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서정화 서정화 대표
가구 디자이너 서정화가 ‘머터리얼 컨테이너’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자연 소재의 물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그는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2011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에 참여해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그가 올해의 멘토로 돌아왔다.


작가로 활동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두 가지 일의 균형을 어떻게 잡고 있나?
작가 활동과 강의를 병행한 지 어언 10여 년이 됐다. 요즘은 서울대학교 디자인과에서 리빙 디자인 수업을 맡고 있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리서치하는 과정이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서로 다른 재료의 물성에 주목한 계기도 한 권의 책에 있다. 현대건축 소재의 촉각적 감각을 강조하는 핀란드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의 〈건축과 감각〉은 내 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강의와 책, 그리고 작업은 서로 맞물려 있다. 특히 학생들과의 소통은 창작자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
지난해에는 디자인 전공 박사과정을 마쳤다고 들었다. 금속 조형, 컨텍스추얼 디자인에 이어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학부 때 전공한 금속 조형 디자인은 공예적 성격이 강했다. 석사과정에서는 컨텍스추얼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공예나 디자인의 기법에 집중하기보다 사물에 담긴 내용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로 미학의 개념을 디자인 과정에서 풀어내는 과정을 다뤘다. 졸업 후 작업을 지속하면서 어떤 방향으로든 확장할 필요성을 느껴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했는데, 실용적 사물에 담긴 내용을 탐구하는 과정에 줄곧 관심을 가졌기에 디자인 전공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물성이 있는 소재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산업 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했고, 학업 과정에서 여러 주제를 심화시켜 연구할 수 있었다.

‘머터리얼 컨테이너’ 시리즈를 시작으로 ‘스트럭처 포 유즈’, ‘실린더’ 시리즈, ‘컷 앤 커넥티드’ 등으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는가?
처음에는 소재의 대비와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성이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해 대비를 강조한 ‘머터리얼 컨테이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후에는 공간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스트럭처 포 유즈’에서는 가구의 구조와 형태가 만드는 공간감을 실험했고, ‘실린더’ 시리즈에서는 원통형 구조에 착안해 미학적이면서 실용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작업마다 주제와 조형 언어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작업 전반에서 다양한 소재와 물성에 대한 탐구가 두드러진다. 최근에 각별히 관심을 두는 재료가 있나?
특정 소재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다양한 물성을 다룰 때 조형 언어의 범위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손에 익은 재료가 생겼다. 오랜 시간 알루미늄의 물성을 탐구하면서 가공 방식이나 표면 처리 등의 과정에서 숙련도가 높아졌고 나름의 독창성을 발전시켰다. 비슷한 관점에서 요즘에는 석재가 흥미롭다. 재료에 개입하는 정도에 따라 결과물의 모습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돌의 색이나 무게, 강도가 각기 다르고 깎거나 구멍을 뚫는 등 가공 방식에 따라 형태를 변주할 여지가 많다. 사실 자연에서 사람이 쓸 수 있는 재료는 한정적이다. 관건은 재료를 다루고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최근 물성을 강조한 가구나 오브제 디자인이 늘어났다. 어떤 배경이 있다고 보는가?
기술 발전으로 합성 소재가 등장하고, 3D 프린팅 같은 효율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가구나 오브제의 형태도 점점 정량화되고 있다. 컴퓨터 기반의 수치에 의해 디자인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사용하는 소재의 범위도 점차 제한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성을 강조하는 흐름은 바로 그 대척점에 있다. 자연 소재의 물성과 유기적인 형태는 대량생산 구조에서 생산된 제품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자연의 비정형성은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이 되기도 한다. 나무가 자란 흔적, 돌이 깨진 자리, 쇳물이 흘러들어간 자국 같은 것은 모두 과정을 함의한다. 몰드에 넣고 캐스팅하는 과정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물성을 간직한 가구나 오브제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나무의 결을 보고 누가 만든 작품인지, 자연의 어떤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인지 등을 유추하게 한다. 인간은 주변 사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물성이 주는 감각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2022년에 진행한 디올 성수의 가구 디자인 작업이 인상 깊다.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 곳곳에 놓일 가구를 디자인하면서 공간의 콘셉트와 연계해 작업을 발전시켰다. 무엇보다 디올 디자이너들이 방문해 가구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을 느꼈다. 제작 과정을 기록하는 영상과 자료까지 세심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다.

서정화는 작가주의 디자이너인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가구에 작가의 생각을 담으면 ‘작가주의’라는 수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유명 갤러리에 소속된 가구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흔히 아트 퍼니처로 구분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트와 커머셜 디자인을 명확히 나누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다. 디자인의 본질은 결국 관점을 담는 것이고, 모든 가구에는 디자이너의 시선과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에 참가한 지 10여 년 만에 멘토로 돌아왔다.
2011년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에 참여했다. ‘머터리얼 컨테이너’ 시리즈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디자인을 업으로 삼을지 고민하던 시점에 좋은 계기가 됐다. 요즘은 신진 디자이너가 활동할 수 있는 창구가 워낙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갓 졸업한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 또래 창작자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방향성을 탐색하고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엿한 디자이너로 성장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