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물리적 경험의 조화

1972년에 출시한 프리미엄 세단 BMW 5시리즈는 디젤엔진을 탑재한 최초의 모델로 지금까지 전 세계 8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뉴 5시리즈는 2017년 이후 6년 만에 탄생한 8세대 완전 변경 모델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전면에 위치한 BMW 키드니 그릴이다. 그릴 외각을 감싸며 빛을 내는 ‘BMW 아이코닉 글로우Iconic Glow’가 뉴 5시리즈만의 세련된 인상을 결정한다. 이전 세대보다 차체 사이즈가 크고 길어졌지만 수직으로 떨어지는 전면 그릴, 높은 숄더 라인, 뒤쪽으로 갈수록 상승하는 뚜렷한 캐릭터 라인 덕분에 육중해 보이기보다 매끈하고 스포티한 볼륨감을 전달한다.

내부 공간이 더욱 넓어진 것도 장점이다. 운전자 중심 철학을 강조하는 BMW답게 실내에는 시야각에 잘 들어오는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디자인 전반에 절제된 미학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유일하게 장식적인 요소가 있으니 바로 백라이트를 적용한 크리스털 디자인의 인터랙션 바interaction bar다. 계기판 하단과 대시보드를 가로질러 양쪽 도어 패널까지 길게 이어지는 인터랙션 바는 7시리즈와 동일한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운 세단 이미지를 한층 강화한다. 한편 시트에는 5시리즈 최초로 완전 비건 가죽 소재인 베간자Veganza를 사용해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담았다.

BMW 본사가 5시리즈의 첫 출시 국가를 한국으로 정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5시리즈의 인기를 이어가며 뉴 i5 전기차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국 시장을 뉴 5시리즈의 전략적 기지로 삼은 BMW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한 ‘차징 넥스트Charging Next’ 프로젝트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2024년까지 국내에 전기차 충전기 1000기를 신규 설치하고 신개념 충전 및 휴식 공간인 ‘BMW 허브 차징 스테이션’ 등을 구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LG전자, GS에너지와 협력해 BMW 차량뿐만 아니라 전기차 운전자라면 누구나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다.

뉴 5시리즈 변화의 핵심은?

BMW 그룹 디자인 총괄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디자인 관점에서 우리는 BMW 뉴 5시리즈 탑승 경험을 호텔이나 라운지, 레스토랑, 아파트 실내 공간에서의 경험과 견주어보고자 한다.”

이전보다 커진 뉴 5시리즈의 차체가 눈에 띈다.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주행 가능 거리를 달성하기 위해 배터리 사이즈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다. 크기는 커졌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뉴 5시리즈의 비율은 매우 좋은 편이다. 전장, 전폭, 휠베이스의 비율이 조화롭다. 전고가 4cm 더 높아졌음에도 우아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전기차 시대는 디자이너들에게 일종의 기회다. 배터리가 바닥에 위치하면서 휠 사이즈가 커졌는데 큰 휠은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좋아하는 요소다.(웃음)

BMW의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키드니 그릴이 화제다.
키드니 그릴은 BMW를 상징하는 요소다. 지난 100년의 브랜드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여러 가지 그릴 형태가 있었다. 똑같은 디자인의 그릴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각 모델의 크기나 캐릭터에 맞게 비율 등을 다양화한 결과다. 하지만 그릴을 통해 누가 봐도 BMW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에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차량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주행을 즐기는 경험을 설계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실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고객을 고려했다. 고객이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종의 보상이자 개인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음악 감상이나 게임 등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말이다. 디자인 관점에서 우리는 BMW 뉴 5시리즈 탑승 경험을 호텔이나 라운지, 레스토랑, 아파트 실내 공간에서의 경험과 견주어보고자 한다. 차량 내부를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BMW만의 차별화된 디지털 경험은 무엇인가?
디자인과 기능을 어떻게 결합할지 늘 고민한다. 인터랙션 바가 좋은 예다. 장식 요소로 차량 내부에 적용했지만 운전자에게 경고를 보내는 기능 등을 탑재해 사용자와 교감하도록 했다. 디지털의 비중이 커졌지만 물리적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다. 따라서 미드 콘솔에 손으로 조작하는 마이크로 스위치를 새롭게 디자인해 촉각적인 자극을 주면서도 조작의 편의성을 높였다.

전기차 사운드도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다.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치머Hans Zimmer와 협업해 사운드를 개발하고 있다. BMW 그룹 안에서 BMW, 미니, 롤스로이스를 위한 사운드가 각각 다르다. 운전자들이 원하는 사운드를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을 제공한다. 디자이너들과 미팅을 하면 여러 스케치를 펼쳐놓고 열띤 토론을 하지만 사운드를 고를 때면 귀를 열고 다 같이 천장을 바라본다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사운드는 자동차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동시에 운전자에게 피드백을 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는 가속페달에 따라 사운드가 바뀌는 로직을 갖고 있다.

앞으로 5시리즈의 디자인은 어떻게 진화할까?
8세대에 걸쳐 디자인을 변화시키면서 고객이 선호하는 디자인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세대의 고객은 어떤 디자인을 기대할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매 세대마다 새로운 요소와 기능, 특징을 탑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