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윤곽을 그리는 일

넨도 개인전 〈아웃라인 인 비트윈〉

대만 진 미술관(Qin Art Museum)에서 넨도의 전시가 오는 6월 1일까지 열린다. 넨도의 작업을 ‘윤곽’이라는 키워드로 한자리에 모아 조명한다.

사물의 윤곽을 그리는 일

지난해 12월 새롭게 개관한 대만 진 미술관(Qin Art Museum)에서 넨도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구마 겐고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주변 녹지와 상호작용을 염두에 둔 유기적 형태가 특징인데, 전시 공간도 그러한 특성을 공유한다. 외부 환경과 단절된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지형처럼 불균일한 공간에서 작품을 탐색하도록 계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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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의 만화 의자’. 평면과 추상의 매체인 만화의 선에 착안해 의자를 디자인했다. 사진 勤美術館

방문객을 창의적 사고의 과정으로 이끄는 몰입형 환경을 조성해 관람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미술관의 취지에 따라 개관전은 전시 공간의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기획과 디자인이 필요했다. 〈아웃라인 인 비트윈Outlines in Between〉전을 연 배경이다. 큐레이팅과 전시 디자인을 맡은 넨도는 ‘실루엣’ 개념을 키워드로 작업을 선별하고 공간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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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되지 않은 재료’.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표현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윤곽만 프린트했다. 사진 勤美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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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의 물체를 표현한 작업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진 楊承

넨도의 작업에서 ‘윤곽’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물의 윤곽을 흐리거나 확대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의 경계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전시는 ‘비, 구름, 종이, 선, 돌’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넨도의 디자인적 사고를 되짚는다. 대표작인 ‘인쇄되지 않은 재료’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표현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윤곽만 프린트해 종이의 물질성을 탐구한 작업이다. 2016년 도쿄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넨도의 작업 세계를 대변한다고 평가받는다. 공간 한쪽에는 오직 윤곽만으로 종이 봉지, 우유 팩, 종이컵, 오라자미 인형 등 3차원의 물체를 표현한 작업물이 놓여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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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친 구름’. 언뜻 흰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비행기나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흐릿하고 반투명한 풍경을 자아내는 구름의 특성을 시각화했다. 사진 楊承

또렷한 윤곽으로 사물을 그려낸 작업이 있는가 하면, 윤곽을 흐려 사물의 속성을 담아낸 작업도 있다. 언뜻 흰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비행기나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흐릿하고 반투명한 풍경을 자아내는 구름의 특성에 착안한 ‘뭉친 구름’이 대표적이다. 얇은 스테인리스 타공판을 사용해 볼륨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 구름을 시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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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천의 질감을 돌에 부여한 ‘물보다 부드러운 돌’. 사진 楊承

이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비를 나타내는 일본어 단어를 형상화한 ‘레인 보틀’, 평면과 추상의 매체인 만화의 선을 의자로 표현한 ‘50개의 만화 의자’, 물과 천의 질감을 돌에 부여한 ‘물보다 부드러운 돌’ 등 일상 속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다채로운 작업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는 그간 단편적으로 만나온 넨도의 작업을 ‘윤곽’이라는 키워드로 한자리에 모아 작업 여정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0호(2025.02)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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