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맥주 문혁기 대표
한국 맥주 시장의 제3의 물결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처음 접한 문혁기 대표는 한국 맥주 시장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5년 제주맥주를 설립해 지역 특성을 내세운 브랜딩을 통해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문혁기 대표를 만났다.
‘치맥’, ‘소맥’ 혹은 ‘피맥’ 문화가 공식처럼 여겨지는 맥주 시장에 흑돼지 바비큐, 방어회 등 우리 로컬 음식과의 페어링에 어울리는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온 제주맥주. ‘우리의 맥주 미식 문화를 만들자’라는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맥주 시장에서 ‘제3의 물결’을 주도하는 중이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중에서는 후발 주자이지만 제주를 기반으로 한 브랜딩, 맥주를 술이 아니라 미식과 라이프스타일로 바라본 관점 등을 앞세워 제일 먼저 규모를 키웠다. 기존 맥주 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 콘셉트의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을 변화시킨 제주맥주는 제주 위트 에일, 제주 펠롱 에일 등 다양한 제품군을 전국 5대 편의점(GS25,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 입점에 성공시키며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에 나섰다. 사람들의 맥주 라이프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다.
*본 기사는 월간 〈디자인〉 2021년 7월호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를 꿈꾸다
크래프트 맥주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지내다가 크래프트 맥주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즐겨 마시다 보니 버드와이저 같은 기존 맥주로 다시 입맛이 돌아가지 않더라고요. 한번 미식을 경험한 입맛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저 역시 다양한 맥주를 접하고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시장에도 다른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 시장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제주맥주는 후발 주자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브루클린 브루어리라는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업으로 시장과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브랜드명부터 생산량, 마케팅 방식까지 기존 크래프트 맥주와는 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사업적 동반 관계 이상으로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뉴욕을 대표하는 크래프트 맥주로 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브루클린 정체성의 일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사랑받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로컬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수출하는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찾아갔습니다. 경험 많은 해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맥주 양조의 전문성과 사업 노하우를 배워 크래프트 맥주 비즈니스를 전문적으로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파트너십을 구축한 뒤에는 국내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맥주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5년간의 준비를 거쳐 출범했습니다. 한국 맥주는 천편일률적이고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수입 맥주가 잠식한 국내 맥주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싶었어요. 첫 제품인 ‘제주 위트 에일’은 브루클린 브루어리 양조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경력 17년 이상의 세계적인 브루마스터와 저희 브루어리 팀이 함께 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주였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브루클린 정체성의 일부가 된 브루클린 브루어리처럼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양조장 투어 등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을 물색하다 제주에 주목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는 매스미디어 광고 대신 와인 투어 같은 자체 관광 상품을 만들어 체험 기회를 제공합니다. 저는 이것이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마케팅이라 생각했고, 크래프트 맥주의 프로모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는 제주살이 붐이 막 일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제주도’ 하면 예전엔 부모님이 신혼여행 간 곳을 떠올렸지만 저가 항공이 많아지면서 주말에 하루 놀다 오는 여행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었죠.
반면 제주라는 지역을 주목한 것은 규모 확장을 전제로 하는 비즈니스에서는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글로벌 확장을 염두에 두었을 때 제주맥주를 어떻게 프로모션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고유한 지역 특성을 연상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글로벌 진출 시에도 약점이 아니라 기회라고 봅니다. 마치 칭따오나 삿포로처럼요. 코나 맥주나 산 미구엘을 보면 하와이와 필리핀이 떠오르잖아요? 여행에서 돌아와 그곳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집게 되는 맥주가 된다면, 지역성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개성이 될 수 있죠. 맥주 한 잔에 제주를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추억을 떠올리면서 한 캔 집어 들 수 있게 된다면, 이 섬을 브랜딩하는 게 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기부터 제주에 양조장을 세우고 본사 직원들이 주민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바다 스노클링, 백록담 클라이밍, 제주 맛집 탐방 같은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등 지역 기반 마케팅을 했습니다.
