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메이커스 최도진 대표

위대한 쇼맨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가장 동시대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쇼메이커스.

쇼메이커스 최도진 대표

공간이 곧 미디어가 되는 시대다. 이제 천장은 그냥 천장이 아니고, 벽면은 그냥 벽면이 아니며, 매대는 그냥 매대가 아니다. 브랜드들은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 메시지를 부여했다. 리테일 아포칼립스의 원흉 취급을 받던 온라인이 아이러니하게도 공간의 진화에 불을 지폈다. ‘인스타그래머블’. 혹자는 여전히 소셜 미디어를 등에 업은 이 신조어가 썩 달갑지 않지만, 대세가 기운 게 사실이다. 최도진은 이 공간 진화의 소사小史를 가까이서 목도했다.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그는 브랜드가 목소리를 내고 디자이너가 춤을 추는 스테이지를 마련하는 데 능숙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출로 가장 동시대적인 ‘쇼’를 만들어온 그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문화를 형성하는 일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남들을 따라 해서 차이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어.” 퍼스트 무버로서 다시 한번 도약 중인 그는 이미 패스트 팔로워들을 멀찍이 따돌린 모양새다.

쇼메이커스의 예술과 상업 사이를 넘나드는 공간 연출

쇼메이커스 대표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가로 활동하다 젠틀몬스터에 아트 디렉터로 입사하며 공간 브랜딩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다. 파격적인 퀀텀 프로젝트 이후 2017년 독립해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쇼메이커스를 설립했다. 디뮤지엄의 〈판타스틱 플라스틱〉전을 시작으로 전시 디자인, 플래그십 스토어, 팝업 프로젝트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먼저 사옥을 새롭게 지은 것 축하합니다. 스튜디오 연차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빠른 행보 같네요.

젠틀몬스터에서 독립한 후 계속 임대 사무실을 사용하다 보니 쇼메이커스의 세계관이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따르더군요. 일하는 환경부터 우리 색깔로 꾸밀 수 없을까 고민하다 건축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도 쇼메이커스의 스타일과 관점을 보여주는 데 사옥만 한 장소도 없다고 생각했고요.

세계관을 사옥에 구현하기 위해 건축가에게 특별히 요청한 사항도 있었나요?

쇼메이커스다운, 다시 말해 이례적이고, 대담하며, 파워풀하고, 에너지 있는 매스를 설계해달라고 주문했는데 건축 팀에서 이를 잘 구현해준 것 같아요. 이 밖에 관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일하면서 동료들과 맺는 관계, 이 건물이 도시와 맺는 관계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죠. 묵정동이라는 지역의 유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습니다. 원래 이 동네에 ‘감정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는데 깊이가 아주 깊어 우물물이 시커멓게 보였다고 해요. 인근에 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이 물을 길어 먹물을 갈아서 팔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죠. 우연인지 필연인지 현재 이 지역 일대는 인쇄소가 즐비합니다. 검은 잉크에 기반한 산업이 동네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러한 내러티브가 공간 안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이 지역의 맥락을 전시로 풀어낼 계획도 있는데 시점은 2~3 월경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커리어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출발선이 공간이 아닌 사진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가 김용호 선생의 포토하우스에서 어시스턴트로 근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각을 기반으로 패션을 익히는 데 매우 중요한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김용호 선생은 청담동에 400㎡(약 120평) 정도 되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선 촬영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 패션쇼 등을 열곤 했어요. 사진이라는 장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경험한 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사실 젠틀몬스터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기 전에 2~3년 정도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전 직장의 영향을 받아 스튜디오 공간을 갤러리로도 활용했어요. 주로 푸드와 아트를 결합하는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이때 여러 아티스트와 네트워크를 쌓았죠.

젠틀몬스터 퀀텀 프로젝트. 젠틀몬스터 아트 디렉터 시절 진행한 프로젝트다.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25일 간격으로 인스털레이션을 교체하는 파격적인 연출을 시도했다.

