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로 거니는 마을,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

일본 세토내해의 작은 항구 마을 우시마도에서 ‘2025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이 열린다. 조선통신사의 환대 정신에서 출발한 이 축제는 마을 전체를 전시장 삼아, 공예와 삶이 맞닿는 느린 걸음을 이어간다.

공예로 거니는 마을,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

오는 4월 19일부터 20일까지, 새소리와 파도 소리, 그리고 누군가 나무를 다듬는 두드림이 가득한 일본 세토내해(瀬戸内海)의 작은 항구 마을 우시마도(牛窓)가 또 한 번 특별한 산책을 시작한다. 이름하여 ‘2025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이다. 예술을 미술관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은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축물 오차야아토(御茶屋跡)를 중심으로, 마을의 골목과 오래된 가정집 등 생활 공간 속에서 조용히 펼쳐진다.

오차야아토에서 시작된 환대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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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일본의 에게해’라고도 불리는 우시마도는 과거 조선통신사가 여덟 차례나 기항하며 머문 역사적인 지역이다. 조선통신사는 우시마도에 머물며 지역 주민들과 문화적 교류를 나누었는데, 그들을 맞이하던 접대 장소인 오차야아토는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2010년, 현재 오차야아토의 디렉터인 스에토 코타로(末藤功太郎)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철거가 예정된 상태였다. 이를 본 그는 단지 한 건축물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오차야아토가 품고 있던 ‘환대의 기억’을 되살리고, 이곳에서 다시 사람을 맞이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고민은 마침내 마을 전체로 확장되었고, 2013년,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이라는 이름의 축제로 이어졌다.

2년에 한 번, 마을을 산책하다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은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마을과 수공예가 함께 숨 쉬는 긴 여정이다. 2013년 1회를 시작으로 2년마다 일본 각지에서 온 작가들은 마을 가정집에 머물고 그 집을 전시장으로 바꾸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바닷길의 거점이자 배를 고치는 항구 마을로 망치질과 나무를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그 일상적인 손의 리듬이, 또 다른 손의 문화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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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

이 축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작가의 마음이다. 경력이다 유명세보다 우시마도의 풍토와 어울리는지, 그 손길이 진심을 담고 있는지를 본다. 참여 작가들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공감하며 단순히 작품을 공개하는 것을 넘어 지역과의 관계 맺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작가들도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이들을 손자·손녀처럼 따스하게 맞이한다. 올해는 도예, 목공, 유리, 섬유, 회화, 사진, 분재,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40여 팀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산책’은 이 축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다. 천천히 거닐며 공예와 사람을 마주하고, 무심히 펼쳐진 풍경 속에서 마음을 여는 방식. 첫해에는 약 1만 명이 방문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이후 관람 인원을 조정한 것도 이러한 ‘조용히 걷고, 만나고, 느끼는’ 체험을 위해서다. 최근에는 해외 갤러리와 바이어들의 방문도 늘고 있으나 이후 이틀간 5,000명에서 올해에는 약 3,000명으로 관람 인원을 조정했다. 이 축제가 지향하는 것은 언제나 같다. 느리게 보고, 깊이 느끼는 시간. 5회째를 맞이한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은 현재 우시마도라는 마을의 풍경이자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공예가 있고, 음악이 있고, 음식이 있습니다. ‘페어’라는 말은 어딘가 이벤트처럼 느껴져서, 조금은 쓸쓸한 인상이 들어요. 우시마도를 산책하다 보면 사람, 건물, 등대 불빛, 풀꽃, 바다, 넓은 하늘, 그리고 새들과 같은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산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일상의 여정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산책을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요.”

_ 총괄 프로듀서 스에토 코타로

공예로 되살리는 기억, 조선통신사와 오차야아토

한편, 오차야아토가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과 함께 이어 나가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조선통신사와 오차야아토> 전시다. 오차야아토가 지닌 교류의 역사와 평화의 의미를 담아 2022년부터 세 차례 전시가 열렸다. 2022년에는 ‘환대의 기억’을 주제로 도예가와 차 연구자, 싱어송라이터, 이불 장인이 참여해 각자의 방식으로 환대를 표현했으며, 2023년에는 ‘교류’라는 키워드 아래 ‘희망의 편지’를 주제로 일본 섬유공예가와 한국 장지방의 한지를 실로 엮여 짠 천을 전시했다. 2024년에는 ‘희망의 여행’을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해 공예와 예술을 통해 국경과 시간을 넘나드는 만남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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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조선통신사와 오차야아토 Ⅰ>

우시마도 크래프트 산책이 열리는 4월, 오차야아토 2층에서는 ‘우시마도의 노래’가 흐를 예정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함께 ‘걷는 손, 잇는 마음’의 여정을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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