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상 피네이션 대표

가수 싸이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 CEO로

2021년은 싸이가 데뷔 20주년을 맞는 해다. 그해 3월에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40억 뷰를 기록했다. 의외로 그는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강남스타일’을 부르는 싸이가 아니라 철저한 기획자 박재상의 얘기를 들었다.

박재상 피네이션 대표

가수가 꿈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오래전부터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으나 ‘강남스타일’이 ‘심하게’ 성공하는 바람에 이제야 피네이션Pnation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싸이 자체를 철저한 상품 관점에서 기획하고 디자인한, 자기 자신의 브랜드 매니저였다. 늘 소비자를 최우선시한, 자신의 음악은 서비스업이라는 마인드가 철저했다. 가수 싸이가 아닌, 박재상 피네이션 대표를 만났다.

가공된 자유로움에서 탄생한 가수 싸이

피네이션 사옥의 〈타임〉 표지 월 앞에 선 박재상 대표. 사진 김영준

2019년 1월에 엔터테인먼트 회사 피네이션을 설립했습니다. 기획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꿈이 가수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작사ㆍ작곡가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써둔 곡은 안 팔리고, 집에서는 반대를 하니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다 습작들이 아까워서 내가 직접 불러보고 접자, 이렇게 해서 데뷔를 하게 됐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꿈은 꽤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수로서의 인기가 예상보다 길게 갔고, 일이 덜 바빠지면 해야지 하다가 이제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멀티가 잘 안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리고 가수 싸이의 인생이건 피네이션 대표 박재상의 인생이건 어쩔 수 없이 ‘강남스타일’로부터 하루라도 가까운 날에 뭘 하긴 해야 했어요. 뭐라도 할 거면 그게 더 약발이 먹히니까요. 빨리 내 집을 만들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 한 번도 가수가 꿈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게 의외네요.(웃음) 그럼 어쩌다 그렇게 잘된 건가요?

가수 싸이의 브랜딩만 하면서 살았죠. “넌 어쩌다 그렇게 됐니?”라고 사람들이 물으면 저는 항상 ‘주제 파악을 잘했다’고 하거든요. 데뷔 후 세 군데 소속사를 거쳤는데, 그 기간을 되돌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싸이는 이런 곡을 쓰고,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춤을 추고, 이런 뮤직비디오를 찍고, 공연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저 스스로 가수 싸이의 가장 오래된 매니저 역할을 해왔던 거죠. 얼마나 관리를 했느냐 하면, 소위 떴으니 발라드에 도전한다거나(웃음), 하다못해 염색을 하거나 귀를 뚫은 적도 없거든요. 유일한 변화가 컴백할 때 가르마 바꾸는 거 정도?(웃음) 사실 가수로서 잘되기 쉽지 않은 비주얼인데 저는 철저하게 전략이 많았거든요. 소프트웨어가 ‘또라이’더라도 하드웨어는 단정하게 가는 게 길이라고 봤어요. 제가 했던 가수 싸이에 대한 주제 파악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을 텐데요.

‘강남스타일’이 나오기 직전은 심각하게 가수 생활을 접고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어요. 앨범도 인기 있고 공연도 잘되고, 내가 외국에서 활동할 거 아니면 이 정도면 됐다 싶었거든요.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싶기도 해서 심각하게 전직을 고려 중이었죠. 2012년 당시 YG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한 장 남아 있어서 이것까지만 내고 그만 해야지 했는데, ‘강남스타일’이 실린 6집이 그만 터져버렸어요. 그래서 계획이 많이 달라졌고 예정보다 더 오래 가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남스타일 메인 포스터.
가수 싸이로서 보여준 면모는 매니저 박재상의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었네요.

