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를 항해하는 법
인공지능 시대를 대하는 창작자의 자세, 『패스트 무버』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임교수이자 네이버 서치 CIC Search Creative X 책임리더인 김재엽 교수가 신간 『패스트 무버』를 선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인공지능과 인터랙션 디자인을 리드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가 갖춰야 할 자세를 이야기한다.

디자인과 기술의 접점에서 새로운 시대를 탐구하는 김재엽 교수의 신간 『패스트 무버』가 출간됐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인공지능과 인터랙션 디자인을 리드해 온 스페셜리스트로 이번 책을 통해 ‘패스트 무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가 갖춰야 할 태도와 사고 방식을 조명하며, 단순한 기술 활용법을 넘어 AI가 창작의 동반자가 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임교수이자 네이버 서치 CIC Search Creative X에서 책임 리더로 최전선에서도 활동 중인 그를 만났다. 책 『패스트 무버』의 기획 배경부터 인공지능 리터러시의 중요성, 그리고 디자인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창의성이 만나는 접점에서 그가 쌓아 온 경험과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았다.
Interview
김재엽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임교수 & 네이버 서치 CIC Search Creative X 책임 리더


패스트 무버를 정의하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 『패스트 무버』를 출간하셨어요. ChatGPT의 등장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풍부한 지금이잖아요. 키워드만 두고 봤을 때 다소 늦은 감도 있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지금 이 시점에 책을 출간하신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책을 기획한 건 ChatGPT 등장 이전부터였습니다. 2016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에서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디자인 팀에서 일하면서 AI가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요. 이 경험 그 자체로 굉장히 귀하다고 생각했어요. 구글, 애플, MS 등 인공지능을 실제 상품화할 수 있는 소수의 빅테크 기업 안에서도 인공지능 영역의 디자인을 경험하는 디자이너는 소수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언젠가 이 경험들을 전할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했어요.


그러다 2022년 등장한 ChatGPT가 분기점이 됐어요. ChatGPT라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 이후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이전까지 데이터를 분석하고 추천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창작을 돕고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거죠. ‘인공지능 리터러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생각했고,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이를 활용해 인간이 창의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가 중요해졌어요. 이러한 변화에 맞춰 책의 방향을 수정해 출간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패스트 무버』는 기존의 인공지능 서적과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 미디어에서 인공지능을 소개할 때는 주로 ‘인간 vs 인공지능’이라는 대결 구도로 묘사되곤 했어요. 하지만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산성을 확장시키는 협업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잖아요. 이 책은 인공지능 기술을 익힌 그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요.
기존의 서적들이 인공지능의 기술적 측면, 즉 어떻게 작동하는지, 활용법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패스트 무버』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창작을 돕는 도구가 될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맥락에서 이를 활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책 제목도 흥미롭습니다. 패스트 무버(Fast Mover). 흔히 산업이나 기업 전략을 두고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혹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는 말을 쓰잖아요. 패스트 무버는 처음 보는 개념 같은데요?
패스트 무버라는 말은 없었죠. 기존의 산업 전략에서 흔히 사용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와는 또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퍼스트 무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척자로서 혁신적인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을 의미하고, 패스트 팔로워는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따라가며 적응하는 이들로 다소 수동적인 느낌도 있는데요. 패스트 무버는 이러한 두 개념을 조합해 변화하는 시대에 보다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혁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무조건 퍼스트 무버가 될 필요는 없어요. 그보다 중요한 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교수님이 말씀하신 오늘날 ‘패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요?
수용과 적용 그리고 통제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발전할 때는 이를 억제하거나 혹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역사적 사건에서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어요. 19세기 영국에서는 마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레드 플래그 액트’라는 법을 시행했는데요. 새롭게 등장한 자동차와 함께 마차가 도로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하고, 반드시 사람이 앞에서 빨간 깃발을 흔들며 안내하도록 규제했어요. 이로 인해 자동차 기술 발전이 지연됐고, 결국 영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독일과 미국보다 뒤처지게 됐죠.

