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의 미래를 디자인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양연주
변화하는 뷰티 산업의 한가운데서, 브랜드 경험의 미래를 설계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양연주 디렉터와 함께 ‘뷰티 퓨처스’의 실험, 디자인 철학, 그리고 그녀만의 커리어 여정을 따라가본다.

빠르게 진화하는 글로벌 뷰티 산업 안에서, 디자인은 단순히 기술이나 트렌드를 반영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 삶의 맥락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브랜드 경험으로 풀어내는 디자인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접근이다. 글로벌 브랜드 디자인 에이전시 디자인 브리지 앤 파트너스(Design Bridge & Partners)는 이러한 관점에서 뷰티 산업에 특화된 새로운 팀, ‘뷰티 퓨처스(Beauty Futures)’를 출범시켰다. 이 실험적인 팀의 크리에이티브 리드를 맡고 있는 양연주 디렉터는 제품, 공간, 그래픽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커리어를 바탕으로 브랜드 디자인의 오늘과 내일을 탐색해왔다. 지난 2월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글로벌 콘퍼런스 참석차 서울을 찾은 그녀를 만나 뷰티 퓨처스의 탄생 배경부터 브랜드 디자인의 철학,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여정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양연주 시니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뷰티 퓨처스 크리에이티브 리드,
디자인 브릿지 앤 파트너스

뷰티 퓨처스의 시작
먼저 디렉터님이 소속된 팀과 역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디자인 브리지 앤 파트너스는 브랜드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글로벌 에이전시예요. 런던 오피스에는 크리에이티브 팀이 세 개 있고, 현재는 레드, 블루,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팀 이름은 고정된 건 아니고, 새 이름을 계속 논의 중이에요. 저는 그중 블루 팀에서 시니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블루 팀에는 약 30명의 디자이너가 소속돼 있고요. 클라이언트의 브리프를 받고 나면, 어떤 디자이너가 가장 적합할지 고민해 프로젝트 팀을 구성합니다. 이후에는 전략팀, 클라이언트 리더십팀과 긴밀히 협업하며 프로젝트 전반을 함께 이끌죠. 저는 초기 브리핑 단계부터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디자인 디렉션을 잡고,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전체 디자인 프로세스를 총괄하고 있어요.
‘뷰티 퓨처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떤 계기로 팀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2024년 7월쯤, 저와 전략팀의 사라, 클라이언트 리더십팀의 케이티, 이렇게 셋이서 뷰티 산업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게 되었어요. 저희 회사는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다루지만, 유독 뷰티 프로젝트는 많지 않다는 점이 늘 아쉬웠거든요. 특히 저와 사라, 케이티 모두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저는 이전 회사에서 뷰티 프로젝트를 많이 맡아본 경험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팀을 만들어 뷰티 분야를 주도적으로 다뤄보자”는 이야기를 나눴고, 곧바로 비즈니스 플랜을 구성해 회사에 제안했어요. 9월에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승인을 받았습니다.


