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월간 <디자인>이 주목한 디자이너 20팀 3

건축가 양수인 소장부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OIMU)까지, 월간 <디자인>이 주목한 디자이너 5팀을 소개한다.

2018 월간 <디자인>이 주목한 디자이너 20팀 3

양수인

멀티플레이에 능한 건축가
경량화와 적정 기술의 활용, 영역의 확장, 시적 감성까지, 건축가 양수인 소장은 현대 건축가들의 최근 경향과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중학생 시절부터 건축가를 꿈꿨다는 그는 정작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할 때는 건축 외의 영역에 관심을 기울였다. “건축학과에서는 머릿속 생각을 시각적으로 체계화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렇게 익힌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건물 지을 때만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건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모 주류 회사의 신문 광고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했다는 것에서도 그의 이런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실험적이고 포괄적인 마인드는 미국 유학 시절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발현됐다. 이때 양수인은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터득했다. “프로젝트에 임할 때 저는 일단 빠르게 작은 실험들을 진행해봅니다. 이후 조금씩 단계별로 크기를 키워가며 시스템을 정교화하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그의 방법론은 미국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2006년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은 ‘이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중 한 명으로 양수인을 선정했다. 또 대학원 졸업 직후 파격적으로 모교의 겸임 부교수에 임명되기도 했다. 교육자로서 탄탄대로를 밟을 수 있었지만 그는 2011년 돌연 한국으로 돌아와 건축사 사무소 ‘삶것’을 세웠다. “평생 메시만 꿈꾸며 트레이닝을 해왔는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바르샤의 코치가 되어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지만 프리미어 리그든 K리그든 필드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이후 양수인은 건축뿐 아니라 인테리어, 공공 미술, 캠페인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중 2013년 말 세계 첨단 벤처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 새너제이에 설치한 공공 예술 작품 ‘아이디어 트리(Idea Tree)’는 그의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로·세로 각각 12m, 높이 6m 크기의 이 대형 철제 구조물은 사람들이 남긴 말을 지속적으로 모아 이것을 짧은 시로 재구성해 들려주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건축가로서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사실 정작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서’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최신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것도 내가 제일 먼저 이 기술을 써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그렇다고 그가 맹목적인 기술 지향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양수인은 혁신적인 기술 못지않게 경제성과 감성적 소통 또한 중시한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 ‘원심림’이 대표적인데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의 일환으로 지난해 여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조성한 이 팝업 공원은 간단한 동력 장치로 원심력을 발생시키고 그 관성력을 이용해 그늘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보통 그늘을 만들라고 하면 단일한 지붕을 만드는 것부터 생각해요. 하지만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면 그만큼 무거워야 하고 그 무게를 지탱하도록 지반을 다지는 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죠. 저는 이게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그는 작고 가벼운 여러 개의 지붕, 바람에 맞서기보다는 바람이 불 때 접을 수 있는 지붕을 제작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모두가 아는 상식으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지붕을 디자인한 것이다. 체계를 갖춘 지속 가능한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 최대 목표라는 양수인은 이를 위해 올 한 해도 열심히 달릴 생각이다. 현재는 여름 오픈을 목표로 인천 가좌구의 한 폐수 처리 공장을 문화 시설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괴테는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양수인의 디자인은 이 말의 참뜻이 무엇인지 수긍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장소,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명동의 비어와인플레이스, 이태원의 ‘우리수퍼’와 ‘싸워퐁당’, 신사동의 ‘로칼탭룸’과 ‘미켈러바’. *모두 사우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2018년의 해시태그용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사우어에일

최근의 디자인 (이슈) 중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에너지 효율이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건축을 단순 수치화하고 규제하려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착. 에너지를 조금 낭비하더라도 다른 가치를 추구하거나 탐구하는 건 죄악일까?

2018년에 꼭 시작하고 싶은 것과 꼭 그만두고 싶은 것은?

확실히 거절하는 것, 우유부단하게 승낙하는 것.

작년 한 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기러기 아빠로서 느끼게 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

쇼메이커스

공감각적 쇼에 능한 크리에이터 집단
“카르텔 가구는 매장에도 있는데 관람객은 왜 디뮤지엄까지 찾아올까요? 사람들은 아예 새로운 것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전혀 다르게 보여줄 때 열광하는 것 같아요.” 쇼메이커스 최도진 대표는 말한다. 젠틀몬스터 아트 디렉터 출신의 그는 2017년 2월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그룹 쇼메이커스를 세워 독립했다. 젠틀몬스터에서 영상과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허윤과 정원석, 백화점 VMD 출신의 브랜드 매니저 최수연, 그리고 국내외 컨벤션 매니징에 잔뼈가 굵은 김진우가 최근 마케팅 이사로 합류하면서 쇼메이커스는 1년 남짓한 사이 만반의 대오를 갖췄다.

