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네스트 배성균 디자이너

집이라는 전장에 선 디자이너

삼성전자, 모토로라, 델을 거쳐 구글에 합류한 구글 네스트 산업디자인팀 총괄 디자이너 배성균. 한국의 촉망받는 디자인 유망주에서 북미 스마트 홈 시장의 선봉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 뒷단의 이야기.

구글 네스트 배성균 디자이너

르코르뷔지에가 “집은 주거를 위한 기계”라고 말한 지 어느덧 한 세기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이 명제를 따르며 근현대 주거의 개념을 고도화시켰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오늘날 여기에 또 다른 패러다임 하나를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집은 주거를 위한 사물 인터넷이다.” 지난해 12월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IoT 모듈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70%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시장 성장에 걸림돌로 지적됐던 호환성 문제도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 아마존, 삼성전자가 매터matter라는 이름 아래 플랫폼 종속 없이 IoT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통신 표준을 내놓았기 때문. 소비 촉진과 제도의 보완 속에서 스마트 홈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스마트 홈은 로봇, 자율 주행 기술, 디지털 헬스케어 등과 함께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 중 구글 네스트가 북미 스마트 홈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 애플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부문을 이끌었던 토니 파델Tony Fadell과 맷 로저스Matt Rogers가 2010년 공동 설립한 이 회사(당시 사명 네스트 랩)는 2014년 32억 달러(약 3조 2000억 원)에 구글에 인수된 이래 구글의 스마트 홈 제품을 책임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구글 네스트의 산업디자인팀을 이끄는 총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배성균 디자인 총괄은 삼성전자와 모토로라 한국 지사, 미국 델Dell 본사를 거쳐 2015년 구글 네스트에 합류했다. 한국의 촉망받는 디자인 유망주에서 북미 스마트 홈 시장의 선봉장으로 성장한 그는 현재 구글 네스트의 모든 제품 디자인을 관할할 뿐 아니라 기획, 양산, 마케팅 등 전체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본 기사는 월간 <디자인> 2022년 3월호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한국 산업 디자이너

2008년 월간 〈디자인〉이 꼽은 ‘한국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디자이너 30인’ 이후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해주셨네요. 조수용 JOH 창업주, 한명수 우아한 형제들 CCO, 이석우 SWNA 대표 등 당시 기사에 함께 게재되었던 디자이너들이 현재 국내 디자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삼성전자 선행디자인그룹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NV 시리즈라는 디지털카메라 프로젝트로 iF 디자인 어워드 등 국내외 유수의 디자인 상을 수상하게 됐어요. 덕분에 당시 월간 〈디자인〉과도 인연을 맺게 됐죠. 돌이켜보면 삼성전자는 제게 여러모로 고마운 곳입니다.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고 할까요?

삼성전자 이후 모토로라 코리아를 거쳐 미국 델 본사로 이직하셨죠? 해외로 눈길을 돌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삼성전자 재직 당시 아이데오IDEO와 협업차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문 적이 있어요. 현지 디자이너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디자인 문화와 환경을 동경하게 됐습니다. 일단 직급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론이 오가는 문화가 인상적이었고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근무하는 환경도 부러웠습니다. 사실 저는 어린 시절 이민을 가 인생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냈어요. 그래서 다인종 국가인 미국, 특히 다양성이 존중되는 캘리포니아가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더욱 갈망하게 됐던 것 같아요.

델 크롬북 11. 배성균은 델 수석 디자이너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미래 전략 구축, 선행 제품 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구글 네스트 캠. 재생 플라스틱을 적극 활용해 지속 가능성을 부여했다.
2015년 구글 네스트에 합류했습니다. ‘작은 애플’로 불리던 네스트 랩이 구글에 인수된 이듬해의 일이죠.

사실 이전에도 한번 네스트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았습니다. 구글 인수 이전 디자인 총괄이었던 로키 제이콥Rocky Jacob이 한 제의였죠. 하지만 당시에는 리스크가 좀 크다고 생각해 마다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 합류를 결심했는데 솔직히 그때까지도 IoT나 스마트 홈 같은 테크놀로지 트렌드에 별반 관심이 없었습니다.(웃음) 다만 네스트의 두 창업자와 내부 디자인 조직의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 이직을 결심했어요.

