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기준을 담다, 한국대중음악상 로고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인더그래픽스 인터뷰

인더그래픽스와 함께 한국대중음악상 로고 리뉴얼 작업 과정부터 밴드 튜즈데이 비치 클럽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구축,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첨예한 기준을 담다, 한국대중음악상 로고 디자인

지난 2월 27일,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 시상식은 지난 1년간 국내에서 발표된 음반, 노래, 그리고 음악인을 선정해 수상하는 권위 있는 행사이자 뮤지션과 음악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다. 올해는 더 큰 규모와 함께 새롭게 선보인 로고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과감하고 실험적인 로고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인더그래픽스(IN THE. GRAPHICS)가 디자인했다.

Interview

이정인, 차상우, 김정은 인더그래픽스

인더그래픽스는 그래픽 디자이너 이정인이 2023년 1인 스튜디오로 시작해 설립한 곳이다. 이후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3D와 모션그래픽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차상우가 합류했고, 2024년 1월부터 레터링과 편집 디자인을 담당하는 김정은이 함께하며 3인 체제로 운영되었다. 현재는 더 많은 팀원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서 확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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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부터) 인더그래픽스의 김정은, 차상우, 이정인 © IN THE. GRAPHICS

새로운 한대음 로고 디자인

한국대중음악상 로고 작업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차상우 처음 접했던 건 한국대중음악상이 비영리 민간단체가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예산이 삭감되고 후원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어요. 평소 한국대중음악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고, 제가 먼저 메일을 드렸어요. “비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디자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대한 돕고 싶다”고요. 그렇게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장님과 첫 미팅을 하게 됐죠. 한국대중음악상 로고는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졌어요. 색상을 바꾸거나 베리에이션 해 다른 애플리케이션에 활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고, 그래서 먼저 로고 디자인을 제안해 주셨죠.

한국대중음악상 측의 요청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디자인에 반영했는지 궁금해요.

이정인 먼저 요청하신 건 “기존 로고가 지닌 진중하고 전통적인 인상을 깨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희가 중점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이미지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첨예한 선정 기준과 공정함, 다양한 음악 장르가 어우러지는 개성이었어요. 처음 전달한 기획안에서도 이를 중심으로 표현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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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상의 새로운 로고 © IN THE. GRAPHICS
기존 ‘Korean Music Awards’의 이니셜 KMA를 살린 로고에서 과감하게 ‘K’ 하나만 남겼어요.

이정인 이니셜만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도 요청 사항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그래도 심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KMA에서 K만 따와, 완벽한 문자라기보다는 이미지처럼 보이도록 제작했어요. 심볼은 알파벳 K로 보이기도 하고, 프리즘에서 빛이 뻗어 나가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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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링 © IN THE. GRAP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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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그래픽스가 디자인한 한국대중음악상 로고의 다양한 형태 © IN THE. GRAPHICS
프리즘의 빛이 날카로운 선정 기준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레터링에는 어떤 의도를 담았어요?

김정은 레터링 같은 경우는 옛날 가요 프로그램이나 대학가요제의 인상을 특징으로 가져가면서 한글로 된 한국대중음악상의 타이틀을 그대로 유지하면 좋겠다고 정인 님이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어요. 이를 바탕으로 아이데이션을 시작했죠. 기존 한국대중음악상 웹사이트의 얇은 선과 음악이 지닌 리듬감에서도 영감을 받았어요. 먼저 글자의 폭을 보면 ‘중’과 ‘음’은 좁고 ‘상’은 넓어요. 특히 ‘ㅅ’이 길게 뻗어 나가는데, 이런 형태에서 프리즘과 리듬감을 표현했어요. 로고 타입이 전체적으로 얇은 선으로 표현된 것도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개방성 속에서도 첨예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점을 반영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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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그래픽스의 새로운 로고가 반영된 비주얼 에셋 © IN THE. GRAPHICS
새로운 로고는 현재 어떤 식으로 확장 및 활용되나요?

이정인 정은 님이 가변 폭으로 제작한 레터링은 가로로 길게 띠처럼 활용할 수 있고, 영상이나 웹 매체에서 다채롭게 사용되고 있어요. 심볼도 마찬가지예요. 패턴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프리즘의 스펙트럼에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넣는 방식으로 웹 홍보물을 제작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시안과 함께 드렸었죠.

