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스 김성준 상무·CMO
브랜드의 요람을 설계하는 크리에이터
시몬스의 독창적인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의 중심에는 김성준 상무가 있다. 브랜드전략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매번 통찰력 있는 프로젝트를 이끌며 유서 깊은 침대 브랜드를 가장 젊고 감각적인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조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침대 속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본다고 해도 별로 신통한 생각을 얻을 수 없다”라고. 그래서였을까? 시몬스는 침대의 네 모서리에서 벗어난 브랜드 전략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침대 없는 침대 광고’라는 ‘속을 알 수 없는’ 콘텐츠로 입소문을 탄 시몬스는 창립 150주년을 맞이한 2020년 성수동에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를 오픈하며 다시금 이목을 집중시켰다. 소셜라이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개한 공간에는 노골적인 제품 홍보도, 자기 멋에 취한 자축도 없었다. 대신 각종 공구와 굿즈만 즐비했는데 이 유별난 철물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MZ세대였다. 운영 기간 내내 스토어가 들어섰던 후미진 골목길은 단숨에 성수동 제일의 힙 플레이스로 등극했고 연일 젊은 방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시몬스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듬해 부산 해운대에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부산을 열더니 최근에는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으로 신선한 행보를 이어갔다. 이와 더불어 선보인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Oddly Satisfying Video는 유튜브 공개 후 한 달도 안 되어 누적 조회 수 2000만 뷰를 넘었다. 역발상은 주효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데 이어 이제는 30년간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던 에이스침대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정작 시몬스는 경쟁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시몬스의 독창적인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의 중심에는 김성준 상무가 있다. 그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시몬스에서 활용하며 리빙업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광고의 아버지 데이비드 오길비는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라는 말을 남겼다. 브랜드가 제품과 배다른 형제라는 이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안겨준다. 그것은 바로 기업이 궁극적으로 팔아야 하는 것은 제품의 기능이 아닌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꿈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꿈과 가장 맞닿아 있는 제품을 팔던 시몬스는 이제 아예 꿈 자체를 팔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본 기사는 월간 〈디자인〉 2022년 6월호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 같은 달 김성준 CMO는 부사장으로 승진합니다.(편집자 주)
시몬스다운 것, 소셜라이징 프로젝트
연초부터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 오픈에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 론칭까지 정신없이 보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좀 한가해졌나요?
사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습니다.(웃음) 6년 전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유닛 그룹을 만들어서 ‘우리 것을 좀 더 우리답게 해보자’고 시작했던 일인데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반응에 한편으로 부담도 좀 되고요.
청담동에 팝업 스토어를 연다고 했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어요. 이전에 성수동이나 해리단길이 젊은 세대의 성지로 각인된 반면 청담동이라는 지역 자체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청담동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명실상부 대한 민국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패션은 물론 각종 F&B 브랜드가 이 지역에 몰려 있었죠. 청담동, 압구정동에서 소위 ‘놀 줄 안다’는 사람들이 속속 연예계에 데뷔할 정도로 트렌드세터같은 역할을 했고요. 하지만 이태원 경리단길, 연남동, 성수 동 등 여러 지역으로 힙스터들이 분산되며 청담 상권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공실률이 급증할 정도로 지역 상권이 침체했습니다.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브랜드 창립 150주년을 기념한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더 거슬러 올라가 생산 시설이 있는 경기도 이천의 ‘시몬스 테라스’ 모두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셜라이징’이라는 키워드로 진행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프로젝트의 취지에는 소위 ‘망한 집’ 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동네(경기도 이천)를 찾아 들어가 상권을 살리자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장소를 물색할 때 청담동에 눈길이 갔습니다.