발표 시기 2015년
젠틀몬스터에 합류하며 사진에서 공간으로 극적인 전향이 이뤄집니다. 특히 아트 디렉터 시절 진행한 퀀텀 프로젝트는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입사를 결정했을 때 젠틀몬스터가 홍대 매장을 막 개발하던 시점이었어요. 당시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가 참여해 보름 간격으로 공간 연출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패스트 스페이스 개념을 도입해 안경원의 밋밋하고 별 특색 없던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바꿔보고자 한 것인데 일주일 간격으로 VMD를 교체하던 SPA 브랜드의 전략에서 착안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2~3회는 패브리커의 주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다음에 바통을 이어받아 제가 직접 진행했습니다. 보름 간격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25일 간격으로 늘리되 이곳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브랜드 이미지 전략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했어요.

쇼메이커스 독립 후 처음 진행한 공식 프로젝트가 디뮤지엄의 〈판타스틱 플라스틱〉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꽤 굵직한 작업을 맡은 셈인데요.

맞습니다. 약 2600㎡(약 800평) 규모의 공간, 카르텔로부터 제공받은 2500여 점의 가구, 50여 명의 협업 아티스트…. 무척 스케일이 컸죠. 준비 기간만 10개월이 걸렸는데 아마 디뮤지엄 전시 중 기간이 가장 긴 프로젝트에 속할 거예요. 카르텔의 제품을 전시했지만, 직접적으로 브랜드를 노출하기보다 소재가 지닌 서사에 주목했습니다. 그저 제품을 나열하는 전시보다 좀 더 색다르게 전시장을 구축한 것이죠.

〈플라스틱 판타스틱: 상상사용법〉전. 전체 공간의 중심에서 2개 층을 가로지르는 로켓 오브제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등 몽환적이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호기심을 자아냈다.

프로젝트 매니징 최수연
디자인 윤후, 최수연
클라이언트 디뮤지엄
면적 687.23㎡(1층), 1052.96㎡(지하 1층)
발표 시기 2017년
지금은 비슷한 결의 상업 공간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쇼메이커스의 공간을 보면 생경하고 조금은 기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쇼show를 만드는 사람(maker)의 입장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패션 사진이라는 뿌리로부터 출발한 것이 자연스레 공간 안에 구현됐다고 봐요. 퀀텀 프로젝트 진행 당시 다양한 물성과 매개를 활용하면서 고객이 특정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다각도로 관찰했던 경험도 크게 작용했고요. 무심코 지나치고 말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순간순간 어떤 감정적 충돌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캐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달리 말하면 일반적인 상업 공간에서 탈피해 낯설고 이례적인 환경을 감각적으로 프레젠테이션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지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회사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고객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결제가 이뤄지는 순간까지 고객 경험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이를 감정별로 분석했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재방문을 유도하는 리테일 환경에 대해 탐구해본 것이죠.

앞서 언급했듯이 낯설고 기괴하게 여긴 감성을 상업 공간에 녹여내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쇼메이커스 입장에선 다른 곳과 차별되는 지점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를 시작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회사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새롭게 세팅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쇼메이커스 디자인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콘셉트와 정서입니다. 다만 이를 구현하는 방식이 지금까지는 주로 상업 공간의 예술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금부터는 문화를 만드는 힘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저 시각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공간이 완성되는 것이죠. 준비 중인 자체 전시에서도 바로 이 지점에 주력할 예정이에요.

프리츠한센의 N01 쇼케이스. 하나은행의 복합 문화 공간 플레이스원에서 열렸다. 쇼메이커스는 이 제품이 아르네 야콥센의 그랑프리 체어 이후 61년 만에 선보이는 프리츠한센의 우든 체어라는 점에 착안해 ‘화이트 포레스트’라는 콘셉트로 자연 소재를 적극 활용한 공간을 연출했다.

프로젝트 매니징 조세은
디자인 정문규, 조세은
면적 622.05㎡
클라이언트 프리츠한센 코리아
발표 시기 2018년
쇼메이커스의 공간이 늘 과격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웃음) 프리츠한센의 N01 쇼케이스는 무척 고요하고 차분했어요.

젠틀몬스터 시절에는 맥시멀한 디자인을 추구하긴 했어요.(웃음) 실제로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에서도 적잖은 영감을 받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맥시멀리즘보다 적당한 긴장감과 세련됨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 감각으로 공간을 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산업과 협업하든 기업이 추구하는 정신과 톤앤무드, 방향성에 관해 많이 연구합니다. 프리츠한센의 경우 브랜드가 수십년 만에 선보이는 우든 체어인 만큼 나무의 성질을 좀 더 전면에 드러내고자 했어요. 컨템퍼러리와 퓨어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연출 방식을 택한 것이죠.

