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토크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 석금호 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와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석금호 대표를 만나 서체 개발과 브랜딩의 상관관계, 한글 폰트 디자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크리에이티브 토크

서체는 소통의 방식이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일찍이 이를 간파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의 자체 폰트를 개발, 무료 서체를 배포하며 브랜드의 성향과 지향점을 전달했다. 그 결과 B급 문화를 내세운 복고적이고 키치한 감성의 서체는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뚜렷하게 강조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곳곳에서 배달의민족이라는 브랜드를 경험하게 했으며 브랜드 아이템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기도 했다. 서체를 다루는 감각과 전략이 범상치 않은 이 벤처 회사에서 최근 서체 디자인 전문 기업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세 번째 자체 폰트 ‘도현체’를 개발했다. 기본 도안과 아이디어 콘셉트는 우아한형제들이 맡고 산돌커뮤니케이션이 제작한 이 서체는 브랜드의 넘치는 끼와 30년 이상 축적한 전문 지식, 노하우가 만나 마치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애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와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석금호 대표를 만나 서체 개발과 브랜딩의 상관관계, 한글 폰트 디자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아한형제들과 산돌커뮤니케이션(이하 산돌)의 합작이라니 기대됩니다. 도현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봉진 평소 길거리를 다니면서 간판이나 주차 금지 푯말을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한번은 이태원의 한 골목길에서 ‘문화부동산중개사무소’ 간판을 봤는데 아주 재미있는 조형적인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글자는 초성의 자음과 중성의 모음 끝이 연결되어 있고 또 어느 글자는 떨어져 있는 겁니다. ‘ㅅ’의 모양도 제각각 달랐는데 그럼에도 얼핏 봤을 땐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고 하나의 세트처럼 보인다는 게 참 신기했죠. 만약 폰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라면 전체를 통일하는 규칙을 정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간판을 만든 사람은 그냥 자기가 생활 속에서 보고 생각하는 상식의 범위 내에서 조형미에 맞춰 디자인한 거예요. 도현체는 바로 이 간판을 모티브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자음과 모음이 붙으면 판독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폰트에서는 거의 금기시하는 일이거든요. 전문가 입장에선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거죠(웃음).

석금호
 버내큘러(vernacular) 디자인에서는 바로 이런 점이 재미있는 거죠. 김봉진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조합이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도현체는 ㅅ, ㅇ, ㅈ 등의 모양이 옆에 어떤 모음이 따라오느냐에 따라 자동으로 달라져요. 또 낱말을 이룰 땐 같은 글자라도 어떤 경우는 자음과 모음이 붙어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떨어져 있죠. 예를 들어 ‘연한’에서 ‘연’은 중성과 받침이 떨어져 있지만 ‘연두부’의 ‘연’은 중성과 받침이 붙어 있는 거예요. 도현체는 이렇게 몇 백 개의 단어를 정해서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글자 모양이 자동적으로 달라지도록 프로그래밍 한 것입니다. 알파벳의 경우 F가 두 번 쓰이면 하나의 단위로 합자시키는 리가처(ligature) 개념이 있지만 한글에는 없기 때문에 적용해보기로 했어요. 한글 서체 최초로 자동 글리프(glyph)를 적용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처음부터 자체 폰트를 직접 디자인, 개발했습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서체의 등장이었는데요, 서체를 이용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요?

김봉진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과정에서 폰트가 필요했습니다. 배달의민족은 ‘B급, 키치, 유머, 복고’라는 키워드를 브랜드 콘셉트로 하니까 기존의 번듯하고 세련된 서체가 아닌, 어수룩한 느낌의 삐뚤빼뚤한 못난이 폰트를 만들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 만든 서체가 한나체였는데 아크릴판에 시트지를 붙이고 칼로 잘라낸 느낌을 살려서 디자인했습니다. 이후 주아체는 함석판에 붓으로 쓴 간판을, 도현체는 아크릴을 아크릴 칼로 자른 간판을 모티브로 했는데 모두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버내큘러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죠. 한나체는 당시 인턴이었던 태주희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는데 모눈종이에 직접 손으로 서체를 그리며 만들어서 글자마다 기울기도 다르고 획의 굵기도 제각각이에요. 지금 보면 제가 생각해도 심하다 싶을 만큼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게 B급 특유의 문화와 감성을 강하게 드러낸 것 같습니다.

석금호
 서체 디자이너 입장에선 한나체가 상당히 충격적이죠(웃음). 하지만 아이덴티티 작업의 일환인 만큼 마케팅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 제가 한나체를 보고 놀랐던 건 생활 속에서 표현된 비전문가의 느낌, 그 정서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와 같은’ 서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거였습니다. 아주 잘 만든 세련된 서체의 드라이하고 깔끔한 느낌이 아니라 아마추어적이고 친숙하게 표현한 정서가 일반 대중에게 감정적으로 충분히 어필하는 거죠. 어쩌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도 할 수 있어요. 흔히 보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문화를 서체로 만들어 대중의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니까요. 여기에는 개성 있는 폰트 자체 뿐 아니라 우아한형제들의 탁월한 브랜딩・마케팅 전략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체 이후 두 번째로 출시한 주아체부터는 서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산돌이 일부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산돌은 삼성전자, 중앙일보, 제일기획 등의 기업전용 서체를 개발한 경험이 있지만 스타일이 전혀 달라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석금호 저희 회사에서는 서체 디자이너를 트레이닝할 때 제일 강조하는 것이 규칙성입니다. 규칙성 자체가 곧 품질을 의미하는, 절대적인 원리원칙이라 할 수 있죠. 이렇게 훈련받은 디자이너들에게 비규칙성을 강조해서 작업하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죠(웃음). 하지만 우아한형제들의 콘셉트를 충분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흥분되고 설레었죠(웃음). 기업 서체를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균형과 조화, 완성도가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한 브랜딩에 맞으면 과감히 차용할 수 있어야 하죠. 지금은 우아한형제들과 작업할 때 자꾸 서체를 다듬으려고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오히려 비정형, 비규칙성을 더 강조하도록 주문하고 있어요.