회사의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일주일에 하루를 뷰티 퓨처스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방식이에요.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보면, 4일은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하루는 셋이 모여 팀의 방향성과 전략을 논의하는 거죠. 글로벌 디자인 에이전시 내에 이런 실험적인 팀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저희는 일종의 사내 벤처처럼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작은 부티크 에이전시처럼 빠르게 실행하면서도, 대형 에이전시가 가진 데이터와 리소스를 활용해 뷰티 산업을 더 깊이 탐구하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전략적인 기반과 유연한 실행력을 함께 갖추려 하고 있습니다.
뷰티 퓨처스 팀이 특히 집중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요?
뷰티 퓨처스는 단순히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사람의 감정과 삶에 연결된 경험을 중심에 둡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스로를 “미래의 뷰티를 위해 오늘을 설계하는 팀”이라고 소개해요. 지금의 뷰티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표면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감정에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브랜드를 원하거든요. 뷰티가 각자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다양한 모습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어요.
인간 중심 디자인, 뷰티 산업에서 실현하기
뷰티 퓨처스 팀이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이 디자인 브리지 앤 파트너스의 철학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디자인 브리지 앤 파트너스에서는 “사람을 움직이는 브랜드를 디자인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공간, 제품, 패키지, 아이덴티티 등 모든 디자인의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죠. 뷰티는 특히 감정, 개성, 웰니스, 심리적 건강 등과 맞닿아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인간 중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의 브리프가 꼭 인간 중심적이지 않더라도, 그런 방향을 제안할 수도 있는 걸까요?
그럼요. 모든 클라이언트가 처음부터 인간 중심적인 접근을 하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오래된 아이덴티티를 리프레시해달라”는 단순한 요청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에이전시의 역할은 단순히 지시받은 대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이 소비자와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고 제안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 중심적으로 접근했을 때 브랜드 이미지나 소비자 반응뿐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런 가능성을 설득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에이전시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브릿지 앤 파트너스는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를 활용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알고 있어요. 이 프로세스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지금 중동, 아시아, 브라질, 유럽, 북미 등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에 론칭되는 글로벌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모든 시장에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아이덴티티와 패키지 디자인 시스템이 필요했죠. 전략팀과 함께 브랜드의 핵심 이슈를 정의하고, WPP 그룹의 리서치 자원과 현지 인사이트를 수집한 뒤, 넓게 탐색하고 점점 좁혀가며 가장 설득력 있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이후 디자인 시스템으로 확장하고, 생산과 캠페인 실행, 소비자 반응 모니터링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이 더블 다이아몬드처럼 유기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단일 마켓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뷰티 브랜드의 글로벌화에도 주요한 이슈 같고요.
맞아요. 하나의 마켓에 집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죠. 각 시장의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는 글로벌 팀들과 긴밀히 협업하면서 현지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모든 시장에서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조율하고요. 예전의 뷰티 브랜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역적이었어요. 시장마다 고유의 뚜렷한 스타일이 있었고요. 하지만 요즘 뷰티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글로벌화되고 있죠. 한 지역에서 통했던 디자인이 다른 지역에선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반대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감을 얻기도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기업들도 더 이상 우리만의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전 세계적으로 어떤 감성이나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는지를 유심히 보고, 거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 역시 더 넓은 시야와 열린 감각으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뷰티 퓨쳐스 팀이 지향하는 뷰티 디자인은요?
저희가 바라보는 뷰티는 하나의 퍼펙션을 좇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각자의 모습과 정체성을 진심으로 셀러브레이션할 수 있는 뷰티에 더 가까워요.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서로 다른 태도와 감정까지도 모두 뷰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점을 지향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뷰티를 통해 자신감을 갖고, 즐겁게 자기다움을 탐색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건강하게 세워갈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글로벌 에이전시로
디자이너로서 데이터에 기반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어떠세요?
저는 디자인에서 전략과 감각,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구조적인 사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의 미적 감각 역시 굉장히 중요하죠. 아무리 전략적으로 접근하더라도 디자이너가 감각을 충분히 쌓지 못했다면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감각은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훈련될 수 있는 역량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기르고, 전략적 사고와 연결시킬 수 있을 때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 같아요.
디렉터님의 작업 성향도 원래부터 그렇게 입체적인 스타일이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제 커리어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형성됐는데요. 저는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첫 직장은 에이브 로저스 디자인(Ab Rogers Design)이라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였어요. 인테리어 디자인 경험은 없었지만, 공간이든 제품이든 사람이 직접 경험하는 물리적인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연결성이 있다고 느꼈죠. 주니어에서 디렉터까지 6년간 일한 뒤에는 남편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야드(YARD)를 열었어요. 남편은 럭셔리 시계 브랜드 디자이너였고, 저는 공간을 다뤘기 때문에 스케일도, 접근 방식도 달랐지만 그 차이에서 흥미로운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제품 디자인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키지, 브랜딩, 그래픽까지 점점 넓어졌어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쪽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그렇게 7~8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브랜딩 에이전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제품 디자이너와 공간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는 다루는 툴이 전혀 다르잖아요. 이런 전환은 자연스러우셨나요?
계속해서 배워야죠. 저는 늘 ‘평생 학생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해왔어요. 디자인은 한 번 배운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변화하잖아요.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툴이든, 감각의 원천이든 스스로 배우고 탐색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분야를 마주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익히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습관처럼 몸에 밴 것 같아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다가 글로벌 에이전시에 합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브랜드 디자인도 하고 있었고, 클라이언트 반응도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하는 이 방식이 정말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학교나 조직에서 배우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며 터득한 방식이다 보니, 제 접근법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번쯤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다른 방식들을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런던 펜타그램에 지원해 합류하게 됐어요. 펜타그램에서는 3개월 만에 어소시에이트 파트너가 되었고, 약 3년간 일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프로젝트 규모나 접근 방식도 전혀 달랐고, 큰 조직 안에서 일하는 경험이 새로운 자극이 되었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그렇게 틀리게 해온 건 아니었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게 됐어요.
확신을 얻었지만, 다시 글로벌 에이전시에 합류하셨어요.
지금도 남편은 야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큰 프로젝트를 이끄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작년에 좋은 기회로 디자인 브리지 앤 파트너스에 합류해 시니어 디렉터로 팀을 이끌게 됐어요.
팀을 운영하는 디렉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면 뭘까요?
무엇보다 ‘파트너십’이 중요해요. 디렉터의 역할은 전략팀, 모션팀, 피지컬 익스피리언스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져오는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일이자, 그 중심이 되는 핵심 아이디어를 통찰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아이디어를 알아보고, 끝까지 함께 밀고 나가는 힘이 디렉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어요.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얻는 창작의 기쁨



