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와 장욱진이 만나면? 〈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
리움미술관이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동시대적 관점에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소장품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 재개관 상설전 이후 약 3년 만에 열리는 소장품전으로, 최초 공개되는 소장품 27점을 포함한다.

직선상에 놓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무제’(1968)와 장욱진의 ‘무제’(1964). 서로 다른 장소와 맥락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해온 작품들이 한 공간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어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리움미술관이 3년 만에 선보이는 〈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근현대미술부터 아시아와 서구 현대미술까지, 국제 미술의 흐름을 아울러 온 리움미술관의 현대미술 소장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며, 기존의 연대기적 혹은 주제별 전시 구성에서 벗어나 작품 간의 관계를 새롭게 탐색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어 더욱 흥미롭다.
최초로 공개되는 소장품 27점


이번 전시에서는 리움미술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을 포함해 총 44점의 작품(35명 작가)을 선보인다. 특히 솔 르윗(Sol LeWitt), 리처드 디콘(Richard Deacon),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등 현대미술 거장의 주요 작품이 소장 이후 처음으로 공개되며, 루이즈 네벨슨(Louise Nevelson), 한네 다보벤(Hanne Darboven), 리 본테큐(Lee Bontecou), 정서영, 임민욱 등 최근 새롭게 소장한 작품이 더해졌다.


전시의 주요 공간인 M2에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칼레의 시민’(1884–1895, 1996년 주조)이다. 14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 점령된 프랑스 칼레의 시민 영웅 6인을 기리는 작품으로, 영웅적 이미지 대신 고뇌와 신념이 담긴 표정이 강조된 작품.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지금은 사라진 로댕갤러리/플라토에 상설되었던 작품이 이번 소장전을 통해 9년 만에 공개됐다.
그 옆으로는 마크 로스코와 장욱진의 회화가 자리하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거대한 여인 Ⅲ’(1960)과 솔 르윗의 ‘매달린 구조 #28A’(1989), 루이즈 네벨슨의 ‘새벽의 존재 – 셋’(1975) 등이 한눈에 담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여인상과 천장에 매달린 흰색 모듈 조각, 그리고 상자와 막대기 등 목재들이 결합된 건축적인 추상 조각이 한 공간을 공유하며, 새롭게 연결되고 변주된다.


1층에서는 독일의 대표적인 개념미술가 한네 다보벤의 ‘한국 달력’(1991)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가가 우연히 얻은 한국의 신미년 1991년 일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표지를 포함한 366개가 한 세트인 작품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비연대기적, 비주제적 구성

전시에서 작품들은 시대나 사조에 따라 정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병치되어 있다.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기보다 관람객이 상상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시 공간을 채운 44점의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퍼즐과도 같으며, 관람객이 이를 연결하며 각자의 그림과 해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과 공간을 탐색하고, 작품 간의 관계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현대미술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기획됐다.”
_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


전시 공간인 M2에도 변화가 있다. 기존 형태를 변형해 각 큐브를 독립적인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한 것. 이우환과 김종영의 작품이 전시된 각 공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전시장이 되어 작가의 작품 세계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전시는 로비 공간으로 확장된다. 로비와 휴게 공간에서 박미나와 Sasa[44]의 월페이퍼 설치 작품인 ‘하하하’(2003)와 프랑수아 모렐레(François Morellet)의 ‘5미터 둘레의 캔버스 다섯 개와 수평 대각선’(1973)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이번 전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소장품과 최근 수집한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리움미술관의 다채로운 컬렉션이 관람객에게 시대를 반영한 풍성한 예술적 대화를 제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이 전시에서 각자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될까? 리움미술관이기에 가능한 44점의 재구성,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내는 대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