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위의 새로운 이정표, 처인 휴게소

세종-포천 고속도로 처인 휴게소의 디자인 스토리

고속도로 한가운데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원형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용인 북부, 고속도로 초입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한국에서 세 번째로 선보이는 상공형 휴게소인 처인 휴게소이다. 건축물을 탄생시킨 해마종합건축사무소에게 디자인 스토리를 물어보았다.

고속도로 위의 새로운 이정표, 처인 휴게소

2025년 1월 1일, 세종-포천 고속도로 중 안성-용인-구리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와 동시에 고속도로 한가운데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원형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용인 북부, 고속도로 초입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한국에서 세 번째로 선보이는 상공형 휴게소인 처인 휴게소이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능성을 겸비한 이 건축물은 해마종합건축사무소의 손길에서 탄생했다. 그들을 만나 처인 휴게소의 디자인 스토리부터 건축 철학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Interveiw with

해마종합건축사무소 전략설계1본부, 건축설계 1본부

신동하 본부장, 김상윤 실장, 김성환 이사, 피우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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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천 고속도로 중 안성-용인-구리 구간에 위치한 처인 휴게소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 처인 휴게소를 디자인하실 때,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휴게소라는 공간은 24시간 시민들에게 열려 있지만, 낮과 밤의 모습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이 어떻게 변하고, 그 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어떤 재미와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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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 휴게소 초기 디자인 콘셉트 안. 초승달과 보름달의 형태를 결합하며 디자인을 했다.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달의 시간적, 형태적 변화를 특징으로 모티프를 삼아 진행했습니다. 달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지만, 낮에는 태양의 빛에 가려져서 인지를 못 할 뿐이잖아요. 그리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초승달, 반달, 보름달 등 형태를 바꾸며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이 휴게소가 갖추어야 할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통해 휴게소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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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 휴게소 초기 디자인 콘셉트안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보름달이라는 하나의 큰 원과 초승달, 이 두 가지의 형태가 결합하는 느낌으로 각각의 특성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보름달과 초승달의 특성을 가진 각각의 공간이 서로 다른 개념으로 존재하지만, 원이라는 공통된 개념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순환되는 모습을 구현하려 했습니다.

— 달에서 영감을 받은 원형의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원형 디자인이 가지는 이점은 무엇인가요?

원형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이점 때문만이 아니라, 초기 모티프인 달의 형상과 환경적 요인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답사 때 휴게소가 들어설 장소가 산에 위치해 있어 높은 지대에 올라 본 주변 풍경은 탁 트인 녹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곳에 원형 건축물이 세워졌을 때 사용자들이 360도로 펼쳐진 파노라마의 조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통합형 휴게소는 모든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한 공간으로,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든 조화롭게 대응할 수 있는 형태가 필요했어요. 달을 모티프로 한 콘셉트와도 어우러지는 원형 구조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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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 휴게소 조감도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기능적으로도 상공형 휴게소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땅과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대지 활용도를 높일 수 있고, 양방향 통합형 구조로 설계해 어느 방향에서 진입하든 순환 동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선의 흐름 역시 정체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이용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이점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원형 디자인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기능, 공간적 요구를 모두 충족하는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해마가 디자인했던 건축을 살펴보니 휴게소나 역사 등 교통 관련 시설에는 곡선형 디자인이 많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 관련 시설에 곡선형 디자인이 많이 적용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교통시설이라고 모두 곡선형으로 의도하고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목포역은 당시 간척지라는 환경적 특성을 고려해 직선형 건축물을 디자인했습니다. 디자인할 때 콘셉트, 주변 환경과 여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 진행하니까요.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진행했던 교통 관련 시설을 보면 곡선형의 디자인이 적용된 곳이 많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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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 목포역 시설개선사업 조감도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유선형 건축물은 직선형보다 큰 장점이 있습니다. 직선형 건축물은 경계가 명확해져 상상력이나 시각적 확장이 제한될 수 있지만, 유선형은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간에 대한 인지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점은 교통, 물류 시설에서 중요한 인지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죠. 사용자가 교통 시설을 이용할 때, 그 시설이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어야 하는데 유선형 건축물은 이를 효과적으로 돕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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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 휴게소 조감도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또, 교통 인프라 시설 같은 경우는 대지가 넓어 디자인에 대한 제약이 적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넓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더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곡선 형태의 건축물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공공시설이다 보니, 건축이나 디자인에 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제약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공공시설을 디자인하고 설계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초기 디자인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번 처인 휴게소 프로젝트는 세종-포천 신규 노선으로 교통량이 많을 것으로 예측되어, 도로공사 측에서도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초기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상공형 디자인이다 보니 하부 지지대의 구조 검토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안전만 고려한다면 지지대의 크기는 무한정 커져야 하겠지만, 디자인 콘셉트도 유지해야 하고, 도로 위에 건축물이 위치한 구조이기 때문에 대형 차량 통행에 필요한 높이를 확보해야 했죠. 이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안전과 디자인을 모두 챙기기 위해 구조 사무실과 함께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초기의 디자인이 유지되고 온전한 건물로 완성되기까지,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발주처 한국도로공사와 많은 기술적 도움을 주신 건설사업관리단, 시공사 관계자분들께 이 인터뷰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 한국 최초의 상공형 휴게소인 내린천 휴게소도 해마에서 설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인 휴게소를 설계할 때, 내린천과는 어떤 디자인적 차별점을 두려고 했나요?

