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콘 우지희 공동 대표
세대와 국경을 넘는 캐릭터 IP
지난해 20주년을 맞이한 ‘뽀로로’를 탄생시킨 주역. 〈선물공룡 디보〉 〈꼬마히어로 슈퍼잭〉를 연이어 성공시키고 OTT 플랫폼을 통해 〈호러나이츠〉를 공개하며 애니메이션 시장의 저변 확대를 꾀하는 오콘 우지희 공동 대표와 나눈 대화.
해가 바뀌자마자 주요 외신들은 연일 95년 만에 만료된 초기 미키마우스의 독점 저작권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이는 캐릭터 IP가 이 시대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보여준다. 캐릭터 하나가 한 나라, 더 나아가 문화 자본 시대의 상징으로 군림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절대다수의 IP를 앞세워 아시아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하청업을 등에 업고 성장한 애니메이션 제작 시장은 오랫동안 ‘기술은 뛰어나지만 크리에이티브는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캐릭터 역시 내수 시장에서 간헐적 팬덤을 구축한 경우는 있어도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받은 캐릭터는 희귀하다. 지난해 성인식을 치른 뽀로로가 더없이 귀한 이유다. 시간의 세례를 받은 캐릭터는 이제 국경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불모지 같던 국내 캐릭터 시장을 개척하고 지경을 넓힌 오콘 우지희 공동 대표는 또 다른 ‘세기의 캐릭터’를 꿈꾼다.
오콘이 걸어온 길
지난해 선보인 애니메이션 〈뽀로로 극장판: 슈퍼스타 대모험〉은 국내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동시 개봉했습니다.
10년 전 첫 개봉 이래 매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는데 공교롭게도 팬데믹을 거치며 2년가량 공백기를 가졌어요. 아쉬웠지만 오래 준비한 덕분에 해외에 선보여도 충분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진 데다 뽀로로 탄생 2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어 미국 진출을 시도했죠. 국내 애니메이션으로 미국 동시 개봉을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쉬운 도전은 아니었어요. 국내 영화 제작사들이 보통 에이전시에 전적으로 모든 걸 일임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유통합니다. 제작사가 국내 에이전트에, 국내 에이전트가 다시 해외 에이전트에 판매하는 식이죠. 반면 이번 애니메이션은 오콘이 좀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결과 미국 현지에서 상영관을 20개 이상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20년간 쌓인 팬덤도 어느 정도 작용했나요?
물론입니다. 극장에 작품을 걸 때는 나름대로 면밀히 수요를 파악하죠. 인지도가 없었다면 저희가 아무리 발 벗고 뛰어도 그만큼 상영관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뽀로로의 역사 자체가 오콘이 얼마나 긴 시간 이 산업에 정진해왔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내에는 근속 기간 20년이 넘는 직원들이 꽤 있어요. PD, 조감독을 거쳐 감독으로 입봉하는 사이클이 돌고 있죠. 직원들이 든든하게 함께해주었기에 20년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밈이 된 일명 ‘잔망루피’도 그 시간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해요.(웃음)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던 아이들이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는 주체로 자라난 셈이니까요.
뒤늦게 트위터(현 X)에서 밈을 발견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캐릭터를 조롱하는 패러디이지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대의 변화를 절감했죠. 옛날과 다르게 원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새로운 메시지와 의미, 재미를 부가하는 거잖아요. 사실 루피가 극 중에서 그다지 눈에 띄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예쁘고 착한데 잔소리 많은 누나, 항상 성실하고 바른말만 하는 일명 ‘노잼’ 캐릭터죠.(웃음) 잔망루피라는 밈은 이 캐릭터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반증이죠.
원래 대우전자에서 가상현실 등 IT 관련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죠?
