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2025년 스타일 트렌드 10
‘옴니보어’부터 ‘스칸트’까지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패션계에도 이런 사회적 기조를 반영한 새로운 흐름이 엿보인다. 2025년을 관통할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열 개를 정리해 보았다.

푸른 뱀의 해가 밝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패션계에도 이런 사회적 기조를 반영한 새로운 흐름이 엿보인다. 반면 뱀은 예부터 재물을 상징해왔다. 길고 미끈한 몸에 구불구불 움직임이 내는 역동성도 기운차다. 새해에는 뱀에 해에 걸맞은 풍요로운 멋이 곳곳에 똬리를 틀길 바라며 정리했다. 2025년을 관통할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열 개.
올해의 소비 트렌드, 옴니보어
국내 트렌드를 심도있게 고찰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주목할만한 키워드를 발견했다. 옴니보어(Omnivores). 이 낯선 단어는 올해의 소비 트렌드를 정의하는데, 시대적 온도를 잘 드러낸다. 라틴어인 옴니보어는 직역하면 ‘잡식성’이라는 뜻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나이, 성별, 인종, 소득 수준 등 특정 기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소비의 전형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단어다.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며 전통과 현대, 고가와 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상반된 요소를 조화롭게 추구한다. 특정 브랜드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취향과 경험, 스토리텔링의 가치를 더 높이 산다. 고급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도 길거리 음식을 좋아하고, 샤넬 가방을 들고 다이소 쇼핑을 즐기는 등 고정관념을 벗어나 분방하게 소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옴니보어식 소비는 마케팅 트렌드도 변화시키고 있다. 패션계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음식, 미술,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늘리고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등 멋의 스펙트럼을 보다 촘촘하게 넓히고 있다.
올해의 컬러, 모카 무스
색채연구소 팬톤은 매년 올해의 컬러를 선정해 발표한다. 이는 단순한 색에 그치지 않는다. 미적 가치는 물론 사회적 및 경제적 상황, 문화적 트렌드 등 시대상을 반영한다. 더불어 한 해의 예술분야를 아우르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 그렇게 선정된 2025년 올해의 컬러는 깊고 진한 갈색 톤의 모카 무스(Mocha Mousse)다.




작년 하반기 패션 신을 강타했던 브라운 컬러의 연장선이다. 모카의 풍부함과 무스의 크리미함이 어울린 모카 무스는 토양의 따뜻함과 초콜릿의 쌉싸름한 풍미까지 두루 지닌 묘한 매력의 갈색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평온한 컬러가 강세를 보이는데, 모카 무스도 안정감과 묵직함, 감미로운 감성을 풍긴다. 패션 신에서는 차분하고 우아한 드무어 룩에 활용하기 제격이며 베이지, 카키, 그레이 등 뉴트럴 톤과 섞으면 더욱 세련된 모카 무스를 걸칠 수 있다.
올해의 디자이너, 마티유 블라지
작년 6월 버지니 비아르가 떠난 후 소문만 무성했던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가 드디어 채워졌다. 에디 슬리먼, 사라 버튼, 자크 뮈스 등등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던 톱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당당히 왕좌를 꿰찬 주인공은 바로 마티유 블라지. 올해 패션 신을 달굴 가장 뜨거운 이름이 될 것이다.



미티유 블라지는 라프 시몬스를 시작으로 메종 마르지엘라, 셀린느, 캘빈 클라인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했으며, 2021년 보테가 베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보테가 베네타의 디자인에 예술적 미감을 가득 불어넣으며 브랜드를 단숨에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소재의 풍부함을 유연하고 세련되게 구현하는 그의 탁월한 재능은 이제 샤넬의 오랜 유산을 어루만진다. 과연 정체기에 빠진 샤넬은 어떤 새로움을 입을까? 오는 10월 첫 선을 보일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데뷔 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올해의 무드, 뉴 로맨티시즘



경기 침체, 전쟁, 이상기후, 정치적 상황 등 사회적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도피처가 필요하다. 패션을 향유하는 것은 때때로 기대이상의 행복감을 안긴다. 낭만과 아름다움, 향수가 뒤섞인 로맨티시즘 무드가 부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록달록 만개한 꽃무늬, 유려한 실루엣, 리드미컬한 프린지, 서정적인 러플과 시어한 소재 등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한 감성이 깃든 예쁨 가득한 무드가 패션 신 한가운데로 몰려오고 있다.
올해의 신개념 유행템, 스칸트


