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디자인의 DNA, 네 가지 키워드

지난 2월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주한 스위스 대사관과 스위스 외교부 초청으로 스위스 산업의 다양한 면을 살폈다. 이 중 네 가지 키워드와 사례로 스위스 디자인의 DNA를 조목조목 소개한다.

스위스 디자인의 DNA, 네 가지 키워드
프라이탁이 론칭한 의류 라인 ‘F-Abric’. 옷을 이루는 모든 소재가 생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현재는 스위스 자국 내에서만 유통하고 있다.
©Patrick Moser_FLC_ADAGP_ProLitteris_2013

르코르뷔지에가 부모를 위해 지은 빌라 ‘르락Le Lac’. 올해로 100년이 됐다. 그는 이전에도 부모를 위해 집을 지은 적이 있지만, 일명 하얀 집이라고 부르는 첫 건축물은 지나치게 크고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시계공이었던 아버지 조르주 에두아르드 지네레Georges Edouard Jeanneret가 대공황 시절 사기를 당해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자 결국 이전 집을 처분하고 르코르뷔지에가 지은 두 번째 집으로 옮긴다. 하얀 집이 다분히 신고전주의 양식을 띠고 있는 반면 64㎡에 불과한 르락 곳곳에는 자유평면, 옥상정원, 11m에 이르는 리본 윈도 등 르코르뷔지에가 제안한 ‘새로운 건축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이 녹아 있다. villalelac.ch

스위스 디자인의 유산

타이포그래퍼 얀 치홀트•는 말했다. “좋은 글자란 행실이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조화로운 집단과 같다.” 이 거장 디자이너의 혜안을 ‘감히’ 뒤집어 적용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위스는 좋은 글자와 같은 나라라고. 실제로 이들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연방제공화국과 직접민주주의라는 유례없이 독창적인 정치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 외부 시선으로 보자면 이 시스템의 조화는 기적에 가깝다. 공식 언어만 4개에 비공식 언어인 루마니아어를 쓰는 인구도 0.5%나 되고, 험악한 알프스 지형이 천혜의 요새를 만들어줬다고는 하지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강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전 세계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25%)이기도 하니까. 동일 언어권의 단일 민족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다종다양한 구성원들이 안정적인 시스템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그 비결은 곧 소개하는 네 가지 키워드와 무관치 않다).


스위스는 안정적인 정치 체계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경제, 문화적 인프라를 일궜고, 그 안에서 창조적이고 매력적인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루티거, 유니버스 등 국제주의 타이포그래피의 발상지이고 정교한 기술력과 브랜딩을 바탕으로 한 럭셔리 시계 산업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아드리안 프루티거Adrian Frutiger,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 한스 힐피커Hans Hilfiker, 아르민 호프만Armin Hofmann 같은 디자이너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등 건축 거장을 배출했다. 2003년 세계 최초로 그래픽 디자이너(로저 푼트Roger Pfund)에게 여권 디자인을 의뢰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디자인을 대하는 스위스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기능주의와 미니멀리즘, 장인 정신에 입각한 일명 ‘스위스 메이드’는 완성도를 향한 디자이너, 건축가, 브랜드의 집념과 철학이 한 국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신 타이포그래피의 선구자. 독일 라이프치히 태생으로 1933년 나치의 핍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고 197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나라에 살았다.


프라이탁은 트럭 덮개의 타포린 원단을 활용해 다종다양한 가방을 만든다.
전국에서 수거한 원단은 프라이탁 공장 지하에서 세척 후 재단 작업을 거친다. ©Tettamanti
프라이탁의 커스터마이징 플랫폼 F컷F-Cut으로 만든 가방. ©Oliver Nanzig
F컷 화보. ©Simon Habegger
프라이탁 플래그십 스토어. 컨테이터를 쌓아 올려 만든 매장 옥상에서는 취리히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Roland Tännler
F-Abric. 아마, 대마, 모달 등을 원료로 한 섬유는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 분해된다. ©Nadine Ottawa
S.W.A.P. 구매자 간에 가방을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Fabian Hugo

