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이 된 반려동물을 만나다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전시, 〈Cats & Dogs〉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이 된 반려동물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예술과 디자인 역사 속에서 발견한 반려동물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돋보인다.

예술 작품이 된 반려동물을 만나다

호주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블루이(Bluey)>는 2018년에 처음 방송된 이래 ‘블루이 현상’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강아지 블루이의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따뜻한 감동을 전하면서 단순히 어린이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강아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새롭게 일깨우는 역할을 한 이 시리즈를 통해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으며 인간과 동물 간의 유대감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점점 커졌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은 팬데믹 이후 더욱 강해졌는데 특히 호주에서는 ‘COVID-19’ 기간 동안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사례가 급증하였고 이러한 영향으로 다양한 반려동물의 이미지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반려동물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이 시기,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Gallery of Victoria, 이하 NGV)은 고양이와 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했다.

예술과 디자인의 시각적 원천이 된 반려동물

현재 NGV에서 진행 중인 <Cats and Dogs>는 단순히 우리가 좋아하는 반려동물의 귀여운 이미지만 나열하는 전시가 아니라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반려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양이와 개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흥미로운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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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깊은 연관성을 탐구하는 이 전시는 NGV의 소장품 중에서 250여 점을 선별한 것으로 인류 역사에 걸쳐 오랫동안 길들여진 반려동물이 어떻게 모든 시대와 미디어를 아우르는 시각적 원천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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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등 대가들의 회화부터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제프 쿤스(Jeff Koons) 등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찰스 블랙맨(Charles Blackman), 그레이스 코싱턴 스미스(Grace Cossington Smith), 노라 헤이슨(Nora Heysen) 등 호주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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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호주에서만 서식하던 원주민의 개, ‘딩고*호주의 야생 들개’의 나무 조각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고유한 성격을 지닌 딩고(dingo)는 원주민 공동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조상들의 존재로 여겨지곤 했는데 그들의 역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인식되었다.

한편,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개’는 지위의 상징이자 주인의 성격을 표현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의 많은 여성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민 푸들이나 잘 손질된 랩독을 통해 명성을 쌓은 걸 보라.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퍼그, 호크니의 닥스훈트는 주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의 개와 그레이스 코싱턴 스미스의 고양이는 그 동물이 가진 성격만큼이나 그들의 주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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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en sculptures of dingos

시간을 넘어선 인류의 동반자, 개와 고양이는 예술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간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가치들을 반영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동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유대-기독교적인 관점, 즉 아담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이름을 지어주고 지배하는 권리를 가진다는 관점을 채택한다면 이는 ‘소유’라는 권력관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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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Cossington Smith, Quaker girl, 1915

반면, 많은 원주민 문화와 아시아 문명, 그리고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대중화된 관점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을 신비롭게 이어주는 공통된 동물의 힘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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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the <Cats and Dogs>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로리 벤슨(Laurie Benson)과 이미젠 말리아-발얀(Imogen Mallia-Valjan)은 고양이와 개에 대한 애정을 담아 때로는 유머를 곁들여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소개한다.

한 전시실에는 개가, 다른 전시실에는 고양이가 주제에 따라 특별한 행동, 문화적 상징성, 예술사적 모티프 등으로 전시되는 〈Cats & Dogs〉에서는 일하는 개와 고양이, 신화, 종교와 영성, 대중문화 속의 고양이와 개 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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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the <Cats and D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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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the <Cats and Dogs>

회화, 판화, 드로잉, 사진, 조각 및 패션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은 호주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북미 등 전 세계 문화 전반에 걸친 반려동물의 매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과거에는 우리가 어떻게 개와 고양이의 세상을 형성했는지에 대해 생각했겠지만 전시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멋진 전시는 바로 이 깨달음의 여정을 다각도로 펼쳐 보여준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책에 담은 개와 고양이

전시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NGV의 그래픽 디자이너 카리나 소라야(Karina Soraya)가 디자인한 출판물 〈Cats and Dogs in Art & Design〉이다. NGV와 템즈 & 허드슨 오스트레일리아(Thames & Hudson Australia)가 공동으로 출판한 이 책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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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and Dogs in Art &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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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and Dogs in Art & Design

종이의 종류나 장식 스타일과 같은 재료뿐만 아니라 타이포그래피와 여백 같은 세부 요소들까지 세심하게 고려된 〈Cats & Dogs〉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조금 더 인터랙티브한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수백 장의 이미지가 포함된 만큼 이 콘텐츠들의 계층과 텍스트의 조화가 중요한데 이는 책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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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and Dogs in Art & Design

카리나 소라야에 따르면 처음에는 한 가지 폰트로 디자인을 시도했지만, 하나만으로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폰트를 함께 사용했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고양이와 개라는 전시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두 동물의 대조를 드러내기에 적합한 방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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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and Dogs in Art & Design

이 책에 포함된 작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요. 조각, 에칭, 회화, 사진 등이 모두 섞여 있죠. 레이 아웃할 때 저는 항상 책의 리듬을 고려합니다. 책을 넘길 때, 한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넘어갈 때, 그 느낌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독자가 봤을 때 불편하거나 튀지 않아야 하거든요. 동시에 여백을 만들어서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요. 저는 디자인할 때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카리나 소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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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and Dogs in Art & Design

수천 년 동안,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인간과 그들의 친구였던 개와 고양이 간의 지속적인 관계에서 영감을 받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고대 유물과 이슬람, 힌두교의 상징주의에서부터 유럽의 회화와 현대의 원주민 미술에 이르기까지, 고양이와 개는 언제나 보편적인 주제였다.

우화적인 상징과 현대의 걸작들이 포함된 이 책은 NGV의 소장품 중에서 선정된 충성스러운 개와 활기찬 고양이를 묘사한 100점 이상의 예술 작품과 디자인을 소개한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이 작품들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들이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예술과 디자인 역사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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