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그룹 사일로랩: 기술과 오리지널리티로 기억과 감성을 건드리다

박근호&이영호 사일로랩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대표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 연출로 기억과 감정을 끌어내는 사일로랩(SILO Lab)은 기술이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으로 몰입된 경험을 만드는 사일로랩에게 그 비결을 들어봤다.

[Creator+]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그룹 사일로랩: 기술과 오리지널리티로 기억과 감성을 건드리다

editor’s note

사일로랩(SILO Lab)은 빛, 소리와 같은 물질적 소재와 미디어아트의 기술을 결합하여 몰입형 경험을 연출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린 건 백열전구의 따뜻한 빛을 활용한 〈묘화〉와 300개의 풍등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풍화〉입니다.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한 두 작품은 사일로랩의 대표 작품이자, 이후 작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사일로랩을 결성한 지 1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작품을 돌이켜보면 미디어아트 그룹이라는 말로 그들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활용한 기술과 매체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 사일로랩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떠올리는 기억들은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계산하는 공간 연출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센 자극을 원하는 시대, 어떻게 하면 공감하고 몰입되는 공간을 연출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사일로랩에게 물어봤습니다.

사일로랩 이영호(왼쪽), 박근호(오른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대표

PLUS 1. 스튜디오에서 회사로

올해로 사일로랩을 결성한 지 11년이 되었네요. 10년 넘게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박근호(이하 박)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노력해요. 우리가 잘하거나 반복적으로 해서 루틴이 될 일을 많이 안 하려고 하고요. 어떻게 하면 기존과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죠. 이러한 마음가짐이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이영호(이하 이) 회사를 잘 운영하기 위해선 수익이 중요하지만, 길게 보면 우리만의 색이 담긴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박 대표와 제가 서로 이 부분에 동의하고, 처음부터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향성을 의논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두 분이 담당하는 영역이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면 서로의 장점이 더 잘 보이지 않나요?

. 지금보다 작은 규모였을 때는 담당하는 역할이 명확했지만, 구성원이 40명 넘는 회사로 성장하다 보니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어요. 대표로서 더 큰 관점으로 바라보고 전체를 아우르는 결정을 내리고 있으니까요.

. 그럼에도 구분하자면 제가 연출과 크리에이티비티 영역을, 박 대표는 그를 현실로 구현해 줄 엔지니어링 영역을 담당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예전에 비해서 구현할 수 있는 영역과 한계를 고려하는 등 현실적인 감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 회사 규모가 커지다 보니까 저 역시도 지금 가장 필요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돼요. 대신 이 대표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죠.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이영호 사일로랩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대표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 10년 동안 사일로랩은 규모가 커졌죠. 그러면서 회사 운영이나 작업 진행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세워졌을 것 같아요.

. 사일로랩은 상업과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계속 쫓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 두 영역을 동시에 포용하면서 인지도도 높아 규모를 확장하는 사례가 별로 없었어요. 사일로랩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사일로랩 아이덴티티와 함께 구성원의 아이덴티티까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획을 보여줬으면 하고요.

사일로랩처럼 상업 프로젝트와 아트 프로젝트를 동시에, 활발히 선보이는 스튜디오는 드물어요. 앞으로 두 분이 꿈꾸는 사일로랩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박. 사일로랩의 오리지널리티를 충분히 보여주는 아트 프로젝트를 계속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를 상업 프로젝트에도 녹여서 공간 전체를 연출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요. 그래서 전혀 다른 공간 경험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매체도 다룰 수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라요. 그러다보니 ‘매체 융합’이라는 장점을 강조해서 B2B의 영역에서 이젠 B2C의 영역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사일로랩이 더 오래 유지되고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PLUS 2.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박근호 사일로랩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대표

요즘은 예술에 적용되는 기술도 하나의 유행처럼 금방 떠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것 같아요. 메타버스를 말하더니 갑자기 AI가 주목받고 있잖아요.

. 매체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상생활에서도 미디어아트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고, 그 공간들이 매체를 더 다양하게 품으면서 공간에 시간성과 운동성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각 매체의 장점을 극대화한 공간이 더 많이 나올 거기에 예전부터 매체를 융합해온 사일로랩의 강점이 더 부각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활용한 작품 철학을 유지했기 때문에 기술 트렌드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일로랩의 특징은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죠. 혹 기술을 사용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나요?