Keyword 1. 지속 가능성을 위한 지속 가능한 크리에이티브

프라이탁

지속 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르기 한참 전인 1993년 두 그래픽 디자이너 형제가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버려지는 트럭 덮개를 활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을 만들자는 것. 평소 자전거를 애용하던 두 형제는 궂은 날씨 탓에 가방 속 책이 젖는 게 일상이었는데 빗속을 뚫고 달리는 화물 트럭을 보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게 바로 프라이탁의 시작이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사명감도 물론 의미 있었지만, 원재료의 방수 기능 및 패턴과 컬러에 주목한 것은 지극히 디자이너다운 사고였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더럽고 냄새 나는 가방을 누가 들겠느냐는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 세계에 30개 매장을 오픈했다(이 중 3개가 한국에 있다). 메신저백 ‘F13 톱 캣Top Cat’을 시작으로 백팩, 토트백, 트래블랙, 랩톱백 등 다종다양한 가방을 만들고 있으며 지갑과 폰케이스, 각종 액세서리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프라이탁의 성공을 윤리성에서만 찾는 것은 다소 순진한 사고다. 이들은 브랜드의 윤리적 사명감만큼 사용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데에도 능하다. 프라이탁의 홍보 담당 엘리자베트 이세네거Elisabeth Isenegger는 “디자인 담당 부서가 입체적 상상력을 동원해 가방을 디자인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프라이탁 공장에서 트럭 방수포를 자르는 일도 디자인 프로세스의 일부”라고 강조했다(실제로 공장을 방문한 날 한편에서는 스태프들이 투명 아크릴의 탬플릿을 방수포 위에 올려놓고 직접 재단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레이저 커팅이 이뤄지고 있었다). 단 하나도 똑같은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프라이탁은 2019년 자신의 가방을 타인의 가방과 교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S.W.A.P를 열었다. 틴더 앱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한 이 플랫폼은 기업에 직접적 이윤을 남기진 않을지 몰라도 브랜드를 둘러싼 커뮤니티를 강화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지속 가능한 제품 생산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생각이 서비스로 발현된 것. 프라이탁은 소재의 순환을 활용하는 것 외에도 몇 년 전부터 소재 자체의 친환경성을 함께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생분해가 가능한 트럭 방수포 개발에 착수하는가 하면 자체 개발한 100% 생분해 가능한 섬유를 활용해 만든 의류 라인 ‘F-Abric’도 론칭했다.

스위스 혁신 센터 바젤 메인 캠퍼스. 축구장 크기에 육박하는 중정을 헤르조그 & 드뫼롱 스튜디오는 ‘녹색 심장’이라고 표현했다. 이곳에는 별도의 주차장을 마련하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는 자전거 주차장만 두었다.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