당시 회사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스타트업이었던 회사가 글로벌 기업에 동화되는 과정에 합류한 셈이잖아요.

글로벌 기업의 자회사로 편입되긴 했지만, 설립 초기와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특유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넘쳐났습니다. 구글 네스트의 미션이 ‘집 안과 주변을 포함한 모든 이를 위한 집을 만드는 것’인데, 이를 위해 전 직원이 열정적으로 제품 개발에 매진했어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일하는 게 너무 즐거운 나머지 새벽 5시에 눈뜨자마자 출근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구글에 완전히 통합되면서 예전 같은 박진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대신 네스트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죠. 스케일업에 한계가 있는 스타트업의 약점이 보완된 셈이라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아직 국내에서 구글 네스트의 인지도가 높지는 않아 요. 반면 북미 시장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죠.

북미에서 네스트는 아마존과 더불어 소비자에게 가장 익숙한 스마트 홈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어요. 특히 플래그십 제품인 실내 온도 장치 ‘네스트 러닝 서모스탯Nest Learning Thermostat’의 인지도가 상당하죠. 미국의 부동산 앱 ‘질로 Zillow’에 올라온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집들을 살펴보면 소개 글에 ‘네스트 서모스탯 설치’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네스트 제품이 설치되었다는 것 자체가 프리미엄으로 인식된다는 방증이죠. 온돌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잘 와닿지 않겠지만, 북미에서 실내 온도 조절 장치는 집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들이 너무 못생겼다는 거예요. 네스트의 목표 중 하나가 사랑받지 못하는 제품을 재창조하는 것이었기에 서모스탯은 네스트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제품이에요. 네스트의 철학이 응집된 제품이라고 할까요?

합류 후 진행한 디자인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네스트에서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는 ‘네스트 시큐어Nest Secure’라는 통합 보안 시스템이었고, 직접 리드해서 디자인한 첫 제품은 4세대에 해당하는 ‘네스트 서모스탯 E.’였습니다. 이후 서모스탯 시리즈와 도어벨, 네스트 캠 등을 디자인했죠. 특히 5세대에 해당하는 뉴 네스트 러닝 서모스탯New Nest Learning Thermostat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사실 네스트 서모스탯 초기 시리즈는 고가의 하이테크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소프트하고 집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는 제품으로 디자인을 조정해야 했죠. 동시에 판매가를 낮춰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단가 절감이 필수였어요. 여기서 오는 고충이 엄청났습니다. 소비자들의 접근성은 높이되 프리미엄 이미지는 유지해야 했으니까요.

어떻게 그 미션을 달성할 수 있었나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디스플레이 소재를 거울로 바꾼 게 주효했습니다. 생산 단가를 낮추려면 디스플레이 지름도 작아져야 했는데 거울을 전면부에 배치해 베젤이 드러나지 않는 동시에 사용하지 않을 때 실제 거울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덕분에 수율도 높일 수 있었고요.

미세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네요.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격언이 생각납니다.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네스트 제품은 평소 집에 두고 사용할 때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집을 둘러싼 맥락과 환경을 탐구하는 이유입니다. 구글 네스트는 기술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집이 사람과 환경에 무엇을 베풀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디자인할 때도 우리가 사는 환경에 오랫동안 어우러질 수 있는 형태와 색상을 고민하죠. 대신 제품을 설치하기 전, 다시 말해 사용자가 언박싱을 하고 처음 제품을 마주했을 때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려고 합니다. 포장을 뜯고 제품을 손에 쥐었을 때의 인상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백 플레이트 디자인, 나사의 질감, 심지어 배터리 컬러와 인쇄 방식까지 신경을 씁니다. 설치할 때의 편리성이나 사운드 디자인 등 비가시적인 영역까지 세심하게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요.

구글 네스트의 디자인 법칙

또 다른 제품인 네스트 캠 시리즈 이야기도 나눠보죠.