이. 작품과 공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술을 많이 숨기는 편이에요. 그런데 기술을 숨기려면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해서 작업이 어려워지거든요. 그럼에도 장치가 드러났을 때,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면 철저하게 기술을 숨기려고 해요.

관람객에 움직임에 따라 백열전구가 빛을 내는 속도와 밝기가 조절되는 <묘화>(2014)
하늘에 풍등을 띄운 것처럼 공중에 띄운 300개 이상의 풍등이 움직이는 키네틱아트작품 <풍화>(2019)
시간의 상대성을 표현한 <시유>(2023). 실타래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보며 관객은 시간의 경과를 느낀다.

기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독특해요. 요즘은 다 기술력을 뽐내잖아요

기술적으로도 ‘이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드러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어려워요. 저희는 공감각적 심성을 일으키려고 하거든요. 예를 들어 전시 공간엔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소리가 들린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이런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 실험도 많이 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어요.

. 사일로랩에게 기술이란 저희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만들어주는 도구예요. 어디에도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알고 있는 기술을 통해서 어떻게 감동을 줄지 고민하죠. 하지만 기술과 크리에이티비티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좋고, 나쁘냐는 따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매체, 아이디어, 요소 등의 결합을 강조하는데 그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게 제일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잖아요.

. 전공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자기 전공에만 몰두하면 그 세계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고 다른 영역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오히려 전공을 서브로 생각하고,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야 해요. 그러다가 관심 영역의 관점을 전공에 적용한다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연결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거예요. 저 역시 영상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건축까지 공부하고 있거든요.

. 여러 매체를 섞다 보면 매체의 경계 사이에서 갑자기 감각이 톡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게 돼요. 저도 그 경계의 모호함을 극대화한 작업에서 감정적 공감을 크게 일어난 적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실험을 계속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빛을 반사하는 수면에 파동을 일으키면서 빛과 물,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결합한 작품 <파동>(2022)

PLUS 3.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울리는 공간

사일로랩의 작품에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후킹 포인트(Hooking Point)가 있어요.

. 결과가 좋은 작업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제 기준에선 제 감정과 관객의 감정이 완전히 일치한 작업인데요. 그럴 일은 드물죠. 그럼에도 창작자와 관객의 감정을 한순간이라도 동일하게 만든다는 것이 작품에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후킹 포인트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구상하나요?

. 우리가 자연을 바라볼 때 학습하거나,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죠. 저절로 과거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혼재되면서 무언가가 이끌려 나오죠. 저희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감정을 주입하기보다는 우리가 느꼈던 감정에 기반해서 공간을 연출하고, 그를 보러 온 관객도 우리와 동일한 감정이 들 수 있게 장치들을 마련하죠. 그 장치는 소리, 빛 때로는 물성이 만들어낸 움직임일 수도 있어요.

. 그 요소들은 주관적인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어요. 저희가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을 구현한 작품을 주로 만들지만, 누구나 가졌을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해요. <해무>는 안개 낀 바다를 비추는 등대를 바라보는 작품이었는데, 그와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있지만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상기시키는 트리거를 구축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기획하고 있어요.

등대와 불빛, 안개와 바닷소리로 실내 공간을 밤바다로 만들어 몽환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해무>(2022)

인터렉티브 아트, 미디어 아트가 흔해지면서 전달하는 경험도 비슷해졌어요.

. 최근 미디어아트는 전달을 최우선 목적으로 두고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폭풍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한다고 하면 엄청 큰 스크린에 폭풍의 비주얼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당신은 폭풍 속에 있습니다’라는 경험을 주입하죠. 처음에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공감하겠지만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시각적인 피로감을 느끼고 결국 둔감하게 되죠.

사일로랩은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 똑같이 폭풍으로 예를 들자면 저희는 폭풍 안에 있을 때의 느낌을 물질적으로 표현해요. 제한된 공간 안에 폭풍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폭풍우가 쳤을 때의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재구성해서 저희가 가진 기술로 표현하죠. 바로 그 부분이 일반적인 미디어 아트와 다르게 접근하는 방식이고요.

