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앰버서더] 2025 스쿨쇼 리뷰 –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2025 스쿨쇼 리뷰]는 전국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지난 시간의 탐구와 실험을 하나의 결과물로 응축해 선보이는 무대다. 각 대학과 전공별로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접근 방식이 모여, 오늘의 디자인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지 보여준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그들이 펼쳐갈 시작점을 함께 살펴본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몇 개의 프로젝트를 골라 소개한다.

[D+ 앰버서더] 2025 스쿨쇼 리뷰 –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전시

2025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전시가 지난 2025년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서울시립대 빨간벽돌갤러리에서 열렸다. 29명의 졸업생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품어온 질문과 실험, 그리고 사유의 흔적을 작업으로 펼쳐 보였다. 오렌지빛 깃발을 그려낸 전시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이는 졸업생들이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고민과 탐색을 하나의 깃발로 묶어 올렸다는 상징이다.

이들은 몇 년간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흔들리는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되물으며 디자인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추적해 왔다. 이번 전시는 그 치열한 과정이 응축된 결과물로, 여전히 진행 중인 사유와 태도를 마주하게 만든다. 졸업생들의 손끝에서 완성된 작업은 자신들만의 깃발을 세우는 행위처럼, 각자가 발견해 낸 세계의 방향을 힘 있게 선언한다. 디자인은 어떻게 세계를 붙잡고, 또 어떻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가?


앰버서더 Pick 5

AI로 재구성한 통화 아카이브, ‘전화음악’

디자이너 김선우
전공 혼합 매체, AI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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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화 앱을 통해 20명의 사람으로부터 수집한 통화 데이터를 아카이빙하고, 그들의 대화를 AI 음악과 영상으로 재구성한 프로젝트다. 전화는 본래 사라지는 경험이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는 AI를 통해 자동으로 기록되고 새로운 데이터로 남는다. 그 과정에서 말의 리듬, 오류, 침묵 같은 요소는 음악으로 변환되고 나아가 영상물로 확장된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통화가 AI를 통해 하나의 시청각 형태로 번역된 것.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타인의 전화 기록을 들여다보는 일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반면, 참여자의 초상 사용 동의를 구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작품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몰입감’이다. 특유의 리듬과 조화를 이룬 영상 흐름 덕분에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의 밀도를 경험할 수 있다. 사라지는 경험을 붙잡아 새로운 언어로 다시 만들어 낸 작품을 통해 관객은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뒤섞이는 감각을 마주한다.

흘러 다니는 디자인 언어를 기록하다, ‘디자인의 소리’

디자이너 오예지
분야 혼합 매체

디자인 분야에는 종종 내용보다 겉치레에 가까운 표현이 존재한다. 이 프로젝트는 그런 말들을 모아 ‘디자인의 소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고 소비되는지를 기록했다. 단순히 말만 모은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나 습관,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도 함께 살폈다. 이를 통해 디자인 언어가 어떻게 학습되고, 대중에게 전달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탐구하고자 했다.

“디자인의 소리”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디자이너들의 ‘개소리’를 수집하고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수집 과정에서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 대신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쓴 문장을 모으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모인 문장들에서 기본 의미와 디자인적 해석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단어들을 추출해 ‘디자인 어감 사전’을 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언어를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의미를 덧씌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형태와 맥락을 모아 배치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 언어가 지닌 힘과 한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소리’는 디자인을 설명하는 말들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 다니는지를 가시화한 아카이브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이 어떻게 반복되고 하나의 감각으로 자리 잡는지 보여주며, 디자인을 말하는 언어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공동묘지에서 수집한 시각 기록, ‘마지막 디자인’

디자이너 김선우
분야 편집물

묘비는 가장 진실돼 보여야 하는 디자인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디자이너는 다섯 곳의 공동묘지를 직접 걷고 관찰하며, 그곳에 머무는 진실의 인상을 수집했다. 묘비의 형태와 재질, 상징, 문구 같은 시각적 요소를 기록하고, 현장에서 남긴 메모와 실제 사진을 아주 작은 크기로 책 곳곳에 배치했다. 각 묘지에서 느낀 감각을 책의 구조 안에 녹여낸 것. 그렇게 완성된 책은 또 하나의 공동묘지처럼 펼쳐지며, 죽음을 위한 마지막 디자인이 품은 형식과 감각을 천천히 되짚어 나간다.