당시 대기업들은 저마다 신기술 연구소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대우도 공격적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새로운 기술을 실험했죠. 지금은 우리에게 친숙한 가상현실이나 스마트 TV, 키오스크 기술 등을 내부에서 연구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고 해도 일반 사용자와 커뮤니케이션해야 빛을 발하잖아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중요해지던 때였고 그중 저는 UI 기획 업무를 맡았습니다. 아쉽게도 입사 후 오래 지나지 않아 그룹이 와해되어버리긴 했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그런 경험이 오콘의 토양이 된 게 아닐까요? 오콘 역시 당시로는 다양한 첨단 기술을 도입했잖아요.
확실히 인터페이스라는 개념이 막 떠오르던 시기이긴 했죠. 제가 직접 IT 기술을 다룬 건 아니지만 어깨 너머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픽셀 위치나 하드웨어와의 연동성 같은 것은 학부에서 경험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대단한 기술적 지향점을 갖고 회사를 창업한 건 아니었어요. 그때 겨우 25살이었으니까 너무 어렸죠. 그저 돈을 열심히 벌 생각이었는데 속속 등장하는 IT 기업들의 웹사이트 디자인이나 인터랙티브 콘텐츠, 인포메이션 그래픽 등을 주로 만들었어요. 대우전자에서의 경험이 초기 컨설팅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오콘이 디자인 컨설팅을 한 건 몰랐네요. 처음부터 캐릭터 비즈니스를 전개한 줄 알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지만 캐릭터를 업으로 삼을 생각까진 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흐르고 회사가 핵심 역량을 갖춰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을 때는 막연히 기술과 맞물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픽사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디자인 회사들 사이에서도 화두로 떠오르던 때였어요. 오콘 역시 다양한 기술을 도입하거나 실험했는데 방송국과 인연이 되어 비교적 일찍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어요. 첫 작품이 댄스 모션을 시청자에게 알려주는 〈룰루랄라의 댄스댄스〉였습니다. 가상의 캐릭터가 연예인처럼 TV에 나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버추얼 아이돌의 시초 같네요. 뒤이어 선보인 나잘난 박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가상의 인물을 앞세워 사회 현상이나 경제 이슈에 관한 비판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시사만평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는데 캐릭터가 이 역할을 대신하면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본 것이죠. 당시만 해도 SBS는 신생 방송국이었어요. 타 방송국보다 1시간 일찍 메인 뉴스를 편성하는 등 여러 면에서 차별화를 꾀했죠. 뉴스 말미에 등장하는 나잘난 박사 역시 좋은 전술이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캐릭터에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모션 캡처나 렌더링 기술을 적극 활용했는데 덕분에 기술적 노하우를 많이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오콘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시도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것 같아요. 최근 OTT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공개한 〈호러나이츠〉에서도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죠?
일단 비주얼 자체가 일본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됩니다. 미국과도 구별되죠. 아주 미묘한 부분인데 캐릭터 역시 한국인이 보기에 익숙하지만, 메이저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보기 힘든 스타일이라는 게 직관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제작 방식에서도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보통 2D 애니메이션에 3D 기술을 활용하는 건 제작 기간 단축과 노동력 절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독창적인 스타일 구현을 위해 3D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영화 촬영 기법처럼 카메라가 각 신을 촬영해 3D처럼 보이는 2D 애니메이션을 구현했죠.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일본은 3D 기술을 부분적으로만 구현해서 빛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물리적 현상이 화면 안에서 반영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저희는 이번에 시도한 기술로 현실 세계처럼 공간감이 느껴지도록 했어요. 디자인 회사가 서비스업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 시간을 잘 버티는 게 관건 같아요.
캐릭터 비즈니스는 언제부터 꿈꿨나요?
늘 갈증은 있었어요. 컴퓨터 그래픽 관련 노하우는 있었지만 콘텐츠가 부재했으니까. 특히 당시 편성된 애니메이션은 거의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IP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 꾸준히 캐릭터를 만들고 있었어요.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던 중 아이코닉스와 협업해 탄생한 〈뽀롱뽀롱 뽀로로〉가 메가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의 노하우를 가진 오콘과 비즈니스에 해박한 아이코닉스가 시너지를 낸 결과죠.