내린천 휴게소는 공간 내부에서 두 방향의 조망을 고려해야 했어요. 첫 번째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의 뷰를, 두 번째로는 내린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모두 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각형 형태의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도출되었습니다. 동선의 흐름 또한 정체되지 않도록 수직적, 수평적으로 순환되게 입체적으로 풀어낸 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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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상공형 휴게소라고 불리는 내린천 휴게소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반면, 처인 휴게소는 콘셉트에 기반한 디자인이 90퍼센트였습니다. 원형 디자인이 가진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임팩트가 컸기 때문이죠. 휴게소가 이정표로의 역할을 하도록 강렬한 형태적 존재감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처인 휴게소는 메인 고속도로 초입에 위치해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통행자가 멀리서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두 휴게소의 성격도 뚜렷하게 다릅니다. 내린천 휴게소는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한 내향적이고 차분한 공간입니다. 요즘 흔히들 많이 이야기하는 MBTI에 비유하자면 I 성향인 거죠. (웃음) 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반면, 처인 휴게소는 MBTI를 비유하자면 E 성향, 외향적이고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공간으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 공공 건축 분야를 많이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공 건축에 많은 도전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희 회사는 공공 건축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건축을 진행하고 있지만, 공공 건축을 진행하며 설계와 디자인에 대한 시각이 넓어지는 장점을 경험하고 있어요. 공공시설은 다양한 연령대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사용자 중심의 계획이 필수적입니다. 대중적인 디자인 요소는 무엇인지, 어떻게 설계해야 공간을 더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죠. 또, 공공 건축은 회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거, 상업시설 등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이 있지만,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것은 공공시설이기 때문입니다. 공공 건축에서 습득한 경험을 확장하며 민간 건축물이나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중,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프로젝트를 두 건만 소개해 주신다면.

처인과 내린천 휴게소가 아무래도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프로젝트이지만, 제외하고 뽑아보자면 ‘세종시 4-1생활권 복합 커뮤니티 센터’와 현재 진행 중인 ‘도봉세무서 복합 개발 사업’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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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4-1 생활권 복합 커뮤니티센터 조감도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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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시옷)을 모티프로 삼아 완공된 4-1 생활권 복합커뮤니티 센터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세종시 4-1 생활권 복합 커뮤니티 센터’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용하는 커뮤니티 시설로 ‘소통의 소리’라는 콘셉트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건물의 매스는 한글 자음 ‘ㅅ(시옷)’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센터는 공원과 주거 단지 사이의 결절점에 있고, 이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시옷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보니 건물 하부가 자연스럽게 비게 되는데, 이 공간을 패스웨이(Passway)로 만들어 소통의 공간을 구현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콘셉트나 형태적으로 애정이 가는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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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세무서 복합개발사업 조감도 사진 제공 해마종합건축사무소

그리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도봉세무서 복합개발사업’은 국유지에 국가의 공공청사와 지자체의 생활 SOC 시설을 함께 건축하는 최초의 프로젝트입니다. 기획재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아름다운 공공청사 만들기’의 일환으로 선정된 프로젝트로, 딱딱한 행정 업무 시설을 탈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획일화된 공공청사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공공성과 친근함을 동시에 갖춘 건축물로 디자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건축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건축은 측정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부터 시작되며, 그 시작점에는 물리적인 형태나 구조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측정 가능한 것들을 가지고 설계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기능과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서, 물리적인 형태로 구체화된 건축물을 만들어냅니다. 공간이 완성되면 저희가 만들어낸 측정 가능한 건축물은 다시 무형의 가치로 환원됩니다. 마치 자연이 순환하는 것처럼요.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유형의 건축물로, 그리고 건축물이라는 유형의 가치가 다시 무형으로 돌아갈 때, 사회에 긍정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건축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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