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회사의 ESG 경영 이야기③

래코드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한 옷의 ‘진짜 값’은 얼마일까? 매해 의류 재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원단이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일이 흔하다. 패션 산업의 대량 생산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래코드는 패스트패션이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점에 대중에게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브랜드다. 2012년 론칭 이후 세미나, 전시회, 편집숍 등을 통해 패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ESG 경영이 어느 때보다 화두로 떠오른 시점, 래코드의 꾸준한 행보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패션 회사의 ESG 경영 이야기③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진행한 전시 〈리콜렉티브 밀란〉 연출에서도 브랜드 철학을 분명히 했다. 폐비닐로 만든 풍선 형태의 조명은 적은 양의 광원으로도 밝게 빛난다. 전시된 가구는 드롭시티 센터에 상설 전시될 예정이다.

‘가치 있는 같이’를 지향하는 브랜드

래코드는 3년 이상 된 재고 의류와 미사용 원단을 활용해 업사이클링 패션 제품을 만든다. 수명이 다하거나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제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생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잉여 원단부터 의류 부속물까지 두루 활용한다. 주재료는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30여 개의 브랜드 재고. 심지어 매대에 오르지도 못한 채 폐기될 운명에 처한 물류 창고 물품까지 다시 한번 살핀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색상과 소재, 부자재가 ‘래코드 컬렉션RE;CODE Collection’ 의상으로 재탄생한다.

컬렉션을 제작하고 남은 옷 자투리를 재활용해 상품을 제작하는 제로 웨이스트 패션을 선보이며 시대정신과 브랜드의 궤를 같이한다. 에어백이나 카시트 등 산업 자재나 친환경 원단을 재구성해 만드는 ‘액세서리ACC’ 라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시그너처 아이템은 가방으로, 여러 패션 아이템의 디테일을 모아 재구성해 완성하는 대표 컬렉션 가운데 하나다. 가령 점퍼의 소매, 몸판, 후드 등 여러 가지 디테일을 조합해 백팩, 숄더백, 토트백 등 다양한 가방을 완성하는 식이다.

한정된 자원을 기반으로 기업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 역시 래코드의 브랜드 메시지를 공고히 하는 요소다. 래코드는 론칭 이래로 업사이클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DIY 워크숍 ‘리테이블RE;TABLE’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참가자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환경에 대한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한 활동이다. 그뿐만 아니라 래코드는 미혼모, 새터민, 난민 등 사회 취약 계층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옷으로도 행동할 수 있다’라는 브랜드 목표처럼 래코드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이어오고 있다.

래코드 컬렉션을 제작하고 남은 옷의 자투리와 부자재를 재활용해 제작한 의상.
래코드21SS 컬렉션.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장식한 〈리콜렉티브 밀란〉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향한 래코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패션 디자인 분야의 지속 가능성과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한 전시 〈리콜렉티브 밀란Re;collective Milan〉을 통해서다. 전시는 4월 15일부터 23일까지 밀라노 삼마르티니 거리 44번 터널 드롭시티Dropcity 센터에서 개최됐다. 전시가 열린 드롭시티는 밀라노의 옛 중앙역을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최근 새로운 건축 및 디자인 중심지로 부상했다. 래코드, 일본 스키마타 건축사무소와 시공사 TANK의 디자인 유닛인 데카세기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이광호, 구오듀오, 조 나가사카 & 나리타케 후쿠모토, 핀우 디자인 스튜디오Pinwu Design Studio 등 9명의 한·중·일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산업 디자인부터 가구와 조명, 섬세한 작업과 재봉 기술이 필요한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는데 모두 폐기물을 재사용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전시 연출에서도 브랜드 철학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공간에는 공용 테이블과 빈티지 세컨드핸드 체어, 한·중·일 3국의 폐비닐로 만든 조명이 눈길을 끈다. 다른 한편에서는 DIY 워크숍 ‘리테이블’을 열어 직접 키링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재활용한 에어백 테이프나 컬러 스트랩, 쓰고 남은 상표나 단추를 다양한 부자재로 장식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래코드는 작년 10월 브랜드 론칭 10주년을 맞아 〈리;콜렉티브: 25개의 방〉을 열어 다양한 브랜드, 아티스트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래코드가 제안하고 여러 작가가 동참한 〈리콜렉티브 밀란〉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 푸오리살로네 어워드Fuorisalone Award에서 지속가능성 부문 위너를 수상해 의미를 더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가 힘을 얻은 사례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회나 환경에 어떻게 이로운 소비를 할 수 있을지 진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리콜렉티브 밀란 전시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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