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의상의 비밀
성직자의 예복은 시대를 초월한 종교적 상징물이자 그 자체로 고풍스럽고 우아한 의복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 역시 가톨릭 문화의 정수를 녹여낸 의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천사와 악마〉 〈영 포프〉 〈두 교황〉까지. 바티칸을 무대로 한 가톨릭 영화와 드라마가 유독 의상에 공을 들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성직자의 예복은 시대를 초월한 종교적 상징물이자 그 자체로 고풍스럽고 우아한 의복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 역시 가톨릭 문화의 정수를 녹여낸 의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118명의 추기경과 수녀를 위한 의상을 한 땀 한 땀 제작한 장본인은 의상 디자이너 리시 크리스틀이다. 1년여간 가톨릭 교회의 복식사를 연구한 디자이너는 시대의 흐름과 기술 발전, 심지어 추기경 개인의 재정 수준에 따라서도 예복 디자인에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엄격한 고증에 따라 의상을 제작하면서도 일정 정도 창작의 자유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덕분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특정 연도로 명시하는 대신 애매한 근미래로 설정해 관람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겼다.






리시 크리스틀이 가장 먼저 변화를 꾀한 부분은 전례복 색상이었다. 실제 추기경이 착용하는 전례복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다홍색인데, 2시간 내내 화면을 응시해야 하는 관람객을 고려해 실제보다 짙고 어두운 붉은색을 키 컬러로 사용했다. 예복의 구체적인 스타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복과 발렌시아가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참고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복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명이 넘는 재봉사와 재단사가 매달려 직조부터 염색까지 손수 진행했다고 한다.





극 중 추기경과 수녀가 지니고 있는 펙토랄레pectorale에도 섬세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신구는 피렌체의 전통적인 금세공 공방인 파올로 펜코Paolo Penko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펙토랄레의 소재와 형태가 저마다 다른 이유는 각 캐릭터의 성격과 성향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성격의 캐릭터는 금으로 도금한 화려한 펙토랄레를, 진보 성향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수수한 은 펙토랄레를 착용하고 있다. 등장인물 간 관계와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숨은 조력자인 셈이다. 〈콘클라베〉의 의상이 특별한 이유는 사려 깊은 고증과 창의적인 해석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히 엮여 있기 때문이다. 양극단의 문법을 노련하게 오가는 디자이너의 묘기를 감상하는 것도 〈콘클라베〉를 관람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에트바르트 베르거 감독과는 이번이 두 번째 협업이었다. 감독의 신뢰가 뒷받침되었기에 전통 예복을 조심스럽게 변형할 수 있었다. 의복 색상과 원단, 디자인을 모두 손봤지만 어디까지나 가톨릭 전통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에 머물며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했던 모든 여정이 돌이켜보면 꿈처럼 느껴질 만큼 즐거웠다.

〈콘클라베〉는 현대적인 영화다. 장신구에도 이 같은 모던함을 반영해 각 캐릭터의 개성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530개의 장신구는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했으며, 펙토랄레는 실제 기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배우들에게도 각 펙토랄레의 의미와 상징성을 전달해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6명의 작업자가 두 달여간 밤낮으로 매달려 완성한 엄청난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