지난해 5월 착수했던 첫 프로젝트는 오는 3월까지 디뮤지엄에서 열리는 <판타스틱 플라스틱> 전시 디자인이었다. 카르텔과 협업해온 40여 명의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제품, 가구, 조명, 그래픽, 사진 등 2700여 점을 아우르는 이 전시에서 쇼메이커스는 섹션별로 전혀 다른 공간 디자인을 선보여 바이라인을 한 번 더 확인하게 했다. “카르텔 가구는 전시 오픈 한 달 전에야 이탈리아에서 도착했어요. 작품 리스트에 적힌 작품명과 사이즈, 컬러에 대한 정보만 주어진 상태에서 3D 툴로 필요한 가구를 하나하나 그려가며 배치를 구상했죠.” 이 작업은 공간 기획뿐 아니라 쇼메이커스의 이름으로 설치 작품을 선보인 기회이기도 했다. 전시의 처음과 끝을 똑같은 플라스틱(PVC) 커튼을 활용해 각기 다르게 연출한 두 작품 ‘뉴 웨이브(New Wave)’와 ‘익스텐션 코드(Extention Code)’로 특유의 공감각적인 오묘한 뉘앙스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플라스틱 커튼 아래 탬버린 징글을 달아 관객들이 접촉하며 쟁그랑 소리를 내게 한다거나, 9m의 어두운 통로 구간에 영상을 투시한 플라스틱 장막을 손으로 헤치며 전시장을 빠져나가게 한 구성은 시각과 청각, 촉각을 동시에 건드리며 잠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는 젠틀몬스터 시절 25일마다 강렬한 스토리라인을 따르는 전시를 선보였던 퀀텀 프로젝트(Quantum Project)에서부터 잘 드러났다. 이를테면 이라는 전시는 이런 식이었다. 30분에 한 번씩 직원이 대포 조형물에 블루베리 잼을 넣어 여러 장의 식빵을 걸어둔 벽면에 잼 폭탄을 투하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관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모여들고, 벽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잼을 응시하면서 침을 꿀꺽 삼킬 즈음 매장 직원이 관객들에게 블루베리 잼을 바른 식빵을 건네 맛을 보게 한다. 패션과 인터랙션의 요소가 뒤엉킨 퍼포먼스는 도저히 안경 매장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이 안경 매장이라는 단서는 안경에 쓰이는 아세테이트 소재를 사용해 마감한 벽재뿐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방문객은 이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홀린 듯 위층에 마련된 안경 제품을 보러 올라가곤 했다.

“다양한 개별 프로젝트도 재미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스스로 제품을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요. 자본의 구조와 흐름을 만들어야 우리의 발상, 반드시 돈으로 회수되지 않아도 괜찮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 10월, 쇼메이커스는 오랜 시간 구상해왔던 시계 브랜드 코드먼츠(Codements)를 론칭했다. 시계나 팔찌 등 손과 관련된 크래프트 제품을 선보이는 ‘핸즈웨어(handsware)’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제품의 물성을 넘어 크리에이티비티, 밸런스, 무브먼트를 세 축으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풀어낼 예정이다. 쇼메이커스가 2018년 어떤 쇼(show)로 우리가 잘 알지만 전혀 모르던 영역을 자극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좋아하는 장소,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파주에 있는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 

2018년의 해시태그용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codements #코드먼츠 

최근의 디자인 (이슈) 중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기업과의 협업 프로젝트에서 인스타그램 조회 수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세태. 

2018년에 꼭 시작하고 싶은 것과 꼭 그만두고 싶은 것은? 

사운드 인스털레이션, 게으름.

작년 한 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코드먼츠의 탄생과 (최도진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원승락

공공 기관의 편견과 관습을 탈피하는 디자이너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뮤지컬단, 합창단, 극단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단 9개가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공공 문화·예술 기관으로, 연간 50개가 넘는 공연을 선보이는 곳이다.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세종문화회관이 되고자 하는 의도와는 달리 공공 기관 특유의 낡고 딱딱한 이미지는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2016년 1년간 열리는 공연과 전시 일정을 미리 공개하고 패키지 티켓을 판매하는 ‘시즌제’를 도입하며 포스터, 영상, 홈페이지, 서비스 디자인 등의 시각물에도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시대에 맞게 최대한 밝고 젊은 예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세종문화회관의 바람은 원승락 디자이너가 이곳에 입사하며 구체화됐다.

