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스튜디오 승호

산통을 겪듯 완공한 건축물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스튜디오 승호의 상식이자 양심 같은 것이다. 스튜디오 승호에게 건축가는 단순히 ‘짓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이다.

[2025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스튜디오 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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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승호 — 9년간의 실무를 거쳐 2021년 스튜디오 승호를 개소했다. 건축주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현장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방식으로 설계에 접근하며, 공예적 이해와 기법으로 새로운 감각을 쌓고 있다. 고전 건축에 관심을 두면서도 다양한 변주에 도전하고 그 안에서 고유함을 찾고자 한다.

스튜디오 승호의 지향점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영원성, 보편성, 숭고함. 다소 클리셰처럼 들리지만 이승호 소장의 이력과 작업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승호는 기본기가 탄탄한 건축가다. 스튜디오 승호를 개소하기 전 국내 굴지의 건축사무소에서 부소장으로 재직하며 실무형 건축가로 충분한 내공을 쌓았다.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수반되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는 건축은 물론 삶에서도 명료한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실무에 전념해야 한다고 학생 시절부터 다짐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엔 건축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적의식도 뚜렷했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미미한 자신감에 예상보다 1년 빨리 독립했으니 큰 오차 없이 계획을 실행한 셈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 개소를 결심하자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골 미용실의 인테리어와 화가인 삼촌의 작업실 겸 주택 설계였다. 우연치 않게 프로젝트를 하나둘 맡은 스튜디오 승호는 설계 5년 미만의 사무소임에도 일이 끊이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건축주가 새로운 건축주를 만나게 해줬다. 길게는 다섯 차례까지 소개에 소개가 이어졌다. 이승호 소장은 그저 운이 좋았다며 겸연쩍게 말했지만 시간과 예산을 담보로 한 지인 추천은 실력에 대한 명확한 방증이었다. 스튜디오 승호를 신뢰한 몇몇 건축주는 건축가의 자율도를 100% 존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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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소장은 학습에서 비롯되는 답습을 스스로 경계했다. 에고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건축가가 진솔하지 못한 결과물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다. 정석에 가까운 설계 방향이 떠올라도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면 철저히 배제했다. 차라리 현재의 어설픔 또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폭넓은 가능성을 열어둔 채 지금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갔다. 덕분에 스튜디오 승호의 작업 범주는 점점 넓어졌다. 주택, 사옥, 쇼룸 등의 신축 및 증축 프로젝트는 물론 부동산 중개사무소 설계까지 맡았다. 최근에는 〈지PPP〉전을 통해 ‘단일체(monolith)’, ‘선’, ‘빛’을 주제로 한 개인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튜디오 승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건축가로서의 자아에 충실한 프로젝트와 건축적 강박에서 해방된 프로젝트. 디에디트 사옥이 전자라면 모던애니멀 사옥과 아파트프롬댓 쇼룸은 후자에 가깝다.” 건축과 인테리어의 경계를 넘나들기에 스튜디오 승호의 정체성이 의뭉스럽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승호 소장에게는 모든 부류의 작업이 결국 건축가로서 고유함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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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건축물에 33㎡ 규모의 공간을 증축한 프로젝트다. 일조권 사선제한 법규의 틀 안에서 최대 면적을 고려해 입방체 형태를 도출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자연광을 끌어들였다. 빛과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의 볼륨이 달리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 김한얼

건축 초년생 시절부터 10 년 뒤의 모습을 구체화했던 그는 개소 이후 다시 10 년 너머를 내다보게 됐다. “때로는 건축이 부업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을 멈추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업력이 쌓일수록 사고가 확장되는 한편, 들뜬 기운이 무뎌진다는 걸 알기에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달리 말해 10 년 동안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보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한 강연에서 “이미지가 범람하고 AI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건축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승호 소장의 답은 ‘땅을 읽는 일’이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부는지, 빛은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는지, 주변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할 때 편안함을 주는 스케일을 가늠하고 본질에 가까운 건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건축가는 단순히 ‘짓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이었다. 스튜디오 승호의 건축이 기본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통을 겪듯 완공한 건축물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스튜디오 승호의 상식이자 양심 같은 것이었다. 먼 훗날 건축가 이승호가 아닌 인간 이승호로 기억되고 싶다던 그의 진심 어린 토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건축에 대한 어떤 순수로 해석되었다. 건축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즐겁고 의미 있는 생태계를 탐색하는 그의 10 년 후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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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평 같은 70평’이라는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매트-빌딩(mat-building) 개념을 적용해 단일한 박스가 내·외부, 상·하부 및 주변 환경으로 확장되도록 설계했다. 사진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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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윤선웅(에스플러스튜디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9호(2025.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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