“관객, 공간, 작품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시각 외에 다른 감각도 느낄 수 있게 공간을 연출해요.”

상업 프로젝트와 아트 프로젝트 간에 확실히 구분하려고 하는 편인가요?

. 아트 프로젝트는 사일로랩의 색을 쌓아 우리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는 작업이에요. 기존 색에 계속 새로운 색을 덧칠하면서 사일로랩의 색을 다양하게 만들고, 동시에 보는 사람이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고 궁금증을 일으키는 걸 하려고 해요. 때로는 상업 프로젝트에 아트 프로젝트와 같은 분위기를 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데요. 그럴 땐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동시에 사일로랩의 색을 잃지 않도록 조율하고 있어요.

. 상업 프로젝트와 아트 프로젝트는 목적이 다르죠. 특히 상업 프로젝트는 짧은 시간 안에 소비자에게 각인시켜야 해서 화려하게 연출하죠. 아트 프로젝트는 관객이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면서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요. 아트 프로젝트에서는 저희가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나 생각의 폭이 깊어지기 때문에 상업 프로젝트에도 이런 부분을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2024 밀라노디자인위크 삼성관에 설치한 사일로랩의 작품. 불규칙한 형상의 빛이 반투명한 큐브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관객들은 그 앞에서 멍하니 움직이는 조명을 바라봤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카니랩’의 인스톨레이션 디자인. 스크린 가득 채워지는 몽환적인 영상은 레스토랑 분위기를 초현실적으로 만들어준다.

몰입도가 높은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빛, 오브제, 물질의 재질감 등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시너지를 내고, 드러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드러나고, 매체 간의 경계에서 나만의 감정을 이끌어내면서 트리거를 줬을 때 공간의 몰입도가 확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도 물성을 활용해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해요.

이. 몰입되는 순간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경험 및 공간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요,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는 관람에 방해되는 요소를 정리해서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시각에 거슬리는 요소는 정리를 해야 해요. 저는 천장, 바닥, 벽의 재질감처럼 작품 주변 환경까지 신경 쓰다가 지금은 관객이 공간에 들어와 작품까지 이르는 동선까지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PLUS 4. 물성을 다루는 법

사일로랩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빛이죠.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빛이라는 물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용해 왔어요.

박. 빛은 공간을 특정한 분위기로 채워주는 무형의 물질이에요. 신기하게도 공간을 채워주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요. 다른 시각으로 보면 색이나 궤적, 번짐 같은 것으로 눈에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빛이란 물성이 없으면서도 있는, 양면성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는데, 빛이 효과적으로 공간을 채우면서 동시에 비워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지금 청와대 사랑채와 용산 어린이 공원에서 전시 중인 <연화>와 <온화>도 빛이 주요 소재로 활용되고 있고요.

. 저희는 따뜻한 빛을 사용해요. 오래전부터 인간은 동굴이나 집에서 피운 불의 따뜻한 빛을 보며 안정을 느꼈다는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용산 어린이 공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온화>는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집에서 불을 피웠을 때 느껴지는 온기를 빛으로 표현한 작품이에요. 공중에 매달린 조명이 한국 전통의 창호 모형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옛날, 호롱불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한옥처럼 느껴지죠.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행하는 <연화>와 <반디>도 따뜻한 빛을 활용한 작품이에요. 사랑채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 왕실에서 펼쳤던 밤잔치의 화려함을 모티브로 삼아 키네틱 아트로 재구현했어요.

사일로랩의 작품을 쭉 살펴보면 물을 이용한 작품이 많더라고요. 이건 의도적인 건가요?

박. 의도적인 반항이라고 할까요? 프로젝션으로 물의 일렁거림을 표현하면 저희가 원하는 무드를 엇비슷하게 연출할 수 있지만 물이라는 물성이 가진 아우라를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물성을 가진 요소를 사용하면 극대화된 감정의 경험을 받을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선 우리는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이. 저희가 빛이라는 물성을 작품에서 사용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빛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새롭게 탐구할 소재로 물을 선택한 측면도 있어요. 처음에는 빛과 물을 함께 사용하면 감성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사용했는데 점점 물을 통해서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한국 전통을 모티브로 설치한 <연화>(2024). 현재 청와대 사랑채에서 전시 중이다.