1집 공연을 하다가 기운이 뻗쳐서 객석으로 뛰어들어간 것은 기획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아, 공연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알게 된 다음부터는 기획이 됐어요. 우연한 기회에 루틴을 얻게 되면 거기서부터 업그레이드해 가지를 친 경우가 많았죠. 남들은 애드리브로 알고 있지만 실은 사전에 기획한 것이 많아요. 저는 약속되지 않은 동선을 별로 안 좋아해요. 스태프들과 공연 기획을 할 때, 이 구간은 애드리브로 갈 거니까 비워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기획이죠. 물론 그 구간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아티스트의 영역이지만 그 구간을 비운 것은 기획입니다. 말하자면 가공된 자유로움입니다.(웃음)

알고 보니 다 연출이었군요?(웃음)

물론 처음엔 자유로움이었어요. 질서 속의 무질서라고 할 수 있죠. 자유로움에도 레벨이 있어서 대중은 방종을 싫어하고, 어느 정도 정제되고 예측할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가사가 발칙해도 심의는 통과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데, 발칙함의 극단으로 치달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방송을 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런 선 타기를 열심히 했어요.

항상 소비자를 최우선시한 거네요.

전 고민을 엄청 많이 해요. 8집 타이틀곡인 ‘뉴페이스’는 최종 파일명이 46버전까지 갔어요. 완성 이후 46번 고친 거예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만족했으면 해서 그렇게 했어요. 모니터링할 때도 음악 마니아가 아니라 랩을 잘 식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들려줘요. 그리고 누군가 의견을 내면 저는 고쳐요. 뮤지션이 이렇게 에고가 없나 싶을 정도로 의견 수렴을 많이 합니다. 가족에게까지 다 들려주고, 별로라고 하면 그 사람이 좋다고 할 때까지 또 고쳐요. 전 소비자를 가장 최우선시했습니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메시지는 넋두리잖아요. 내 만족을 위한 거라면 사운드클라우드가 낫지 않나요? 발매하겠다는 얘긴 상거래를 하겠다는 거잖아요. 물론 자아실현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저는 음악을 통한 자아실현이 상단에 있진 않았어요. 서비스업이라는 생각이 꽤 강해요.

뮤지션으로서 자신을 브랜딩하다

장성은 전 YG엔터테인먼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싸이를 두고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앨범의 일러스트레이션 캐릭터 활용도 싸이 매니저의 아이디어였다고요?(웃음) 얼굴 사진이 아닌 캐릭터가 브랜딩에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나요?

1집 커버부터 캐릭터를 사용했는데, 왜 그랬느냐면 얼굴 없이 활동할 계획이었거든요. 2집부터는 대놓고 내가 나예요, 이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쓰임새도 좋을 것 같아서 모든 앨범에 캐릭터를 활용하게 됐어요. 확실히 다른 것을 할 때의 통쾌함을 좋아했어요. 왜냐면 생긴 게 다르니까, 가꾸로 가고 싶었어요. 〈사우스 파크〉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어요. 귀여운 캐릭터지만 되게 짖굿은데, 저는 그런 게 좋아서 제 캐릭터를 심술맞게 하나 그려두고 나중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제목도 지어놨어요. ‘따옴표’라고 속마음에 관한 얘기예요. 앞에서는 상사에게 웃으면서 인사해도 뒤에서는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전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고.

그렇다면 뮤지션은 하고 싶은 일의 일부였나요?

제가 가수로서 재주가 많은지 저도 몰랐어요. 곡을 이렇게 많이 쓸 줄도 몰랐고, 그냥 ‘어!’ 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수 싸이의 브랜딩을 해왔다고 하면 상당히 용의주도하고 거창한 거 같지만, 돌이켜보니 그렇다는 뜻이었고요. 주로 빅 재미나 잔재미를 그때그때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럼 박재상 매니저는 가수 싸이의 브랜딩을 위해 어디부터 어디까지 관여했나요?