각 사업별로 다른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해 브랜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것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한 원승락은 세종문화회관의 전체 사업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 브랜드화하는 데 주력했다. 각 예술단장이 창작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예술단을 관리, 운영하며 시각물까지 아트 디렉팅하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는 이곳의 공연 포스터는 예술가의 얼굴을 얼마나 크게, 세련되게 배치하느냐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원승락은 예술가를 홍보하는 데 집중했던 기존의 방법을 버리고 관객 입장이 되어 세종문화회관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고민했다. 공연 티켓을 샀을 때의 기쁨, 행사가 열리는 계절, 포스터와 주변 상황 등을 고려한 재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기하학적 도형, 화려한 컬러 등을 사용한 과감한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에 사람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전과 너무 달라 어색하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신선하고 재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괄목할 만한 점은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세종문화회관의 디자인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이 같은 디자인 행보를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연 포스터를 보고 재밌게 일하는 곳일 것 같아 입사하고 싶다는 사람도 생겼다고 한다. 콘텐츠에 밀착된 디자인으로 이를 활용한 프로모션 홍보물은 공연장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에는 제19대 대한민국디자인대상에서 공연 예술계 최초로 디자인 경영 부문 우수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측 역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능동적인 디자이너”라며 “작품을 이해하고 디자인하기 위해 대본을 읽고 예술단장을 인터뷰하거나 직접 연습실을 찾아가 현장 분위기를 살피는 그의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관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과 세종문화회관 차원의 브랜딩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적지 않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조직 내에서도 신뢰를 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에 앞으로는 세종문화회관의 아이덴티티 정립을 위해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또 공연 관련 분야의 그래픽 디자이너에 머무르지 않고 극장의 서비스 디자인, 무대, 의상 등 공연 전반을 아우르는 아트 디렉터가 되는 것이 목표다. 

좋아하는 장소,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없다.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2018년의 해시태그용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평등 

최근의 디자인 (이슈) 중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트렌드를 놓친 지 오래라 이슈를 잘 모르겠다. 

2018년에 꼭 시작하고 싶은 것과 꼭 그만두고 싶은 것은? 

장난감 사업, 욕. 

작년 한 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최순실과 그의 친구.

박이랑

스스로 생태계를 확장시킨 디자이너의 멋진 태도
현대백화점의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5년. 새롭게 바뀐 BI, 진한 녹색과 라일락 핑크를 조합한 그래픽 모티브가 카드부터 각종 브로슈어, 쇼핑백, 사이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에 반영되면서부터다. 기존의 헤리티지를 영민하게 반영한 젊고 감각적인 아이덴티티는 오늘날 문화와 예술은 물론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하게 하는 백화점의 생기 있는 얼굴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 해, 현대백화점 푸드 마켓 역시 눈에 띄는 변신을 했다. ‘백화점’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식품관’을 정식 명칭으로 하며, 업계에선 드물게 한글로 로고를 디자인해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박이랑 총괄이 있었다. “결국 먹거리는 자연에서 오는 것이잖아요. 이 땅에서 자란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싶은 게 사람들의 가장 큰 욕망이고요. 그런 결론을 얻고 나서는 영어나 프랑스어 등 외국어로 된 네이밍이나 로고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현대식품관은 판매하는 먹거리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브랜딩을 모토로 한다. 여기에 ‘현대식품관’이라는 이름은 푸드 마켓을 미술관처럼 해석한 것으로, 식품 산업이 패셔너블하고 감각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장보기 역시 미술을 감상하는 듯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서 착안했다.

2014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박이랑 총괄은 그 전까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헤르쯔를 운영했다. 2009년 스튜디오를 설립해 나름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다져갔으나, 어느 순간 진행하는 일의 영역이나 규모에서 더 이상 경험치가 확장되지 않는 것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때마침 현대백화점으로부터 스카우트를 제의받아 수락한 것으로, 지난 시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한 경험이 지금의 업무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고있다. 특히 늘 외국의 유명 디자인 회사와 일하던 백화점업계의 관행을 깨고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와 협업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주변을 보면 뛰어난 실력의 선배, 후배, 동료 디자이너가 많은데 큰 기업에선 해외로만 눈을 돌리니까 관행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저 역시 현장에서 일하며 늘 한정된 클라이언트와 예산에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에 하나의 선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처음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임원진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료로서 그들의 활동을 봐왔기에, 누가 무엇을 잘하고 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알고 있기에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대백화점의 BI 리뉴얼에서 전체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은 스튜디오 fnt와 진행하고, 현대식품관 브랜딩은 수류산방, 액션서울과 작업하며 전통과 현대의 가치를 조화롭게 담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기업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그 역할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 그는 앞으로 많은 기업, 단체가 아트 디렉션의 필요를 알고 수요를 늘림으로써 분야 자체가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결국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과정이 아닌 결과물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어떤 의도를 반영하고 그것을 어떻게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반응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스킬이 무뎌지지 않도록 개인 작업 역시 꾸준히 하는 중으로 지난 해에는 출판사 프로파간다와 무려 5년에 걸쳐 작업한 <백과전서 도판집>이 나오기도 했다. “상업적인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모두 잘해내고 싶었고,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경계를 나누지 않는 것이 나름의 원칙이었다”는 그의 말대로 스스로 생태계를 확장시킨 디자이너의 멋진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다. 