요즘 디자인 전문 회사들도 컨설팅 외에 자체 사업을 병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아요. 그런 이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서비스업으로 가르친다는 게 아쉽습니다. 산업 생태계 역시 누군가의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거기서 마진을 남기는 구조로 되어있죠. 여기선 아무래도 성장에 한계가 따릅니다. 반면 자체 IP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됩니다. 문제는 IP를 성장시키는 데까지 리스크가 너무 커서 디자인 회사가 서비스업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 시간을 잘 버티는 게 관건 같아요.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또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건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기성 디자인 교육을 받고 자라 사람을 이해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어요. 이건 어디서 공부한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깨져가면서 체득하는 것이죠.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도 필요할 것 같네요.
산업과 문화가 어떻게 바뀌는지 촉을 세우고 감지해야 해요. 제가 여러 창업 지원 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목격한 게 있어요. 많은 디자이너가 자기 IP를 갖고 싶어 하는데 대부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한다는 거예요. 물론 그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팬도 있을 순 있죠. 그런데 소비자의 주머니를 여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통과 판매,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투입할지 고려해야 하는데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지원자는 물론 사업 자체도 그런 시스템 구축에 소홀해요. 사실 저도 비슷한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선물공룡 디보〉를 선보일 때였습니다. 봉제 인형의 소재인 천 질감을 3D로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해외 박람회에 나갔을 때 엄청난 주
목을 받았어요.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해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일 겁니다. 워너브러더스, 디즈니, 니켈로디언, BBC 관계자들이 다 부스 앞으로 몰려왔죠. 특히 미국에서 콘텐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는 자칫 캐릭터의 정서가 변질되고 미국식 스토리가 덧입혀질까 우려했습니다. 그렇게 결국 방어적이 되었는데 좀 더 열린 태도로 응했다면 이 캐릭터가 글로벌로 확산되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를 했죠.
하지만 디보 역시 동남아 지역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잖아요.
디즈니 아시아 관계자들 덕분입니다. 디보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고 10년 가까이 방송 편성을 해줬어요. 꾸준한 노출과 마케팅의 힘이었죠. 캐릭터 특성상 아이들 생일 선물로도 디보 인형이 인기를 끌었고요. 그런데 저희가 로컬 매니지먼트를 철저히 하지 못해서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건 아쉬워요. 시간이 꽤 흐른 뒤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동남아 지역에서 이 캐릭터의 탄탄한 인지도를 확인했습니다. 시장과 산업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역량은 갖춰야 해요.
듣다 보니 팀업을 이루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물공룡 디보〉는 초호화 글로벌 제작진이 참여한 작품입니다. 다양한 작품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죠. 그런데 이 콘텐츠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결국 콘텐츠 비즈니스 관계자들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뽀로로는 라이선스를 활용해 자전거를 만든 사장님이 건물을 올렸고, 칫솔을 만든 분이 상장을 했어요.(웃음) 그 기간 동안 저희는 라이선스 비용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함께 이득을 얻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 비로소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해요.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기준도 명확해야 하는데 사실 그걸 이해하고 있는 디자이너
가 많지 않죠.
캐릭터가 지닌 힘
뽀로로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이 캐릭터가 어떻게 그토록 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최초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만 해도 국내 TV 편성표는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호빵맨〉 〈파워레인저〉….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한 시장은 말할 것도 없었죠. 우리나라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정서가 묻어나는 애니메이션으로는 뽀로로가 최초였다고 봅니다. 세계관 안에서 캐릭터들의 관계를 설정할 때도 시청 연령층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방영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TV가 아니면 방영할 루트가 없다 보니 그들이 정해 준 룰에 맞춰야 했습니다. 20여 분짜리 2개를 엮고 중간에 광고를 붙여서 1시간 편성을 하는 게 보편적이었는데 20분은 아이가 집중해서 보기에 너무 긴 시간이라는 생 각이 들었어요. 길고 복잡한 서사를 이해할 나이가 아니란 거죠. 그래서 우리는 5분 단위로 에피소드를 끊어 구성했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타깃에 대한 연구를 반영해 설계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요?