아주 많이요. 의상 컬러부터 거의 정신병자 수준으로 다 관여했던 거 같아요. 제가 하는 음악은 노래, 춤, 뮤직비디오 등 모든 비주얼이 중요한 장르라 전체적인 브랜딩이 매우 중요해요. 예를 들어 안무가가 춤을 짜 오지만 제 몸에 맞는 춤은 따로 있어요. 그분들 몸은 보편적이지만 저는 동글동글하니까. 저 같은 사람은 몸 쓰임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동작의 변압기를 돌릴 필요가 있었죠. 안무 팀에서 짜준 것을 집에서 샤워하면서 춰보고, 술 마시면서도 추면서 제 몸에 맞게 바꿔나갔죠. 제 뮤직비디오를 직접 편집한 지는 오래되었어요. 제가 많이 해봐서 웬만한 편집 기사만큼 손이 빨라요. 3집 〈챔피언〉 때부터 편집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좀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예를 들어 이 곡을 쓸 때는 여기서 리듬을 이렇게 타려고 한 건데, 이 사실은 저밖에 모르잖아요. 나만 느끼는 불편함과 아쉬움인데 이걸 설명하고 공감대를 갖기 어려우니 차라리 편집을 배우자 한 거죠. 그런데 저도 힘이 드니까 편집에 손댄 것을 후회할 때가 참 많아요. 모든 영상물은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초가 30프레임이에요. 그러니 1프레임은 얼마나 작은 거냐, 그래서 1프레임이 어긋나 있는 것을 소비자가 모를 수도 있겠으나 1프레임씩 30번이 어긋나면 뮤직비디오를 다 시청한 후에 1초짜리의 불편함이 생깁니다. 소비자가 뮤직비디오를 시청할 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점은 깔끔한 매무새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싸이의 겨울 공연 브랜드 올나잇스탠드 드레스 코드는 레드로 올나잇이라는 말 그대로 밤새 노는 콘서트다. 막차 타고 와서 첫차 타고 가는 콘셉트로 진행한다.
무대 디자인 유잠 스튜디오(대표 유재헌), 디자이너 김명선, youjam.net

외국의 한 평론가가 “싸이는 옷을 세련되게 잘 입는다. 음악적으로는 촌스럽고 열정적이지만 세련되게 옷을 잘 입는 가수다”라고 했습니다. 어깨 한쪽을 날린 양복을 입는 감각이라든지 공연에서 보여준 의상도 남달랐어요.

누구예요? 고맙네요. 패션에 관심이 많다기보다는 나에게 잘 맞는 옷에 대한 관심이 많죠. 연예인 싸이와 일반인 박재상의 삶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무대복과 사복은 완전히 다릅니다. 저 머리에 젤만 안 발라도 순박하게 보이거든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가수 싸이는 비비드한 원색이 정말 잘 받아요.(웃음) ‘멋지다’와 ‘멋있다’는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멋있다는 피지컬이고 멋지다는 애티듀드라고 봐요. 살면서 멋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지만 멋지다는 소리는 좀 들어본 것 같아요. 업 특성상 과할 때는 아주 과하게 입지만 기본적으로는 TPO에 맞추는 게 옷을 잘 입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무대용 의상은 객석 3층에서 내려다봐도 한눈에 확 들어와야 해요. 확 ‘쎄야’ 할 땐 차라리 수영복을 입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또 잔동작이 많은 춤은 뮤직비디오에서는 괜찮지만 공연에서는 안 통해요. 현장은 직관적이어야 합니다.

공연 의상,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했는데 어떤 디자이너를 선호하나요?

전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자주 바뀌는 거 완전 싫어해요. 내가 원하는 걸 처음부터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불편함도 싫고요.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좋기도 하고. 지금 피네이션 이사님은 데뷔 시절 제 막내 매니저였고, 백업 댄서들도 밴드도 다 오래됐어요. 콘서트 무대 디자인은 모두 유잠 스튜디오랑 했어요.

좋아하는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나요?

저는 완전 잡식이에요. 음악도 디자인도 그때그때 좋은 게 달라지는데, 뭐든 긴 설명 없이 한 줄로 떨어지는 게 좋아요. 흠뻑쇼? 물 뿌리는 거야, 설명 끝. 올나잇스탠드? 밤 새우는 거야, 설명 끝. 설명 긴 거치고 제대로 된 물건 없더라고요. 전 그냥 제 핏에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피네이션 대표로서의 박재상

