봅니다.
이온에스엘디는 시장의 외연 확장을 해외에서 찾고 있는 것 아닌가요? 베트남에 지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하노이에 지사를 두고 다낭 시청사와 다낭 신라모노그램, 하노이 롯데몰, 부르나이 대교 등의 조명 설계를 했습니다. 베트남을 거점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인접 국가로 시장을 확장하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죠.
흔히 건축에서는 그 나라의 지역과 맥락, 라이프스타일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서울에 지은 공간이 종종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명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온에스엘디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사이트 분석을 철저히 합니다. 그 나라의 국민 정서와 취향도 무시할 수 없죠. 예를 들어 베트남의 경우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나이트라이프가 일상화되어 있어요. 밤에 활기를 띠는 만큼 화려한 조명을 선호합니다. 일부러 국내 프로젝트를 시행할 때보다 조도를 높이는 경우가 있죠. 앞서 말한 것처럼 명성만 믿고 해외 건축가에게 조명 설계까지 일임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국내 사정이나 도시의 심의 규정까지 파악하고 있기는 어렵죠. 결국 조명 설계만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예산이 더 들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워요. 한국의 조명 설계 실력이 해외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만큼 국내 전문가들을 좀 더 믿어주었으면 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조명 디자인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순간을, 기억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좋은 빛이 있을 때 그 공간을 긍정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는 그저 불을 밝히는 것을 넘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