네스트 캠은 실내외에 설치하는 보안 카메라입니다. 실내 온도 장치와 마찬가지로 기성 보안 카메라도 사용자의 감정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죠. 하지만 저와 구글 네스트의 디자이너들은 어떤 느낌을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봤어요. 가장 큰 미션은 사용자가 감시당하는 게 아니라 케어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어디에 두어도,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공간 안에 동화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연구한 끝에 실내, 실외, 벽면 설치형, 스탠드형 등 총 일곱 가지 구성을 고안하게 됐죠. 안팎으로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하고 내구성있는 수성 페인트 개발을 위해 케미컬 엔지니어들과도 긴밀히 협업했습니다. 이 제품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용성이었습니다. 탈착이 용이하도록 본체에 자석을 사용했죠. 본체 부분에 필요한 기술을 집약시켰는데 덕분에 베이스를 나무 소재로 제작하는 옵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디자이너의 생각과 직관만으로 천차만별인 사용자의 환경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글러(구글 직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소프트웨어에 뿌리를 둔 회사의 특징일 수 있는데 구글은 마치 애플리케이션의 베타 테스트를 거치듯 직원들의 자원을 받아 프로토타입별로 피드백을 받습니다. 하드웨어 기반의 회사가 외부에 제품을 내보일 때 이미 완성형이어야 하는 것과 상반되죠. 지원자들은 실제 자기 집에 네스트의 시제품을 두고 사용하는데 굉장히 열성적으로 테스트에 참여합니다. 아마 구글 회사 내부에 이런 문화가 뿌리 깊게 정착되어 있기 때문일 거예요.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 수렴 가능한 조건들을 검토합니다. 미국은 지역마다 환경이 천지 차이라 다양한 상황을 실험해보기에 유리합니다. 애리조나에 있는 구글 직원이 실외용 보안 카메라를 테스트한다고 가정해보죠. 이 지역은 심할 때 한낮 기온이 45°C까지 치솟는데 제품이 과연 이런 더위와 직사광선에도 버텨낼 수 있는지 보는 것이죠. 반대로 극한의 추위가 몰려오는 지역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스마트 홈 제품이라는 것이 기존 가전과는 명백히 다른 영역이잖아요. 그 말인즉슨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우리가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역량이 한 가지 있어요. ‘Thrive in Ambiguity’인데 우리말로 옮기면 ‘불확실성을 역으로 즐겨라’ 이런 뜻이죠. 즉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데 밑거름이 됐던 실리콘밸리의 마인드셋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 팀은 기본적으로 타사 제품이나 기타 레퍼런스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이 생활하고 머무는 공간에 주목하죠. 내부적으로 ‘맥락에 의한 영감(inspired by context)’이라는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예전부터 생활해왔고 지금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맞아요. 사람이 익숙한 상태가 되면 새로운 것을 찾는 데 게을러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일상생활을 꾸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습관이 들면 의식하지 않아도 익숙한 행동 패턴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어요. 나오토 후카사와가 말한 ‘Without Thought’ 개념과 비슷한 거죠. 구글 네스트도 사용자 경험 리서치를 토대로 무의식중에 한 행동에서 나오는 특별함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디자인 외에 패션, 음악, 영화 등 문화전반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은 분절되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죠.

현재 구글 네스트 전 제품의 전략, 기획, 디자인, 양산, 심지어 마케팅에도 관여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허용하는 회사도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이렇게 전체 프로세스에 개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저는 오히려 제품을 만드는 엔드 투 엔드 프로세스end to end process에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게 제품 디자이너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해요. 디터 람스나 조너선 아이브를 생각해보세요. 이 모든 것이 본래 디자이너의 업무였는데 현대 가전제품 시대가 열리고, 조직이 거대화되고, 역할이 세분화하면서 점차 영역이 축소된 것이죠. 심한 경우 ‘디자이너는 그냥 제품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말았고요. 하지만 시장의 흐름과 시대의 유행을 관측하고 읽는 역할부터 누구보다 제품을 가까이서 다룸으로써 차별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게 디자이너이기에 어떻게 하면 해당 제품을 부각시킬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제안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디자이너 단독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업하는 가운데 이뤄집니다. 저 역시 모든 방면의 전문가가 되려고 하기보다 조직 내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요.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감 지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디자이너의 역량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요.

현재 구글 네스트에서 선보이는 제품 디자인이 삼성전자, 델 시절에 선보였던 것과 조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훨씬 미니멀하다고 할까요?