초반에 제주맥주의 브랜딩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낚시 맥주, 캠핑 맥주 원데이 클래스는 진짜 제주맥주 직원들의 로컬 마케팅이었죠. 출시 첫해에는 제주에서만 판매하고 양조장 투어 마케팅에만 집중했습니다. 양조장 투어는 벌써 누적 방문객이 10만 명을 넘었어요. 신제품이 나오면 제주도에서 먼저 판매하고 몇 달 뒤에 서울로 올라오는 방식으로 전개했습니다.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 ‘부산시 제주도 전포동’ 등 제주 밖에서 제주를 홍보하는 팝업 스토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에 처음 진출했을 때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이 제주에서 느낀 좋은 경험을 다른 곳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심 내 숲길, 옥상 등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제품을 보여주는 팝업 스토어가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팝업 스토어였죠. 맥주는 술이 아니라 음식이고, 음식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확산되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초기 3년간은 오프라인에서 고객 경험을 키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제주 한 달 살기’, ‘캠핑카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어요. 맥주에 한정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다른 브랜드는 제공할 수 없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여느 크래프트 맥주처럼 제주맥주가 제안하는 미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펍이나 레스토랑을 운영할 계획은 없나요?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외식업은 서비스업이라는 또 다른 영역이지 우리의 핵심 역량 사업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제주맥주는 크래프트 맥주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연구·개발 제조업이라고 저는 정의합니다. 펍을 운영한다는 건 음식 조리, 고객 서비스 등 매장 운영 및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제조가 아닌 외식업에 뛰어드는 일이에요. 다른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처럼 펍을 통해 인지도를 쌓는 건 쉽고 명확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기성 크래프트 맥주의 성공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과 우리의 경쟁 상대는 수입 맥주라는 원칙을 정한 이유도 있습니다. 사업 기반을 다지는 시기에 제조업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외식업까지 병행한다는 것은 제주맥주의 역량을 분산하는 일이라고 봤습니다.
맥주와 음식의 마리아주를 콘셉트로 삼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술도 음식이고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특정한 상황이나 주류에 맞는 음식이 따로 있잖아요. 와인 페어링은 있는데, 그간 맥주가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는지는 고민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일본 맥주가 이자카야의 번성과 함께 인기를 누리고, 양꼬치집이 많이 생기면서 칭따오가 깔리기 시작한 것처럼 외식의 트렌드 한 꼭지에는 분명 술이 차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의 보편적인 음식과 어울릴 수 있는 맥주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제주도 향토 음식인 흑돼지구이, 고등어회, 방어회 등 묵직한 질감의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위트 에일은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전형적이지 않은 디자인
크래프트 맥주가 갖는 다양한 맛의 시각적 표현을 위해서는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제주맥주의 아이덴티티는 ‘제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 창업자인 스티브 힌디가 밀턴 글레이저와 작업할 때의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몇 달간 밀턴 글레이저에게 매일 전화를 걸고 끈질기게 연락한 끝에 함께 작업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첫 맥주 이름을 정할 때 ‘브루클린 이글스’ 같은 이름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때 밀턴 글레이저가 ‘브루클린 라거’라는 이름을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네요. “당신은 브루클린 그 자체가 될 수 있는데 왜 브루클린의 일부가 되려고 하느냐?” 브루클린이라는 도시명과 라거라는 맥주 스타일명의 조합으로 브루클린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데 왜 다른 단어를 조합해 브루클린의 수많은 브랜드 중 일부가 되려고 하느냐는 의미였죠. 브루클린 브루어리와의 인연으로 저희도 밀턴 글레이저에게 부탁해 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훌륭한 디자이너지만 제주를 이해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뉴요커와 브루클린의 시각에서 제주를 바라보더라고요. 지금의 제주가 아니라 앞으로의 제주를 창조한다는 측면에는 동의했지만 제주에 직접 와보지 않은 상황이라 이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턴 글레이저가 디자인한 제주맥주의 로고를 볼 뻔했네요. 그럼 디자인 전략은 방향이 어떻게 수정되었나요?
