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디자인 언박싱] SM 디자이너 조수연의 키Key 앨범 디자인 ①
일상적인 오브제에 구현한 오피스 콘셉트의 디테일
케이팝 디자인 언박싱! 스트리밍 시대에 하나의 물성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케이팝 앨범을 주목하며, 디자이너와 함께 언박싱 하듯 앨범 디자인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더불어 변화무쌍한 케이팝 씬에서 앨범 디자인의 현재를 기록한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키의 〈Good & Great〉 앨범을 디자인한 조수연 디자이너이다.
2008년 보이 그룹 샤이니SHINee로 데뷔한 키KEY는 독자적인 캐릭터와 콘셉트 구사력을 지닌 아티스트이다. 지난해 9월 발매된 키의 두 번째 솔로 미니앨범 〈Good & Great〉는 아티스트의 컨셉추얼한 이미지가 실물 앨범으로 잘 구현된 사례. ‘오피스’라는 콘셉트에 맞춰 4개 버전으로 앨범 패키징을 시도했다. 기획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앨범은 SM엔터테인먼트 PRISM 프로덕션의 Creative Visual 조수연 디자이너와 정차현 디자이너가 맡았다. 대표로 조수연 디자이너를 만나 키의 〈Good & Great〉 앨범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테일한 디자인 코멘트부터 비하인드 에피소드까지.
조수연 디자이너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 대행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4년간 일했다. 물성을 지녔으며, 대중과 접점이 있는 일을 고민하다 평소 관심 있던 앨범 디자인으로 눈을 돌렸다. 2021년 SM엔터테인먼트에 공채로 입사해 현재 SM엔터테인먼트의 PRISM 프로덕션에서 앨범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다. 지난해 키의 정규 2집 리패키지 〈Killer〉 앨범과 샤이니 정규 8집 〈HARD〉 앨범, 그리고 키의 미니앨범 2집 〈Good & Great〉 앨범 디자인에 참여했다.
〈Good & Great〉의 좋은 시작
앨범 디자인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프로세스에 관해 묻고 싶다. 외부인으로서 어떤 과정으로 하나의 앨범이 나오는지 늘 궁금했다.
아마 엔터테인먼트사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업계 특성상 변동이 잦다 보니 우리 회사도 ‘딱 이렇게 한다’는 프로토콜이 정해져 있진 않거든. 하지만 대체로 어떤 앨범이 나온다고 하면 제작 입장에서는 타이틀 곡을 기반으로 앨범의 전체적인 비주얼 콘셉트를 기획하고, 그 방향에 따라 재킷 촬영과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다. 특히 실물이 나오는 피지컬 앨범의 경우에는 인쇄소에서 제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음원이 정해지면 곧바로 콘셉트 기획을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Good & Great〉의 콘셉트 기획과 디자인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이번 앨범은 솔로 앨범인데, 제작 회의 때 아티스트가 먼저 ‘오피스’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왔다. 그게 앨범 콘셉트를 구체화하는 데에 좋은 실마리가 됐다.
이전에도 키 씨의 앨범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 디자이너로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직전 앨범이었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Killer〉를 포함해 미니 1집 앨범 〈BAD LOVE〉, 정규 2집 앨범 〈Gasoline〉 이렇게 3개를 묶어 ‘레트로 트릴로지(레트로를 콘셉트로 전개한 3연작 앨범 패키징)’라고 한다. 콘셉트가 잘 정리되어 있고,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높은 앨범들이다. 팬들도 너무 좋아하고. 〈Good & Great〉는 바로 그런 트릴로지가 끝나고 나오는 첫 앨범이다 보니, 우선적으로는 디자인이나 콘셉트에서 이전 앨범들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Killer〉에서 보여준 근사한 끝만큼 〈Good & Great〉는 더 큰 시작이어야만 했다.
둘째로 콘셉트가 오피스이지 않나. 아티스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오피스가 직장인 사무실의 오피스는 아니었지만,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적정선이 필요했다. 물론 아티스트의 실제 보이는 이미지는 연예인이다 보니, 직장생활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우려도 있었다. 이건 아티스트와 회사 담당자들 모두의 고민이기도 했는데…
앨범 제작 비하인드 영상(KEY is Good & Great #4)에서 진정성에 관한 아티스트의 우려가 엿보였다.
