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전시 기획자 김미연 : 한국 공예와 낯선 예술을 새롭게 메타포하다
김미연 아엘시즌⋅메타포 서울 대표
대개의 전시는 작품에 대한 평가가 오가지만 메타포 서울이 기획한 전시는 조금 다르다. 전시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작품과 전시가 함께 호평을 받는 일, 남다른 기획자 김미연 대표 덕분이다.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
editor’s note
김미연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메타포 서울(Metaphor Seoul)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엘시즌(al_season) 대표이자 전시 기획자입니다. 지난해 11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의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초월: 삶, 시간과 공간을 잇다〉전의 예술 감독을 맡아 한국 무형유산 장인들의 작품을 생성형 미디어 아트와 접목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통공예와 아르헨티나가 문화적 교감을 나누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3월에 진행한 KTX 개통 20주년 기념 전시를 비롯해 한지가헌(구 한지문화산업센터)의 기획전시를 2년간 맡아 연출하며 아카이빙을 바탕으로 감각적 디자인을 펼쳐내는 솜씨도 인정받았습니다. 전시 씬에 혜성같이 나타난 듯하지만 다채로운 이력을 따라 자신만의 궤도를 그렸습니다. 정체성을 찾아 머무르기보다 모호한 경계의 긴장성을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으로 삼은 별난 크리에이터. 감각적 사유들이 응축되어 시간과 시대의 경계가 담긴 공간 메타포 서울 갤러리에서 김미연 대표를 만났습니다. 겨울 햇살이 부서지던 오후 삼청동에서.
PLUS 1.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펼쳐진 모던 한국
지난 11월 한국의 국가무형유산 장인시간분들이 만든 전통공예품을 지구 반대편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소개하는 전시가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한국인에게도 이제는 일상에서 멀어진 전통공예품을 해외, 그것도 30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타국 아르헨티나에서 소개하는 일이 처음에는 까마득했습니다. 국가유산청에서 주관하고 국가유산진흥원의 ‘한국무형유산주간’ 사업으로, 우리나라 무형유산의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해외에 알리고,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큰 목표를 가진 전시라 그 무게감도 더 크게 다가왔어요.
그 무게감을 이겨낸 방법은요?
〈초월: 삶, 시간과 공간을 잇다〉라는 전시 제목처럼 많은 것을 초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제가 유학 생활을 했던 프랑스나 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아니라 아쉬웠어요. 하지만 전시 6개월 전 사전 현장 답사를 다녀오며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한국 전통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아르헨티나를 직접 만나고 나니 사명감 같은 게 솟구치며 좋은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김미연 기획자가 생각하는 좋은 전시는 무엇인가요?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언어, 인종, 문화, 세대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감각으로 느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향이나 사운드, 영상 등 전시에 따라 다양한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적용하는 디자인하려 합니다. 관람객이 전시장을 떠난 후 오감을 통해 잔상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죠.
〈초월: 삶, 시간과 공간을 잇다〉 전시에서는 어떤 오감 요소를 적용했나요?
주인공은 전통공예품이고 특별출연은 미디어 아트였습니다. 영상 매체를 활용한 거죠.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디어 아트스트 이석 작가의 생성형 미디어 아트를 적용했습니다. 빛의 투과값과 반사값을 활용한 빛의 산란을 투명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구현한 작품으로 한국 전통미와 정서를 미디어 매체로 옮기는 시도였어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은 물론 시제(時際)를 끊임없이 허물고 연결 짓는 의미가 담겨 있고 무엇보다 전시 작품 중 하나인 ‘나전궁모란 당초문함’의 자개 텍스처와 색감에서 착안한 생성형 미디어 아트를 포함해 특별했습니다.
전통공예품 전시에 첨단 기술인 생성형 미디어 아트를 함께 구성한 점이 특이하네요.
사전 현장 답사를 갔을 때 한국문화원 직원들과 인터뷰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한국을 접하는 방식이 영상 콘텐츠이기 때문에 한국과 연결 시키기에 친숙한 매체라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생성형 미디어 아트를 통해 가장 현대적인 것과 옛 것을 맞닿게 했을 때 그 아름다움이 증폭될 거 같았고요. 문제는 비용이었는데 다행히 LG로부터 디스플레이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무사히 전시를 진행할 수 있었고 관람객의 발걸음도 유독 오래 머물러 뿌듯했습니다.
전시 공간을 전통 가옥의 사랑채, 안채, 누마루로 구성해 전통공예품을 소개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세상의 모든 공예품은 쓰임을 위해 만들어졌잖아요. 이는 동서양이 가진 공통점이기에 생활 양식을 담은 집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고 각 공간에서 사용한 공예품을 배치한다면 다른 문화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랑채를 서재로, 안채를 침실로, 누마루를 테라스로 적용하면 그들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여겼죠. 그렇게 남성의 취향과 생활 방식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랑채에는 소목장, 벼루장, 탕건장, 입사장 등이 제작한 작품 87점을 두었고, 여성의 공간인 안채에서는 침선장의 혼례 보자기와 매듭장의 비취 향갑 노리개, 화각장의 장신구함 등 기품 넘치는 33점의 작품을 놓았습니다. 누마루에는 선자장의 부채, 악기장의 거문고, 채상장의 바구니, 궁시장의 활과 화살 등 풍류와 흥취의 기상을 담은 28점의 작품을 선보였어요.