Keyword 2. 다양성에 기반한 유연함

헤르조그 & 드뫼롱

“혁신은 예술과 과학의 조합에서 일어난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Zurich)의 ‘AI+Art 프로그램’ 큐레이터 아드리안 노츠Adrian Notz는 진행 중인 메타 투어리즘 프로젝트••를 이렇게 운을 떼며 소개했다. 그는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외벽에 그려진 수많은 위인 중 세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알브레히트 뒤러가 예술과 과학의 조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을 이었다. 이질성의 융합, 그 이면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스위스인의 태도가 서려 있다. 이러한 계보는 건축 듀오 헤르조그 & 드뫼롱으로 이어진다. 바젤 출신의 1950년생 동갑내기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뫼롱Pierre de Meuron은 유치원에서 처음 만나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에서 나란히 건축을 공부했고, 1978년 고향에 사무실을 열었다. 재미있는 것은 죽마고우임에도 두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이 정반대라는 점. 자크 헤르조그가 냉철하고 현실적인 이성주의자인 반면 피에르 드뫼롱은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마음속 깊이 존중했고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진 그들은 소통과 융합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자크 헤르조그는 1997년 건축 비평가 제프리 킵니스Jeffrey Kipni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른 이와 협력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발전시켜왔다고 믿는다. 어쩌면 피에르와 유치원을 함께 다닌 이래로 늘 함께 일해야 했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시대에 힘을 모아 생존하는 것은 나쁜 전략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상이한 건축 프로젝트에도 유연하고 적절하게 대응한다. 다시 말해 다양성의 존중이 유연한 성취로 귀결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고향인 바젤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스위스 혁신 센터 바젤(Switzerland Innovation Park Basel Area)은 생물공학, 의료공학, 디지털 헬스 등 관련 분야 14개 연구 그룹과 69개 기업이 입주한 대단지 사무·연구 공간이다. 2022년 헤르조그 드뫼롱은 스위스 혁신 센터 바젤의 메인 캠퍼스를 디자인했는데 전체 5만㎡를 아우르는 부지에 세운 이 건물은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 골조와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이 특징이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헤르조그 & 드뫼롱의 건축가 알렉산더 프란츠Alexander Franz는 다양성을 고려한 유연성이 이 건축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입주사가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필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둥 등 건물의 핵심 요소를 모서리에 배치해 사무실 혹은 연구실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스위스 혁신 센터 바젤 메인 캠퍼스가 사용자 경험과 사용성을 꼼꼼히 살펴 완성한 이성적인 공간이라면, 같은 해 완공한 공연장 슈타트카지노 바젤Stadtcasino Basel은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19세기 이래 문화예술 공간이 집결되어 있던 바젤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이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876년에 건축해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공연장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본래 철거될 운명이었고, 이 부지에 2005년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자하 하디드의 급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축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설계안은 대중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2007년 국민투표에서 프로젝트 진행이 부결되면서 한동안 답보 상태가 이어졌다(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출구를 찾은 건 헤르조그 & 드뫼롱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신축이 아닌 기존 공간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기존 2개의 콘서트홀을 재단장하고 로비를 리디자인하고 관원들을 위한 시설을 개선하는 게 프로젝트의 골자였다. 외관에서는 소재를 콘크리트로 교체하되 기존 석조 건물의 신바로크 양식은 유지했다. 대신 실내 공간은 과감히 변화시켰다. 로비에는 반사되는 금속성 재료를 적용해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시켰다. 1층 천장부를 측변으로부터 분리해 공중을 부유하는 타원형 패널처럼 보이도록 연출하는 한편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구멍을 뚫어 두 층의 유기적 연결을 꾀했다. 또 붉은색 벨벳 소재로 계단부를 구성하는가 하면 전통적인 샹들리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LED 조명 파루카Parrucca를 설치하는 등 곳곳에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전문가들은 독자적인 여러 문화가 병립하는 스위스의 특징이 디자인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역색이 강한 데다 구사하는 언어마저 다른 상황에서 단순하고 직관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헤르조그 & 드뫼롱의 건축물은 문화의 용광로 속에 피어난 디자인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고 있다. herzogdemeuron.com

••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내 AI 센터는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과학기술협력실과 협업해 오는 5월 한국과 스위스를 잇는 가상투어 프로젝트를 DDP 전시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알렉산더 프란츠
스위스 혁신 센터 바젤 메인 캠퍼스 어소시에이트 건축가


스위스 혁신센터 바젤 메인 캠퍼스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우리의 임무는 생명과학의 세계를 위해 건물 외관과 핵심 요소를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결국 입주자들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외관의 날것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유지하는 동시에 구조적으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만 남기는 것이었다. 특별히 외부 계단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는 입주자 간 교류를 유도할 뿐 아니라 화재 시 대피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기존 건물과 차별화되고 너무 압도적이지 않으면서도 반복적인 구성을 갖춘 대형 건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우리는 기념비적인 디자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축구장 크기의 중정을 둬 입주자들이 가운데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고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은
더 울창해질 것이고 노출 콘크리트 건물과의 대조가 강해질 것이다. 또 건물 파사드로부터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배치한 부벽은 일종의 회랑을 만들어 입주자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헤르조그 & 드뫼롱의 포트폴리오는 매우 이성적인 동시에 상당히 감성적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신기할 정도다.

