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히데코의 방에는 왜 푸른빛이 감돌까? 프로덕션 디자인의 세계

프로덕션 디자인 조명하는 전시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

​한국영화는 2000년대 이후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으로 더욱 조명받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섬세하고 정교하면서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구현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영화 〈아가씨〉 히데코의 방에는 왜 푸른빛이 감돌까? 프로덕션 디자인의 세계

〈헤어질 결심〉 〈한산: 용의 출현〉 〈길복순〉… 흥미로운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사랑을 받은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이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할 수 있었던 데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시실 입구.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구현하는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의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11월 18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Production Design: Scene Architects Build On-Screen Worlds(이하 《씬의 설계》)가 열리고 있는 것.

전시 입구.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

전시 설명에 따르면, 1992년 이현승 감독의 영화 〈그대 안의 블루〉에서 ‘아트 디렉션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후 영화가 흥행과 미학적 성취를 인정받자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영화에서도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어 갔다.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섹션.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는 2000년대 이후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으로 더욱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취를 말할 때도 프로덕션 디자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섬세하고 정교하면서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례로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칸국제영화제 벌칸상을 수상했다. 벌칸상은 영화 기술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상으로 일컬어진다.

프로덕션 디자인이란?

프로덕션 디자인은 프로덕션이라고 하는 ‘제작’, ‘생산’의 의미와 디자인이라는 ‘계획’, ‘설계’의 의미를 내포한다. 산업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은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시각적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제작과 관리 전반 또한 포함됨을 의미한다.

《씬의 설계》 전시 설명 중에서

실제 영화에 쓰인 스토리보드 일부도 전시된다. ⓒ designpress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따라가는 전시 여정

전시는 류성희, 조화성, 한아름이라는 걸출한 세 명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작업을 중심으로, 프로덕션 디자인의 영역과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실제 영화 현장에서 사용되는 자료로 구성한 전시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텍스트로 쓰인 시나리오에서 비롯한 영화가 어떻게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구현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섹션으로 시작되는 전시.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특히 이들이 작업한 영화의 명장면 스틸컷을 관람객이 바로 볼 수 있는 전면에, 프로덕션 디자인 관련 자료를 스틸컷 후면에 배치한 구성이 눈에 띈다. 이에 관해 정민화 한국영화박물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영화 제작 과정 중 하나인 ‘프로덕션 디자인’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전시장에 들어선 전면은 영화 장면만 보이게끔 구성하고 그 뒷면에 아카이브 자료를 배치하여 관객이 보는 영화 이면에 이렇게 많은 공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전시실 구성 의도를 전했다.

전시 인트로. 영화의 명장면 스틸컷이 전면에 배치됐다. 전시 입구.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헤어질 결심〉 〈아가씨〉

전시는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헤어질 결심〉(2022) 작업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일부분이 재생되는 스크린 아래에, 모래성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배치되어 있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탄성을 내뱉을 만한 전시 요소임이 틀림없다.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인트로 조형물.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섹션.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정민화 한국영화박물관 큐레이터는 이 요소를 기획한 의도에 대해 말했다. “영화 이론에서는 영화를 ‘부재의 현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관객이 영화를 볼 때는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트 등은 모두 사라진 후이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과 모래 조형물을 함께 배치한 건 영상과 더불어, 영상에 등장하는 물성을 가진 요소를 나란히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영화의 ‘제작 현장’과 영화라는 ‘결과물’을 한 번에 만나는 경험을 드리려 했다.” 《씬의 설계》 전시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주요 배경인 ‘서래의 집’과 〈아가씨〉(2016) 속 ‘히데코의 방’을 중심으로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작업관을 보여준다.

류성희 〈헤어질 결심〉 ‘서래의 집’ 세팅 실사 이미지.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헤어질 결심〉 ‘서래의 집’ 벽지 디자인 샘플이 전시된다. ⓒ designpress

히데코의 방은 히데코와 숙희가 처음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공간이에요.

관념적으로는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되 전체적인 색은 오히려 반대로 차갑지만 고상하면서 순수한 색으로 설정했죠.

여인의 피부 안에 흐르는 동맥과 정맥과 같은 색을 구현하기 위해 더욱 정교하게 고민하고 색을 선정했습니다.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씬의 설계》 전시 인터뷰 중

류성희 〈아가씨〉 ‘히데코의 방’ 콘셉트 디자인.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류성희 〈아가씨〉 ‘히데코의 방’ 벽지 디자인.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조화성 프로덕션 디자이너

〈한산: 용의 출현〉

두 번째 섹션은 조화성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작업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2022)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조화성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하고, 임진왜란을 생생하게 그려낸 영화를 위해 거북선과 판옥선 등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은 요소들을 디자인했다.

조화성 프로덕션 디자이너 섹션.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전시에 따르면, 조화성 디자이너는 철저한 고증을 위해 규장각 사료부터 일본 고서 등을 모두 살피는 한편,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조화성 〈한산: 용의 출현〉 콘셉트 디자인.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조화성 〈한산: 용의 출현〉 판옥선 그래픽.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조화성 〈한산: 용의 출현〉 콘셉트 디자인.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

〈길복순〉 〈킹메이커〉

세 번째 섹션은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작업한 영화 〈길복순〉(2023)과 〈킹메이커〉(2022)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조명한다. 〈길복순〉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킬러 회사가 존재한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다.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 섹션.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동호대교, 한남동, 한국은행 본점 등 지금도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들을 영화적 장소로 바꾸는 일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길복순〉 작업을 통해 프로덕션 디자인이 익숙한 것을 낯설게 재현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연출-촬영-프로덕션 디자인이 통상적 표기 순서인 것과 달리 〈길복순〉은 이례적으로 연출-프로덕션 디자인 순으로 표기되었는데, 그만큼 영화의 시각적 요소를 총괄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비중이 컸음을 유추할 수 있다.

《씬의 설계》 전시 설명 중에서

영화의 씬을 다각도로 보는 경험

마지막 섹션은 앞서 등장한 세 명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작업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실에 설치된 세 개의 스크린에서 같은 영화의 씬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영상이 재생되는 것. 영화 〈아가씨〉를 예로 들자면, 숙희가 바라보는 히데코, 두 사람을 위에서 바라본 부감 숏, 옆에서 바라보는 숏이 스크린 세 개에 동시에 재생되는 식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공간을 창조하다’ 섹션.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하나의 장면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이제껏 영화를 관람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을 일깨운다. 정민화 한국영화박물관 큐레이터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공간 등 다른 요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이 직조한 공간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싶었다. 영상을 분할하기도 하고, 일부만 따서 합치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편집했다.”라고 이 섹션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공간을 창조하다’ 섹션.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씬의 설계》는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즐기고 싶거나, 영화의 제작 단계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다. 한편 기획전시실과 이어지는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국영화사 100년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 《한국영화를 보다》, 영화의 탄생부터 미래까지 가늠하는 《초기영화로의 초대》가 열리고 있다.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모두 관람하며 영화의 세계로 푹 빠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

전시 기간 7.28(금)~11.18(토) 매주 일, 월요일 휴관

관람 시간 10:00~19:00

장소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한국영상자료원 1층)

관람료 무료

예매 현장 발권, 온라인 예매

한국영화박물관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한국영상자료원 1층

Info
전시 기획ㅣ정민화

자료 제공ㅣ류성희, 조화성, 한아름

공간 디자인ㅣTBD 프로젝트

키 비주얼 디자인ㅣ신덕호

영상 제작ㅣ슈가솔트페퍼

자료 협조ㅣ 넷플릭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모호필름, 씨앗필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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