좋아하는 장소,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정애쿠키 

2018년의 해시태그용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버티자 

최근의 디자인 (이슈) 중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슈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납득이 가지 않는다. 

2018년에 꼭 시작하고 싶은 것과 꼭 그만두고 싶은 것은? 

글쓰기와 공부.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 

작년 한 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여성 디자이너!

오이뮤

아날로그의 새로운 초상
연탄불을 피울 때 라이터 대신 쓰던 성냥, 오래된 감성의 향과 향 꽂이, 오래된 한옥에나 걸려 있었을 법한 서화 등이 개성 있는 컬러와 디자인을 입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세기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아날로그 감성을 21세기로 소환한 주인공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OIMU)다. 팀명은 ‘One day I met you(어느 날 내가 너를 만났다)’의 줄임말로 과거 시제 동사 ‘met’에는 디자인을 통해 어제에 머물러 있던 가치를 현대사회와 연결시키려는 오이뮤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한국이 워낙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또 빠르게 소진해버리잖아요. 변화를 거치며 잊혔던, 하지만 오랫동안 일상에서 우리의 곁을 지켜온 문화적 정서나 이야기를 재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신소현 공동대표는 오이뮤 결성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표작 성냥 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우연히 성냥 공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두 사람은 디자인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 산업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장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파트너가 팔각형 성냥통으로 유명한 유엔성냥이었다. 오이뮤는 늘씬하고 젊은 감각의 패키지 디자인으로 제품을 환골탈태시켰고 젊은 세대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옛것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멤피스, 테라조 등 콘셉트를 더한 성냥은 이제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선물 아이템이 됐고 출판사, 영화사 등 감성적 언어가 필요한 시장에서도 소통의 매개체로 오이뮤 성냥을 활용한다. 이 같은 반응은 사양 산업으로 사라져가던 성냥 공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 이 정도면 오이뮤의 실험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탄력을 받은 오이뮤는 후속작 ‘에어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향’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라는 점이 재미있는데 보통 향이라고 하면 제사상이나 절에서 의례적 용도로만 사용하는 줄 알지만, 사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향을 피우고 즐기는 ‘향도’라는 문화가 있었다. 외세의 침략과 전쟁으로 끊겼던 한국의 향도 문화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이들은 전통 향방 브랜드 ‘청솔향방’과 손잡고 귤피, 백단나무, 무화과 향의 인센스 스틱을 만들었다. 젊은 세대도 거부감 없이 사용할 만한 새콤달콤한 향이 특징으로, 오이뮤는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 레시피 개발 과정에도 관여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전통을 소재로 한 세 번째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사물에 빗대어 복을 기원하던 선조들의 풍습인 민화를 현대식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해석해 만든 민화 포스터 시리즈 ‘복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한지에 그래픽을 인쇄한 후 전통 서화 처리 기법인 배첩을 적용해 만들었는데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로 정초에 대문에 걸어두었던 ‘호작도’, 건강을 기원하는 ‘십장생도’, 다산과 장수, 출세의 바람을 담은 ‘책거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표구’라는 단어를 우리식 표현인 ‘배첩’으로 바로잡고 싶은 의도도 담겨 있다고. 그동안 오이뮤를 성냥, 향, 민화 등을 선보이며 옛것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브랜드 정도로만 알았다면 이제 ‘문화 전도사’라는 말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이다. 사양 산업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 사라진 우리 문화를 소생시키는 일, 잘못된 언어를 바로잡는 일 모두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들이 말해주고 있다. 

좋아하는 장소,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성북동의 한국가구박물관. 

2018년의 해시태그용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아날로그 

최근의 디자인 (이슈) 중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기업 광고에 쓴 ‘급식체’. 타깃을 반영한 결과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가벼워 보여서 보기 불편하다. 

2018년에 꼭 시작하고 싶은 것과 꼭 그만두고 싶은 것은? 

나를 돌아보고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 너무 많은 생각. 

작년 한 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크고 작은 인쇄 사고.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75호(2018.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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