앞서 〈해무〉를 말씀하셨는데 사일로랩의 아트 프로젝트에선 자연이 매우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는 것 같아요.

. 많은 사람이 저희 작품을 보고 자연에서 모티프를 가지고 왔다고 해석하지만, 저희는 자연에 국한해서 작품을 디자인하진 않아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을 인공 공간에 구현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죠. 저희 작품을 보고 감상을 느끼는 데에는 관람객의 과거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넓은 맥락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소재는 자연에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거예요.

작품의 규모가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 네. 저희에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 프로젝트 제안을 받으면 제일 먼저 공간의 컨디션이 어떤지를 물어봐요.

. 저희는 공간의 모든 걸 통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더라도 저희가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규모가 작더라도 하게 돼요.

용산어린이공원에서 전시 중인 <온화>(2024). 사일로랩이 예전부터 탐구한 빛과 물에 대해서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 중에서 규모가 더 큰 것도 있나요?

. 규모에 대해선 여전히 욕심이 있어요. 단, 디테일은 놓치지 않는 상태에서요. 한번은 저희가 원하는 연출을 전부 구현하려면 3~4천 평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강의 모든 조경을 디자인하거나, 홍콩의 레이저 쇼처럼 건축물을 이용한 연출을 하는 등의 큰 규모의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 아무래도 저희는 규모는 물론 비용도 필요한 작업을 하다 보니 규모와 비용이 풍족한 상태의 프로젝트를 계속 갈구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시간성을 갖는 다양한 매체를 결합하고, 그 매체들의 합이 딱 맞아떨어져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긴 해요. 저희가 공간 전체를 통제하고 연출할 수 있다면 카페, 빵집, 서점같이 작은 크기의 상업 공간도 좋아요.

PLUS LIST

사일로랩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들

  • K POP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는 굉장히 다양한 시도가 펼쳐지는 장예요. 실제로 미디어아트와 공간 연출이 결합한 장르라 자주 참고하고 있어요.” 뮤직비디오 연출 경력이 있는 이영호 대표는 K-POP 뮤직비디오를 자주 보고 그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최근 K-POP 뮤직비디오는 노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아이돌의 매력을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진 장르로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고 예술적 실험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분야다. 아티스트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는 공간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뮤직비디오의 세트는 전시장과 비슷하다. 단, 뮤직비디오는 화면 안에서 펼쳐질 뿐이다.

  • 일본 나오시마

박근호 대표는 섬 전체가 하나의 현대예술 전시장인 된 일본 나오시마를, 영감을 받는 장소로 꼽았다. “섬 전체에 예술 작품이 흩뿌려진 것처럼 존재해서 배를 타고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예술품을 마주할 수 있어요. 갈 때마다 ‘나도 이런 걸 하고 싶다’고 느껴요.” 빈집을 예술 작품 혹은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쿠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 안도 다다오 등 현대예술과 건축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는 일본 나오시마섬은 장소 특정적 예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 음향

최대의 시각적 경험을 전달했던 영화관은 OTT 시대의 시작으로 이젠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여기에 TV와 스마트폰의 높은 해상도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최고 퀄리티의 시청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음향은 발전이 덜하다.

“해상도가 아무리 높아도 음향을 그를 받쳐주지 않으면 완전한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이영호 대표는 시각과 청각의 발전이 함께 이뤄져야 최상의 경험을 누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각적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감각을 찾게 될 거예요. 그에 대한 해답이 청각에 있다고 생각해요. 음향을 활용해서 전달할 감각도 매우 많기에 그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어요. 입체 음향을 어떻게 공간적 경험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고요.”

TIPPING POINT

사일로랩과 인터뷰하면서 떠오른 한 단어는 ‘결합’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결합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기술과 예술, 매체와 매체, 물질과 비물질, 시간과 공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등. 어쩌면 누군가는 ‘1+1인데 당연히 좋은 거 아냐?’라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일로랩의 결합은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극대화하거나, 자기만의 시점으로 재해석해 아예 새로운 결과를 낸다. 즉, 1+1=2가 아니라 1+1=∞인 셈.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공간과 작품에 몰입하고,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며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