피네이션 CI 디자인 켈리타앤컴퍼니(대표 최성희) www.kelita.co.kr

싸이 매니저였던 것처럼 피네이션 대표로서 개성 강한 뮤지션들의 브랜드를 관리해야 할 텐데요. 소속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공연 등의 기획과 브랜딩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현재와 앞으로의 버전이 좀 달라질 겁니다. 현아, 제시, 크러쉬, 헤이즈, 던, 디아크 등 현재 피네이션 소속 뮤지션들은 이미 자신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걸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장르적으로 본다면 제시나 현아, 던은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런데 크러쉬나 헤이즈 같은 친구는 제가 건드릴 게 별로 없어요. 저와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 대해서는 음악적 조력보다 홍보나 마케팅 등에서 도울 일이 많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을 도우면 되고, 더 나아가서는 부탁하는 것만 해주면 되는 거죠. 참견과 참여는 종이 한 장 차이예요. 나에게 좋은 게 저 사람에게도 꼭 좋은 건 아닐 수 있거든요. 제가 제일 잘 알고 관여도가 높은 영역은 뮤직비디오와 공연인데요, 크러쉬가 피네이션에 오고 나서 공연의 파이가 커졌고, 제시의 〈눈누난나〉 뮤직비디오는 1억 뷰를 찍었어요.

바라트 아난드의 〈콘텐츠의 미래〉에서 인용한 내용을 살펴보면, 데이비드 보위는 “음악이 수돗물이나 전기처럼 되어간다. 가수라면 공연을 준비하라. 왜냐하면 남은 건 그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위의 예언처럼 음악은 음반 판매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더 큰 수익을 만들고 있는데요, 싸이가 공연의 강자였던 것처럼 앞으로 피네이션의 주력은 공연일까요?

‘박재상이 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피네이션은 제3세대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하겠습니다. 장르로 비유하자면 어떤 회사는 영화 같기도 하고, 또 어떤 회사는 만화 같기도 한데, 피네이션에서 나오는 작업은 뮤지컬 같았으면 좋겠어요. 음악 비즈니스에서 가장 수익이 큰 부문은 공연이죠. 우리가 다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비교했을 때 공연에 강점이 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빨리 끝나서 다시 공연장에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도 그렇고 뮤지션들도 그렇고 아직은 무관객으로 공연을 한다는 게 잘 와닿지가 않아요. 저는 뮤지션의 완성은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신곡을 내야 하냐면 공연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제시는 공연을 정말 잘하는데 아직 단독 공연을 못 했어요. 제시를 위한 뮤지션 완성형 서비스로 꼭 콘서트를 멋지게 열어주고 싶어요.

싸이의 여름 공연 브랜드 흠뻑쇼 드레스 코드는 블루로 콘서트 중에 물이 뿌려진다. 기본적으로 무대는 대문자 I와 같은 형식이며, 무대를 따라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어 물줄기가 쏟아진다.
무대 디자인 유잠 스튜디오(대표 유재헌), 디자이너 김명선, youjam.net

여름 콘서트인 ‘흠뻑쇼’, 겨울 콘서트인 ‘올나잇스탠드’는 싸이의 대표적인 브랜드 공연이 되었죠. 무대 콘셉트부터 디자인, 패션까지 새롭고 독특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기획 배경과 디자인 과정을 좀 소개해주세요.

여름에 열리는 흠뻑쇼의 드레스 코드는 시원한 블루, 겨울에 열리는 올나잇스탠드는 레드인데요, 관객들이 정말 기가 막히게 맞춰 입고 와요. 2002 한일 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드레스 코드였어요. 저도 응원하러 많이 나가봤는데, 정말 응원 이상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런 행사가 4년이 아니라 1년마다 열리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싶었고, 여름에 물 뿌리는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공연을 해보면 관객들이 물을 뿌릴 때 가장 좋아하는데, 아이러니한 건 사실 그때는 무대가 제일 안 보여요. 가수보다 상황에 열광하는 게 훨씬 화력이 세요. 상황이 사람보다 안 늙고 브랜드로서도 안정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흠뻑쇼에서는 신곡의 니즈가 훨씬 적습니다. 신곡이 있으면 더 좋겠으나 관객은 궁극적으로 물 맞으러 오기 때문이죠. 올나잇스탠드는 처음부터 밤샘 공연은 아니었어요. 공연 보고 탄력받아서 그 김에 더 놀아라, 이런 취지로 만들었는데 결국은 실제 시간도 올나잇으로 변경했습니다. 막차 타고 와서 첫차 타고 가는 콘셉트로요. 네다섯 시간씩 뛰면서 노는 것도 극한 체험인데 그런 상황을 만들어드린 것을 더 좋아하는 거죠. 결과물에 대한 대중의 피드백이 의도대로 왔을 때 느끼는 그 희열감으로 일하죠.

