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대표하는 조명 디자이너 모니카 베가

빛으로 풀어내는 디자인 이야기

모니카 베가의 조명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친구의 건축 조명 사업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면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명 디자인은 그녀의 본업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이 분야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점점 매력을 느끼며 현재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조명 디자이너로서 유럽 곳곳에서 도시와 빛에 관한 연구를 나누고 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조명 디자이너 모니카 베가

모니카 베가(Mónica Vega)는 2008년 몬테레이 디자인 대학(CEDIM)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그 후 우연히 조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 조명 디자인 대학원을 전공했다. 모니카의 디자인 철학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적합한 조명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고 한다. 점차 조명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처음에는 건축을 보조하는 요소로만 생각했던 조명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깊은 빛과 공간에 대한 연구로 발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는 ‘룸룸(LumLum)’이라는 개인 조명 디자인 스튜디오를 세웠는데, 이곳 룸룸은 그녀가 가진 실험적인 상상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연구실의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연구와 실험이라는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스튜디오를 창립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단순한 실현의 즐거움을 넘어 다른 디자이너들과 협력하고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험의 축적과 효과적인 실행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모니카 베가가 조명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 그녀가 가진 디자인 철학과 원칙, 그리고 창조의 과정에서 그녀가 중요시하는 가치들을 더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조명 디자인이 단순히 빛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디자인이 어떻게 우리의 생활 공간과 상호 작용하며, 그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줄 것이다.

조명 디자이너가 된 건축학도

모니카 베가Mónica Vega 프로필 사진
조명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운이 좋았었다고 할까요? (웃음) 저는 멕시코 북부 도시 몬테레이(Monterrey) 출신입니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시간이 남을 때 취미생활로 이미지 작업을 하곤 했지요. 그러다 멕시코 시티로 이주해서 건축조명 사업을 하는 친구의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인터뷰 도중 저에게 조명 디자인을 한 경험에 묻는 친구의 질문에 제가 했던 대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조명 디자인이라… 전등을 켜고 선을 연결하는 것 정도는 할 줄 알지”. 그런 조명 디자인의 ‘조’자도 몰랐던 저의 답변을 듣고도 저를 고용한 것이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그 당시에는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잘 모르고 조명 디자인 업무를 하기 시작했어요. 회사를 다니며 그의 팀 멤버로서 조명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강연을 통해 조명 디자인이 무엇인지, 전기 기사와는 어떤 차이를 가진 전문직인지, 건축에서 조명이 갖는 중요성은 무엇인지 등, 저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주제를 다루는 자리더군요. 그중에서도 빛이 한 공간을 거주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조명 디자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고, 처음에는 건축을 보조하는 요소의 하나로만 생각했던 조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빛과 공간에 대한 연구가 깊어 질수록 오직 조명에 제 모든 시간을 쏟을 정도로 흥미롭고 즐겁게 느껴지며 저의 본업이 되고 말았지요.

국립대학교 거리에서 본 전경. 건축 조명 프로젝트, 멕시코 시티, 2019년
디자이너님의 이력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2008년 몬테레이 디자인 대학교(CEDIM)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그 이후에 우연히 조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멕시코국립대학교(UNAM) 조명 디자인 대학원을 전공하셨네요. 제가 알기로는 이 두 곳의 학풍이 매우 다른데 (예술가 성격이 강하고 개방적인 CEDIM과, 다소 도식적이고 보다 엄격한 UNAM), 각 교육 과정이 디자이너님의 디자인관에 미친 영향을 알고 싶습니다.

네, 잘 알고 계시네요. CEDIM에서는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교인만큼 정말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들과 아티스트를 희망하던 학생들에 둘러 싸여 대학 시절을 보낸 만큼 안정감과 아늑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 각자가 준비한 프로젝트에서 자신 있게 디펜스를 수행하고 건설적인 비판과 생산적인 의견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과정에서 경쟁과 협업의 밸런스를 찾고 자만심을 내려놓았습니다. 간혹 디자인을 하다 보면 나의 아이디어가 항상 우수하다는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럴 때일수록 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순간일 수도 있거든요. 저는 CEDIM에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웠고 오늘날 제 학생들에게 같은 교수법을 적용하기도 하지요. 경청이란 창의적인 과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니까요.