반면, 17세기 서양 미술에서는 핀홀 카메라의 원리를 활용한 ‘카메라 옵스큐라’ 기술을 통해 사실적이고 정확한 표현의 그림이 성행했는데요. 18세기 사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그림의 의미가 퇴색됐죠. 그러자 이에 대한 반발로 모네, 세잔 등 빛과 색 그리고 시점(Perspective)을 새롭게 해석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등장했고, 예술의 표현 방식은 확장됐어요. 두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무조건적인 규제나 통제보다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적절한 균형이 필요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인공지능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도 않지만, 과도한 제제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창작자가 갖춰야 할 3가지 자세
—『패스트 무버』에서는 크리티컬 씽킹, 엘라스틱 마인드, 익스페리멘탈 인사이트 세 가지 자세를 강조하셨죠. 시대를 막론하고 창작자 뿐만 아니라 일하는 모두가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판단력은 경험적 지식을 통해 축적되는 것이죠. 결국 창작자가 성장하려면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를 쌓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을 가시화하고 내재화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요.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확보해야지 안목을 키우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실패를 되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하는 ‘레슨런’이 필수입니다.
한편, 인공지능은 분명 생산성을 높이는 최고의 도구이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 도구는 아닌데요. 원하는 수준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조건적으로 인공지능이 생산한 결과물을 수용하지 않고 실험과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축적하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실패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실패도 제대로 해야 된다”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교수님은 어떤 실패를 해오셨는지도 궁금하더군요.
대게 제품이나 서비스 디자이너는 결과물이 출시될 때가 성공의 성취감을 갖게 되거든요. 제 커리어를 돌이켜봤을 때, 출시되지 못한 프로젝트도 많았고, 선행 디자인을 하면서 실패를 반복한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간의 실패가 오히려 커리어를 뒤돌아봤을 때 중요한 배움의 과정으로 남았더라고요. 삼성 스마트 TV 프로젝트와 노키아에서의 IoT 디바이스 디자인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처음 등장한 스마트 TV가 등장하면서 음성 명령부터 얼굴 인식 기능, 제스처 컨트롤 등 여러 가지 혁신적인 기능을 도입했지만, 사용자 반응은 막상 기대했던 것과 다르더라고요. TV라는 디바이스의 본질은 편안하게 소비하는 매체인데 복잡한 조작 기능이 들어간 것부터가 문제였죠. 단순하고 직관적인 경험이 가능한 디자인으로 수정했고, 사용자의 시청 경험을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갔습니다. 그 이후로 본질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죠.
노키아에서는 IoT 디바이스로 미팅 스피커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회의실과 연결되어 있어 미팅 시간이 임박하면 남은 시간을 리마인드해 주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었죠. 단순하고 직관적인 기능 덕분에 반응이 좋았어요. 그러자 개발자들이 기능을 확장하고자 했는데요. 예를 들어, 특정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면 지정된 색상의 불빛으로 알림을 주는 기능을 추가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담당 디자이너였던 제가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사람마다 다른 색상을 다 기억할 수 없거든요. 개발자를 설득하면서 “우리가 하려는 건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하나의 목적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득했죠. 삼성 스마트 TV 프로젝트에서의 레슨런이 도움이 된 셈이죠.
인터랙션 디자인에 매료된 그래픽 디자이너
한편, 커리어의 첫 시작점은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이에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요. 디자이너의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요?
결정적인 계기는 어릴 때 처음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라고 생각해요. 공항에서 나와 도로를 달리는데 일본 자동차가 엄청 많더라고요. 미국이 훨씬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동차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 산업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걸 직감했던 것 같아요. 각지고, 크고, 묵직한 미국 자동차와 달리 일본 자동차는 유선형의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는데 디자인이 단순한 형태의 차이를 넘어서 소비자의 선택과 시장의 흐름을 바꾼다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도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지만 전공으로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닿지 않았어요. 유학을 결심했고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했죠. 당시 뉴욕은 그라피티와 스트리트 컬처가 활발한 시기였거든요. 단순한 낙서처럼 보였던 거리의 예술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고, 뱅크시나 셰퍼드 페어리 등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디자인이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라는 걸 깨달았죠. 이런 문화적 환경과 경험이 저의 디자인 철학에도 영향을 끼쳤는데요. 졸업 이후 힙합 패션 브랜드 ‘에코(Ecko)’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모션 디자인과 인터랙션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아이폰 때문이라고요.
