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댄스가수 유랑단〉 프로그램 브랜드 아이덴티티
댄스 가수 계보를 잇는 다섯 뮤지션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로드 무비 형식으로 엮는 이 프로젝트에서 월간 〈디자인〉이 주목한 것은 마땅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또 하나의 주인공, 프로그램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브랜딩이다
tvN에서 방영 중인 〈댄스가수 유랑단〉은 방영과 동시에 큰 화제가 됐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뮤지션들이 세대를 넘어 한 무대에서 서는 것 자체가 진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콘셉트만큼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프로그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사실 방송 프로그램은 기획과 제작이 급박한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완성도 높은 산출물을 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게다가 시청률이 난항을 겪을 경우 투자 대비 성적이 저조할 수 있다는 제작진의 막연한 두려움 역시 브랜딩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댄스가수 유랑단〉의 생각은 달랐다. 체계적이고 매력적인 비주얼 콘셉트가 프로그램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기에 편승해 고육지책으로 개별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초기 기획 단계부터 브랜딩이라는 기반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실제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기획하고 구현한 CJ ENM 영화드라마 브랜드디자인팀장 김재은 역시 “인기 프로그램이 시즌이 갈수록 브랜딩되어가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초기 기획 단계부터 방송 프로그램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설정하고 산출물을 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는 그의 말을 대변한다. 프로그램 방영 전이었지만 매력적인 공간 기획으로 사전에 관심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제작사 TEO는 “〈댄스가수 유랑단〉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취지와 콘셉트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섯 아티스트들의 ‘무대 위 모습’을 새롭게 환기시킴으로써 이들의 노래와 무대를 방송 전부터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팬들의 실제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고 프로그램의 마케팅 방향성 설정에도 많은 도움이 됐으며, 브랜딩 굿즈 제작 및 판매를 통해 팬덤의 니즈를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긍정적인 사전 홍보 및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라고 덧붙였다. OTT가 방송국의 입지를 흔들어놓는 시기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방송 프로그램 브랜딩은 왜 필요할까? tvN 〈댄스가수 유랑단〉 프로그램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 과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비주얼 브랜딩 총괄 김재은(CJ ENM 영화드라마 브랜드디자인팀장)
참여 디자이너 박건욱, 고동환, 김승민, 곽봉규, 정지영, 허지승 (CJ ENM 영화드라마)
포스터 사진 윤지용(에이전시 테오)
포스터 세트 미술 김수민(그녀들의 만물사)
Designer Interview

CJ ENM 영화드라마 브랜드디자인팀장
김재은
방송국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마다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업과 제품을 넘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브랜드로 인식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tvN 브랜드디자인팀의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우리 브랜드디자인팀은 프로그램의 비주얼 브랜딩과 프로모션 디자인을 담당한다. 로고, 오프닝 타이틀 패키지, 모듈형 타이틀 같은 프로그램 비주얼 브랜딩부터 포스터, 티저 영상, 옥외 광고, 팝업, 굿즈 디자인에 해당하는 프로모션 디자인까지 다양한 업무 영역을 소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방송 디자인업계에서는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실질적으로 비주얼 마케팅 영역까지 아우르는 셈이다. 또한 비주얼 콘셉트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이를 비주얼 마케팅 영역까지 연계한다. 시각적 결과물을 산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매체나 플랫폼에 어떻게 접목시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마케팅 영역이 과거에 비해 강화됐다. 기획과 실행 전반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 프로그램 아이덴티티를 일관적으로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댄스가수 유랑단〉 프로그램의 기획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 삶에서 이벤트처럼 찾아오는 서커스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주얼 콘셉트 역시 출연진의 로드 무비를 가장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선보인다는 뜻에서 ‘트렌디 서커스’로 설정했다. 콘텐츠라는 상품을 단순 시청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즐기는 과정을 선사하고자 그래픽부터 제품, 공간까지 총체적으로 기획했다. 블루, 코럴 레드, 민트는 레전드 여가수들의 열정적인 무대와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과의 교감을 상징한다. 이러한 컬러들을 활용하여 대형 서커스 빅탑 시어터의 형태와 패턴을 모티프로〈댄스가수 유랑단〉만의 대표 패턴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패턴은 물론, 다섯 아티스트의 대표곡을 개별 패턴으로 상징화해 디자인한 점이 인상적이다.
서커스 하나에도 다양한 공연이 존재하듯 아티스트들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대에 새로운 시각적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아티스트 개별 대표곡에서 착안한 심벌과 시그너처 패턴을 디자인해 개별 노래와 퍼포먼스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를테면 이효리의 대표곡 ‘10 Minutes’는 로마 숫자 10(X)으로 표현했고, 엄정화의 대표곡 ‘배반의 장미’는 꽃잎 패턴을 반복시켜 확장된 꽃 이미지를 나타냈다.
방송국 브랜드디자인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개인 연차별로 요구되는 역량이 다르지만 결국에는 기획력으로 수렴된다고 생각한다. OTT로 인해 TV 시장이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시류를 읽으며 감각을 쌓아야 시대를 선도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송국 내 디자이너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누구도 찾지 못했으며 불모지를 함께 개척해나가는 상황이다. 좁은 시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디자인 중에서 단지 우연히 완성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뒤엔 언제나 강력한 기획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