그리고 UNAM에서는 학부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을 얻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했을 당시 저는 이미 건축가로서 커리어를 쌓고 있었고, 조명 디자인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였지요. 이런 신념을 기반으로 UNAM에 입학을 하고 조명 디자인의 거장들을 만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며 제게 부족했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는 네트워크도 매우 중요했기에, 지금까지도 당시에 맺은 선생님들과 동료들의 인연을 이어가며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저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건축과 소재를 직접 접하고 이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을 실전을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빛이란 다양한 사물들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제가 실제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조명에 따라 왜 소재가 달라 보일까? 샘플링에서 본 천이 왜 실제 공간에 사용 되었을 때 칙칙해 보일까? 각 조명이 가진 특징이 무엇일까? 왜 디자이너들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 외부 공간 디자인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인가? 등과 같은 질문들이 마구마구 떠올랐습니다. 저는 UNAM에서 공부하고 배우며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얻어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2015년에 ‘룸룸’이라는 개인 조명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립하셨지요?

룸룸은 제가 막연하게 가진 생각들을 실습화 할 수 있는 연구실의 개념으로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각 프로젝트는 제 아이디어가 현실화 될 수 있는지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요. 아마도 당시 저는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연구와 실험이라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스튜디오를 창립한 것 같습니다. 현재는 실습의 막연한 즐거움 보다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클라이언트들의 니즈를 살피기 위해 경청과 효과적인 실행에 집중하고 있지요.

그러나 여전히 룸룸에서 변치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빛이 가진 속성과 특징들을 탐구하고 이가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스튜디오를 구성하는 모든 멤버들은 마치 예술가이자 과학자처럼 늘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저희 스튜디오를 찾아주는 고객들도 저희가 빛 자체를 가지고 다양한 인테리어 디자인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믿고 있지요.

사회와 도시를 연구하는 빛의 전문가

크라테르(Cráter) 내부 마당. 건축 조명 프로젝트, 멕시코 시티, 2021년
크라테르 내부 식당. 건축 조명 프로젝트, 멕시코 시티, 2021년
디자이너님이 룸룸 스튜디오의 분위기와 환경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도시의 빛 오염에 대한 연구를 꽤 오랜 시간 하셨고 2016년에는 독일 ‘빛 심포지엄 연구 공모전(The Light Symposium Paper Competition)’에서 동일한 연구프로젝트로 우승하셨지요. ‘빛과 도시 오염’ 연구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제 연구의 주제는 빛의 오염이 야간 도시 경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 제기를 하고 연구를 풀어나가기 위해 멕시코 시티의 한 구간의 야간 전등과 광고, 표지판과 같은 넓은 표면의 빛이 야간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봤습니다. 어떤 광고들의 경우, 불법으로 조명 강도를 높여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런 광고들은 공공디자인에서 거리를 밝히는 전등으로 분류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밤거리가 과도하게 밝아지는 현상을 일으키곤 하지요. 그래서 저는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빛나는 간판들을 공공 전등으로 분류하고 관리하지 않을까? 제 연구는 이 질문으로 시작이 되었고 빛의 오염을 감소 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규칙과 규범, 빛의 분류 방식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서 저는 국제 조명 디자인 학회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다양한 국가에서 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지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 주제를 전개 시키셨네요. 그렇다면 공공디자인을 하는 전문가들은 도시 조명을 계획할 때 빛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나요?

일단 조명 디자이너들도 결국 같은 도시의 시민이자 사용자들이지요. 따라서 ‘빛의 전문가’로서 새로운 연구와 이론, 분석과 실현을 통해 정부와 서로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해야만 현재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적극적으로 빛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고민과 제안을 함으로써 새로운 법이 형성될 발판을 마련하고 규범도 점차 변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빛의 배경과 상호작용을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들이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자원, 안정, 시각 임팩트와 시민들의 삶에 빛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니까요.

또한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규칙과 법칙 형성에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보다 더 조화롭고 아름다우며 사회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빛을 창조하고 배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장소의 빛 디자인은 안전, 조형, 효율, 실용성을 시민들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트레칸(Tlecan), 주요 바 모습. 건축 조명 프로젝트, 멕시코 시티, 2020년
트레칸, 조각상 세부 모습. 건축 조명 프로젝트, 멕시코 시티, 2020년
트레칸, 식사 바. 건축 조명 프로젝트, 멕시코 시티, 2020년
도시 조명 디자인을 시민과 사용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각 사회마다 빛과 조명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봅니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이 조명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나요?