패션의 경계를 논하는 건 이제 고리타분하다. 대신 풍부한 상상력과 자율성을 즐기는 일이 훨씬 더 근사하고 고무적이다. 그리하여 주목해야 할 올해의 신개념 유행템은 이름하여 스칸트(Skant). 스커트(Skirt)와 팬츠(Pants)를 혼합한 이름으로, 치마와 바지를 섞어놓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멋은 뻔하지 않은 패션을 즐기고 싶은 이들의 구미를 자극한다. 아직 스칸트는 부담스럽다면 스커트 밑에 팬츠를 겹쳐 입거나 미니스커트가 달린 팬츠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트렌드를 즐겨봐도 좋겠다.
올해의 중심, 실버 제너레이션
지금은 소녀시대? 아니다. ‘실버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소비의 중심이 중장년층이 되면서 패션 신의 분위기 역시 180도 달라지고 있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세대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감성을 살린 그랜마코어와 그랜파코어 룩에 심취하는 MZ들과 젊음의 상징인 핑크와 데님, 컨버스를 즐기는 시니어들이 많아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늙어가는 세대성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성의 유연함을 흡수할 때, 어느 때보다 풍성한 멋이 발현될 것이다.
올해의 쇼핑 트렌드, 듀프
‘워킨백’ ‘샤넬맛 자라’ ‘더로우맛 코스’ ‘포니클로’ 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최근 패션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듀프 트렌드에서 비롯된 합성어들이다. 듀프(Dupe)는 ‘복제하다’를 뜻하는 Duplicate의 줄임말로 비슷한 디자인과 품질, 기능을 가진 대체 상품을 의미한다. 단순한 카피 제품과는 달리 특정 브랜드의 인기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과 성능을 갖추면서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듀프 열풍의 선두주자는 다이소 ‘손앤박 컬러밤’이었다. 샤넬 제품과 거의 흡사한 텍스처를 자랑해 입소문을 탔고, MZ들 사이에서 샤넬보다 더 힙한 상품으로 떠오르며 품절대란을 겪었다. 이후에도 룰루레몬 요가복을 닮은 CRZ요가, 포터와 비슷한 멀티 포켓백으로 인기를 끈 유니클로, 최근 에르메스 버킨백과 비슷한 이른바 ‘워킨백’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월마트 등등 패션 듀프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듀프는 고물가 시대가 낳은 새로운 소비 흐름으로, 단순한 ‘저렴이 대체품’을 넘어 필요한 가치만 소비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법적인 테두리에서는 오리지널 브랜드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명품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의문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한 듀프 트렌드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K 스타, 블랙핑크
또 블랙핑크다. 내로라하는 K 스타가 끝없이 줄지어 있지만 단 하나의 아이콘을 고르라면 올해도 블랙핑크다. 블랙핑크는 2025년에도 K 팝과 K 패션 등 K 문화의 흐름을 주도할 전망이다. 작년 전세계를 아파트 열풍에 빠트린 로제의 신화는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으며 지수는 2월 7일 공개되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뉴토피아’를 통해 배우로 복귀한다. 또한 ‘꽃’이후 2년만에 새로운 솔로 앨범 출시도 앞두고 있다.




제니와 리사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둘은 나란히 2025 코첼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증명했다. 동시에 첫 솔로 정규 앨범 발매도 앞두고 있는데 리사는 오는 2월 ‘얼터 에고(Alter Ego)’를, 제니는 3월 ‘루비(Ruby)’를 선보인다. 한편 솔로 활동에 이어 블랙핑크 완전체 무대를 예고하기도 했다. 최근 샤넬 오트 쿠튀르 쇼에 참석한 제니를 필두로 패션하우스 앰버서더로서의 화려한 행보도 시작했다. 이처럼 블랙핑크는 올해도 전무후무한 K 아이콘으로서 따로 또 같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올해의 아이콘, 티모시 샬라메
2018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으로 일약 스타가 된 후 지금까지 티모시 샬라메의 전성기는 매년 갱신되고 있다.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활약도 눈부시다. 그는 올해도 최고의 주가를 올릴 스타로 손꼽힌다. 오는 2월 26일 국내 개봉 예정인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으로 돌아오는 그는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을 연기한다.




서정적인 기타 선율에 어울린 티모시의 음색과 감성 짙은 연기력에 이어 남다른 영화 패션 소화력도 기대를 모은다. 파격적인 헤어 스타일에 스키니 진, 첼시 부츠, 보이스캡을 걸친 티모시 샬라메는 정말이지 밥 딜런 그 자체다. 전설의 탁구 선수 마티 라이스먼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마티 슈프림(Marty Supreme)〉도 촬영 중이다. 포마드 헤어에 콧수염과 안경을 걸친 그의 색다른 모습도 화제다. 두 편의 영화로 올해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선보일 티모시 샬라메는 영화 신에서는 물론 패션 신에서도 카메라를 몰고 다닐 전망이다.
올해의 약속, 제로 웨이스트 패션

제 아무리 빛이 나는 패션일지라도 환경에 크나큰 해를 끼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친환경적인 패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고 있다. 윤리적인 생산 방식과 환경 친화적인 원단, 지속 가능한 공정 등 자원을 최대한 절약하고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노력은 앞으로 패션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소비자 역시 제로 웨이스트 패션 실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유행을 빠르게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을 지양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선택하거나 리세일 마켓 쇼핑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진정한 에코 프랜들리 브랜드를 찾는 안목까지 키운다면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