청담동이 한때 내리막길을 걸었던 배경에는 지가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도 한몫했죠. 하지만 최근에는 부활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때마침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CNP컴퍼니, GFFG등이 잇달아 F&B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상권을 일으키고 있었고, 이에 ‘우리는 길 건너 청담동을 한번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지난해 소셜라이징 프로젝트를 하면서 연을 맺은 부산의 로컬 플레이어 ‘버거샵’과 협업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청담동이라고 하는,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동네에 ‘부산’과 ‘서브컬처’라는 쾌활한 키워드를 더했을 때 만들어지는 이질감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할 것 같았어요. 부산 해리단길에 있는 버거샵 매장 인테리어를 그대로 재현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도 흥미롭습니다. ‘복세편살’, ‘대충 살자’ 같은 유행어가 도는 오늘날 ‘멍때리기’ 라는 콘셉트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딩은 브랜드 스스로가 정의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대중이, 사회적 시류가 정의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사회적 트렌드와 사람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당대에 회자되는 현상에서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시대 정신을 브랜딩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죠. 단순히 멋만 잔뜩 부린 브랜딩은 반짝 인기를 누린 뒤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는 순간 기억에서 이내 사라지지만,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브랜딩은 없어지지 않고 축적되기 마련입니다. 장기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피로해질 대로 피로해졌고,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습니다. 이제 “팬데믹이 끝나면 다 괜찮을 거야. 한번에 돌아올 거야”라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멘탈 헬스’라는 키워드를 고민했습니다. 본래 멘탈 헬스는 1960~1970년대 베트남전쟁, JFK 암살 등 사회적 문제를 겪으며 지쳐버린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트렌드입니다. 당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히피 컬처의 일환으로 사람들은 식물을 기르거나 명상, 요가, 조용한 음악 듣기 등 정신적 치유에 집중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2020~2022년이 이런 부분과 맞아떨어지는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 불멍을 한다든가, 유튜브로 아무 의미 없는 반복적인 행위의 영상을 장시간 보고 있습니다. 실제 ‘멍 때리기(hitting mung)’는 한국 사회의 트렌드로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될 정도였죠.
이번 캠페인은 메시지만큼이나 플랫폼 전략도 돋보였습니다.
이번 브랜드 캠페인은 영상 콘텐츠를 유튜브, TV, 도산대로 1.6km에 걸친 11개 옥외 전광판에 노출시키는 한편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 2022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시몬스 테라스 등을 통해 전시로도 소개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죠. 영상 콘텐츠라 하더라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거기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몬스만의 디지털 아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대 없는 침대 광고, 대행사 없는 광고 제작
2019년 화제가 된 시몬스 TV 광고를 제작한 싱싱 스튜디오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점이 눈에 띕니다. 당시 제품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라는 카피라이트를 앞세워 큰 화제가 됐죠.
사실 시몬스는 예전부터 TV 광고계에서 소위 히트작을 여러번 냈던 DNA가 있습니다. 저희 대표께선 침대 회사를 안 했다면 광고 회사를 했겠다 싶을 정도로 광고에 대한 관심이 많죠. 그간 제작한 광고 대부분이 대표께서 직접 오리지널 콘티를 각색해 나온 결과물이고요. 일명 ‘침대 없는 침대 광고’로 알려진 2019년 광고에서 오직 텍스트만으로 플레이해 시몬스라는 브랜드를 각인시켜보자는 아이디어도 대표의 과감한 결정 덕분에 성사되었던 것이죠.
훌륭한 디자인이 나오는 것의 절반은 클라이언트의 공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어찌 보면 굉장히 리스크가 큰 결정이었으니까요.