제주맥주를 만든다고 했을 때 지역 특산물과 비슷한 결과물을 상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브랜드 심벌과 패키지 디자인을 하기 위해 만난 디자이너들이 돌하르방, 제주 말, 해녀 등 제주의 상징물을 차용한 디자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고요. 토속 상품이나 유명 관광지를 앞세운 경우 대부분은 지역 이미지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기대감을 주기는 힘들죠. 우리가 담고 싶었던 것은 현재의 제주를 담은 이미지가 아니라 미래의 제주였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오히려 다양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에게 스케치를 받아봤습니다. 그중 매우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이 있었는데, 현무암이자 화산섬인 제주에서 맥주가 터져 나오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업이었어요. 이 작업을 한 사람은 알고 보니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닌 건축을 전공한 분이었고 로고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제주는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창작물과 비즈니스가 탄생하는 역동적인 곳입니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지역적 특징, 개성을 디자인에 어떻게 담아냈는지 설명해주세요.
제주맥주의 방향성은 대중적인 크래프트 맥주였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디자인과 브랜딩을 해야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일관성과 소비자의 머릿속에 정확한 상징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지요. 로고 디자인의 경우 제주의 중심인 한라산을 형상화하고,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에는 제주의 감귤색을 입혀 맥주가 분출하는 느낌으로 구현했습니다. 또 제주에서 출발한 맥주 바람이 전역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로고 양측에 제주의 바람을 형상화하고, 제주의 상징 중 하나이자 맥주의 근간인 물을 하단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또 매장에 진열되었을 때 눈에 띄어야 하기 때문에 컬러감을 잘 살리고 싶었고요. 맥주 맛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컬러 모티프를 하나씩 가져가기로 했는데, 위트 에일은 마일드한데 상큼한 맛이 연상될 수 있게끔 감귤색을 사용하는 식이었습니다. 권진주 CMO가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고 저는 그 방향성에 힘을 실어줍니다.
맥주는 경험하는 것
‘매일의 여행을 만든다’라는 슬로건처럼 맥주 자체에 포커스를 두기보다는 여행 등 맥주와 함께하는 경험을 확산하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맥주만큼 컬처와 라이프스타일을 장착하고 있는 소비재가 없다고 봅니다. 맥주는 문명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맥주만큼 어떤 TPO에도 어울리는 술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맥주 맛이 어떻다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 적이 거의 없고요. 맥주와 함께하는 여행이나 문화에 대해 계속 얘기했습니다.
처음부터 제주에 대규모 설비를 갖춘 양조장을 지으면서 전략적으로 사업을 키워왔습니다. 기존 크래프트 맥주와는 다른 방식이었는데요.
좋은 회사를 만들 것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처음부터 좋은 브랜드,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 맥주 시장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제조와 유통의 기반 만들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국 5대 편의점에 입점시킬 수 있는 생산량을 고려했습니다.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 고도화된 자동화 설비를 갖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의 크래프트 맥주 기업이 작은 규모의 양조장에서 여러 종류의 맥주를 만들며 시장에 천천히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는 데 반해, 제주맥주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지어 한 종류씩 출시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가 팬데믹 와중에도 급성장한 것은 홈술을 즐기면서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인데요, 소맥을 많이 하는 회식 같은 술자리가 줄어들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맥주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크래프트 맥주가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맥주가 짧은 시간 내에 점유율을 높인 데에는 편의점이라는 유통 채널을 공략한 전략이 주효했습니다.
맥주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편하게 집에서 마시는 문화로 바뀌고 있었고, 맥주를 가장 많이 유통하는 곳이 편의점입니다. 처음부터 크래프트 맥주 대중화를 꿈꾸었기에 편의점에 맥주를 유통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과 유통의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소규모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생맥주로 펍 중심으로 유통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죠. 팬데믹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저희도 예측했던 건 아닙니다. 홈술과 같은 미래 시장에 대한 해석과 비전이 달랐던 것일 뿐이죠. 팬데믹에서 벗어나 양쪽 시장이 균형 있게 발전하길 바랍니다.