PLUS 2. 한국 공예를 메타포하는 김미연의 방식
아르헨티나 전시를 비롯해 최근 3년 간의 활동을 보니 한국 공예 관련 전시가 많더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먼저 ‘한국’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부터 떠오르네요. 2018년에 제가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 브랜드인 ‘아엘시즌’으로 메종&오브제에 참가했는데 해외 관람객들이 저희의 국적을 궁금해했어요. 그들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며 오히려 외국인들이 구분하는 일본의 예리함, 중국의 웅장함과 다른 한국에 대한 인식과 특징을 정할 수 있었는데 바로 ‘중용’이었습니다. 숨 쉴 수 있는 여백과 말그대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의 감각이었어요. 그때 이후로 이 지점을 찾고 표현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중용의 지점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여전히 찾아가는 과정일 테고 정답이 있을 수도 없을 거고요. 어떤 방식으로 실체적 접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지점이 조형적으로 드러난 것이 우리의 전통공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예가의 솜씨 못지 않게 그분들의 단단한 마음씨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해봐야, 몸으로 체득해야 제대로 알 수 있겠구나 싶었죠. 한지를 소재로 전시를 해야 할 때는 의령에 계신 신현세 선생님에게 한지 뜨는 방법을 배웠고, 한지에 사용할 먹이 궁금해 한상묵 선생님을 찾아가 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여름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명주에 자연 염색을 하기도 하고, 이천에서 벼루를 직접 깎기도 했어요. 공예품은 자연으로부터 재료를 얻는 것부터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제가 스스로 오감을 통해 한국 전통 공예를 익히고 소화해야 기획도 전시도 탄탄하고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전시 기획을 위해 전통공예를 직접 배우다니 놀랍습니다. 그러고보니 2022년 3월 갤러리 로얄에서 열린 〈서재: 향유의 방〉 전시에서 벼루를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공예 전시를 많이 보았지만 벼루는 처음이었거든요.
여러 공예 중에서도 특히 벼루에 대한 마음이 각별해요. 한국 공예에 빠져들 게 만든 주인공이거든요. 8년 전 석조 작업을 하기 위해 먹돌을 구하러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경기도 이천에 계신 벼루장 신근식 선생님의 작업실이었어요. 그때가 12월이었는데 선생님은 올해 첫 손님이라며 반겨주셨죠. 그 말씀에 뭉클해져서 통장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서 돌 대신 벼루를 구입했고, 벼루를 깎는 작업까지 꽤 오래 배웠습니다. 제가 조각 전공이라 더 마음이 갔나봐요.
먹이나 벼루, 한지 등에 대한 문헌이나 기록도 있을 텐데요. 직접 배우는 것이 더 나은가요?
애석하게도 전통공예를 기록한 문헌이 풍성하지 않거니와 먹, 벼루, 한지 등은 옛 기록이 특히 없다시피 합니다. 전시를 위해 공예를 익히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해 전승 취약 공예에 더 애착이 갑니다. 저 혼자라도 관심을 가져서 전통공예가 사라지는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어요.
PLUS 3. 시간의 향기가 배인 여정
현재 운영하고 있는 ’메타포 서울’과 ‘아엘시즌’은 각각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메타포 서울’은 전시, 공간, 브랜딩 등 기획과 디자인, 연출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전천후로 맡아서 진행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입니다. ‘아엘시즌’은 제가 해석하는 한국 미감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고요. 이를테면 비누, 도자기, 패션 등이죠. 최근 아엘시즌 운영이 주춤했는데 2025년에는 온라인 사이트 개편을 시작으로 제품 라인업을 충실히 갖추고 해외에 소개하는 데도 힘쓸 예정입니다. 삼청동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메타포 서울’에서는 저희만의 기획 전시와 대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아엘시즌의 옷과 도자기, 향 제품을 애용했던 저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네요. 아엘시즌의 뜻도 궁금해졌어요.
영문으로 al_seoson인데 al은 all을 줄인 것으로 계절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계절에 집중하게 된 것은 뚜렷한 사계절이야말로 한국의 가장 큰 특징이고 매력이라고 여겨서입니다. 파리에서 10년간 살면서 한국에 잠시 들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계절의 변화였어요. 한국만의 라이프스타일은 사계절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래서 각 계절의 색, 향취, 풍경 등을 제품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한국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아티스트 레지던시 운영인 걸로 알고 있어요. 어쩌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시작하신 거죠?
