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김하늘

김하늘은 자신의 역할이 ‘레시피를 제조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완결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가능성을 제시하는 디자인을 지향한다고.

[2025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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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 지속 가능성을 연구하는 한국의 디자이너. 계원예술대학교 리빙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대표작인 폐마스크를 활용해 제작한 의자 ‘스택 앤 스택’이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BBC 등 전 세계 외신에 소개되며 주목받았다. 나이키, 롤스로이스, CGV 등 유수의 브랜드와 협업해 버려지는 소재 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폐기물을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늘어난 수만큼 작업 방식도 다채로워졌다. 단순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형태와 쓰임을 부여해 고유의 미학을 구축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폐마스크로 만든 의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 김하늘이 바로 그 흐름을 가속화한 이 중 하나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으레 따라붙곤 하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깨고 직관적이면서도 유쾌한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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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마스크를 소재로 한 의자 ‘스택 앤 스택’.

2020년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스택 앤 스택’은 수천 장의 폐마스크를 거푸집에 녹이고 식히는 과정을 거쳐 완성한 단단하고 질긴, 내구성이 강한 의자다. 폐기물로 가구나 오브제를 디자인하는 일이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지만, 시의성 있는 소재를 발 빠르게 탐구해 새로운 물성의 작업물을 구현하는 기지를 보여주면서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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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패션 브랜드 래코드와 함께 폐에어백의 원단을 염색해 만든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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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의 폐박스를 활용해 만든 의자.

팬데믹의 여파가 지속되던 2022년 초까지 마스크를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이다가, 이후 다양한 브랜드와의 잇따른 협업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기업마다 골칫거리인 폐기물이 있기 마련. 플라스틱 공병부터 비닐 쇼핑백, 박스 종이, 알루미늄 캔, 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산업군에 따라 버려지는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재료의 속성을 연구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곧 디자이너의 역할이기에 그는 맨땅에 헤딩하듯 다양한 산업 폐기물을 탐구해갔다. “이론부터 탐구할 때도 있고, 무작정 만지거나 냄새를 맡아보는 것에서 출발할 때도 있다. 찢어도 보고 태워도 보면서 물성을 체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정형화된 틀을 깬 접근 방식이 의외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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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의 폐스크린을 활용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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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로 CGV의 영화관 스크린으로 만든 램프가 있다. 스크린을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스크린 뒤편의 스피커 사운드를 투과시켜 화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김하늘은 구멍 뚫린 스크린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타공부로 뿜어 나오는 사운드를 빛으로 치환한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포터블 램프를 개발했다. “폐소재는 목재나 금속처럼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기에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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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제품을 재활용해 만든 복싱 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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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소재에도 주저함이 없는 그의 태도는 나이키와의 협업에서 빛을 발했다. 나이키 ISPA 컬렉션의 신발 밑창에 쓰는 재료인 TPU(폴리우레탄 탄성체)를 연구해 복싱 글러브와 펀칭백을 디자인했다. 신소재인 TPU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특성에서 힌트를 얻어 복싱이라는 스포츠와 접목한 것이다. 섬유화된 TPU 원단을 재봉해 완성한 작품은 나이키랩이 주최한 〈Reversion: 회귀〉전에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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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와 협업해 폐마스크를 소재로 제작한 인센스 홀더 베이스.

이렇듯 특정 소재나 가공 방식에 국한하지 않고 문어발처럼 작업 영역을 넓혀가는 김하늘은 자신의 역할이 ‘레시피를 제조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완결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가능성을 제시하는 디자인을 지향한다고. 그렇기에 김하늘의 작업 언어를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분명한 건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그의 작업물에 호응하는 또 다른 움직임이 생겨날 거란 사실이다.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김하늘의 행보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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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모아 만든 오브제 ‘구’.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9호(2025.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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