우리는 각 프로젝트에 맞춰 독자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 프로젝트의 특수한 요구 사항을 세심하게 분석하는 게 우리의 작업 프로세스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입주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시작해야 했다. 즉 사용자의 요구 사항이 결여된 상태였다. 따라서 (다른 건축 프로젝트에 비해) 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Keyword 3. 민주적인 디자인

빅게임

헤르조그 & 드뫼롱만큼 오랜 시간은 아니라도 스위스 산업 디자인계에서는 그에 못지않게 깊은 우애를 보여주는 스튜디오가 하나 있다. 바로 2004년 문을 연 디자인 스튜디오 빅게임이다. 스위스 출신의 그레구아르 장모노Grégoire Jeanmonod, 프랑스 국적의 오귀스탱 스코트 드 마르탱빌Augustin Scott de Martinville, 벨기에 태생인 엘리크 프티Elric Petit는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에서 처음 만났다. 성격도, 배경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은 건 만인에게 평등한 민주적인 디자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이었다. 여전히 스위스 로잔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탄탄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에어프랑스, 무토, 헤이, 알레시, 이케아, 가리모쿠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아고 라이팅, 자주 등 국내 브랜드와도 협업한 이력이 있다.

“ 우리의 작업은 심플하고 기능적이며 낙천적이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성장 배경과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20년 가까이 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일한 지 어느덧 19년째다. 사실 여전히 친구 사이라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싶다.(웃음)


세 사람을 묶는 공통분모를 꼽자면?

우리는 일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며 잘 고안된 아이템을 디자인하겠다는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 연령, 성별,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말이다. 우리가 커리어를 막 시작했을 때 많은 디자이너들이 고학력의 부유한 엘리트를 위한 제품이나 갤러리를 위한 값비싼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드는 데 몰두했던 것과 사뭇 다른 행보였다. 디자인과 예술에 대한 취향이 같다는 것도 우리에겐 큰 행운이었다. 카스틸리오니, 엔초 마리, 도널드 저드, 르코르뷔지에부터 일명 ‘스위스 스타일’의 그래픽 디자인과 프랑코-벨기에의 코믹스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인 리뉴 클레르ligne claire•••까지 말이다.

••• 〈땡땡의 모험〉을 그린 에르제Hergé가 고안한 드로잉 스타일. 대비가 명료한 선명하고 강한 선이 특징이다.


빅게임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작업은 심플하고 기능적이며 낙천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플이란 깔끔한 라인이 두드러지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 다시 말해 꼭 필요한 디자인 언어만 사용한다는 뜻이다. 또 기능적이라는 것은 유용하고 편안하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낙천적이라는 것은 우리 디자인이 단순히 문제 해결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일상에 즐거움을 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각 요소를 더한다는 뜻이다.

스위스를 활동 무대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세 사람이 동문이긴 하지만 벨기에나 프랑스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았나?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로잔은 교통의 요충지다. 기차로 파리까지는 3시간 30분, 밀라노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이 큰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아름다운 자연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제네바 호수 인근에 머물고, 몽블랑 산맥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는 디자이너에게 큰 축복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어마어마한 디자인 문화를 들 수 있다. 지역의 디자인 생태계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에 더해 스위스는 비즈니스를 세팅하기에 여러
유리한 조건이 있다. 까다로운 행정 절차가 필요 없다는 것도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 중 하나다.


언제나 세 사람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들었다. 다투는 경우는 없나?