오울 앤 도그 플레이북스(Owl & Dog Playbooks)라는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신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 계기는 무지(MUJI)와의 협업이었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용 제품을 제안하게 됐는데, 그중 몇 가지 장난감이 실제로 생산됐죠. 아이를 위한 디자인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싶었고, 마침 제 아들도 태어난 시기라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에 관심이 커졌어요. 장난감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지만 생산 단가가 너무 높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기에 종이라는 소재에 주목했어요. 종이를 중심으로 장난감처럼 놀 수 있는 디자인을 실험하며 일러스트와 스토리를 덧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인쇄를 맡기려다 ISBN을 등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출판사를 설립하게 됐어요. 그게 ‘오울 앤 도그 플레이북스’의 시작이었어요. (웃음)

곰의 모험을 담은 책이 가면으로 변신하는 구성. 읽기와 놀이를 결합해 참여형 독서 경험을 제안한다. 2017년 British Book Design and Production Award를 수상했다.
지금도 출판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 중이신가요? 출간 예정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남편과 함께 1년에 한두 권 정도는 꼭 출판하려고 해요. 처음엔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했지만, 지금은 외부 일러스트레이터나 작가와 협업도 하고 있어요. 올해는 두 권을 출간할 예정인데요. 하나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한 책이고, 또 하나는 저의 첫 보스였던 에이브 로저스와 함께 리처드 로저스를 주제로 한 아동책이에요. 리처드 로저스는 굉장히 영향력 있는 건축가인데, 아이들을 위한 책은 없더라고요. 그의 삶과 건축 세계를 아이들에게 재밌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며, 그의 아들인 에이브 로저스에게 혹시 글을 써줄 수 있냐고 물어봤죠. 6월 런던에서 열리는 리처드 로저스 전시에 맞춰 출간할 계획입니다.



각 페이지가 반원 형태로 겹쳐지며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얼굴들이 유아의 호기심과 참여를 유도한다. 2022년 D&AD 어워드 북 디자인 부문 우드 펜슬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Academy of Book Cover Design Award 아동 도서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작업실에서 도구를 걸어두는 데 사용하는 ‘페그보드’에서 착안한 책. 각 페이지에 뚫린 구멍(타공)을 중심으로 이야기와 단순한 일러스트가 전개되며, 여기에 나무못이나 실을 끼워 그림에 디테일을 더할 수 있다. 2024년 D&AD 어워드 북 디자인 부문 우드 펜슬을 수상하였으며, Academy of Book Cover Design Award와 British Book Design and Production Award의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개인 프로젝트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자유로워요. 클라이언트가 있는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다양한 제약과 타협이 필요하잖아요. 예산이나 제작 방식에 있어 제한이 생기기도 하고요. 반면 출판 프로젝트에서는 제가 곧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에, 어떤 소재를 쓰고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 전부 제 선택이에요. 물론 비용도 제가 감당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있지만, 그만큼 창작의 기쁨이 커요.
배움을 지속하는 디자이너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데 있어 인풋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결국 영감은 일상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하는 말일 수 있지만, 정말 그렇거든요. 매일 마주치는 장면, 직접 써보는 제품, 거리에서 보는 풍경 같은 것들이 모두 인풋이 돼요.
뷰티와 웰니스에서 중요한 게 셀프 케어잖아요. 이를 위한 디렉터님만의 루틴이 있다면요?
저는 잠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루에 7시간 이상은 꼭 자려고 하고, 가장 이상적인 건 8시간이에요. (웃음) 늦게 자면 바로 컨디션에 영향이 오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자는 편이에요. 아침형 인간은 아니지만 규칙적인 수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특히 관심 두고 있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뷰티와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 이 두 분야에 계속해서 관심이 많아요. 하나로 좁히기보다는 여러 관점을 함께 보려고 하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브랜드가 디지털, 공간, 패키지 등에서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저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새롭게 배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뭘까요?
‘가르치는 일’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어요. 지금 동서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 중인데,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필요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또 다른 일인 것 같아요.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무엇보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프로액티브해야 하죠.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오지 않으니까요. 주어진 일도 한 스텝 더 나아가보려는 마음가짐이 결국 실력을 쌓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배우는 자세예요.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면, 더 건강하고 유연한 관계가 만들어지더라고요.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파트너십이 힘들어지고 스스로도 성장하기도 어려워요. 저도 20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신가요?
예전에는 ‘이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이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매 순간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디자인은 결국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는 일이니까요. 앞으로도 그런 시야를 가진 디자이너로 성장해 나가고 싶고, 계속 그렇게 노력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