〈꼬마 히어로 슈퍼잭〉은 시작 자체가 그랬어요. 제 둘째 아이가 어렸을 때 편식이 정말 심했어요. 엄마가 뭘 해줘도 밥을 안 먹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옆에서 형이 밥을 열심히 먹으니까 자기도 따라 먹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보고 따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면 편식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양소 가득한 음식을 먹고 악당을 물리친다는 비교적 심플한 서사인데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영양제나 아이용으로 나오는 건강한 먹거리와 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로 아이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확실히 캐릭터의 힘은 강력합니다. 요즘 들어 여러 기업에서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걸 느꼈어요.
디지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이 대중과 소통할 페르소나로 캐릭터를 활용한다고 봅니다. 기업의 메시지를 전할 화자가 필요한 것이죠. 실제로 저 역시 많은 기업과 미팅을 했고 자문하기도 했어요. 문제는 많은 기업이 일관된 메시지와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캐릭터를 디자인하기 전에 선결해야 할 문제죠. 기업의 본질을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콘셉트를 정해야 합니다.
저는 결국 소비층이 운집하는 산업이 성장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구 감소 시대에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닌가 우려도 됩니다.
디자인이든 애니메이션이든 해외로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각 나라에서 우리 콘텐츠를 즐기는 아이들은 소수일지 몰라도 이들을 모아보면 한국 시장에서만 유통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특정 연령대에 천착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한국인만큼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민족도 드물어요. 10대부터 40대까지 저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을 즐기잖아요. 여전히 ‘애니메이션=아동용’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더 다양한 연령층에 맞춘 작품이 나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서 언급한 〈호러나이츠〉가 대표적입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고독사나 노인 문제 등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녹여냈는데 이건 철저히 콘텐츠 소비층을 높게 설정하고 제작한 것입니다. 나잘난 박사를 유튜브 등 채널을 다양화해서 재개할 생각도 있습니다. 심슨이나 〈머핏 쇼〉처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드네요. 뽀로로처럼 기존 IP를 성인 타깃으로 맞춰보는 건 어때요? 다니엘 아샴과 티파니, 넨도가 포켓몬과 협업해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했던 것을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닐 것 같은데.
글쎄요. 저는 그건 콘텐츠 생산자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Z세대가 나이가 들어 루피를 재창조한 것처럼 자연스레 캐릭터를 보고 자란 세대가 소비주체가 되었을 때 필요에 따라 타 산업군이 움직이는 게 훨씬 자연스럽죠. ‘이제부터 뽀로로를 20대 취향에 맞춰 다시 설계하자’라고 하면 그게 통할까요? 포켓몬도 갑자기 20~30대를 위한 콘텐츠를 만든 게 아니잖아요. 어린 시절 즐겼던 캐릭터를 30대가 되어도 즐길 수 있는 키덜트 내지 힙스터들을 겨냥해 다른 산업이 움직여준 것이죠. 낮에는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게임을 즐기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를 겨냥했다는 뜻입니다. 캐릭터를 활용해 키덜트를 공략하는 건 브랜드가 진부하다는 인상을 탈피하는 데 유용한 전술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디자이너 우지희 혹은 오콘의 최대 관심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다양한 연령대의 작품을 선보이려고 해요. 유튜브처럼 기존 유통 체계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플랫폼이 등장했기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또 내부적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콘텐츠를 생산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예전처럼 몇 달에 걸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구조로는 급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죠. 또 개성 강한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고요. 또한 AI와 캐릭터의 결합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안 가네요. 다만 나잘난 박사를 처음 기획할 때와 마찬가지로 캐릭터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MZ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둥 말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냥 사람들이 예전보다 똑똑해진 거라고 생각해요. 정보도 많아지고. 낡은 잣대로 현 상황을 파악하려다 보니까 엇박자가 나는 겁니다. 이래저래 시대와 사람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