물론 지난 19년간 우리는 많이 다퉜다. 일을 할 때뿐 아니라 여행을 하거나 페어에 방문하거나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도 말이다. 하지만 이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논쟁이다. 우리는 효율적이고 우리가 새로운 오브제를 즐겁게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데 일련의 언쟁은 주로 프로세스 초기에 일어나며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간다. 파트너 간에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게 우리의 기본적인 방침이다. 우리는 디자인 과정을 대화에 비유하곤 한다. 언제나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고 종국에는 누구의 디자인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결과가 나온다. 모든 것이 공동 창조의 과정이자 집단 작업이다. 자아를 제거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드러내기보다 훌륭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스위스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위스는 직 접민주주의를 택했고, 정치가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에 일상에서 건강한 정치적 토론을 나누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화제를 바꿔보자. 세 사람 모두 ECAL 출신으로 지금은 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빅게임에게 ECAL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당연히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세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고. 재학 당시 디렉터 피에르 켈러Pierre Keller가 있었던 것은 우리와 학교 모두에 큰 행운이었다. 그는 작고 따분한 예술 학교가 국제적 명성을 얻는 데 크게 기여했다. 로낭 부룰레크, 바버 & 오거스비, 움베르토 캄파냐를
초청해 강연을 열기도 하고, 어린 학생들의 작품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선보이기 위해 전시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이 좋은 디자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만드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피에르 켈러는 늘 우리에게 말했다. “모든 것에 진지하게 임해라.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학생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글쎄, 우리는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이 없고, 작업에서 문맥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해결책을 쥐여주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그들과 팀을 이루고자 한다.


빅게임은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브랜드와의 협업도 늘어났다.

우리는 스튜디오 초기부터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홍콩 등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사와 협업했다. 다양한 맥락과 산업에서 여러 전문 지식을 가져와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를 매우 풍요롭게 만든다. 이를테면 스위스에서 시계를 디자인하며 습득한 지식을 홍콩의 가전제품 브랜드에 적용하는 식이다. 한국 브랜드와 협업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한국의 문화와 방식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지난해에는 LG디스플레이와 협업했고 장 기적 협업 관계를 유지하는 아고와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고, 한국의 가전제품과 자동차는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엄청난 속도로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아고 같은 젊은 브랜드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가리모쿠와 협업한 ‘카스터’ 로비 소파. ©Masaaki Inoue
알레시의 브레드 박스 ‘마티나Mattina’. 박스 뚜껑을 도마로 사용할 수 있으며 적정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나 있다.
ECAL에서 수업 중인 엘리크 프티. ©ECAL/Jasmine Deporta

Keyword 4. 기능주의라는 뿌리

USM

이런 걸 바로 국민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 스위스 혁신 센터, 로잔 예술 대학교, 스위스 국회의사당까지. 스위스 혁신의 근간을 이루는 공간을 둘러보며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무 가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스위스 모듈 가구의 심벌 USM이다. 1885년 설립한 이 가족 기업은 본래 자물쇠나 창호, 경첩 등을 생산하던 철공소였다. 베른주 외곽의 뮌징겐에 본사를 둔 USM은 1960년대에 들어 전환기를 맞이했다. 3대손 파울 셰러Paul Schärer가 USM 경영에 관여하면서부터다.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그는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제조 공정을 적극 도입하고자 했다. 이런 경영자의 비전을 실현시켜준 건 건축가 프리츠 할러Fritz Haller였다. 그는 USM의 창호 시스템을 공장 및 오피스 건축에 적용했다. 강철 구조의 모듈 시스템을 고안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 기둥과 대들보를 더할 수 있는 구조는 생산 시설을 확장하는 데 유리했다.

파울 셰러와 프리츠 할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모듈형 건축의 특징을 또 한 번 전이시켜 가구를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브랜드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용자의 환경과 니즈에 따라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USM 할러 시스템은 이렇게 탄생했다. 구조는 간단하다. 크롬 도금한 직경 2.5cm의 볼과 스틸 튜브, 그리고 둘 사이를 단단히 고정시키는 커넥터, 여기에 14종의 컬러 스틸 패널이 더해져 USM의 모듈 가구가 완성된다. 이 시스템은 1965년 특허 신청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4년 뒤인 1969년 프랑스 파리의 로스차일드 은행이 600대의 워크스테이션을 주문한 것을 계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USM의 가구 디자인은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영구 컬렉션에 포함됐다. 기능주의에 기반한 USM의 디자인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생산 공정의 많은 부분이 사람에서 로봇으로 넘어갔지만, 4대 경영자 알렉산더 셰러Alexander Schärer가 경영을 승계한 이후에도 여전히 뮌징겐의 공장과 오피스를 확장해가며 사용하고 있다.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에서 타임리스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 파울 셰러와 프리츠 할러가 꿈꾸던 이상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USM의 핵심 부품인 볼, 스틸 튜브, 커넥터.
일명 ‘USM 그린’은 스위스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막스 빌Max Bill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더 셰러
USM CEO