물론입니다. 말씀 하셨듯이 미(美)적 기준이 사회마다 다르듯이, 각 문화가 빛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강연에서 자주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몇 년 전에 저희는 ‘트레칸(Tlecan)’이라는 바를 디자인했습니다. 트레칸은 나우아틀(Nahuatl) 멕시코 고어로 ‘불(火)’을 뜻하는데, 이곳의 의미를 더 부각 시키기 위해 저희는 인테리어에 해당 지역의 주황색 대리석을 주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이 재료를 사용하자 전체적인 바에 분위기가 매우 따뜻하게 조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저희는 바의 이름과 지역 재료의 사용을 통해 ‘성대함’이라는 컨셉을 재현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멕시코의 성대함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이 바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마치 깊은 멕시코 밀림의 유적을 탐방하는 것처럼 인테리어를 조성하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강도가 낮고 따뜻한 빛, 대조적인 색감과 주요 건축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한 조명 등을 이용해 엄숙하고 아늑한 멕시코 문화의 분위기를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빛이라는 감정의 언어를 통해 멕시코의 문화를 재해석해서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고자 합니다.

명상 정원 2(Jardín contemplación II), 특정 공간을 위한 설치(예술 작품). 몬테레이, 멕시코, 2023년
방금 빛을 도구이자 감각적 언어라고 하셨는데, 디자이너님의 프로젝트에서 조명의 감각적인 언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조명 디자인을 시각 언어로 보는 데에 있어서는 조명은 어떠한 기호를 보다 멀리서 잘 보이게 할 수도 있는 반면, 빛의 조작을 통해 현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지요. 시간을 더 느리게 혹은 빠르게, 같은 공간을 보다 넓거나 좁게 느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한 적이 있을 거예요, 어떤 빛을 보면 졸리고, 어떨 때는 각성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잖아요. 되도록 제가 조성하는 환경에서는 사용자들이 조명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느끼게 하려고 합니다. 제가 디자인한 공간에서 개개인이 충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 자리에 머무르며 주변에 있는 요소들을 관조할 수 있게 말이지요.

이를테면 ‘명상 정원 2(Jardín Contemplación II)’ 프로젝트에서 조명의 감각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명상 정원 2’는 제 고향 몬테레이에서 진행되었는데, 몬테레이의 여름은 무려 45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는 반 사막의 기후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에 오전 6시 50분의 일출로 시작해 저녁 8시 30분쯤 일몰이 오며 대략 13시간 동안 해가 떠 있는 환경이지요. 이런 말씀을 굳이 드리는 이유는, 이 프로젝트에서는 자연광 외에는 조명을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몬테레이 문화센터에서 소개되었는데, 톱날 모양의 5개 스카이라이트(skylight)를 통해 자연광이 전시장에 들어오게 했지요. 저는 무더운 날씨에 문화센터를 방문하는 관객들이 강한 햇빛을 피해 서늘하고 조명 강도가 세지 않은 곳에서 들뜬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히고 안정된 속도로 주변을 관조할 수 있는 무드를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노란색 불빛을 하얀색 빛으로 바꿔 줄 수 있게 센터의 입구에 파란색 필름을 설치했고, 내부 인테리어에서 조명이 균일하게 퍼지도록 하기 위해 벽면을 하얀색 비닐로 도배했습니다. 결국, 최종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방문객들의 피드백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빛의 반사와 색에 따라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한 셈이지요.

내부 공간에서 좋은 조명 디자인의 기준과 원칙

LABNL 주요 공간. 건축 조명 프로젝트, 몬테레이, 멕시코, 2021년
LABNL 독서 공간. 건축 조명 프로젝트, 몬테레이, 멕시코, 2021년
도시에서 조명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내부 공간에서 좋은 조명 디자인의 기준과 원칙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은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데에 조명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방식의 비결이 있는지요.