음악 산업의 밀도가 높아지고 고도화되었기 때문에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음악이 음악으로만 소비되는 게 아니라 앨범 재킷, 의상, 무대 디자인까지 총체적인 비주얼 전략이 중요해졌다는 뜻인데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좋은 디자인은 무엇일까요?

적재적소에 녹아든 디자인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 필요한 것 아닐까요? 피네이션도 뮤지션을 선보일 때마다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이젠 주객이 전도될 만큼 중요해졌죠. 저에게 디자인의 정의는 ‘웰 밸런스드well balanced’입니다. 이젠 음악만 좋아서는 사랑받기 힘들고요, 노래부터 뮤지션의 브랜딩까지 모든 것이 웰 밸런스드여야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디자이너와 함께 일할 채널을 열어두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지금은 피네이션이 ‘개발 도상 회사’ 단계라서 필수 인력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인하우스 디자이너도 채용할 예정이에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섭외는 현재 저희가 굉장히 목말라하는 부분입니다. 각 뮤지션마다 기존 스태프가 있고, 선호하는 크리에이터가 다 달라요. 조만간 피네이션에서도 아이돌을 론칭할 예정으로,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협업이 필요합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피네이션 사옥 건축 디자인 YNP 아키텍츠(대표 유웅덕ㆍ박봉준)
사옥은 어떤 공간인지 소개해주세요.

피네이션을 만들자마자 사옥에 대한 구상을 제일 먼저 했어요. 근사한 건축물을 떠올린 게 아니고요. 곡 작업, 녹음, 연습실 등 앨범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공정이 한 공간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소속감 때문인데요, 사무 직원과 크리에이터, 뮤지션들이 얼굴 보면서 친해지기가 참 어려워요. 앨범 한 장을 내기 위해 밤샘도 많고 모두가 고생하지만, 동료의 인정 한마디에 쌓인 피로가 녹는 거잖아요. 한 건물 안에서 지내다 보면 아무래도 그런 기회가 더 늘어나겠죠. 소속감과 결속을 위해서 사옥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건축은 YNP가 맡았는데, 역시 제 오랜 지인입니다.(웃음)

피네이션의 올해 목표를 얘기해주신다면?

새로운 것만이, 혹은 복고만이 답이 아닌 것처럼 그 날짜에 능사인 것들이 있거든요. 전 그건 분명히 올드 & 뉴가 합쳐진 것이라고 봐요. 우리 업계 종사자들이 내다보는 미래 역시 융합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제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라이브 공연처럼 대체제가 생길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요. 음악인은 누구보다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야 하지만, 누구보다 클래식하고 어쿠스틱한 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하지만 딜레마인 게, 어느 날은 융합 콘텐츠를 고민하다가, 또 어느 날은 어릴 때 들은 음악이 좋기도 하고 그래요. 음악 소비자도 똑같을 것 같아요. 새로운 것도 좋고, 오래된 것도 좋고. 아마도 그런 뉴트로가 피네이션이 갖고 싶은 정서일 겁니다. 올해는 현아가 스타트를 잘 끊어줬기 때문에 다른 뮤지션들도 선전했으면 좋겠고요. 피네이션이 올해 7장의 앨범을 낸다고 하면, 각각의 뮤지션에게는 그게 올해 나온 유일한 앨범일 수 있기 때문에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앨범들이 회사보다는 가수 개개인에게 훨씬 더 중요한 모멘텀이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착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피네이션 소속 뮤지션들은 앨범이 대박 나면 본인 다음으로 제가 가장 좋아할 사람이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어요. 때론 제가 제일 좋아하죠. 선배이기도 하니까요. 이 외에 5월부터 SBS에서 피네이션과 JYP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아이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걸 잘하는 게 올해 숙제예요. 저는 초심 초심보다 본심이 더 중요한것 같습니다. 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 초심은 서랍장에 잘 넣어두고 본심만 지키면 된다고 봐요. 제 본심이 뭐냐고요? 결국은 음악이죠. 공감대는 음악. 한 줄로 설명이 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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