과감한 변화를 단행했는데 새로운 로고에 대한 한국대중음악상 측의 첫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차상우 처음에 시안 2종을 전달해 드렸는데, 내부 반응이 50대 50으로 갈린다고 했어요. 음악을 심사하는 것처럼 내부에서 어떠한 사안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피드백을 계속 기다리다가 결정을 어려워하시길래, 세 번째 시안을 만들어서 이를 보고 결정하시라고 제안했어요. 한국대중음악상의 로고를 만든다는 건 저희에게 뜻깊은 일이었기 때문에 앞의 두 시안을 정말 오래 고민했어요. 3번을 드리되 ‘이제 1번이나 2번 중 선택하시겠지’ 했는데, 3번이 너무 좋다고 바로 채택하셨어요. (웃음)

이정인 1번과 2번의 아쉬운 부분을 각각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각 시안에서 좋았던 점을 힌트 삼아 자유롭게 의견을 들은 다음, 이를 참고해 아예 새롭게 시안을 제작했던 것 같아요. 처음 두 시안은 기존 로고의 연장선에서 단정한 인상을 주도록 했는데, 한국대중음악상 측에서는 좀 더 과감하고 실험적인 이미지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3번 시안은 우리가 중간에서 조율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작업해 보자는 의도로 진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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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실리카겔 © IN THE. GRAPHICS
세 분도 지금의 로고가 베스트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이정인 처음에는 1번과 2번이 계속 눈에 밟히긴 했는데, 지금은 두 시안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웃음) 시상식 현장에 직접 가 보니 왜 1번과 2번이 부족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모이고, 시상식 분위기도 딱딱하지 않고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느낌이 강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전 시안들보다 지금의 개성 있고 생동감 넘치는 로고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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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with PRIZM 상 수상자 비비 © IN THE. GRAPHICS
이번 작업을 마친 소감을 들려주세요. 시상식 현장에서 새로운 로고가 적용된 상패를 직접 본 감상도요.

이정인 한국대중음악상은 작년 수상자가 올해 시상자로 나오는데요. 자신이 작년에 수상했을 때보다 올해 더 멋져서 샘이 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분이 있었어요. 우리의 리뉴얼도 한몫한 것 같아서 조금 뿌듯했어요.

차상우 팬데믹 이후 시상식 규모가 다시 확대되는 시점에 로고 리뉴얼까지 이루어진 게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디자인적인 부분의 이야기보다, 온라인으로만 보던 시상식 현장에서 직접 수상자들의 소감을 들으며 우리가 맡았던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 작업이었는지를 실감했던 것 같아요.

김정은 저는 트로피에 프린팅된 게 가장 뜻깊게 느껴졌어요. 특히 비비 님이 수상하면서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 순간이 저에게도 상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작업한 디자인을 누군가 소중히 여기고, 행복해하는 걸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찼다고 할까요. (웃음)

3년 차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가 일하는 법

한국대중음악상 로고 작업은 상우 님이 주도해서 먼저 연락했잖아요. 이런 진행 방식에는 팀원들 간에도 의견 조율이 필요할 텐데, 자연스럽게 합의된 부분일까요?

이정인 사실 한국대중음악상 외에도 수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단순히 ‘봉사’라는 마음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프로젝트가 잘될 것 같고, 여기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 때 선택하는 거죠. 한국대중음악상의 얼굴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상우 님이 어떤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저희가 그 방향성에 동의하는 한 알아서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요.

차상우 저는 원래 디자이너 생태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흥미로운 프로젝트나 우리가 손을 더하면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 일이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연락하는 편이에요. 인더그래픽스 팀원들 모두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고요. 그런 태도가 이번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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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즈데이 비치 클럽의 두 번째 EP © IN THE. GRAPHICS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된 다른 프로젝트도 있을까요?

차상우 ‘튜즈데이 비치 클럽(Tuesday Beach Club)’이라는 밴드의 전반적인 아트 디렉팅을 맡고 있는데요. 원래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밴드였어요. 디자인적인 부분만 개선되면 더 잘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메일을 보냈고, 그 계기로 작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튜즈데이 비치 클럽과의 작업도 소개해주세요.

