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950여 명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아홉 번째 주자로 2024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인 바주요 박준용이 묻고 디자이너 박규빈이 답했다.

박준용(이하 용): 규빈 님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해주세요. 특히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박규빈(이하 빈):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건축가 구마 겐고의 ‘자연스러운 건축’,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건’ 개념과 맞닿아 있죠. “건축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라는 구마 겐고의 말은 공간에 접근하는 제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알랭 바디우는 기존 질서와 틀을 벗어난 새로운 진리의 출현을 ‘사건’이라 정의하며, 이를 통해 현실이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공간 디자인을 통해 이러한 사건을 창출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유도합니다. 특히 지속 가능한 공간디자인을 위해, 건축 자재와 자연 소재 같은 작은 단위의 재료 탐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용: 최근 작업 중 하나인 ‘타일의 나이테’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요?

빈: ‘타일의 나이테’는 쓸모를 다한 건설 폐 타일을 재활용해 시간의 흐름과 재료의 물성을 표현한 테이블입니다. 자재에 담긴 시간과 흔적을 존중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타일에 생긴 균열을 금색 가루로 메우는 ‘칸이킨츠기’ 기법을 적용해 상처와 결함이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는 삶의 상처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쓸모를 다한 재료를 새로운 가구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디자인적 가치와 환경적 책임을 동시에 다하는 사례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용: 무대, 주거 공간, 공공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얻은 배움이나 영감은 무엇인가요?

빈: 무대 디자인은 관객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감동을 전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들인 디자인이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어요. 저에게 맞는 공간 디자인이 무엇인지 골몰하는 계기가 됐죠. 이후 주변 환경과 공간 그리고 이용자에게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주거 공간은 공간 이용자가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오래도록 편안하게 기억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공공 디자인은 캠페인 기반의 작업이어서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환경과 사람을 동시에 고려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디자인이 개인의 삶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됐죠.

용: 그동안 다양한 기업과 협업도 진행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환경재단, 한국필립모리스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친환경 공공 캠페인입니다. 60명의 크루원과 함께 도로의 빗물받이를 청소하고 빗물받이 주변에 친환경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낙서로 기존 도로의 환경을 해치는 반달리즘은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그림이 지워지도록 물감을 친환경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천연 안료에 물엿과 감자전분 등을 조합해 비가 내리면 지워지도록 친환경 물감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캠페인 재료와 비용의 한계에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람 있었습니다. 재료의 본질을 존중하는 작업을 통해,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간을 만들고, 사회적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용: 향후 디자인 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요?

빈: 제 궁극적인 목표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웰니스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현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쓸모를 다한 건축 재료들을 활용해 아트 퍼니처를 제작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공간이 단순히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곳을 넘어, 그 자체로 치유와 회복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대학원에서 웰니스 프로그램 기반의 공간디자인 가이드라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와 문화적 배경에 맞는 치유 공간을 설계하는 연구이죠. 단순히 신체적 편안함을 넘어 정신적, 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만큼 호텔, 리조트, 주거 공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또 그 공간 안에서 쓸모를 다한 재료를 활용해 예술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가치를 담은 아트 퍼니처를 지속적으로 제작하려고 합니다.

인터뷰 박준용
퓨전 한복 컬렉션 ‘바주요’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