사실, 공간과 이 공간의 사용자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다르기 때문에 좋은 조명 디자인의 원칙을 특정하여 말씀드리기가 다소 어렵습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한 공간을 사용해야 하는 인원이 많을 때도 있지요. 그래서 저는 일단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해서 그의 요구상항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 요점들이 있습니다.

자연광을 최대한 고려해서 활용하는 것. 즉, 건물이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공간의 햇빛이 어떤 방식으로 투사되는지를 알아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자 향후 인테리어에 디자인의 장단점을 드러낼 요인으로 작동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부 공간에서 가장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식별한 다음에 각 공간의 용도를 배정하고 그에 따른 조명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방이 더 어두운 편인데, 이 공간을 부엌이나 침실로 사용하기 보다는 여가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더 좋겠지요.

공간의 활용 목적이 무엇인가? 공간과 자연광의 광량과 강도를 분석한 이후, 사용자에게 이 공간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작업실, 서재, 미팅룸… 이런 종류의 방들은 목적이 너무나 다르잖아요. 그리고 설사 목적이 같다고 해도 어떠한 일을 하는지와 사용자의 특징에 따라 그 공간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도 다를 것이고, 활동 리듬에 따라 배치할 조명의 빛과 채도도 달라지겠지요. 서재를 예로 들자면,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 서재에 비해, 공동 도서실의 경우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보다 강도가 세고 차가운 조명을 사용하며 국제 조명 법률에 따른 원칙을 반영하기도 하지요. 반면에 개인 공간을 디자인할 경우, 사용자가 선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으니까 디자인의 자유도가 높습니다.

공간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재에 따른 조명 디자인. 조명 디자인을 할 때 절대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사용될 가구들의 소재를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단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의자나 소파가 있을 경우, 원단 자체의 빛 흡수력이 높기 때문에 조명의 강도를 높여야 하죠. 따라서 각 소재에 빛이 투사되었을 때 어떠한 반응을 일으킬지에 대한 사전 관찰이 매우 중요합니다.

컨셉에 맞는 조명 디자인. 컨셉이란, 하나의 프로젝트를 지배하는 아이디어이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판단이 흐려지거나 노선을 잃었을 때 좋은 결정을 내리게 도와주는 길잡이지요.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조명인가?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분위기에 맞는 디자인인가? 컨셉에 도움을 주는가, 방해하는가? 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컨셉이 확실하게 있을 때, 의뢰인에게 왜 그런 디자인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컨셉은 늘 중요하지요.

디스 이스 더 나우(This is the Now). 특정 공간을 위한 설치(예술 작품), 쿠에르나바카, 멕시코, 2021년
디스 이스 더 나우. 특정 공간을 위한 설치(예술 작품), 쿠에르나바카, 멕시코, 2021년
디자이너님은 연구, 교육, 사업 뿐만 아니라 ‘포스포스FosFos’란 조명예술 스튜디오도 개관하셨지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포스포스는 사업적인 목적이 없는 실험예술 공간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건축 조명을 전공하고 나서 정말 예상치도 못한 가르침을 얻게 되었고, 대학원 과정은 빛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이런 고민과 연구 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조명예술 작품 활동도 했습니다. 단, 이런 작품을 공식적인 프로젝트로 소개하기에는 실험적인 경향이 강해서 감히 사용하지는 못하고, 종종 빛을 주제로 다루는 공동 전시에 참여하기는 했지요. 그러나 다양한 동상, 회화, 설치 예술가들의 작품과 같은 공간에서 제 작품을 소개하다 보니, 제가 전하고자 한 작품의 컨셉이 오염되어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더군요. 따라서 포스포스를 개관하고 제가 직접 섭외한 과학자와 아티스트, 디자이너들과 함께 빛의 다학제 간 연구를 마음껏 펼치고 전시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자 빛의 강도와 느낌을 살릴 수 있었고 그 전에 발생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룸룸에서는 새로운 전등 라인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제가 해온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소재를 겹겹이 사용해서 빛을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룸룸과 포스포스 모두 국제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라서, 자금을 모아 전시를 기획할 예정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새로운 관객들과 클라이언트를 확보하고 제 업적을 보다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과정에서 이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를 찾아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본 인터뷰를 읽어줄 독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제안이나 빛을 연구하는 디자이너들은 언제든지 저의 웹페이지를 통해 연락 주세요. 한국과 더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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