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 된 ‘2024 베를린 패션 위크’
패션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
지난 2월 5일부터 8일까지 열린 베를린 패션위크 가을/겨울 에디션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007년에 설립된 베를린 패션위크는 1년에 두 번 개최되며 강력한 경제 원동력이자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매 시즌 베를린 패션위크 일정은 베를린 패션의 대담한 이야기를 대표하며 런웨이 쇼, 프레젠테이션 및 인터랙티브 이벤트 등을 접목하여 언론, 바이어, 업계 전문가 및 크리에이티브로 구성된 국제적인 셀러브리티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베를린 패션위크는 디자이너와 관계자들을 잇는 플랫폼을 제공하며 개개인의 독립성과 자유로운 개성이 특징이다. 베를린 시의 상원을 비롯하여 에너지 및 공기업 담당 부서는 창립 이래 베를린 패션위크의 다양한 형식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 왔으며, 특히 미래의 인재 육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유, 포용, 창의성의 책임감 있는 움직임
베를린 패션위크는 단순히 의상을 선보이는 쇼케이스가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활기찬 문화와 창의성, 그리고 패션계를 정의하는 협업 정신을 반영하는 행사다. 올해 패션위크는 국내외에서 약 20,000명의 게스트가 초청되었고, 32개의 패션쇼와 42개의 부대 행사가 열렸다. 창의적인 인재 육성,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컬렉션, 젊고 열정적인 관객, 새로운 아티스트들과의 강력한 협업이라는 지향성을 가지고 치러진 이번 에디션은 다른 국제 패션 위크와 비교해 봤을 때도 성공적으로 위치를 재설정하고 그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베를린 패션위크는 ‘자유, 포용, 창의성의 책임감 있는 움직임’이라는 슬로건 아래 4일간의 행사 기간 동안 자신 있게 독자적인 개성을 강조함으로써 도시의 다양한 관객층은 물론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는 베를린에서 패션이 경제적, 이미지적인 요소로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인생 스토리를 가진 많은 인재들이 베를린을 창의성의 허브로 만들어준 이유도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피드백은 패션계가 베를린에서 창조되는 것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의적인 콘셉트, 인상적인 쇼, 다양한 모델 출연진은 도시 전체에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유행을 선도하는 젊고 열정적인 청중들이 행사장 밖에 길게 줄을 섰다. 베를린과 밀라노에 본사를 둔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인 레퍼런스 스튜디오스(Reference Studios)가 설립자인 무미 아이아티(Mumi Haiati)의 기획 하에 폐허가 되버린 노이쾰른의 백화점에서 새로운 형식 ‘Intervention’으로 이번 시즌 데뷔를 기념했다.
올림픽 경기장의 워밍업 홀(William Fan), 포츠담 광장의 B7(Sia Arnika, Lou de Bètoly, LUEDER) 및 에른스트 로이터 고등학교(SF1OG)는 각 디자인의 다양한 스타일을 반영하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에게 베를린 관광 투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베를린 국립 회화관(Namilia), 보데 미술관(RIANNA+ NINA)과 같은 문화적으로 상징적인 장소를 활용하여 패션쇼는 더욱 풍성해졌다. 또한 알렉산더 광장의 프레스 카페(Olivia Ballard, Marke, DZHUS, Dennis Chuene, Bobkova, PLNGNS)에서는 최신 쇼케이스 형식과의 협업이라는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프로그램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역시 베를린 패션위크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이니셔티브인 ‘베를린 컨템포러리’ 형식의 18개 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지속적인 재정 지원이라는 순기능을 잘 드러냈다. 이번 시즌 우승자(Avenir, Dennis Chuene, Kitschy Couture, Lou de Bètoly, LUEDER, Malaikaraiss, MARKE, Namilia, Olivia Ballard, RIANNA+NINA, Richert Beil, SF1OG, Sia Arnika, William Fan 외 4명), 우크라이나 브랜드(Bobkova, DZHUS, Glück Clothes 및 PLNGNS)는 모두 창의성, 장인 정신, 프레젠테이션 및 쇼 제작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품질을 나타냈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이니셔티브
첫째 날에는 디자이너 윌리엄 판(William Fan)이 레디투웨어를 선보였다. 패션쇼 장소였던 올림피아 스타디움 워밍업 홀은 그의 컬렉션의 주요 테마를 완벽하게 강조하는 장소로서 적격이었는데, 핵심적인 실루엣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디자인의 테마와 테마 사이에 강한 콘트라스트를 부각시켰다. 브랜드 ‘MARKE’의 마리오 카이네Mario Keine는 ‘Allezeit bei mir’라는 제목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든 순간이 작은 부적과 같아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용한 기억의 모음을 형성한다는 개념에서 영감을 얻은 이 컬렉션은 시각적 헌사를 통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 순간에 경의를 표하며 성찰의 순환을 이어갔다.