파리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패션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어요. 10년 만에 돌아와 해방촌에 자리 잡고 2층 양옥 건물에서 ‘아스트 스튜디오’라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시작했죠. 작품 활동에 매진했으면 하는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 알바나 미술학원 강사 같은 일을 해야 했고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워보였어요. 제가 스튜디오로 사용할 공간을 쪼개어 작가들에게 나누고 최소한의 운영비만 받았고 레지던시 작가들의 생계에 적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외부에 맡길 다양한 샘플 작업을 의뢰하고 함께 제작하며 아엘시즌을 론칭하게 되었어요.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지금도 흔하지 않은 개념인데 운영이 어렵지 않았나요?
파리나 유럽에서는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많고 그 속에서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가 탄생하는 것을 봐온 터라 한국에서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어요. 무모하게 시작했고 금전적 운영은 어려웠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메타포 서울과 아엘시즌의 든든한 주춧돌이거든요. 이때 저의 주 수입원은 패션 브랜드 컨설팅이어서 끌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PLUS 4. 경계의 긴장성
전시 기획자로 알고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패션 브랜드 컨설팅, 라이프스타일 제품 개발과 브랜드 운영, 공예 및 공간 디자인 컨설팅 등 다채로운 이력으로 활동하셔서 혼란스럽습니다. 정체를 밝혀주세요(웃음).
저는 경계를 넘나드는 크리에이터입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파리에서는 랑방, 이자벨마랑 등 패션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순수미술과 공예를 넘나들고 브랜드와 전시 기획, 컨설팅 등 재미있고 아름다운 일들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랄 뿐이에요. 굳이 정체성을 찾아야 할까요?
누군가는 모호하게 생각하고 저처럼 혼란스러워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모호함도 정체성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파란색과 빨간색이 모였을 때 전부 섞여서 보라색이 되는 것보다는 살짝 파랗기도 하고 어느 정도 빨갛기도 한 그런 모호함이 좋아요.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전문가가 많은 요즘 저까지 분명한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미연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나오게 하는 것도 재밌고요. 여러 분야의 경계에 서서 그 긴장성을 예술로 전하는 것도 아엘시즌과 메타포 서울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계에 서 있는 것이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심연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외부에서 보이는 경계가 명확하다고 해서 내부까지 그럴 필요는 없죠. 저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를 언어 삼아 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패션도 인체를 조각하는 한 분야라고 여겼고, 패션을 공간과 소리 등과 함께 디자인하면서 전시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거 같아요. 브랜드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도 숍의 개념이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듯 내러티브를 담아 연출하고 관람객을 초대하듯 손님들을 대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저에게 진짜 전시를 맡겨주시는 클라이언트들이 생겼고 어느덧 전시 기획자가 되었네요. 한국의 유산을 해외에 소개하는 뜻깊은 전시의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도 감개무량하고요.
2025년에도 다양한 행보를 선보이실 거죠?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다가올 3월에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디렉팅을 맡았습니다. 이갑철 사진가의 안동 풍경과 김성철 도예가가 백자로 빚은 호롱이 어우러지는 전시가 될 거예요. 이번에도 사진 예술과 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장성을 잘 표현하고 싶습니다. 올해 후반기에는 제가 작가로 분해 파리에서 한지 작품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여전히 정체성은 모호하죠?(웃음)
PLUS LIST
김미연 대표에게 위로와 영감의 원천인 공예품 3
- 유태근 작가의 사발
- 신현세 한자장의 의령 한지
- 신근식 벼루장의 벼루
크리에이터에게는 영감의 샘이 마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건조해질 때는 손길 닿는 곳에 공예품을 두고 어루만지며 샘이 마를 새라 영감을 채운다. 조각을 전공하며 생긴 습성이자 습관 같은 것으로 물성이 손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위로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태근 작가가 흙으로 빚어낸 사발의 무심한 감촉, 신현세 한지장이 직접 키운 닥나무와 황촉규를 수많은 공정을 거쳐 뽀얗게 떠낸 한지의 온기, 한평생 돌을 보듬고 깎으며 외로운 길을 걸어온 신근식 벼루장의 단단한 마음이 담긴 벼루. 이들의 응원이 손과 손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이다.
TIPPING POINT
분야와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나? 김미연 대표는 머리가 좋은 걸까? 완벽한 비서를 가졌나?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여러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깊은 대화’가 답이었다. 다소 생뚱맞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양한 사연과 철학, 가치가 혼재하는 작품과 작가, 클라이언트와 관람객, 콜렉터까지 아우르는 지혜다. 한 명마다, 혹은 한 팀마다 다채롭게 품은 이야기를 듣고 맥락을 엮는 것이다. 깊은 대화를 통해 다듬어진 기획의 메시지는 뚜렷해질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 번 인연을 맺은 이들과 오래 일하는 편이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척하면 척이니 일이 한결 수월해지고 본질만 파고들 수 있다. 물론 대화 속에는 언쟁도 있지만 깊어지고 돈독해지는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