제품은 보여주지 않고 텍스트만 있는 광고라 그래픽, 폰트 등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기성 CF 감독보다 비주얼 아티스트, 그것도 폰트와 컬러 팔레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창작자를 물색했죠. 그렇게 만난 것이 싱싱 스튜디오입니다. 음악도 반드시 DJ 믹스로 펑키하게 제작해 CF가 아닌 그래픽물을 만든다는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번 브랜드 캠페인인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를 위해 받은 싱싱 스튜디오가 구성한 콘티는 말 그대로 몽환적이었습니다. 그림은 정말 잘 나올 것 같은데 각각의 이미지가 주는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 메시지가 잘 녹아들까 걱정했죠.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중 영상물을 8개로 쪼개고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주제로 해봐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몬스는 대행사 없이 프로덕션과 직접 광고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처음 CF 촬영에 참여한 게 2017년이었어요. 혼네Honne의 음악 ‘Warm on a Cold Night’를 삽입해 유명해 진 광고였죠. 이때 TV 광고에 대한 정의를 브랜딩 관점에서 재정립하게 됐습니다. 보통 광고가 나오면 짜증을 내며 채널을 돌리기 십상인데 시청자가 보기에 좋은 느낌의 콘텐츠를 만들고 여기에 시몬스만의 느낌을 더한다면 이전과 다른 양상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대행사를 끼지 않고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직접 프로덕션과 함께 광고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외부 전문가들과 원활한 협업을 위해 디렉팅과 스타일링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저는 패션업계에 몸담으며 익힌 것을 활용해 일명 ‘시몬스 룩’을 만들고자 했어요. 이처럼 어떠한 테마를 잡고 발전시키는 방식은 패션계 출신인 저에게 너무나 익숙했지만, 기능을 우선으로 삼는 리빙업계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연출이었습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배운 것
원래는 미국에서 디자인 경영을 공부했죠?
사실 디자인 경영을 공부하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저는 스위스를 거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미국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디자인과 관계가 없는 학과였죠. 그런데 IMF 금융 위기가 터져 잠시 귀국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제 자신을 돌아봤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게 뭐지?’ 평소에 패션을 좋아했고 그래서 패션을 업으로 삼자는 마음을 먹고 미국 버클리 칼리지 패션 마케팅 관련 학과에 새로 입학했습니다. 그러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디자인 경영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디자인과 경영을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디자인 경영학과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프랫 인스티튜트의 석사과정과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학부과정밖에 없었어요. 학교를 보고 선택했다기보다 학과를 보고 진학을 결심한 거죠. 학업도 학업이지만 사실 뉴욕 생활 자체가 제게 여러모로 영향을 줬어요. 예를 들어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홀세일wholesale 머천다이저로 근무할 당시 패션 시장이 홀세일 중심에서 리테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목도했어요. 도매 중심 체제에서는 브랜드가 일관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지만, 소매에서는 그게 가능하죠.
흥미롭네요. 혹시 그러한 과도기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나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유니클로가 뉴욕 소호에 첫 매장을 오픈하며 자라와 함께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소위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패션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나간 시기였죠. 유니클로 등장 이후 패션계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중간 영역의 패션 브랜드가 많이 사라지고 대신 에르메스·샤넬 vs 자라·유니클로 구도가 형성됐죠. 당시 유니클로는 제게 여러모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전까지 패션 시장은 맞춤복 전통을 계승한 결과 한 브랜드로 하나의 룩을 완성하는 게 일종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졌어요. 그런데 유니클로는 이를 탈피해 카테고리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철저히 기능에 초점을 맞춘 옷을 만들어 팔았다는 거예요. 캐시미어나 히트텍 같은 것이죠. 여기서 저는 브랜드에 당위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럭셔리 브랜드에서 쌓은 경험이 시몬스의 브랜드 전략 수립에도 영향을 줬나요?
물론이죠. 2005년 제냐 뉴욕 쇼룸 입사 당시 럭셔리 패션 시장은 말 그대로 핫했습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며 톰 포드의 구찌, 에디 슬리먼의 디올 등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 수장이 록 스타 역할을 했고,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뉴욕 패션이 글로벌 패션 시장에 큰 영감을 주었죠. 당시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은 매뉴얼이 고도화되어 있고 전개 방식도 굉장히 잘 정리되어 있었어요. 그간 축적해온 헤리티지와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엄격한 트레이닝을 진행했고요. 전반적으로 소비자 접점에서 브랜드를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제게 훌륭한 가르침이었습니다. 150년 넘는 역사와 품질을 고집하는 장인 정신을 소비자 관점에서 재정립해 커뮤니케이션하고 내부 직원들에게 기존 리빙업계와 다른 마인드를 심어준 것 역시 럭셔리 패션업계의 속성을 이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타 브랜드와 경쟁해 비교 우위를 점하는 데 힘을 쏟지 않아요. 그보다 사람들이 브랜드 문화를 소유하고 싶게끔 만드는 데 집중하죠. 샤넬이 LVMH 산하의 루이 비통과 매출 면에서 경쟁이 될까요? 하지만 샤넬은 여전히 샤넬이죠. 그게 중요합니다. 이런 교훈을 시몬스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시몬스는 대표 매트리스 컬렉션인 ‘뷰티레스트’와 최상위 라인인 ‘뷰티레스트 블랙’으로 경쟁사들과 결을 달리했어요. 경쟁사들과 완전히 다른 마켓 포지셔닝을 차지한 것입니다.
