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중심이 된 국립공원
자연과 예술의 유기적 연결을 제시하는 새로운 모델
태국의 카오 야이 국립 공원이 현대 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25년 1월 6일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현대 미술이 융합된 독창적인 예술 공간을 소개한다.

태국 최초의 국립 공원으로 알려진 ‘카오 야이 국립 공원’이 태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태국 수도 방콕에서 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의 이름은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Khao Yai Art Forest)’. 지난 2025년 1월 6일 공식 개관했다. 약 26만 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조성되었는데 자연과 현대 미술이 융합된 독창적인 전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개관과 동시에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후지코 나카야(Fujiko Nakaya), 리차드 롱(Richard Long), 프란체스코 아레나(Francesco Arena), 아라야 라스자름레안숙(Araya Rasdjarmrearnsook), 우바사트(Ubatsat) 등의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동남아시아 현대 미술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태국의 저명한 자선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마리사 체라바논트(CP그룹 특별고문)가 설립한 프로젝트로, 태국 정부와 민간 후원자들의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 태국은 전통과 현대 미술이 공존하는 나라지만, 방콕 외 지역에는 국제적인 현대 미술 공간이 부족했다. 더욱이 방콕은 태국의 문화·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나, 도심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대규모 예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현대 미술이 도시의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이 지속되며, 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관람객과 지역 사회를 포괄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19년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5년간의 개발을 거쳐 개관했다.

흥미로운 건 태국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카오 야이 국립공원 인근에 조성됐다는 점이다. 이곳 국립공원은 열대우림과 사바나가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보유한다. 코끼리, 긴팔원숭이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이에 따라 아트 포레스트 프로젝트는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예술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특히 공간, 건축, 에너지를 활용할 때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모든 건축물은 환경친화적인 재료로 설계되었으며, 태양광 발전과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다. 또한, 야외 조각 공원 역시 기존 생태계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조성해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숲속에서 만나는 거장들의 작품은?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개관과 동시에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 거미 조각 ‘마망’이 대표적이다.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조각은 어머니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 작품인데 자연 속에 배치되면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부르주아가 작품을 통해 강조하는 모성애와 보호 본능은 창조와 보호라는 개념으로서 예술과 자연의 연결을 강조한 카오 야이 포레스트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일본 출신의 현대미술가 후지코 나카야(Fujiko Nakaya)의 작품 <카오 야이 안개 숲(Khao Yai Fog Forest)>은 자연과 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안개 작품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개 조각으로 유명한 작가는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의 부친인 우키치로 나카야(Ukichiro Nakaya)는 세계 최초로 인공 눈을 개발한 과학자로도 알려졌는데, 이러한 성장 배경은 후지코 나카야의 예술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 셈이다. 한편 이번 작품을 위해 작가는 아츠시 키타가와라 건축사무소(Atsushi Kitagawara Architects), 기후 기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 기업 아쿠아리아(Aquaria)와 협업했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으로 기후와 환경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자극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현대미술 듀오인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Dragset)은 독일 화가 마틴 키펜버거(Martin Kippenberger)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 <K-BAR>를 선보였다. K-BAR는 자연 속에서 도시의 현대적 우아함을 표현한 실험적 공간으로 파빌리온 형태의 작은 바(bar)이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만 한정해 운영한다. 현대 소비문화와 사교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했는데 관객이 직접 공간 속에 머물며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태국 예술가 우밧삿(Ubatsat)이 2024년에 제작한 작품 <영원의 순례(Pilgrimage to Eternity)>는 독특한 조형미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통적인 탑 건축 예술과 불교 철학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으로 흙으로 만든 아홉 개의 탑 조각으로 구성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각의 조각은 주변 식생과 어우러지는데 이를 통해 예술, 영생, 자연 간의 연결을 표현했다. 또 다른 장소 특정적 조각 작품인 <GOD>(2024)은 이탈리아 출신의 현대미술가 프란체스코 아레나(Francesco Arena)의 작품이다. 거대한 두 개의 돌로 구성된 작품으로 두 개의 돌이 결합되면 ‘GOD’이라는 단어가 형성되지만 외부에서는 볼 수 없다. 이를 통해 작가는 포착하기 어려운 신성의 본질을 표현했다. 나아가 신성, 인간, 자연의 관계에 대한 관객의 고찰과 성찰을 유도한다.


이처럼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자연과 예술이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실험장이자 동남아시아 현대 미술의 중요한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전시 방식, 지속 가능한 건축 설계, 그리고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참여는 이곳을 단순한 미술관이 아닌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앞으로도 다양한 전시와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동남아시아 지역의 현대 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이 공간이 태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 예술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