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예술 세계가 클래식 음악을 만나면?

음악에도 진심이었던 세기의 화가

세기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일생을 다룬 음악 공연이 오는 2025년 3월 1일 음악 축제 <라 센 뮈지칼>에서 소개된다. 피카소 심포니가 피카소의 작품과 영상, 음악을 결합한 흥미로운 공연을 선보일 예정.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도 사랑한 그의 예술 세계를 만나보자.

피카소의 예술 세계가 클래식 음악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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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사진 출처: biography.com/artists/pablo-picasso)

스페인 출신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다. 입체파(Cubism)의 창시자로 알려진 이 화가는 평생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남겼으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벽화, 삽화,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스타일과 매체를 탐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 세계를 개척했다. 그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은 여전히 미술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으며, 그의 예술적 영향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다.


또한 피카소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다. 그중에서도 20세기 음악계에 혁신적인 바람을 불어넣은 러시아 출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와의 친분은 두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상호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실험하며 음악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한 인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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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hecollector.com

이 둘이 교류하게 된 계기도 ‘예술적’이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가 설립한 발레단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공연을 위해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09년에 창단된 발레 뤼스는 전통적인 발레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주제와 혁신적인 안무를 도입했고, 공연 전체에 음악, 무대 및 의상 디자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을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1929년에 디아길레프가 사망하면서 발레단은 해체되었지만, 전 세계 발레와 현대 무용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서양 공연 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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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useepicassoparis.fr

당시에 없었던 색다른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당대에 유명했던 예술가들이 모여든 것도 이 발레단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분야마다 놀랄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음악에서는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하여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에릭 사티(Eric Satie),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등 유명 작곡가들이 참여해 발레단을 위한 곡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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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useepicassoparis.fr

안무에서는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로 유명한 조르주 발란신(George Balanchine), 천재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 세계적인 안무가인 미하일 포킨(Michel Fokine)과 레오니트 마신(Léonide Massine) 등과 같은 이들이 참여해 재능을 뽐냈다. 미술에서는 피카소의 친구이자 입체파의 주요 인물로 꼽히는 조르주 부라크와 더불어 앙리 마티스, 코코 샤넬, 레옹 박스트(Léon Bakst) 등 유명한 화가와 디자이너들이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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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edici.tv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의 인연은 1917년 ‘풀치넬라(Pulcinella)’를 위한 협업에서 시작되었다. 피카소는 무대와 의상 분야에 참여해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미 <봄의 제전>, <불새>와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발레단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스트라빈스키 또한 걸출한 재능을 발휘했다. 협업의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며 두 사람에게는 끈끈한 우정이 만들어졌다.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둘 다 각각의 분야에서 전통을 깨고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선구자였기에 잘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협업하는 관계에서 친구가 된 둘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친분은 피카소가 남긴 스트라빈스키의 초상화에서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음악가를 그리며 그가 가진 성향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음악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피카소가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발레곡을 흥얼거리기도 했다는 이야기 또한 둘의 친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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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news.artnet.com

피카소와 음악의 관계는 무척 애매모호하다. 그의 예술 세계에서 음악이 크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화가의 예술적 관심사는 주로 시각 예술, 문학, 철학 등에 치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화가와 음악의 연결고리가 단단하게 얽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와 더불어 사티, 미요,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등과 같은 당대 아방가르드 음악가들과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동안 몽마르트르 등지의 카페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다니며 활발하게 꽃피우던 대중음악을 접하기도 했다. 스페인 사람답게 음악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서커스, 투우를 즐기는 것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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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casso-symphony.com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상파 초기에는 악기를 주제로 한 정물화를 그리거나 악보 또는 신문을 활용한 콜라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발레 뤼스를 위해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한 것도 음악과 연관된 작업이었다. 스트라빈스키에게 보낸 그림을 보면 음악이라는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아예 악기의 요소를 조합하여 사람으로 표현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로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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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nstagram.com/jmpent/

평생 음악과 밀당했던 피카소의 일생을 다룬 음악 공연이 열릴 예정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25년 3월 1일 파리의 센 강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 ‘라 센 뮈지칼(La Seine Musical)’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피카소 심포니(Picasso Symphony)’가 그 주인공이다. 이 공연에서는 화가의 작품이 담긴 생생한 영상과 오케스트라 음악이 결합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이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통해 화가가 걸어왔던 인생 여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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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arolinatix.org

사실, 이런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의 샬럿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피카소와 교류했던 작곡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음악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와 사티의 ‘퍼레이드’를 통해 음악과 예술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 공연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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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jmpent.com

화가의 일대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피카소 심포니는 프로듀서이자 음악 기업가인 제이슨 마이클 폴(Jason Michael Paul)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파이널 판타지, 젤다의 전설과 같은 비디오 게임의 음악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재해석하여 대중문화와 고전 음악의 조화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처럼 게임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온 그의 경험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즐겼던 피카소의 예술 세계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제이슨 마이클 폴은 “우리는 대중이 이 다작 예술가의 작품을 획기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기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며 콘서트를 기획한 의도를 설명했다. 피카소 심포니에서는 피카소가 남긴 작품이 시기별로 나누어져 선보일 예정이며, 그에 맞춰 스트라빈스키, 사티, 구스타브 홀스트(Gustave Holst),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과 같이 화가가 좋아했던 작곡가의 음악이 함께 연주될 예정이다. 공연 중간에는 스트라빈스키가 ‘파블로를 위하여(Pour Pablo)’라고 이름 붙인 클라리넷 협주곡과 악기로 이루어진 피카소의 초상화가 함께 해 돈독했던 둘의 우정을 돋보이게 할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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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fwsymphony.org

피카소 심포니는 2025년 3월 파리 공연에 이어 5월 10일에는 미국 포트워스 윌 로저스 기념 강당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북미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이는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의 삶과 그의 예술 세계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조명하며, 다양한 예술 장르를 융합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와 더불어 몰입형 미디어 전시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험적인 시도로 평가되며,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예술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 공연으로 인해 음악과 예술, 공연과 전시의 경계가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허물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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