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빨간 책이 말하는 것, 〈이우학교 건축〉

기존 건축 작품집과 달리 완공된 건물이 아닌 건축 과정 자체에 초점을 두고, 여러 주체의 관점과 이야기를 담았다.

커다란 빨간 책이 말하는 것, 〈이우학교 건축〉

건축 출판물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도미노프레스가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PP) 총서, 〈하이파이브〉에 이어 〈이우학교 건축〉을 펴냈다. 건축가 김승회가 설계하고 2003년에 개관한 대안학교 이우학교는 더 나은 배움의 방식을 추구하는 교육 철학과 건축이 공명하는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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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우학교 건축이 지난 20년간 네 단계에 걸쳐 진화한 과정을 살핀다. 기존 건축 작품집과 달리 완공된 건물이 아닌 건축 과정 자체에 초점을 두고, 여러 주체의 관점과 이야기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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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뉘는데, 건축설계 과정을 시간순으로 서술한 건축가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사이사이에 부록을 삽입했다. 이우학교 초대 교장·교감과 건축가의 대담, 완공 직후 촬영한 학교 풍경 사진, 졸업생의 이야기, 비평 등 건축을 이루는 다양한 층위의 기록을 담았다. 선형적인 이야기에 침투하듯 등장하는 부록은 종이의 크기와 재질, 편집 디자인을 본지와 다르게 구성해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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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또한 6개의 건물로 이뤄진 학교 전경과 복잡한 도면을 담기에 충분한 사이즈다. 선연한 빨간색 표지는 이우학교의 붉은 철골 기둥과 진보적 교육 정신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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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이우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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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의 선명한 가치관과 태도, 그와 합일된 건축적 특성과 방법론, 오래된 시간의 축적으로 증명된 풍경, 이 세 가지를 만족하는 건축 모델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이 이 책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당위다. 〈이우학교 건축〉을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년이라는 ‘시간’을 담을 것. 둘째, 건축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분포되어 있는 여러 주체의 관점과 이야기를 담을 것. 셋째, 건축적 자료를 신중하고 충실하게 담을 것.”

박세미
도미노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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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가늘고 긴 빨간 기둥이 빽빽이 늘어선 모습이었다. 기둥이 빨간색인 이유는 철재의 부식 방지를 위해 도색한 방청 페인트가 산화철을 함유해 붉은색을 띠기 때문이라는 건축가의 설명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대자보, 선생님들의 진보적 교육 사상을 보고 듣는 과정에서 빨간색은 건축적으로 의미 있으면서 동시에 이우학교의 교육 정신을 상징하는 시각언어라고 생각했다. 기성 건축과 교육에 저항하는 듯한 커다란 빨간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출판사와 건축가 덕분에 책이 온전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오혜진
스튜디오 오와이이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2호(2025.04)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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