우리는 한번 만든 부품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곧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가격대가 높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는 해외 시장 진출이다. 특히 그동안 취약했던 미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하이엔드 시장이 발달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국 공략에 집중할 계획이다.


한국 속의 스위스, 스위스 속의 한국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두 나라, 스위스와 한국의 연결 고리는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다. 스위스 속 한국의 디자인, 한국 속 스위스의 디자인을 살핀다.

ⓒJihyun Jung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디자인 헤르조그 & 드뫼롱

헤르조그 & 드뫼롱의 첫 국내 진출작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특히 ‘송은’의 의미인 ‘숨어 있는 소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건축물의 표면이 인상적인데 건축가는 목판 거푸집을 사용해 질감을 표현했다. songeun.or.kr

©Hélène Binet

주한 스위스 대사관
디자인 버크하르트+파트너Burckhardt+Partner, burckhardtpartner.com

2019년 정식 재개관한 이곳은 한옥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마당을 가운데 두고 병풍처럼 건물을 둘러 배치한 게 특징이다. 처음 대사관이 들어섰던 1970년대 전경을 건축의 DNA에 아로새겨 한옥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는 〈Spaceless〉라는 사진전을 열며 큰 화제를 모았고, 올해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swisshanok

자주 마시는 텀블러
디자인 빅게임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가 2021년 선보인 텀블러. 빅게임과 협업해 완성한 이 제품은 탈부착이 가능한 손잡이로 기능성을 높였다. 지속 가능성과 기능성이라는 스위스 디자인의 핵심이 녹아든 제품이다.

니나윤Nina Yuun
디자인 윤니나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패션 디자이너 윤니나가 2016년 론칭한 브랜드. 취리히를 기반으로 한국 특유의 정서인 ‘여유로운 우아함’을 녹여낸 옷을 디자인한다. 제로 웨이스트를 원칙으로 시대를 초월한 옷을 만드는 게 목표다. ninayuun.com

퍼펠라Pupella 프로젝트
디자인 모토엘라스티코, motoelastico.com

바젤 대학교 혁신처(University of Basel Innovation Office)가 스타트업을 위해 조성한 액셀러레이터 공간. 지금 이곳은 3분의 1쯤 한국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종로에서 활동하는 모토엘라스티코가 공간을 연출했기 때문. 핑크색 건설 비계와 편의점 테이블, 방석 등은 스위스의 모던함과 거리가 멀다. 모토엘라스티코가 출간한 〈Borrowed City 빌린도시〉의 개념을 차용해 공공 공간을 임대한다는 콘셉트를 적용했다. 종로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 스타트업의 솔루션 도출과 닮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개념은 모토엘라스코의 미디어 디렉터 줄리아 네스폴리Giulia Nespoli가 디자인한 푸펠라의 웹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pupella.org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 기념 로고
디자인 발머 헬렌Balmer Hählen, balmerhahlen.ch

지난해 주한 스위스 대사관이 주최한 공모전에서 선정된 이 로고는 두 나라를 대표하는 꽃 무궁화와 에델바이스를 캐릭터화해 양국의 우정을 표현했다. 4월 8일부터 5월 8일까지 경의선 철길에서 열리는 ‘스위스 봄 거리 축제’에서도 발머 헬렌의 새로운 포스터를 만날 수 있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올해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웹사이트를 오픈했다.
올해 기획 중인 행사 소식을 비롯해 스위스의 혁신과 디자인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swisskorea60.org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