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현대미술 대축제, 2024 애들레이드 비엔날레

예술과 시(詩)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내부의 성소(Inner Sanctum)’

미술에 관심이 깊다면 올해에는 호주에 집중해보자. 대규모 국제 미술 행사들이 한 해 동안 줄줄이 개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도 포함됐는데, 오직 호술 예술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다. 1990년 첫 모습을 드러낸 애들레이드 비엔날레, 과연 올해에는 어떤 모습일까?

호주 현대미술 대축제, 2024 애들레이드 비엔날레

올해 호주 미술계는 대규모 국제 미술 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의 ‘NGV 트리엔날레(NGV Triennial)’에 이어 3월에는 ‘시드니 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와 애들레이드 비엔날레(Adelaide Biennial of Australian Art) 시작되고 하반기에는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Queensland Art Gallery of Modern Art)에서 ‘아시아 태평양 현대미술 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of Contemporary Art)’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는 호주 예술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현대미술 축제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1990년 시작된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동시대 호주 미술에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면서 호주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과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해 왔다. 비록 자국 예술로 국한되기는 하지만 현대 미술이 발전하는 제도와 관행을 마련하는 데 기초가 된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는 ‘도벨 드로잉 비엔날레(Dobell Australian Drawing Biennial)’나 ‘The National’ 등 호주의 현대 미술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미술 행사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는 현재까지 약 500여 명에 이르는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참여했고 170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처럼 작가들과 전문가들의 예술적 야망을 지원하면서 호주 미술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온 애들레이드 비엔날레가 올해로 18회를 맞이했다.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 6월까지 약 3개월 동안 ‘내부의 성소(Inner Sanctum)’라는 주제로 남호주 미술관(Art Gallery of South Australia)에서 진행된다.

애들레이드의 중요한 축제로 자리매김한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는 탁월하면서도 혁신적인 호주의 현대미술을 지지하고 기념해 왔으며 수많은 신인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를 비롯하여 호주 전역의 미술관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온 호세 다 실바José Da Silva가 기획했다. 현재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갤러리UNSW Galleries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예술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우리 자신과 사회를 새롭게 보도록 하는 것으로, 호기심 때문에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감각적인 행동을 뜻한다. 예술은 결국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주변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그는 말한다. 호세 다 실바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예술가들과 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술과 시가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신념을 각인시키며 큐레이터로서의 역량을 보여준다.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과 대담으로도 이어진다. 전시는 ‘The Inland Sea’, ‘A Clearing, A Periphery’, ‘The River Path’, ‘A Quiet Spot’, ‘The Writing of Love and Finding It’이라는 다섯 테마로 구성되며 모든 테마들이 하나의 시를 완성해 가듯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모든 테마를 관통하는 ‘Inner Sanctum’이라는 개념은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가 속한 공간과 사회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피난처이자 보호구역으로서 가정과 지역사회 내에서 우리가 창조해낼 수 있는 사적이면서도 신성한 공간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개념은 집과 정원, 산책로, 가족과 조상들의 기억과 이야기에서 비롯되며 이 모든 기억과 이야기들이 시각적인 언어로 작품 안에서 승화된다.

코로나 이후 선보였던 기존의 비엔날레, ‘Monster Theatres’와 ‘Free/State’는 역사와 예술에 도전하는 대담하고 도발적인 호주 예술가들의 예상치 못한 비전을 선보였다. 과거의 비엔날레가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실험적인 작품들로 채워졌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보다 부드러운 시선을 전달한다.

비엔날레 개막 전에 부드러운 느낌의 비엔날레를 만들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 큐레이터 호세 다 실바는 이번 전시를 가장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light’라고 했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많은 작품들이 주로 빛의 속성에 관심이 있는 작품들로, 빛이 퍼지거나 굴절되면서 생기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며 그런 빛의 특성에 따라 관람객들로 하여금 가볍고 편안함 느낌을 전해 준다. 온화한 작품들 안에 숨어있는 빛을 찾아가면서 미술관 이곳저곳을 누비는 일은 이번 애들레이드 비엔날레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시는 기존의 비엔날레처럼 오늘날의 정치와 세계의 움직임을 비판하는 대신 큐레이터가 의도한 대로 우리 자신을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다면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반성의 시각을 제공하면서도 인류의 미래를 보다 밝고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작품들이 미술관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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