동시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의 한계 없는 프로젝트

오소이 플래그십 스토어. 성수동에 있던 2층 규모의 자동차 정비소를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재탄생시켰다. 원형 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2층 규모의 매장은 자동차 정비소 구조에서 느껴지는 액티브함과 다양한 재료를 믹스매치했다. 특히 실버를 사랑하는 오소이의 페르소나에 맞춰 정비소의 여러 메카닉한 요소와 비정형적 조형물을 실버로 마감했다.

프로젝트 매니징 김주희
디자인 임수연, 김혜민, 박소연
주요 마감재 스틸, 타일, 패브릭
면적 327㎡
클라이언트 오소이
발표 시기 2023년
포트폴리오에서 팝업 프로젝트도 다수 눈에 띕니다. 쇼메이커스가 매우 동시대적인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라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죠. 오늘날 팝업 프로젝트가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뭘까요?

아직까지 오프라인 마케팅 툴 중 팝업을 대체할 만한 형식이 등장하지 않은 탓이 큽니다. 오프라인이 온라인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설 공간을 마련해 유지비를 지출하는 게 부담스러운 시대가 된 게 사실이잖아요. 캠페인 혹은 이슈에 맞춰 단발적으로 선보이는 팝업은 그보다 훨씬 부담이 덜하죠. 브랜드와 고객이 직접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환경을 연출해 재미와 신선한 충격을 줄 수도 있고요. 물론 바이럴 측면에서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도 당분간 팝업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팝업이라는 워딩 자체가 이제 조금 진부해진 느낌입니다. 그 속성은 유지하되 새롭게 대체할 표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조금 하고 있어요.

2022년 여름,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뉴진스의 팝업 스토어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뉴진스 데뷔 전부터 준비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어도어 레이블의 민희진 대표와 40~50분가량의 트랙을 같이 들었어요. 이 그룹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전달하기 보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쇼메이커스가 크리에이티브하게 디자인을 풀어주길 바랐죠. 다만 몇 가지 큰 틀은 있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기존 여성 아이돌의 이미지보다는 좀 더 쿨하고 중성적인 인상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1990년대 레트로 감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당시 일본 신주쿠의 감성을 팝업 안에 구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그런 감성을 구현할 수 있는 소재나 요소를 현장에서 적극 차용했고요. 여담으로 팝업 준비 기간에 시내가 잠길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며 오픈 전날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꽤 아찔한 순간이었죠.(웃음)

뉴진스의 ‘어도어 파크’.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뉴진스의 팝업 스토어. 사이버펑크를 테마로 1990년대 레트로 감성과 디지털 이미지를 결합했다. 파사드는 뉴진스 멤버들의 이미지와 드로잉을 콜라주해 각 캐릭터의 개성을 부각했다. 전시장 내부의 거울로 둘러싸인 3차원적 공간과 조명을 결합한 설치물이 미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냈다.

프로젝트 매니징 조세은
디자인 왕동환
면적 162m²
클라이언트 어도어
발표 시기 2022년
리테일 프로젝트와 팝업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접근 방식 자체에 차이가 있죠?

물론이죠. 예산이나 제작 기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특히 팝업은 현장 시공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게 관건입니다. 조립형 구조가 유리할 수밖에 없죠. 이 외에도 지속성이 중요한 리테일에서는 공간 기획과 설계에서부터 안정적인 운영을 고려해야 하는 반면 팝업은 좀 더 스테이지 성격이 강합니다. 세일즈를 간과할 순 없지만, 기존 인테리어 공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브랜드가 전하는 이야기에 동참하면서 브랜드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더 주력합니다.

〈무드업 타임〉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선보인 LG전자의 전시 부스였다. 무드업 냉장고 18대와 3종의 타악기로 키네틱 아트를 시도했다. ‘춤추는 악기’를 콘셉트로 360도로 회전하는 6개의 셰이커와 브라스로 제작한 2개의 심벌즈, 그리고 5개의 우드 블록 등이 2분 30초 분량의 음악에 맞춰 연주된다. 냉장고 패널의 라이팅 역시 리듬에 맞춰 컬러를 바꾸며 초현실적 공간을 연출했다.