맞다. 그 아이러니한 부분의 밸런스가 중요했다. 앨범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또 오피스라는 공간이 아티스트보다는 대중 입장에서 더 친숙한 것이지 않나. 자칫 잘못하면 너무 평범해지거나 우스워 보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새로우면서도 재미있고, 아티스트의 매력은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그런 영점조정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4개 버전의 패키지가 나왔다. 사실 커버 레터Cover Letter 버전만 다루려고 했는데, 4개 버전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통 앨범이 발매되면 아무래도 공수가 많이 드는 버전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Good & Great〉의 경우 모든 버전이 동등하게 관심받기를 바랐다. 물론 커버 레터 버전이 파일철 형태다 보니 콘셉트상 메인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각 버전이 각자의 매력도가 있어서 어떤 것을 갖든 만족도가 높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하나를 보다 보면 나머지 세 버전도 궁금해지는, 어떤 연결성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이 네 버전이 하나의 세계관에서 존재하게끔 연결하는 디테일이 있다.
커버 레터, 워크 리포트Work Report, 아이디 카드ID Card, SMini(*) 버전들이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각 버전이 직장생활의 어떤 흐름인 거다. 희로애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입사지원서를 내고, 입사 후 사원증을 받고, 회사에서 업무 일지를 쓰고, 그다음 우수사원상을 받는. 앨범 디자인 말고 재킷 사진 속에도 나름의 스토리텔링이 있는데, 그냥 쓱 보면 이해될 정도로 쉽게 풀어놨다.
(*)SMini는 ‘Smart Mini’의 줄임말로, 실물 CD 없이 NFC(근거리 무선통신)를 통해 앱으로 음원과 영상, 사진 등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다. 콤팩트한 사이즈의 키링 형태로 발매된다.
각 버전의 디테일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전에 ‘Good & Great’ 로고에 대해 얘기해 볼까? 직장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폰트다.
처음 ‘Good & Great’라는 타이틀을 받았을 때,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이 유통되고 알려진 단어다 보니까. 로고는 그 자체만으로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의미가 너무 쉽다 보니 어떻게 힘을 줄지가 고민이었다. 또 이 노래가 경쾌하긴 한데 메시지는 좀 시니컬하다. 되게 현실적이고. 정직한 뜻의 글자이지만, 그걸 정직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타이틀과 곡의 이미지, 의상이 아이러니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 역동적인 인상이 있으면 했다. ‘G’부터 손으로 그려서 완성했다.
그래피티의 느낌도 있고, 재킷 사진의 날개 같기도 하다.
그래피티를 의도한 건 아니다. 다만 생동감을 지닌 글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 살짝 긴장감 있는 그런 느낌. 날개도 감안했다. 공격적인 게 아니라 위트가 있는 정도로만. 로고를 만들 때 기존 폰트를 기반으로 디벨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직접 그려가며 디자인한 거라서… 사실 초기 시안에 비해 많이 점잖아졌다. (웃음) 아무래도 로고는 앨범 디자인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뮤직비디오나 커뮤니케이션에도 사용하다 보니 활용도와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일상적인 오브제에 구현한 콘셉트의 디테일
커버 레터 버전 파일 겉면에 적힌 코멘트Comment 부분은 아티스트가 직접 쓴 건가?
그렇다. 디자인의 적지 않은 부분이 이 문구를 기반으로 확장됐다고 할 수 있다.
진짜 이력서가 들어있다. 꽤 진실한 정보(생년월일과 출생지, 주소)를 담은!
커버 레터인 만큼 이 버전에서는 이력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력서를 통해 ‘키’라는 아티스트의 지난 과거들과 새로운 시작을 함축적으로, 그래픽적으로 재밌게 보여주고 싶었다. 경력Experience은 정말 아티스트 키의 커리어다. 아티스트의 앨범들을 경력으로 표현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아티스트가 컨셉추얼한 앨범 작업을 했다 보니 더 재밌게 나왔다. 자격증Certifications 부분도 지난 앨범들과 엮여 있다. 키라는 아티스트를 오래 본 팬들은 많이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하면서 작업했다. (아티스트의 앨범을 따라가지 않은 입장에선, 그 자체가 새롭게 읽혀서 재밌었다.) 그것도 너무 좋다.
