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들지 않을 힘,〈무기세〉전
새 총보다 아름다운 것은 녹슨 총이고, 무기의 힘보다 강한 것은 무기를 들지 않을 힘이다. 지금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무기세(武器世)〉전은 군사주의적 문명의 위험성을 예술을 통해 가시화한다.

팬데믹 시기였던 2022년, 톰 크루즈는 36년 만에 영화 〈탑건〉의 후속작을 선보이며 침체된 극장가를 되살린 구원자로 떠올랐다. 그에게 〈탑건〉은 유독 특별한 영화다. 한때 주목받은 청춘 스타였던 그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미국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보여준 이 영화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개봉 직후 미국인들의 입대 신청이 급증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 정부와 국방부의 물심양면 지원 아래 만들어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베트남 전쟁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미군이 전투기와 미사일을 내세워 애국심을 고취하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였던 것이다.
이렇듯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무기는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만, 대개 비일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그 위험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무기세(武器世)〉전은 일상에서 간과되기 쉬운 군사주의적 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리다. 무기 생산, 기술 개발, 방위 산업, 전쟁에 이르기까지 군사-산업 복합체가 벌이는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예술을 통해 가시화한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 ‘무기화된 일상’에서는 평범한 사물과 무기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평범한 일상 풍경 사진에 전투기를 콜라주해 분단 국가의 현실을 그린 강홍구, 미국 전역의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는 퇴역 무기를 건조하게 포착하며 평화의 허울을 드러낸 폴 샴브룸Paul Shambroom의 작품은 일상과 무기의 불편한 교차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2부 ‘스펙터클로서의 무기’에서는 미디어의 상업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무기가 전쟁과 폭력을 오락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노영훈은 일상과 전쟁, 평화와 폭력 사이의 긴장감을 보여주기 위해 대중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미키마우스 모양의 방독면, 풍선처럼 보이는 수뢰, 수류탄 핀이 달린 캠벨 수프 캔까지. 유쾌하고 무해해 보이는 사물과 무기를 결합해 평화로운 일상이 재난으로 급변할 수 있는 불안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3부 ‘무기, 낯익은 미래’는 무기가 파괴한 땅과 그 위에서 고통받는 생명을 조명한다. 미군의 사격장으로 사용했던 매향리의 풍경을 담은 강용석, 핵 에너지에 오염된 존재를 아포칼립스 영화 속 좀비에 빗댄 방정아의 작업 모두 평화를 파괴하는 무기와 기술의 목적성에 초점을 맞춘다. “수풀 그늘 어딘가에 놓고 잃어버린, 녹슨 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네….” 엔리코 마샤스 노래의 한 구절이다. 새 총보다 아름다운 것은 녹슨 총이고, 무기의 힘보다 강한 것은 무기를 들지 않을 힘이라는 걸 이번 전시가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