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서 화가로, 박신양이 오사카에 펼친 ‘제4의 벽’
박신양 특별전 〈제4의 벽〉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다 붓을 들고 새로운 무대로 나섰던 박신양 화가가 일본 오사카에서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예술을 통한 한일교류를 증진하고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를 일본에 소개하는 오사카 한국문화원의 ‘K-ART와의 만남’ 전시 사업의 일환으로, 10여 년을 미술 작업에 몰두해온 박신양 화가의 특별전이 오사카 한국문화원 1층 미리네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2월 15일 개막해 3월 2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박신양 화가의 회화적 탐구의 결실로, 유화 14점과 판화 5점이 전시된다. 전시 제목인 ‘제4의 벽’은 그가 연극과 미술에서 중요하게 여겨온 경계를 탐구하는 개념으로, 관람객이 그림으로부터 받는 고유한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개막 전날 진행된 ‘아티스트 갤러리 토크’는 신청 첫날부터 신청자가 쇄도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박신양 화가가 작품을 처음 선보인 것은 2017년, 〈평화의 섬 제주, 아트의 섬이 되다〉 초대전을 통해서였다. 10대 시절, 한 편의 영화에서 받은 감동에 이끌려 배우가 된 박신양 화가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연기 공부를 위해 떠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새로운 길이 될 그림 한 점을 만났다. 그림에 사로잡힌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오랫동안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 왔는데,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그 무거운 고민이 한순간에 해결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싸인〉(2011) 등 수많은 흥행작 이끌며 한국 대표 배우가 된 후에도 러시아 유학 시절, 순수하게 예술에만 집중했던 때를 그리워하던 그는 10여 년 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는 오랜 시간 동안 표현한다는 것과 그 표현이 보여진다는 것을 구분하고 그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림도 연기도, 그리고 모든 표현은 표현자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내가 보고 느낀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그 그림, 그 표현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런 점에서 표현 자체는 물론이고 그 표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를 숙고하는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연기와 그림은 같다고 생각한다.”
_ 박신양, 〈제4의 벽〉(민음사)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당나귀’ 연작, ‘사과’ 연작, ‘춤’ 연작, ‘투우사’ 연작, 그리고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시, 화가 에곤 실레, 자화상 가운데 열네 점이 소개된다. ‘당나귀’ 연작은 강렬한 색채와 거침없는 붓놀림이 특징인 박신양 화백의 대표작 중 하나. 자기 자신의 짐을 지고 묵묵히 길을 걷는 당나귀에 비유하며 예술가로서의 숙명을 표현한 작품이다.

‘사과’ 연작은 어떤 인연으로 인한 감사와 감동의 마음을 담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안 보이는 걸 그리고 싶었어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고, 알고 싶고,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느낌과 감정도 사실은 그렇죠. 그런데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니 외롭고 힘들었어요. 전에 없던 뭔가를 만들어내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걸 표현하려 한 것 같습니다.” 인물화 중에는 박신양 화백이 즐겨 그리는 피나 바우쉬를 만날 수 있는데, 그는 “결국 움직임의 본질을 찾아내고 연극적인 무용에 헌신했던 사람의 얼굴은 그녀의 무용만큼 매력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가 연기에 접근했던 방식과 다르지 않게, 나와 타자, 나와 세상,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길에는 지난하게 힘들고 험난한 과정 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지름길 같은 건 없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교과서도 없다. 누군가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다. 아무리 등불과 가이드가 있다 해도 본질적으로는 예술가가 스스로 길을 찾아내고 거기에 수반되는 짐을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 당나귀가 짐을 지는 데 꾀를 부리지 않듯이.”
_ 박신양, 〈제4의 벽〉(민음사)에서
강한 힘을 내뿜는 박신양 화가의 그림들은 대부분 대형 작품으로, 원화를 직접 마주했을 때 감정의 울림이 더욱 크다. 배우가 아닌 화가 박신양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3월 22일까지 오사카 한국문화원 1층 미리네 갤러리에서 진행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