프로젝트 매니징 장서경
디자인 김혜민, 성지원, 김주희, 이양지, 장희연
면적 216㎡
클라이언트 LG전자
발표 시기 2023년
‘Mindful Fungus’.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선보인 키네틱 아트. 최도진이 스튜디오 대표가 아닌 아티스트로 진행한 작품이다. 싱잉볼과 테크놀로지를 접목해 자연이라는 주제를 부각했다. 작품을 둘러싼 패브릭은 해조류와 양모를 추출해 만들었다.

협업 장예은(조경 디자이너)
발표 시기 2023년
어느 순간부터 공감각적 요소를 디자인에 적극 반영하고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디자인의 영역이 꼭 시각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미 해외에서는 후각이나 청각, 미각 등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시도도 보이고 있고요.

예전에는 미래주의적이고 테크놀로지에 집중한 작업이 많았지만, 조금씩 자연에 기반한, 자연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의 감각과 정서를 터치할 수 있기를 바랐고요. 결국 여운과 울림을 줄 수 있는 디자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저는 다른 감각보다 사운드 스케이프에 주목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다시 기술에 대한 관심 으로 연결됐죠.

지난해 사치 갤러리와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주제관에서 선보인 키네틱 싱잉볼이 대표적입니다.

다시 퀀텀 프로젝트 이야기로 돌아가네요. 예술적 관점에서 공간을 구성하면서 자연스레 설치미술이나 오브제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조형미를 만드는 것 보다 상호작용이 있는 결과물을 만들면 정형성을 탈피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키네틱 아트를 탐구하면서 빛이나 소리를 효과적으로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로 참여한 사치 갤러리 프로젝트의 경우 공명과 파장에 주목했어요. 해조류와 양모를 활용한 텍스타일까지 디자인했죠.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주제관(p.100)은 이를 AI로 확장한 사례입니다. 인간과 AI에게 자연이라는 공통 미션을 주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게 했죠. 구조물 바깥의 패브릭에는 인간이 작업한 3D 아트워크를, 안쪽에는 AI에 프롬프트를 입력해 산출한 패턴을 각각 프린트했는데, 이를 통해 이원화 되었지만 공존할 수 있는 두 입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스트리트 패션 레이블 ‘런던 언더그라운드’의 론칭 기념 팝업 스토어. 브랜드의 슬로건 ‘Life from a Tube’와 ‘Expected Heritage’를 주제로 기존 그라운드 레벨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Unexpected Baseline(뜻밖의 기준선)’이라는 키워드를 도출했다. 지상임에도 지하 터널에 온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자 하나의 큰 매스로 예기치 못한 공간 플롯을 구성했다. 본질을 강조하는 재료에 브랜드의 키 컬러인 페일 그린pale green을 더해 클래식하면서도 생경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프로젝트 매니징 임수연
디자인 김주희, 장희연, 장민호
면적 230㎡
클라이언트 한섬
발표 시기 2023년
너무 뻔한 질문 같지만 주로 어디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나요?

시간 싸움이 일상이던 과거에는 온라인 리서치에도 많이 의존했습니다. 특히 패션쇼 스테이지를 면밀히 살펴봤습니다. 단순히 디자인만 보는 게 아니라 조명, 퍼포먼스, 모델의 룩과 액션 등 연출의 포인트를 입체적으로 살폈죠. 최근에는 특정 아티스트의 작업이나 세계관까지 면밀히 살피면서 인사이트를 얻어요. 해외 최신 트렌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국내외 잡지도 많이 봐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도무스〉지를 하루 종일 들춰본 적도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경험입니다.

올해 쇼메이커스의 계획을 들으며 이번 인터뷰를 마무리 짓죠.

쇼메이커스의 철학은 생각의 새로움과 놀라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올해는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드는 공간 경험에 가장 집중할 것 같아요. ‘어떻게 세상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가 핵심입니다. 자연 현상이나 속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일단 그 답을 찾아보려고요. 스튜디오 운영 면에서 몇 가지 리테일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스웨덴의 의류 회사 제이린드버그와 협업해 국내에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도 설계하고 있고요. 사치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가 마중물이 되어 올해는 뉴욕 548 갤러리, 홍콩 아트 바젤 등에서도 작품을 선보이게 될 것 같아요. 스튜디오 드래프트나 스튜디오 스와인처럼 예술과 디자인,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보폭을 넓혀가려고 합니다. 쇼메이커스는 앞으로도 공간 속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unexpected delight)’이라는 철학을 구현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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