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더치 북 디자인(The Best Dutch Book Design)을 만나다
마음과 영혼으로 만들어진 33권의 책
네덜란드 출판 및 디자인 분야에서 중요한 어워즈로 손꼽히는 '가장 훌륭한 더치 북 디자인'이 총 382권의 후보작 중 33권의 책을 선정했다. 선정 기준과 과정 그리고 북 디자인 트렌드까지 함께 소개한다.
매년 최고의 북 디자인을 선정하고 기념하는 행사인 ‘가장 훌륭한 더치 북 디자인(The Best Dutch Book Design)’은 네덜란드 출판 및 디자인 분야에서 중요한 어워즈다. 1926년 시작된 어워즈는 인쇄 매체를 지지하고 동시대 디자인 문화와 실천을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디자인의 창의성, 기능성, 인쇄 품질, 종이의 선택,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 책의 내용과 디자인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도 중요한 평가 요소다.
스테델릭 뮤지엄은 어워즈를 주최하는 비영리 재단 ‘Stichting De Best Verzorgde Boeken’과 함께 매년 선정된 작품을 전시한다. 2023년 선정된 책들이 지난 10월 19일부터 뮤지엄에 전시되고 있으며, 전시의 콘셉트는 건축가 폴 키퍼스(Paul Kuipers)가 디자인했다. 그는 선정된 책들의 규격에 맞춘 트레이들을 각각 배치하여 책들의 위치와 자리를 강조했다. 이는 단일한 책에 대한 존중과 조명을 의미한다.
선정 과정은?
2023년에는 총 382권의 책이 후보에 올랐다. 출판인, 디자이너, 인쇄업자, 제본 업자 등 업계 전문가와 아르테즈(ArtEZ), 게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y), 우트레히트 예술학교(HKU), 헤이그 왕립예술학교(KABK), 미네르바(Minerva) 예술 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패널이 각 33권의 책을 선정했다. 이 중 12권이 중복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출판물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개념’과 ‘실행’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도 면밀히 평가했다. 선정된 책들은 주로 미술, 사진, 건축 등 예술 관련 서적이다.
더치 북 디자인의 최신 트렌드는?
이번 출품작에서는 몇 가지 두드러진 특성이 관찰됐다. 중립적이고 자연적인 색조, 단색 인쇄, 싱어 스티치(Singer stitch, *단일 실로 바느질하는 방식), 표지 없이 제본하기, 저렴한 종이 사용 등이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은 검은 종이에 실버 프린팅을 하거나 형광색을 사용하는 등 과거의 유행에서 벗어난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속적인 트렌드로는 책을 감싸는 카세트(cassette)와 슬리브(sleeve)의 증가, 슬립커버의 풍부한 사용, 일본식 바인딩(Japanese binding)의 활용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2009년의 유행으로 주목했던 일본식 바인딩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선정작들은 훌륭한 책 디자인이 비쌀 필요가 없음을 증명한다. 일부러 비용 절감 옵션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좋은 디자인 결과를 위해 선택한 방향이 비용 절감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단색 인쇄는 대표적인 예다. 디자이너의 이러한 선택은 종이를 재사용하거나 탄소 발자국이 적은 사용 실천으로 이어지며 친환경 방향성으로 향한다. 심사위원들은 경제적, 생태적 제약이 훌륭한 책 디자인으로 향하는 장벽이 아니라는 점을 선정된 책들이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천 작품 3
이번 선정작 중 에디터가 주목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각 책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방향성과 디자인, 시행의 결과물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저마다의 독창성을 뽐내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책이라는 존재와 그것의 실용성에 대한 독보적 탐구와 접근으로 동시대 북 디자인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책들을 살펴보자.
Walking As Research Practice
디자이너: Jana Sofie Liebe
이 책은 걷기를 연구 방법으로 다루는 기고문을 담고 있으며, 제목처럼 걷는 동안 읽기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한 손으로 들었을 때 거슬리지 않도록 판형과 텍스트 배치에 신경을 썼다. 본문 텍스트는 오른쪽 페이지에만 이어지며, 왼쪽 페이지에는 캡션이나 각주, 부차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어 한 손으로 쉽게 들고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디자이너는 책의 유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딱딱한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사실상 뒤집은 형태로 제본하여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책은 독특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며, 혁신적인 제본 방식은 더더욱 돋보인다. 이 책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됐고, 독일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Schönste Bücher aus aller Welt)’ 어워즈에서 ‘골든 레터(Golden Letter)’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Formafantasma Oltre Terra
디자이너: Joost Grootens, Dimitri Jeannottat
작가: Formafantasma
이 책은 오늘날의 디자인을 형성하는 생태학적,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힘을 연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포르마판다스마(Formafantasma)의 전시 카탈로그다. 양모를 단순한 소재로 정의하는 것을 피하고, 훨씬 더 넓은 생태계 내에서의 이해를 확장하는 목표를 지닌 전시 취지에 따라 카탈로그는 양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흐릿한 이미지, 다려지지 않은 듯한 부드러운 종이, 거칠게 잘린 페이지와 양모 섬유가 섞인 종이 커버는 카탈로그를 양모에 관한 작품으로 인지하게 하는데 기여한다. 종이는 대다수 거칠게 잘렸으나 앞 가장자리는 절제된 방식으로 처리되어 책을 넘기는 데에는 지장이 없도록 세심하게 디자인 됐다. 심사위원은 이 카탈로그를 내용, 제작,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례로 꼽았으며, 디자인 개념에서 소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독립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Nasser Road – Political Posters in Uganda
디자이너: Rob van Hoesel
작가: Kristof Titeca
책은 우간다 캄팔라에서 시작된 인쇄 산업에서의 눈에 띄는 그래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계 정치인들을 풍자한 포스터와 달력까지 함께 제작 수록하며 우간다에서의 지정학적 권력 구조에 대한 인식까지 소개한다. 심사위원은 책의 내용이 책 형태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으며, 둘의 조화가 훌륭하게 잘 어우러져 있다고 평가했다. 수록된 다량의 포스터 디자인은 한 면이 코팅된 이중 보드에 재현되며, 코팅되지 않은 면에는 텍스트를 배치해 각각의 매체와 기능을 잘 이해했다. 표지 디자인은 내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책의 중심부에 있는 인쇄 산업의 중심인 나세르 로드 섹션으로 초대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책의 두 번째 판이 네덜란드가 아닌 우간다에서 제작됐다는 점도 평가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