전형성을 탈피한 브랜딩의 시작
현재 소속되어 일하는 브랜드전략부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브랜드전략부문이 만들어진 건 제가 입사한 2015년 즈음입니다. 당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구성을 정리하기 위해 잡지기자 출신이나 패션 브랜드 VM 등을 먼저 채용했습니다. 외부 전문가와 긴밀히 협업하고 확실하게 디렉팅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좀 더 유연하고 공격적으로 만들 필요도 있었는데 그 결과 탄생한 유닛 그룹이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였고요. 리빙업계의 전형성에서 탈피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 보자는 욕심이 컸습니다. 이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스페이스 커뮤니케이션으로 패키징해 전개해나갔습니다.
각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궁금하네요.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은 제품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해 생산하고 매장에 디스플레이한 후 홍보하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시간이 길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죠. 침대에 대입해본다면 침대 프레임이나 베딩 디자인 혹은 매트리스 자체 원단, 디테일 디자인 등입니다. 판매하는 입장에선 제품 스펙을 먼저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매장에 들어선 소비자의 눈에 먼저 보이는 건 침대 프레임 헤드보드나 베딩 같은 형태입니다. 그래서 시몬스만의 룩을 만드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은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대비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적지만 소비자에게 닿는 시간이 정말 찰나이기 때문에 디테일과 시각적 완성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시 일반 가구 회사의 제품 화보는 핀 조명 아래에서 정직하게 형태를 보여주는 방식이었지만 시몬스는 패션 화보 형태를 시도했습니다. 그때는 이 정도만 해도 업계에서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웃음) 마지막 스페이스 커뮤니케이션은 말 그대로 공간을 통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겁니다.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등이 엄청납니다. 잘 알려진 이천의 시몬스 테라스나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많이 떠올리지만, 이 외에도 시몬스 오프라인 매장의 인테리어, 주력 제품 디스플레이, VM 집기 디자인을 일원화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전국 시몬스 매장 어디에 들어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겁니다. 반면 전통적인 가구 골목에서 대리점(사입 방식)으로 운영하는 매장은 같은 브랜드 간판을 달았더라도 매장 내 느낌은 철저히 지점 사장님 몫이기 때문에 소비자 관점에서 일원화된 브랜드 경험을 하기 어렵죠. 패션 비즈니스가 홀세일에서 리테일로, 나이키나 스타벅스처럼 글로벌 브랜드가 경험을 중시하는 D2C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천의 시몬스 테라스도 떠오르네요.
시몬스 테라스는 멋진 건축이나 인테리어 이전에 그 안에서 일어날 프로그램 설계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멋진 공간은 한 번 방문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활동이 업데이트되는 경우는 그곳을 재방문해야 할 이유가 되니까요. 또 하나는 지역사회에 크게 이바지하고 싶었습니다. ‘이천에는 왜 이게 있으면 안 될까?’란 질문에서 시작해 양질의 F&B나 콘텐츠를 제공해 자생적으로 발전·유지하도록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침대 역사 박물관이나 아트 큐레이션, 지역 농가 특산물을 리패키징해 판매망을 넓히는 파머스 마켓도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죠.
브랜드를 소유하는 경험
시몬스가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한 경험 마케팅은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가 그 시작이 아닐까 싶은데요.