커버 레터 버전은 그 안에서 또 2종으로 나뉜다.
니트Neat 버전과 다이나믹Dynamic 버전이다. 같은 사람이지만 단정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맑눈광’ 지원자와 깨발랄하고 경쾌한 지원자, 이렇게 두 명의 입사지원서인 셈이다. 그래서 특성Traits 시트에서도 니트 버전에는 다이나믹 한 지 안 한 지 속내를 알 수 없도록 수치를 표시했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살펴보면 오호라 싶은 작은 재미가 있었으면 했다.
워크 리포트 버전은 직장에서 쓰는 다이어리라고 했다.
실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수 있게끔 형압을 넣어서 스티커와 딱 매칭되게 했다. 패키지에 포함된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팬들이 이 앨범을 완성하는 행위를 유도한다. 그러니까 처음 상태가 완성본이 아니라 스티커를 붙였을 때가 완성인 거다.
아이디 카드 버전에서는 사원증이 제일 포인트였겠지?
맞다. 아티스트가 사원증 모양의 앨범을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었다. 재밌는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마침 카드 형태의 앨범 방식이 있기도 해서 구현도 가능했다.
사원증에 적힌 습득시 안내 문구도 독특했다. 이걸 발견하면 종이비행기에 넣어 돌려달라는.
이 세계관 안에서 ‘복실이’는 아티스트의 조력자 같은 캐릭터다. 복실이가 종이비행기를 날려서 아티스트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이미지가 다른 버전에 담겨있는데, 그것과 연결되도록 종이비행기라는 키워드를 가져왔다.
케이스는 출근 카드의 체크 박스 형태를 택했다.
트랙 리스트를 어떻게 재밌게 직장인 콘셉트와 연결시킬까 하다가 출근 카드를 생각했다. 월화수목금 출근할 때 이 노래들을 듣는지 여부를 체크한 거다.
체크하는 스타일이 달라지는 이유가 있을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이런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것조차 뭔가 의미를 담는지 궁금하다.
생각보다 되게 디테일 하게 봤다. 나만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월요일에는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서 정직하게 쓰지 않나. 근데 갈수록 피곤함과 귀찮음이 생기고, 금요일에는 ‘빨리 체크하고 나가자!’ 이런 느낌인 거다. (웃음)
마지막으로 SMini 버전에 관해 얘기해 볼까? 우수사원상이고, 아티스트의 얼굴 사진이 상패처럼 보인다.
패키지에서 아티스트의 초상이 바로 보여 그 우수사원이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케이스를 열어 보면 그 아래에 “Certified by KEY”라고 적혀 있다. 아티스트가 인증하는 우수사원인 셈이다. “00님, 올해의 직장인이세요~” 이런 느낌으로. (웃음) 아티스트가 다양한 직종에서, 그게 학생일 수도 있고, 버텨내는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노래였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그걸 좀 담고 싶었다. 마치 칭찬 카드처럼.
그리고 뒷면에는 네가 찾던 게 바로 여기 있다고 쓰여 있는데(p.s. the answer you’ve been searching for enclosed!) 우선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물론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이지만, 이중적으로는 그게 여기 있는 설계도인 것도 있다. (웃음) 다른 버전의 재킷 사진에서 했던 행위가 이렇게 이어지는 거지.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이 포인트가 되어 연결되도록 많이 신경 썼다.
후가공에서 조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진짜 다, 너무 다 신경 썼다. 커버 레터 버전의 파일은 일부러 코팅도 안 한 거다. 인쇄소에서 코팅 안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괜찮아요. 해주세요. 그게 멋이에요.” 이러면서. (웃음) 파일 위에 붙는 스티커는 따로 코팅해서 수작업 같은 느낌을 냈다.
워크 리포트 버전은 덕지덕지 붙인 스티커가 포인트인데, 후가공으로 부분 에폭시를 넣어 스티커처럼 표현했고, 그 위에 실제 스티커를 부착하는 작업을 했고, 거기에 따로 부속품까지 스티커를 넣어서 삼단으로 스티커를 강조한 앨범이다.
▼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SM 디자이너 조수연의 〈Good & Great〉 앨범 디자인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