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대화를 이끄는 디자인 페어, Object Rotterdam

Object Rotterdam 2025 다시 보기

오브젝트 로테르담 2025에서는 전통과 현대 기술의 융합, 제작 방식의 실험성, 디자인 실험과 위트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이 눈길이 끌었다.

시대적 대화를 이끄는 디자인 페어, Object Rotterdam

디자인 페어, 트렌드를 넘어 디자인의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하다

건축과 디자인의 도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지난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오브젝트 로테르담 2025Object Rotterdam 2025>가 열렸다.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평범한 디자인 페어를 지양하고, 네덜란드의 젊은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모토로 2000년에 설립됐다. 그리고 2012년, 안네 반 데르 즈바흐(Anne van der Zwaag)가 이를 인수하면서 확장된 비전을 가지고 운영돼 왔다. 그리고 지금,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단순한 디자인 페어를 넘어 디자인, 공예, 패션, 건축, 미술을 아우르는 다학제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입지의 비결은 유명 디자이너와 신진 디자이너가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 재료, 형식의 다양성에 기반한 포괄적인 디자인에 균형을 맞추는 큐레이션 방식을 유지하기 때문. 참여 디자이너들의 국적 역시 유럽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해지고 있어 국제적인 감각을 더해가고 있다. 올해 행사는 로테르담 도심에 위치한 AIR 오피스(AIR Offices)에서 열려 로테르담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인 공간 활용을 조화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올해 오브젝트 로테르담에서 두드러진 트렌드는 지속 가능성을 반영하는 움직임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대 기술의 융합, 제작 방식의 실험성, 디자인 실험과 위트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 등으로 짚어볼 수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지속 가능한 소재와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조형적 접근을 시도했는데,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라 가카(Aleksandra Gaca)는 음향적 특성을 강화한 직물을 선보이며,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지속 가능한 솔루션을 제시했으며, 페트라 본크(Petra Vonk)는 100% 천연 소재로 만든 룸 디바이더를 통해 공간 내 친환경적 소재 활용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자연석의 잔재를 활용한 모듈형 가구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는 디자인을 선보인 레미 레니어스(Remi Reniers)의 실천도 주목할 만했다. 그의 고정되지 않은 가구 컬렉션은 다양한 색상의 강철 커넥터를 이용해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 사용자의 개입이 가능한 디자인 방식을 제시했으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한편, 스튜디오 코팽(Studio Copain)은 빵이라는 식품과 제품 디자인을 융합해 지역성과 환경적 메시지를 강조한 작업을 선보였다.

전통적인 제작 기법과 현대 기술을 결합한 움직임도 다양하게 소개됐다. 플로리스 메이저(Floris Meijer)는 컴퓨터를 활용해 제조 공정을 자동화하는 CAM 기술을 통해 전통적인 꽃병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으며, 테레사 후냐디(Teresa Hunyadi)는 지역 목재를 활용하여 전통적인 목각 기술과 현대적인 조형 기법을 결합한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시게키 야마모토(Shigeki Yamamoto)는 다양한 나무 조각을 이용해 복잡한 구조물을 제작했으며, 나무 플러그를 활용한 조립 방식으로 견고함과 유연성을 동시에 구현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일본에서 금속 가공을 배우고, 이후 독일에서 목공을 연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많은 이의 이목을 사로잡은 디자인은 제작 방식 자체를 연구하는 실험적인 작업들이었다. 징거 취(Jingge Qu)는 3D 프린팅 도자기 화병 컬렉션을 통해 디지털 기술과 전통 도예 기법을 접목하는 방식을 시도했고, 빌렘 츠위어스(Willem Zwiers)는 파기될 책들을 중고 서점을 통해 받아 폐기물의 변형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중고 책들을 조심스럽게 여러 섹션으로 자르고, 페이지를 구부린 뒤, 물과 목공용 접착제를 섞어 단단하게 만들어 가구와 조형물을 제작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유머와 디자인의 관계를 탐구해 개념적 실험을 이끌어내는 디자이너의 작업물들도 묘미 중 하나였다. 촛대와 의자를 결합한 독창적인 가구 ‘Chairholder’로 이름을 알린 더크 두이프(Dirk Duif)는 작은 의자들을 이어 붙여 큰 형태의 의자를 디자인했고, 루벤 드 하스(Ruben de Haas)는 실제 계란으로 만든 조명과 특수 시멘트로 제작한 계란판 형태의 지지대를 조합해 재료의 고정관념을 뒤엎었다.

이번 행사에서 필자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디자인을 단순한 형태의 창조로 보는 것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표현 방식으로 활용하는 작가주의적 실천이었다. 대표적으로 헤스터 쇼워터(Hester Scheurwater)는 여성의 욕망과 대상화를 주제로 한 자전적 작업을 통해, 전통적인 시각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관능적인 카펫 작품을 선보이며, 디자인을 매체로 삼아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또한, 클라스 쿠이켄(Klaas Kuiken)과 찰리 레인더스(Charley Reijnders)가 설립한 다학제적 디자인 스튜디오인 화이트노이즈다다(WhiteNoiseDada)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탐구하고 자본주의 시스템과 인간 행동을 풍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들의 작업은 강렬한 색상과 유머러스한 형태를 활용해 기존의 디자인 개념을 도전적으로 재해석했다.

이외에 예술과 디자인, 패션, 주얼리를 포함한 대담한 작업들을 소개하는 갤러리 라드마커스(Rademakers Gallery)는 야무나 포르자니(Yamuna Forzani), 스테판 그로스(Stefan Gross), 크리스 릭(Chris Rijk) 등의 작업을 소개했다. 특히, 야무나 포르자니는 퀴어 활동가이자 다학제적 디자이너로, 3D 및 자카드 뜨개질 기술을 활용한 텍스타일 작품을 통해 퀴어 유토피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디자인과 행동주의를 결합하는 실험을 보여줬다.

디자인은 일상 속에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반영한다. 특히,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인 오브제를 제작하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성, 사회적 책임, 그리고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논의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이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단순히 새로운 디자인을 소개하고 유통하는 장을 넘어, 디자인을 매개로 대화의 장을 향한 길을 내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은 단순히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을 사며, 무엇을 사용하는지, 사고와 소비 그리고 사용이 우리의 환경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이에 디자인은 단순한 심미적 힘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연구이자 실험이다. 그렇다면 디자인 페어는 어떤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제품과 디자인의 흐름을 결정하는 유통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열린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오브젝트 로테르담의 사례를 눈 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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