공동묘지를 거닐다 문득 넋을 놓았던 날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는 타인의 묘비를 기록하면서 가족의 내일과 죽음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귀신이 잠시 붙었을지도…!)

이 작업은 ‘관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생을 압축한 형체가 주는 무게는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축적되고, 책을 넘기는 동안 저자가 경험한 시간의 밀도가 조용히 공유된다. 작품 곳곳에 남겨진 여백은 독자가 스스로 빈 공간을 채우도록 여지를 남겼다. 덕분에 묘비를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남겨진 자리’에 대한 감정을 다시 체험하게 된다. 멈춰 서서 바라보고, 기록하고, 아주 작은 조각들을 연결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게 하는 작업이다.

음운이 생성하는 유기적 풍경, ‘음운 증식’

디자이너 황보나현
분야 미디어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은 기하학적 형태가 반복되며 하나의 패턴을 이루는 구조다. 작가는 이 반복 속에서 생명이 없는 존재가 ‘증식’하는 개념을 발견하고 이에 주목했다. 비생물이면서도 생명체처럼 구조를 가진 채 분리될 수 있는 ‘음운’을 작업의 재료로 활용했는데, 여기에 비생물적 글자인 코딩을 구현 방식으로 더했다. 입력된 글자는 씨앗처럼 화면 위에 퍼져 나가며 보로노이 패턴(하나의 공간을 여러 점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분할해 생성되는 기하학적 패턴. 각 점에서 가장 가까운 영역이 하나의 셀(cell)을 이루며, 자연계에서 세포 구조·벌집·지형 분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으로 시각화되고, 나아가 하나의 유기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글자가 확장하는 속도, 퍼져나가는 방식, 경계가 형성되는 모습이 세밀하게 와닿는 점이 인상적이다.

노베이스에서 시작한 크리에이티브 코딩. 약 3개월간 이어온 데일리 코딩과 학습의 과정 자체를 작업에 담고자 했다.

이를 통해 음운이라는 최소 단위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며, 언어가 갖는 잠재적 구조가 패턴 생성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탐색한다. 관객은 화면 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형을 바라보며, 비생물이 만들어낸 움직임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생명성을 감지할 수 있다.

입력 행위가 만드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입력하기’

디자이너 권희정
분야 미디어

‘입력하기’는 모바일 키보드 UI를 실험적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사용성이 최우선인 기존 인터페이스에서 벗어나, 한글 타이핑 행위를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사용자가 초성, 중성, 종성이 분리된 키를 입력할 때마다 자모는 동일한 그리드 안에서 점차 확장되고 서로 겹치며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난다. 글자가 쌓일수록 밀도와 형태가 달라지며 하나의 타이포그래피 포스터가 완성된다.

디자이너 코멘트: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덕분에 자모의 구조를 뜯어보고 맛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타이핑은 단순한 입력 행동이 아니라, 글자의 구조적 변화와 축적을 관찰하는 생성 작업으로 바뀐다. 사용자는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았던 자모 결합의 과정(분리, 충돌, 중첩, 확장)을 직접 시각적으로 경험하며, 한글의 조형적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다. 익숙한 언어가 전혀 다른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Information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전시
장소 서울시립대학교 빨간벽돌갤러리
기간 2025년 11월 6일 – 11월 11일
지도 교수 양민하, 이상은, 이재민, 이푸로니, 최성민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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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D+ 앰버서더 박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