브랜드 창립 150주년을 준비하면서 ‘Not to Do List’를 작성했습니다. 골자는 ‘샴페인 잔 들지 말자’, ‘갈라 디너 하지 말자’, ‘자축하지 말자’였죠. 대신 ‘힘 빼고 요즘 것을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하드웨어 스토어라는 콘셉트 안에서 하드웨어를 연상시키는 굿즈 등에 숫자 ‘150’ 또는 시몬스 로고를 새겨 넣어 창립 150주년을 알렸는데 브랜드 역사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대중이 단돈 몇천 원으로 시몬스와 관련된 것을 구매하는 경험을 하도록 마련했죠. 직접 소비하면서 소유해야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이게 문화나 팬덤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시몬스가 팬덤 구축에 유독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팬이 있는 브랜드는 쉽사리 잊히지 않으니까요. 샤넬의 오픈런 현상이 좋은 예시입니다. 샤넬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팬덤입니다. 따라서 시몬스는 우리만의 문화적 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합니다.
소셜라이징 프로젝트는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부산으로 이어집니다. 그로서리를 콘셉트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요즘 트렌드에서는 ‘가볍게’, ‘힘 빼고’가 중요합니다. 사실 하드웨어 스토어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이후 내부적으로 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후속탄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콘셉트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해운대 여름 바다의 청량감과 비비드한 색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런 감성을 엮을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다 그로서리 스토어라는 콘셉트를 도출한 것입니다.
하드웨어 스토어와 그로서리 스토어 모두 굿즈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굿즈 기획을 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 크루들이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웃음) MZ세대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려면 회사에서 일하는 MZ세대 실무진의 활약이 중요한데, 저의 디렉팅은 무얼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디테일 역시 크루들 몫입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를 왜 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명확히 하고 전달하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저는 대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몇 가지 ‘Not to Do List’를 정하고 이것 외에는 모두 해도 된다며 크리에이티브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그러다 보니 삼겹살 수세미나 시몬스 소주잔 같은 독창적인 아이템이 나온 것이에요. 디테일은 실무에서 하는 것이고 크레디트 역시 그들의 몫입니다. 굿즈에 대해서는 제가 디렉팅 한 것이 전혀 없고, 디자인 스튜디오의 MZ세대 크루들이 한 겁니다.
지금의 마케팅과 디자인에 필요한 것
최근 브랜드 전략 혹은 마케팅 분야에서 눈에 띄는 특징이나 현상이 있나요?
일단 ‘MZ세대의 마음을 어떻게 끌어오느냐’를 많이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브랜드가 착각하는 게 그저 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사실 이전에 이들이 겪어온 문화나 사회적 이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죠. MZ세대는 주변에 인터넷이 항상 있었고 정보를 찾아내 그 정보를 순식간에 편집하고 어떠한 특정 플랫폼에 맞춰 다시 정보를 재생산 또는 전달, 아카이빙하며 자랐습니다. 이렇게 생성된 정보는 즉각적이고 일회적인 특징이 있죠. 모든 게 굉장히 빠르고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생성된 정보는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모두 아카이빙됩니다. 따라서 콘텐츠 이전에 MZ세대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플랫폼에 대한 성격을 먼저 연구해야 합니다. MZ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서치 툴을 예로 들어봅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 포털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목적이 엄연히 다르므로 기업은 각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생성할 줄 알아야 해요. 인스타그램이 이미지 서칭 툴이라면 유튜브는 좀 더 딥 러닝을 할 수 있다는 점, 네이버로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의 목적·성격·연령대가 다를 수 있다는 점, 유튜브는 초등학생부터 60세가 넘은 분들까지 정보를 찾는 수준을 넘어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선생님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을 알아야 하죠.
그렇다면 이런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디자이너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대의 문화를 정의하고 완벽히 파악하려고 하기보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Z세대의 검색 문화를 100% 이해할 수 없어요. 저희 때는 정보가 매우 귀했지만, 날 때부터 검색 문화와 함께였던 젊은 세대에게 정보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죠. 그들은 쉽게 검색하고 편집하고 공유하죠. 현재 가장 많이 회자하는 메타버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또 하나는 스스로 영역 안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미 도구와 플랫폼이 고도화되었기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전문 기술이 아니라 시대를 이해하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플로를 만드는 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