어려서부터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제품 디자이너는 무릇 소속 집단의 문화에 걸맞은 디자인을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다면 독립을 해야겠죠. 마치 셰프가 자기 이름을 건 식당을 차리는 것처럼요. 그게 아니라면 이미 형성된 조직 문화와 이미 거기에 익숙해진 팀원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네스트의 경우 애플 출신 창업자가 설립한 회사답게 처음부터 미니멀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이런 점이 제가 합류를 쉽게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죠.

뉴 네스트 서모스탯.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접근했을 때 사용자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UI가 반응한다.
디테일한 사용자 경험을 위해 배성균이 이끄는 산업디자인팀은 제품 뒷면 디자인과 배터리 색상까지 고려했다.
네스트 도어벨. 기존에 출시됐던 네스트 도어벨은 전면부가 검은색이었지만, 구글 네스트의 산업디자인팀은 집의 맥락과 환경을 고려해 다양한 색상을 제안했다.
라운드 형태가 강했던 기존 모델과 달리 각진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또한 직선적인 미국 단독주택의 건축적 특징을 감안한 것이다.
확실히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IT업계 전반에 통용되는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느낌입니다.

산업 디자이너는 조형적으로 끊임없이 덜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나 소비자가 직접 설치해야 하는 IT 제품의 경우 시각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직관성이 떨어집니다. 제품을 접했을 때 피로도와 막연한 공포감도 있고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심플하게 디자인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니멀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하는 게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모든 결함이 한눈에 들어오니까요.

사용성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불거진 ‘키오스크 포비아’ 문제만 보더라도 익숙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학습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용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음, 그건 끊임없는 프로토타이핑과 무수한 인터랙션 외에는 답이 없는 것 같네요. 출시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검증을 하는 것이죠. 참고로 구글 네스트는 추구하는 수준에 부합하는 제품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출시를 미루기도 합니다. 조직 차원에서 용감한 선택이 필요하죠.

현재 구글 네스트의 산업디자인팀을 이끌며 인사나 조직 문화 형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디자이너 개인이 아닌 조직의 장으로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다양성이 우리 디자인 문화를 경쟁력 있게 만들어주는 핵심 가치라고 믿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별과 인종 비율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죠. 사람을 뽑을 때 출신, 성별, 피부색, 나이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성적 취향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다시 말해 ‘백인이 많으니 유색인종을 더 채용해야 돼’라든지, ‘팀원들의 전체 연령이 높으니 젊은 직원을 뽑아야 돼’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거죠. 조직 문화 형성에 있어서 특별한 제도를 마련한 건 없지만, 팀원들이 모여서 많은 대화를 통해 같이 고민하고 공유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배성균의 요즘 관심사도 궁금합니다.

기대를 배신하는 답변 같지만(웃음) 저는 첨단 테크놀로지보다 아날로그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캠핑을 가서 직접 화덕에 나폴리 피자를 굽죠. 업무 외 시간에는 촉각적이고 신체적인 활동에 에너지를 쏟죠.

다소 의외인데요?(웃음) 그런 활동이 IoT 기반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도움 되는 부분이 있나요?

물론이죠. 캠핑을 하면서 각종 장비를 다루게 되는데 이때 제품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합니다. 캠핑 장비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쉽고 빠르게 설치할 수 있어야 하고, 가벼운 동시에 내구성도 있어야 하죠. 아름답기도 하고요. 구조나 소재 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습니다. 애플은 예외이지만 테크 제품 중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사용성을 반영한 디자인은 의외로 찾기 어렵습니다. 반면 아날로그한 전통 산업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고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영감을 얻어요. 저는 여전히 아날로그나 물성을 지닌 무언가가 가진 힘을 믿는 편입니다. 아무리 메타버스 같은 가상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VR 기술이 보편화되어도 결국 집이라는 셸터 아래에서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인간의 물리적 활동은 계속된다는 거죠. IoT 제품과 기술도 결국 우리 삶이 좀 더 편리해지도록 보완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일상에서 이런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중요하죠.

IoT로 대변되는 스마트 홈 시장의 동향과 전망도 궁금합니다.

이 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입니다. 아직 확고한 시장의 승자도 나오지 않았고 그만큼 불확실성도 큽니다. 누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중요한 상황입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M&A와 제휴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거대한 생태계를 누가 먼저 구축하느냐가 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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