김봉진 처음 한나체를 무료 배포했을 땐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기쁘기도 했지만 실제로 적용한 사례를 보니까 놓친 부분이 많아 아쉬웠어요. 워낙 독특한 서체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미세하게 자간을 맞추면서 조절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할 수 없으니 폰트가 다 깨지는 거죠. 또 저희는 분명 제목용으로 디자인한 것인데 본문용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이러다가 우리가 시각적인 공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산돌에 찾아갔습니다. 석금호 대표님은 30년 이상 한글 폰트를 연구하고 직접 만들어오신 전문가시잖아요. 오랜 시간 사명감을 가지고 서체 분야를 개척하신 분인데 우리 서체를 보고 야단하면 어떡하지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응원해주시고 용기도 많이 주셨죠. 이후 주아체부터는 산돌의 도움을 받아 맥(Mac)용 서체를 제작했고 한나체도 기술적 보강으로 글자 폭이나 크기, 획의 굵기를 바로잡아 정돈한 ‘한나는열한 살체’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을 보면 잘 만든 서체 하나가 열 광고 부럽지 않은 브랜딩의 효자 노릇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은 벤처 회사를 시작하면서 굳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서체 개발에 주력한 이유가 뭔가요?

김봉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현대카드 유앤아이(You and I) 폰트를 적용하는 홈페이지 개발을 했어요. 또 네이버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옆팀에서 산돌과 나눔고딕을 개발하는 과정을 지켜봤죠. 서체가 브랜딩과 디지털 환경에 끼치는 영향력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만들긴 해야 했는데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처음엔 네이버 지식인에서 찾아보며 만들었습니다(웃음). 이렇게 개발한 한나체부터 배달의민족의 모든 글꼴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널리 쓰일수록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더욱 강력해지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서너 번, 간판은 물론이고 게임회사, 대형 마트, 관공소, 경쟁 업체에서도 각기 다른 용도로 우리 서체를 다운받아 사용한 걸 볼 수 있어요.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 서체 때문에 사람들이 경쟁 업체의 광고도 자연스레 배달의민족 광고로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든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자연스레 노출되고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며 각인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역시 한글을 모티브로 한 ‘산돌티움’을 개발, 판매하고 있죠. 우아한형제들도 서체를 활용한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한글 서체를 모티브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석금호 ‘산돌티움’은 한글 디자인 상품으로 한글의 대중화에 앞장선다는 취지를 담고 있어요. 우리는 폰트 회사니까 한글 소스를 활용해 모바일 이모티콘부터 문구류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한글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대중화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폰트 자체만 가지고 하려니까 처음엔 반응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어른부터 아이까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예전의 교과서 이미지를 더해 ‘바른생활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여러 브랜드, 기업과도 함께 상품을 개발하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비롯하여 핫트랙스 등 다양한 곳에 입점해 있는데 반응이 좋아요.

김봉진 배민문방구(배달의민족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필기구, 티셔츠 등 여러 가지 생활용품은 그저 서체와 위트가 있는 문장, 이 두 가지에 집중해 디자인한 것입니다. 보통 디자인에 대해 말할땐 늘 형태와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감성에 주목했어요. 형태와 기능이 뛰어나거나 새롭진 않아도 서체로 제품에 감성을 부여하면 그 자체가 의외의 소비를 유발하기도 하는 신선한 접근법이 되는 것이죠. 더욱이 우리에게 한글은 ‘읽히는 것’이잖아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도 읽어버리니까 그 힘이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적인 디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 사람만이 만들 수 있고 한국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디자인은 제품에 그 제품이 쓰일 만한 상황에서 흔히 쓰는 유머를 배달의민족 서체로 인쇄하는 것뿐이지만 여기에는 한국 사람만 가지고 있는 위트, 해학이 담겨 있죠. ‘배달의민족’이란 서비스명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고요.

한글 서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요, 앞으로 함께 할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김봉진 배달의민족 자체 폰트 개발은 ‘5년간 5개의 서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제 또 산돌과 함께 새로운 서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한나체와 주아체의 경우 제 두 딸 ‘한나’, ‘주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도현체 역시 제비뽑기를 통해 직원의 자녀 이름으로 정한 것이에요. 이번에는 쌍둥이 중 한 명이 뽑혔는데 공평하게 두 사람 이름 모두를 따서 짓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선보일 서체의 모티브는 제주도 여행 중 발견한 푯말에서 얻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모든 획에 다 세리프가 있는, 진짜 멋을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느낌이랄까요. 조형성은 엉망이지만 정감 있게 느껴지는, 그게 특징인 서체인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한글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을 가진 석금호 대표님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산돌에서 만드는 폰트가 <미슐랭가이드>에 나오는 별 몇 개짜리 레스토랑의 요리라면 배달의민족 서체는 김밥천국의 김치볶음밥 같은 것이 거든요(웃음). 부담 없이 손쉽게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처럼 모두가 일상에서 우리의 폰트를 가까이 두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석금호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우아한형제들과의 작업은 단지 일이 아니라 속 깊은 뜻이 만난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론 무료 서체 배포에 대한 다양한 우려와 걱정이 있지만 한글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를 높이고 다양성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면 저는 그게 곧 한글 서체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서체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한 만큼 일단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품질의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전체적인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업계나 상업적 용도로 구매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이번에 우아한형제들과 함께 개발한 도현체는 특별한 시도였고 아주 재미있었어요.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47호(2015.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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