차상우 처음 만난 날, 튜즈데이 비치 클럽과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기획안을 PPT로 준비해 발표했어요. (웃음) 우리가 생각하는 밴드의 인상과 현재 포스팅 방향을 분석한 뒤,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안했죠. 첫 작업은 지난해 9월 공연이었어요. 당시 공연 무대에 비주얼라이저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보통 그러면 기존 소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직접 제작해보겠다고 해서, 혼자서 일주일 만에 10개 정도의 비주얼라이저를 만들었어요. 밴드 멤버들도 굉장히 만족해하셨고, 이후 EP 의 앨범 아트와 컵, 목도리 같은 굿즈를 포함해 연말 공연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맡게 됐어요.

인더그래픽스는 정인 님이 독립하며 만든 스튜디오잖아요. ‘인더그래픽스’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이정인 중고등학생 때 수학을 조금 재미있어했어요. 그래서 함수처럼 ‘인더’ 뒤에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떠올렸죠. 그런 개념을 바탕으로 로고도 괄호 형태로 디자인했고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형태가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아요.

최근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보니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이정인 올해 초에 상우 님이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바꿔보자고 제안했어요. 듣고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 소개란도 바로 수정했죠. (웃음)

세 분 역할 분담은 어떻게 나뉘나요?

이정인 저는 주로 인더그래픽스의 비주얼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아트 디렉팅을 맡고 있고요. 상우 님은 사업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3D 모션 및 그래픽 같은 기술적인 작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정은 님은 레터링과 편집 디자인을 기반으로, 점점 그래픽 디자인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중이에요.

상우 님이 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역할이군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바꾸자고 한 이유가 궁금해요.

차상우 단순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열심히 작업해도 이를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물론 디자인 신에서 저희가 갈 길도 아직 멀지만, 디자인 기술과 이론을 계속 공부하면서 다른 시장에 이를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시도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계속 우리가 가보지 않은 영역,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3년 차면 아직 굉장히 젊은 스튜디오잖아요. 기반을 다질 시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 오히려 도전을 선택하셨네요.

차상우 성향인 것 같아요. 저희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저만 해도 서른하나인데 지금까지 대여섯 개 정도의 사업을 해왔어요. 좋다면 좋지만, 나쁘게 보면 금방 질리는 편이랄까요. 사업을 하는 도중에도 제가 바뀌니까, 그 사업에 대한 애정이 금방 식어버리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인더그래픽스는 가변성 있는 회사로,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기존 역량을 접목해보면서 계속 새로운 방향으로 시도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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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인더그래픽스의 이정인, 차상우, 김정은 © IN THE. GRAPHICS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나 올해의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이정인 올해도 튜즈데이 비치 클럽과 함께 작업해요. 이번에는 단순히 디자인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가 보여지는 전체적인 이미지 구축에 집중해 스타일링이나 뮤직비디오, 라이브 클립 등 비주얼적인 모든 부분을 저희가 디렉팅할 계획이에요.

차상우 저도 하나 이야기하자면,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나라의 디자인을 경험하고, 다른 언어로 작업해보는 것이에요. 그래서 ‘인더’의 확장을 고려해 ‘인더넷’이라는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아직 국가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예를 들어 인도를 선택한다고 하면, 인더그래픽스가 인도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힌디어로 포스터를 제작해서 광고하고, 현지의 반응을 살펴보는 과정을 콘텐츠로 만드는 거죠. 단순히 ‘우리가 이런 팀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이 팀은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면 디자인 신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목표도 궁금해요.

이정인 올해나 가까운 미래에 페스티벌 작업을 꼭 해보고 싶어요. 여름마다 록 페스티벌에 가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기획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고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스티벌을 비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부터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김정은 저는 두 분이 항상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는 그 안에서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좀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예요.

차상우 저희는 아직 작은 회사지만, 새로운 팀원이 한 명씩 합류할 때마다 저와 정인 님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어제 문득 ‘단순히 고용하고 돈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정말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고 능력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팀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존중하며 함께 잘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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