디자이너 요란다 조벨(Yolanda Zobel)과 마르셀로 엘케이드(Marcelo Alcaide)는 새로운 쇼케이스 형식인 ‘Intervention’의 일환으로 자신의 레이블 ‘BACK2BACK’ 컬렉션을 선보였다. BACK2BACK이라는 이름은 브랜드 꾸레쥬(Courrèges)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만난 두 창립자 간의 협업을 반영한다. 두 디자이너 모두 자유와 해방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는 지속적인 실험을 목표로 하며, 이번 컬렉션의 디자인은 고정된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특이한 형태가 특징이다.
직물, 드레이퍼, 조작을 통해 신체와 정체성에 대한 매우 민감하고 내밀한 탐구로 지난 시즌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올리비아 발라드(Olivia Ballard)의 쇼도 독특한 패션 내러티브로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둘째 날에는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이너 이리나 즈후스(Irina Dzhus)가 24/25 F/W 컬렉션을 통해 프레스 카페의 런웨이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물들이며 매우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를린 컨템포러리 우승자인 말라이카 래이스(Malaika Raiss)는 “베를린은 아름다움과 거칢이 공존하는 도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반된 조합을 지녔다.”라고 말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베를린은 패션을 통해 정치적이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플랫폼을 제공한다”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듀오 에밀라 폴(Emilia Pfohl)과 리 난(Nan Li)은 ‘NAMILIA’의 새 컬렉션으로 열혈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중세 갑옷, 밀리터리 룩, 화려한 쓰레기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의 디자인은 공공장소에서 용감하게 활동하는 퀴어에 대한 혐오를 도발적으로 다룬 룩으로 주목을 받았다.
셋째 날에는 디자이너 제일 리처트(Jale Richert)와 미헬레 베일(Michele Beil)의 브랜드 ‘Richert Beil’가 지난 10년 간의 작업을 기념하며 2015년 데뷔 컬렉션의 시그니처와 패턴을 재해석하는 ‘헤리티지’ 컬렉션을 공개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디자이너 크리스티아나 봅코바(Kristiana Bobkova)의 브랜드 ‘BOBKOVA’의 이번 컬렉션은 가을에 대한 헌사로 수확을 상징하는 계절인 가을의 본질을 표현했다. “나는 옷과 장인 정신, 스토리텔링을 통해 내 감정을 표현한다.”라고 언급한 디자이너 데니스 츄에네(Dennis Chuene)의 새 컬렉션은 현재 자신의 내적 갈등을 패션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공유한다.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오델리 테보울(Odely Teboul)은 넷째 날 포츠담 광장에 있던 헤비타트 가구점의 빈 건물에서 자신의 컬렉션 ‘LOU DE BÈTOLY’을 선보였는데, 검은 호일은 파우더리한 란제리에서 영감을 받은 룩의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미타야 혼타렌코(Mitya Hontarenko)의 PLNGNS 컬렉션은 지속 가능성, 장인 정신, 시대 정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업사이클링 룩을 선보였고, 고등학교 교실을 런웨이로 탈바꿈한 SF1OG의 컬렉션, 포츠담 광장의 옛 N24 영화 스튜디오에서 지지 않는 태양을 상징하는 4미터 높이의 빛나는 구 주위를 도는 매력적인 런웨이를 선보인 선보인 LUEDER의 Mono-Myth 컬렉션, 지구 온난화 이슈와 연관된 패션의 필요성을 탐구하는 ‘Sweat’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소피 클라우센Sophie Claussen의 브랜드 ‘Avenir’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패션 위크 기간 동안 그 자체로 화려한 광경으로 변하는 베를린 거리의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트리트 스타일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며 현재 베를린을 지배하고 있는 에너지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거리는 베를린 패션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심이 되는 그들만의 런웨이가 된다. 잠들지 않는 이 도시가 캣워크 밖에서도 세계 최고의 패션 대도시가 된 비결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