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으로 만든 공공 설치작품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예술적 가치까지
환경을 고민하는 디자이너, 예술가, 건축가들이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환경에는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 바로 ‘플라스틱’이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기에 플라스틱이 해로운 소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대체할 뚜렷한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은 탓에 매일같이 쏟아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여전히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을 고민하는 디자이너, 예술가, 건축가들이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들은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를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덕분에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폐플라스틱 활용의 현주소를 알리는 설치 작품

네덜란드 건축회사 MVRDV는 올해 진행된 방콕 디자인 위크를 통해 방콕 시청 외곽에 있는 란 콘 므앙 Lan Khon Mueang 타운 광장에 거대하고 화려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메가 매트 Mega Mat’라 이름 붙은 이 작품은 이름 그대로 폐플라스틱을 활용하여 제작된 500개 이상의 모듈형 플라스틱 매트로 구성되었다.
건축 회사에 따르면, 태국에서는 연간 약 200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업계와 정부가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 재활용되는 폐기물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며 화제가 되었다. 메가 매트는 이렇게 활기를 띠고 있는 태국 내 플라스틱 재활용의 개선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설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하는 것과 더불어, 매트 그 자체가 인포그래픽으로서 역할을 한다. 빨간색은 비위생적인 매립지로 보내지는 폐기물을, 주황색은 위생적인 매립지로 가는 비율을 나타낸다. 노란색은 수거되지 않은 폐기물의 비율을 나타내며, 가운데 있는 녹색은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통해 생각보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것이다.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매트 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한쪽 모서리가 들어올려져 있는 모습은 작품이 설치된 장소 주변에 있는 수탓 테프와라람 사원 Wat Suthat Thepwararam의 지붕을 연상하게 하며, 동시에 태국 내에서 버려지고 있는 플라스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장으로써 활용되었다.
설치 작품 자체가 플라스틱 활용의 현재 상황과 더불어 이에 대한 논의를 이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결국 정책은 사람이 모여야 결정되기에, 건축회사의 아이디어는 매우 혁신적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도시 환경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의 적응력, 유용성, 순환성을 입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강을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랜드마크

더블린 출신 아티스트 로나 번 Rhona Byrne의 ‘레스트리스: 리피 러브 Restless: Liffey Love’는 2024년에 선보인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더블린의 리피 강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더블린 시의회의 의뢰로 진행된 더블린 시 공공예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예술 작품이면서도 강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의 기능을 겸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을 위해 작가는 더블린 항구와 도크랜드 지역의 해양 유산 보존 및 해양 산업에서의 고용 창출 및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단체인 ‘아이리쉬 노티컬 트러스트 Irish Nautical Trust’와 협력하여 리피 강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거했다.


이후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인 ‘팔텍 폴리머 엔지니어 Paltech Polymer Engineers’와 함께 이를 시트 형태의 재료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어서 ‘빌링스 잭슨 디자인 Billings Jackson Design’과 ‘스틸 스미스 Steel Smith’와 협업하여 벤치 형태의 조형물로 완성했다. 작품의 모든 제작 과정에서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협력이 이루어진 만큼, 이 프로젝트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예술이라 할 수 있다.


벤치가 놓인 공간은 앞으로 다양한 강연과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며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예정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도시와의 연결을 탐구하고, 일상 속 재료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공동체적 시민 참여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모든 이들의 노력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
폐기물 재활용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다

네덜란드 건축회사 DWG 프로젝트는 예술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네덜란드의 단체 LOOS.fm과 협업하여 ‘PET 파빌리온’을 선보였다. 동네 공원에서 공공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임시 구조물은 지속 가능한 건축, 재활용 및 폐기물 순환과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계되었다.

파빌리온이 세워지기 전, 공원에는 잠옷 공장, 대형 반려견 훈련장, 50개의 텃밭,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녹지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건축 불황으로 인해 지역 개발이 중단되면서 공장 인근의 버려진 땅은 불법 투기와 범죄가 발생하는 장소로 변질되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LOOS.fm 및 주택 공사와 협력해 단순한 개발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담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초기 계획 단계에서 파빌리온의 모습은 골판지 구조물로 논의되었다. 그러다 점차 폐플라스틱을 건축 자재로 활용하는 ‘실험’으로 발전했다. 이어 폐기물을 그저 쌓아 올리는 것은 쓰레기장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는 판단 하에 건축적인 접근 방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 Farnsworth House’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폐기물을 정돈된 구조물로 변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PET 파빌리온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예술적 가치까지 담아낸 건축물로 탄생했다.


약 4만 개의 플라스틱병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PET 파빌리온 덕분에 공원의 모습은 완전히 변화했다. 이곳에서는 지역 의회 회의, 주요 예술 전시, 축제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이 열리고 있으며, 건물 옆 텃밭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잠옷 공장은 현재 청년 창작 허브로 변모했다.
지역 주민들의 공공 거실과 같은 역할을 하는 파빌리온을 통해 공원은 버려진 폐허에서 지역 커뮤니티가 모이는 중심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는 폐플라스틱이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버려지는 휴대폰 케이스로 작품을 만드는 케이스티파이

글로벌 케이스 브랜드 케이스티파이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3억 8천만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된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대왕 고래 270만 마리와 맞먹는 무게라고 한다. 그리고 그만큼의 플라스틱이 버려져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이스티파이는 다양한 지속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낡은 케이스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리/케이스티파이 Re/CASETiFY’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와 더불어 ‘창의성으로 완성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버려진 폰 케이스에 창의성, 혁신, 예술을 접목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프로젝트인 ‘리/케이스티파이 아트 Re/CASETiFY ART’도 전개하고 있다. 한국, 미국, 중국,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와 브랜드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지속가능성과 예술을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버려진 폰 케이스는 감각적인 테이블과 스툴로, 아늑한 소파로, 조각품으로, 불꽃놀이 스탠드로 변신하며 사람들에게 재활용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을 가늠하게 만드는 조각 작품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조엘 딘 스톡딜 Joel Dean Stockdill과 유스티나 살니코바 Yustina Salnikova는 몬테레이 베이 수족관의 의뢰를 받아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아트 프로덕션 및 컨설팅 기관인 ‘빌딩 180 Building 180’의 주도로 국립공원청과 골든게이트 국립휴양지의 허가를 받아 진행되었으며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힘을 모아 완성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에틸 Ethyl’은 강철과 재활용된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거대한 고래 형상의 조각 작품이다. 82피트(약 25미터) 길이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를 가진 이 작품은 이름부터 흥미롭다. ‘에틸’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범용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 PolyEthyline’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구성 요소 또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 거대한 조각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플라스틱은 한 사람이 태어나서 20세가 될 때까지 소비하는 양과 맞먹는다. 또한 단순히 플라스틱 문제를 경각심 있게 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폐기물이 반드시 기업 단위에서만 처리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한 재활용 과정이 도입되었다.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세척하고, 분쇄하는 모든 과정이 기존에 버려졌던 물품을 재활용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친환경적인 제작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멋진 작품이 탄생한 듯싶다.



이들이 힘들여 작품을 만든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목표 의식 때문이었다. 동시에 버려진 플라스틱도 적절한 세척과 가공 과정을 거치면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굳이 작품의 형상을 고래로 만든 이유 또한 명확하다. 9분마다 대왕 고래의 무게만큼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된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름부터 제작 과정, 그리고 완성까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경각심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2019년 기네스 세계 기록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재활용 플라스틱 조각품’으로 선정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공공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