맞아요. 2007년 아이폰이 등장이 결정적이었죠. (웃음)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산 아이폰을 봤는데 그때 관성 스크롤이라는 걸 처음 경험했어요. 물론 저도 터치폰을 쓰고 있었지만 싱글 터치와 멀티 터치의 기술 자체가 달랐죠. 아이폰의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이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는 UI나 UX라는 말도 없었으니까요. 찾다 보니 웹 디자인과 모션 디자인의 영역에서 다룬다는 걸 알게 됐고, 파사데나(Pasadena)에 위치한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rtCenter College of Design)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UI와 인터랙션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터랙션 디자인을 더 깊이 배우기 위해 영국 왕립 예술 대학교(이하 RCA)로 진학했고요.
RCA에서는 인터랙션 디자인을 미시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관점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더라고요. 여기서 말하는 미시적인 관점은 소위 디바이스의 인터페이스 디자인 영역을 말해요. 반면, 거시적인 관점은 사회적 변화와 연결되는 경험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것이었죠. 특히 지도 교수님이었던 앤서니 던(Anthony Dunne)과 피오나 래비(Fiona Raby)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단순한 기능적인 디자인을 넘어,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인터넷 연결과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기술적 발전에 집중했지만, 동시에 이는 사회적 단절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도 가져왔어요. 이러한 양면성을 인식하고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는 걸 배웠죠. 저는 저의 디자인 스펙트럼이 이때 굉장히 넓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교수님에게 영향을 끼친 또 다른 디자이너가 있다면요?
시기에 따라 영감을 준 디자이너들이 다른 것 같아요. 파슨스에서 디자인을 배울 때는 폴 랜드(Paul Rand)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IBM, UPS 등의 기업 로고를 디자인했는데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특히 UPS 로고를 디자인할 때 딸과 대화를 나누면서 ‘택배를 받는 경험이 마치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시각적으로 구현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죠. 인터랙션 디자인이나 제품 디자인에 관심이 확장될 때는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디자인 철학도 인터페이스를 설계할 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디자인 교육
삼성, 노키아, MS를 거쳐 현재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인터렉션 디자인을 가르치고 계시잖아요. 필드가 아닌 교육 현장으로 오시게 된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필드에서 일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시점이었거든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 연구와 작업에 대한 갈증도 있었는데요. 마침 그 시기에 홍익대학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전공 교수 임용 소식을 접한 거죠. 한국, 핀란드, 미국 등을 오가며 쌓아 온 필드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에서는 하지 못한 일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오게 됐습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듯싶은데요. 이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인공지능을 쓰고 싶은 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해라고 말해요. 저를 포함한 모두가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정답을 모르니까 함께 시도해 보자는 거죠. 신기하게도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해도 결과물이 달라요.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디자인 경험과 지식 디자인 놀리지 또는 도메인 놀리지(Domain knowledge)이 차이가 나거든요. 책 『패스트 무버』에서도 강조하듯이 중요한 건 생성형 인공지능은 디자인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봐요.
현재는 네이버 서치 CIC Search Creative X에서 책임 리더도 겸하고 계세요. 교육 현장과 달리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변화는 또 다를 것 같아요.
생성형 인공지능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특히 생산성이 뛰어난 도구라는 점에서 주니어 연차의 구성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또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필드에서만의 고민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졸업 후 기업에서 신입의 역할을 맡을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도 고민이죠. 저는 과거 포토샵이 등장했을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포토샵이 등장하기 전만 하더라도 손으로 그렸잖아요. 그러다가 하나의 도구로 자리를 잡게 됐고, 자연스럽게 누구나 사용하는 디자인 툴이 됐죠. 생성형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패스트 무버』의 부록에서 글로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셨는데, 최근의 화두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둘러싼 패권 경쟁, 규제, 경제적 변화 등 다양한 이슈가 있겠지만, 제가 인터뷰한 이들이 가장 중점을 둔 건 ‘사용자’였어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부터 스타트업까지 공통적으로 인공지능이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실제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즉, 이들은 기존 서비스의 가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또한, 인공지능 발전이 무조건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했는데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기술이 인간의 판단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전할 경우 이를 적절히 통제하고 조율할 수 있는 법적·윤리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딥시크(DeepSeek)’의 사례를 보면, 중국이 빠르게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고 저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규제와 보안에 대한 고려가 적었기 때문이에요. 반면, 미국과 같은 서구권 국가들은 강력한 법적 규제와 데이터 보호 정책이 있기 때문에 동일한 기술이라도 적용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인공지능과 관련된 서비스들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벤치마킹되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선도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참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서비스 모델에서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 있어요.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보면 규제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되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도 분명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미래 가능성을 논할 때 각 나라의 규제와 환경도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