제주맥주가 구현하고 싶은 맥주 맛은 ‘4잔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비즈니스는 개성이 강해서 한 잔 이상 마시기 어려운 맥주가 아니라 앉은자리에서 4잔 정도 들이켤 수 있는 대중적인 크래프트 맥주입니다. 4잔의 법칙은 한자리에서 적어도 4잔 정도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맛이어야 성공한다는 뜻이지요. 맥주는 3잔 정도 마시면 배가 부른데, 그 배부름을 극복하고 한 잔 더 마실 수 있게 하는 맛을 구현하려고 합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IPA 맥주가 인기였지만 더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밀 맥주 타입을 선택한 것도 한국 사람들이 만나는 첫사랑 같은 크래프트 맥주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간이 센 음식이 아니라 밥처럼 먹을 수 있는 맥주를 바란 거죠. 새로운 문화는 누가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시장 자체의 활성화가 달라지지요. 예컨대 태국 음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똠얌꿍을 소개하면 태국 음식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시장 자체도 커지지 못해요. 다만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적인 확산을 위해 편의점에 입점하려면 ‘1만 원에 4캔 시장’에 편입해야 하는데, 모든 맥주가 획일화된 가격으로 판매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전략이 맥주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한 것 아닌가요?
정확하게는 수입 맥주 시장의 파이를 키운 거죠. 가격으로 맥주의 가치를 판단하게 만들기에는 편의점 유통에서 1만 원에 4캔 프로모션이 너무 확고합니다. 각각의 브랜드가 자신의 제품에 매기는 가치에 따라 값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2500원으로 평준화된 상황입니다. 좋고 나쁘고에 상관없이 가격은 캔당 2500원이고 그중에서 브랜드를 고르게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원가도 높고 더 좋으니까 5000원을 받고 싶어도 1만 원 프로모션에 들어가지 않으면 간택받기 어렵다는 게 현실입니다. 디렉터님은 모든 잡지를 2권에 1만 원으로 하자면 받아들이겠어요?(웃음)
요즘 트렌드는 컬래버레이션 맥주 출시로 보입니다. 편의점에서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국내 맥주 점유율 1위 업체인 오비맥주까지 전문적인 크래프트 맥주 협업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지금까지 10종의 맥주를 출시했고 현대카드 아워 에일, 배틀 그라운드 등과 협업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협업 제품보다 맥주의 본질에 충실한 핵심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컬래버레이션 맥주의 품절 사태는 재미 소비에 가깝기에 지속성은 약하다고 봅니다. 한국 맥주 시장에 다양성을 늘리되,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대표 상품인 위트 에일에 집중하고 에일 맥주 라인업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곧 출시 예정인 흑맥주 거멍 에일로 에일 맥주 3종을 완성시킨 이유도 그러합니다.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현대카드, 펍지, BBQ 등 각 산업의 대표 주자들과 협업하는 이유도 그렇고요.
국내 크래프트 시장에 경쟁자가 많은데 어떻게 차별화하나요?
제주맥주의 경쟁 상대는 기존 크래프트 맥주가 아닙니다. 국내 맥주 시장의 0.5%도 채 되지 않았던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 기존 크래프트 맥주와 경쟁해 1등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오히려 크래프트 맥주는 스몰 비즈니스라는 공식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크래프트 맥주는 본래 ‘손으로 만든 것처럼 정성을 다해 만든 맥주’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경험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한국에서 수제 맥주로 번역되면서 ‘손으로 만든’이라는 의미에 더욱 초점이 맞춰졌죠. 국내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장인 정신에 입각한 스몰 비즈니스라는 선입견이 생기게 된 배경입니다. 오히려 수입 맥주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차별화할지 처음부터 고민한 결과, 한글 네이밍, 지역 특성을 내세운 브랜딩에 주력했죠.
(*) 크래프트 맥주는 1970년대 미국양조가협회에서 자신들의 맥주의 차별화된 특징을 알리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독립적인 자본 구조를 갖고 생산하는 장인 정신과 독창성을 가진 맥주라고 정의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스닥에 상장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점이 달라질까요?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규모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장한다는 의미는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장이 더 큰 의미예요. 크래프트 맥주가 마이너한 유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맥주 시장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취향에서 메이저로,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를 위한 대량생산으로 가는 길의 첫발을 내디딘 것 같습니다. 커피 산업이 고품질의 다양한 선택지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바뀌었듯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모두가 향유하는 제3의 물결이 되는 게 제주맥주의 목표입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국내 크래프트 맥주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로 가겠다는 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